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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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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18>

관직명 익히며 쉬어 갑시다

이제까지 조선의 건국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왔으니, 여기서 잠시 쉬어 갈까요? 다른 게 아니라, 이 연재를 보면서 관직 명칭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계신 듯해서 그 부분을 좀 설명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똑같은 의문을 가지셨던 분들은 바로 감이 오실 겁니다. 아닌게 아니라 ‘화령부 윤(尹)’ ‘원주목 사(使)’라는 게 좀 이상했다구요. 아직도 무슨 얘긴지 모르신다구요? 아, 띄어쓰기 문제예요. 왜 ‘화령 부윤’ ‘원주 목사’가 아니냐는 거죠.

사실 우리에겐 ‘부윤’ ‘목사’가 너무 익어서 후자 쪽의 띄어쓰기가 편해 보입니다. 모두 그렇게들 쓰구요.

그런데도 일부러 낯선 띄어쓰기를 한 것은 그 쪽이 관직 이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자가 펴내고 있는 ‘재편집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에서도 이런 방식을 띄어쓰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왜 ‘화령 부윤’이 아니고 ‘화령부 윤’인가? 모두가 한문 원문에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이지만, 이 문제를 풀려면 관직 이름의 구성 방식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접하는 일반적인 관직 이름은 ‘기관명+직책(직위)명’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문화관광부(기관) 장관(직책)’처럼요. 요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이조(기관) 판서(직책)’와 같은 구성입니다. 물론 소속 기관이 애매하거나 내세울 필요가 없는 ‘대통령’ 같은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구성 원칙은 그렇습니다.

그럼 ‘화령 부윤’으로 가볼까요? 이 이름은 ‘지명+직책명’이라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이 경우의 직책명이라는 것도―조금 뒤에 살펴보겠지만―제대로 된 직책명이 아니라 어느 직책명에서 파생된 ‘직책명 대우’ 정도에 불과합니다.

반면 ‘화령부 윤’은 ‘화령’이라는 지명에 기관을 표시하는 ‘부(府)’가 붙어 ‘화령부’라는 기관명이 됐기 때문에 앞의 원칙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러면 ‘윤(尹)’이나 ‘사(使)’가 진짜 직책명이라는 얘기를 해보죠. ‘윤’보다 ‘사’ 쪽이 예를 들기 쉽겠군요. ‘사’는 고려와 조선 초기 여러 기관의 직책명으로 쓰인 일반명사입니다. 도평의사사에도 ‘사’가 있었고, 밀직사나 중추원에도 ‘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본 개념이 돼서, ‘사’를 둘씩 둘 경우의 ‘좌사(左使)’ ‘우사(右使)’가 있고, 조금 낮은 직급을 표시하는 ‘부(副)’자가 붙은 ‘부사(副使)’도 있었습니다. ‘관찰사(觀察使)’ ‘안렴사(按廉使)’ ‘병마사(兵馬使)’나 ‘사은사(謝恩使)’ 등은 ‘사(使)’에 성격을 한정하는 말을 붙여 만든 파생 직책명이었구요.

‘부윤(府尹)’ ‘목사(牧使)’ 등은 직책 자체만 얘기한다면 ‘윤(尹)’이나 ‘사(使)’지만 그 사람이 ‘윤’과 ‘사’로 있는 기관이 ‘부(府)’나 ‘목(牧)’이라는 보충 설명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나오겠지만 ‘경창부(慶昌府)’ ‘인수부(仁壽府)’처럼 지방행정 관청이 아닌 ‘부’도 많은데, 이들 기관의 ‘윤’을 ‘경창 부윤’ ‘인수 부윤’으로 띄어쓰기해 보면 그 비논리성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현령(縣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영(令)’이 일반적인 관직 이름인데, 소속 기관의 이름에 따라 현(縣)에는 ‘현령’, 도성 5부(部)에는 ‘부령(部令)’, 종묘서(宗廟署) 같은 서(署)자가 붙은 기관에서는 ‘서령(署令)’입니다.

물론 영(令)보다 직급이 낮은 부령(副令)이라는 직책도 있구요. ‘운봉(雲峰) 현령(縣令)’ 식으로 적는다면 도성 5부의 하나인 동부(東部)의 영(令)은 ‘동(東) 부령(部令)’이 되는데, 이상한 모양이 되지요?

또 한 가지는 ‘판부사(判府事)’라는 벼슬 이름 얘기입니다. 요즘 어느 TV방송의 ‘여인천하’라는 역사드라마에 중종(中宗) 때 세자의 외삼촌인 윤임(尹任)이 ‘판부사 대감’으로 나오죠?

앞의 ‘목사’는 모두가 ‘원주 목사’로 잘못 띄어쓰는 것이 문제라면, 이 ‘판부사’는 내용도 모른 채 여러 가지 표현이 섞여 쓰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드라마에 보면 윤임은 ‘판부사’, 경빈(敬嬪)이라는 후궁의 똘마니로 나오는 반정공신(反正功臣) 심정(沈貞)은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입니다.

그 둘은 뜯어보면 같은 구조의 관직 이름입니다. 윤임의 경우는 어떤 부(府)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부’라는 이름이 붙은 기관의 판사(判事)고, 심정은 이미 그 속에 들어 있는 대로 의금부의 판사입니다.

그러니 심정도 ‘판부사’라고 부를 수 있고 윤임도 ‘판○○부사’라고 부를 수 있으련만, 드라마에는 시종일관 한 사람은 판부사, 한 사람은 판의금부사로 요지부동입니다. 그러니 이 두 관직명에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죠.

필자는 이런 종류의 관직명도 앞서의 ‘기관명+직책(직위)명’ 원칙에 따라 적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지나치셨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연재에도 이미 나왔던 ‘삼사(三司) 영사(領事)’ ‘문하부 판사’ 같은 식의 표기입니다.

이를 ‘판의금부사’ 식으로 표기하면 ‘영삼사사’ ‘판문하부사’가 되고, 앞서의 드라마에 나오는 ‘판의금부사’를 이렇게 표기하면 ‘의금부 판사’죠. 물론 ‘판부사’는 ‘부’라는 이름이 붙은 기관의 ‘판사’죠.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에서 한 사람은 ‘판의금부사 대감’, 또 한 사람은 ‘판부사 대감’으로만 줄기차게 부르고 있는 것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 때문이 아닐까요?

연습 문제 하나 풀어봅시다. 앞으로 나올 관직 이름이니까요.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는?

예, ‘춘추관 감사’지요. 기관명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감관사’로 부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요즘 지방 각 도(道)의 지사(知事)나 외교관인 영사(領事), 기업체들의 감사(監事) 등은 여기서 나온 말들인지 모르겠네요. ‘강원도 지사’를 ‘판의금부사’ 식으로 적으면 ‘지강원도사(知江原道事)’가 되나요?

말이 나온 김에 아예 샛길로 좀 빠져서, 드라마의 ‘판부사’ 얘기 하나 더 해보죠. 그 드라마에 나오는 몇 사람은 통 직책 변동이 없데요. ‘판부사’ 윤임, 그와 단짝인 ‘이조 참의’ 김안로(金安老), ‘판의금부사’ 심정. 이 분들은 어찌 그리 한자리에 오래들 앉아 계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뒤져보았지요. 지금 안당(安塘) 안처겸(安處謙) 부자의 역모 사건이 터지고 있으니, 중종 16년(1521). 윤임은 그로부터 10여 년은 더 지나야 병조 판서에 올라 정2품 이상에게 붙는 ‘대감’ 소리를 듣게 되는데, 언제부턴지 이미 ‘판부사 대감’으로 부르고 있군요.

그 이전 중종 12년에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들어올 때도 이미 ‘판부사 대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윤임은 중종 16년 무렵에 겨우 3품 직급에 있는 30대 중반의 ‘영감’(정3품 이상)이었을 것이고 문정왕후가 들어올 때는 ‘영감’조차 붙이지 못할 갓서른의 애송이였을 텐데, 종1품 ‘판부사 대감’이라니요? 참고로 윤임은 중종 37년에 ‘판부사’인 돈녕부 판사가 됩니다.

김안로는 몇 년째 이조 참의 자리에 그대로 머무른 ‘특이한 케이스’였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몇 해 뒤에나 들을 ‘대감’ 소리를 역시 언제부턴지 앞당겨 듣고 있는 게 거슬립니다. 참의면 정3품, 영감 중에서도 이를테면 ‘신참’입니다.

심정은 중종 16년 봄까지 이조 판서(정2품)에 의금부 지사(정2품)를 겸하고 있었으니 그동안 계속해서 ‘판의금부사 대감’으로 불렀던 것은 잘못이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중종 16년 상황에서도, 그해 여름부터 좌참찬(정2품)으로 옮긴 그가 한 직급 높은 의금부 판사(종1품)를 겸직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TV드라마도 이런 내용들을 알고 볼 필요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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