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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63>

제6강 논어(論語)-22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爲政)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이러한 번역에서 여러분이 무엇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무척 난감하지요.

옥스퍼드 번역본 ‘논어’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Learning without thought is labourlost
Thought Without learning is perilous.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학(學)과 사(思)에 대한 이해가 애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설명하면서 대련(對聯)과 대(對)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 기억하지요? 이 구절도 완벽한 대련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학(學)과 사(思)를 대(對)로 읽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을 배움(leatning), 그리고 사를 생각(thought) 또는 사색으로 읽을 경우 학과 사가 대를 이루지 못합니다. 다같이 정신영역에 관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학(學)은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론적 탐구라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에 사(思)는 생각이나 사색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實踐)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글자의 구성도 ‘전(田)+심(心)’입니다. 밭의 마음이 사(思)입니다. 밭이란 노동하는 곳입니다. 실천의 현장입니다.

내게는 이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아버님께서 언젠가 어린 손자인 나를 앉혀놓고 이 구절을 설명하셨습니다. 1시간쯤 책을 읽고 나서는 반드시 30분 정도는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읽은 것을 다시 생각하면서 머리 속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어둡지(罔) 않다는 것이 할아버님의 해석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동안 할아버님의 그런 말씀이 생각나서 자주 그렇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읽은 것을 다시 생각하면 내용의 핵심을 확인하게 되기도 하고 또 글 전체의 구성도 이해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감옥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됩니다. 책을 읽어도 도대체 머리에 남는 것이 없었어요.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어떤 책을 약 30-40페이지쯤 읽고 나서야 그 책은 전에 읽은 것이란 걸 알게 됩니다.

감옥에서 책읽는 것이란 그저 무릎 위에 책 한권 달랑 올려놓고 읽는 것입니다. 독서는 그 이전과 이후와 완벽하게 단절된 그저 독서일 뿐입니다. 실천과 유리된 독서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읽은 것을 다시 생각하고 정리해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을 읽는 것(學)이나 책을 덮고 생각하는 것(思)이 똑같은 정신활동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할아버님의 해석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사(思)를 경험(經驗)과 실천(實踐)의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학과 사를 대(對)로 읽어야 하는 것이지요.

경험과 실천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현장(現場性)입니다. 그리고 구체성(具體性)입니다.

현장성이란 것은 그야말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장이란 것은 조건적이고 우연적이고 상대적입니다. 한마디로 특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지(經驗知)는 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학(學)이 보편적인 것임에 비하여 사(思)는 특수한 것입니다. 학이 generalism을 의미한다면 사(思)는 specialism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學而不思則罔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 사상(捨象)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됩니다. 학교연구실에서 학문(學問)에만 몰두하는 교수가 현실에 어두운 것이 사실입니다. 반대로 자기 경험을 유일한 잣대로 삼거나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일을 처리하면 위험한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자신의 경험에서 이론을 이끌어내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현장활동가들은 대단히 완고합니다. 자기경험만을 고집합니다.

생산직 기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인(匠人)적인 자존심으로 자기방식을 고집합니다. 경험적 지식은 매우 완고합니다. 따라서 경험주의(經驗主義)를 주관주의(主觀主義)라고 합니다.

그러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썼습니다만 자기의 경험적 사실을 곧 보편적 진리로 믿는 완강한 고집에서 나는 오히려 그 정수(精髓)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신의(信義)와 주체성(主體性)의 일면을 발견합니다.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긴 하나, 아직도 가치 중립적이라는 ‘인텔리의 안경’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경험 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주관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이란 참으로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동(大同)은 멀고 소이(小異)는 가깝지요. 자기의 처지에 눈이 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쉽지요.

따라서 사회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학(學)과 사(思)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를 키워가야 합니다. 공자가 이 구절에서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입니다.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며 동시에 특수한 경험에 매몰되지 않는 이론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하여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학(學)이 객관주의적이고 사(思)가 주관주의적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대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學)이 주관적이고 사(思)가 객관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사소한 일화입니다만 여러분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 전기공사를 할 때의 일입니다.나도 전기수리공을 도우면서 한나절을 같이 일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의 그 전기수리공과 주고 받은 대화 내용입니다. 집에 책이 많은 걸 보고 그 수리공이 내게 학교 선생이냐고 물었어요.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의 말이 선생은 참 좋겠다고 부러워했어요.

그런데 그가 부러워하는 이유가 무척 철학적이었습니다. 그가 부럽다고 하는 이유는 물론 전기수리보다 교실에서 가르치는 일이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쉽다는 것이 육체적으로 편하다거나 방학이 있어서 쉽다는 뜻이 아니었어요.

“책상에서는 1개이지만 실제로 일해보면 10개도 넘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어요.
교실보다는 현실이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지요.

그가 주장하는 바는 요컨대 이론(理論)은 주관적이고 실천(實踐)은 결코 주관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념적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가 이야기한 것은 어쩌면 단순하다 복잡하다는 정도의 일상적 대화였습니다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내용은 매우 철학적인 것이지요.

그는 마치 확인 사살하듯이 못박았어요.
“머리는 하나지만 손은 손가락이 10개나 되잖아요.”

내가 반론을 폈지요.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의 대답은 칼로 자르듯 명쾌했습니다.
“머리카락요? 그건 아무 소용없어요, 모양이지요. 귀찮기만 하지요.”

그렇습니다. 생각하면 ‘머리’란 머리카락으로 이런저런 모양을 내면서 결국 ‘자기(自己)’를 디자인하고 합리화(合理化)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머리카락이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지요. 그 수리공도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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