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무가 돌아와 이방원에게 정몽주를 죽인 사실을 말했고, 이방원은 들어가 이성계에게 알렸습니다. 이성계는 화를 벌컥 내며 병을 무릅쓰고 일어나 이방원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안은 본디 충효(忠孝)로써 세상에 알려졌는데, 너희들이 멋대로 대신을 죽였구나! 나라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몰랐다고 생각하겠느냐? 부모가 자식에게 경서(經書)를 가르치는 것은 충성하고 효도하라는 것인데, 네가 감히 이런 불효를 저지르니 내 약을 마시고 죽고 싶다.”
“정몽주 등이 우리 집안을 결딴내려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려야겠습니까? 이것이 곧 효도인 까닭입니다.”
이성계는 더욱 화를 냈습니다. 강씨는 곁에 있으면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이방원이 거들어달라고 하자 굳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공은 항상 대장군으로 자처해왔습니다. 어찌 이다지도 놀라고 두려워하십니까?”
이방원은 휘하 군사를 모아 뜻밖의 사태에 대비해야겠다고 말하고 즉시 장사길(張思吉) 등을 불러 휘하 군사들을 거느리고 집을 빙 둘러싸 지키게 했습니다.
이튿날 이성계는 마지못해 황희석을 불러 말했습니다.
“정몽주 등이 죄인과 한패가 되어 대간을 몰래 꾀어 충신을 모함하다가 지금 이미 죄값을 받았으니, 조준, 남은 등을 불러 대간과 함께 시비를 가려야겠다. 네가 가서 임금에게 보고하라.”
황희석이 미심쩍고 겁이 나 가만히 올려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제가 옆에서 성난 목소리로 꾸짖자 황희석은 대궐에 가 모두 고했습니다.
공양왕은 대간(臺諫)을 탄핵당한 사람들과 맞세워 시비를 가릴 수는 없다며, 대간을 지방으로 내보낼 테니 다시 청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이성계는 노기 때문에 병이 더쳐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방원은 일이 급하다며 몰래 사람을 보내 조준, 남은 등을 불러 돌아오게 하겠다고 알렸습니다.
또 이방과, 이화, 이제 등과 더불어 의논한 뒤 이방과를 공양왕에게 보내, 정몽주 등을 처벌하지 않으려면 자신들을 벌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공양왕은 마지못해 대간을 순군부 옥에 내려 가두면서 국문은 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곧 삼사 판사 배극렴, 문하부 평리 김주(金湊)에게 지시해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 제조(提調) 김사형(金士衡) 등과 함께 국문하게 했습니다.
결국 정몽주, 이색, 우현보가 이숭인, 이종학, 조호(趙瑚)를 대간에게 보내 이성계의 부상을 틈타 그 날개를 잘라낸 뒤 치라고 했다는 자백이 나오자, 대간과 이숭인, 이종학을 먼저 먼 지방에 귀양보냈습니다.
사실 여부야 알 수 없지만 이 과정에서 이성계는 대간을 참형에 처하자는 주위의 주장을 물리치고, 곤장이라도 때리자는 것마저 그만두게 하는 ‘인정’을 보였다고 합니다.
조준 등은 다시 불려왔고, 이성계는 문하부 시중이 됐습니다. 이성계는 사직했지만 임금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6월에 공양왕은 이성계의 집에 찾아가 문병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 진영에서는 다른 움직임이 일고 있었습니다.
남은은 위화도 회군 때부터 조인옥 등과 더불어 몰래 이성계 추대를 의논했는데, 돌아온 후 이방원에게 이를 알리자 이방원은 이를 말렸습니다.
“이것은 큰 일이니 가벼이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때에 이르러 이성계를 추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여럿이 모인 가운데서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방원은 남은과 더불어 계책을 정했습니다.
남은은 평소부터 이성계를 따르던 조준, 정도전, 조인옥, 조박 등 52 명과 함께 몰래 이성계를 추대하자고 모의했지만, 이성계가 화를 낼까봐 감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방원이 들어가서 강씨에게 고해 이성계에게 전하려 했으나, 강씨도 고하지 못했습니다. 이방원은 나와서 남은 등에게 일렀습니다.
“즉시 의식을 갖추어 왕위에 나아가시도록 권고해야겠소.”
이에 앞서 공양왕은 이방원과 사예(司藝) 조용(趙庸)을 불러 이성계와 동맹(同盟)을 하겠다고 밝히고 이성계에게 의논해 맹세문 초안을 잡아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틀림없이 고사(故事)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조용은 대답했습니다.
“맹세는 귀하게 여길 게 못 되고 성인(聖人)이 싫어하는 바입니다. 나라간의 동맹이라면 옛날에 있었으나, 임금이 신하와 동맹하는 것은 책이나 고사에 근거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공양왕은 초안이나 잡아 오라고 재촉했습니다. 조용과 이방원이 이성계에게 가서 임금의 지시를 전하니, 이성계는 할 말이 없다며 임금의 지시대로 초안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조용이 잡은 맹세문 초안은 이랬습니다.
“경(卿)이 없었으면 내가 어찌 여기에 이르렀겠는가? 경의 공과 덕을 내 어찌 감히 잊겠는가? 황천(皇天) 후토(后土)가 위에 있고 곁에 있으니, 대대로 자손들은 서로 해치지 말 것이다. 내가 경에게 빚지고 있는 바가 이러하다.”
조용과 이방원이 이를 공양왕에게 바치니, 공양왕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사관(史官)을 겸직하고 있던 조용은 사초(史草)에 이렇게 썼습니다.
“임금은 시중(侍中)이 자기를 도와 임금으로 세운 공도 미처 보답하지 못했는데 도리어 해칠 마음이 이미 싹텄다. 천명이 이미 가버리고 인심이 이미 떠났으니, 구구한 맹약(盟約)도 의지할 바가 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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