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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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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56>

제6강 논어(論語)-15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미(美)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예(禮)에 관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 예의 의미는 인간적 품성(品性)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품성이란 바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통하여 도야(陶冶)되는 것이며 인간관계 속에 발현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에 있어서 조형성(造形性)과 품성에 관한 논의는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조형성이 미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라고 하는 경우에도 그 조형성에 대한 평가기준이 문제됩니다.

그 시대의 조형미는 그 시대 특유의 미감(美感)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스타와 우리 세대의 스타가 조형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까닭이 그런 것이지요.

우리 교실에는 미인이 많아서 반미인론(反美人論)을 펴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미인을 좋아하면서 반미인론을 펼친다고 핀잔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만 얼굴 생김새가 미인이기 때문에 호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람의 사상(思想)이 인간적인 매력이 되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미인론의 일환으로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예(禮)와 인간관계에 관한 논의입니다.

대체로 미인은,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통사람과는 다소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입니다. 흔히 공주병(公主病)이라고 하는 증세들이 그런 것이지요.

미인은 대체로 자신에 대한 칭찬을 미리 예상하고 있습니다. 칭찬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예상했던 칭찬이 끝내 없는 경우에 무척 서운한 것은 물론이지만 반면에 예상대로 칭찬을 받는 경우에도 그 칭찬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특별히 감사할 필요가 없지요. 이것은 사실 그렇게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느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자기의 미모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하여 사람을 분류하고 그러한 평가가 사람과의 관계 건설에 초기부터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지요.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경우에 나타납니다. 미인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 일익을 담당하려는 자세가 허약합니다. 소위 꽃으로 ‘존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신의 의미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에 비하여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자신을 실현하고 자기를 확인하려는 자세를 보입니다. 칭찬으로써 자기를 실현하고 확인하려는 작풍(作風)과는 매우 다른 것이지요.

현대는 미의 기준이나 소위 미모(美貌)가 획일적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미인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고 반대로 스스로 미인이 아니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어졌습니다.

미인의 사회적 의미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미인론(反美人論)을 펼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미를 상품화하는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상품미학(商品美學)에 이르면 미의 본령은 완벽하게 외적인 형식에 국한됩니다.

미의 내용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디자인과 패션이 미의 본령이 되고 그 상품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有用性)은 주목되지 않습니다. 교환가치(交換價値)가 가치의 주류가 되고 사용가치(使用價値)는 가치로서 평가받지 못합니다.

교환가치를 기본적인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미(美)의 문제는 단지 미인론(美人論)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야기했던가요? 미(美)라는 글자의 자(字)풀이입니다. 글자 그대로 양(羊)자와 대(大)자의 회의(會意)입니다. 양이 큰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유목민들의 생활에 있어서 양(羊)은 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생활의 물질적 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고기는 먹고, 그 털과 가중은 입고 신고, 그 기름은 연료로 사용하고 그 뼈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한마디로 양은 물질적 토대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양이 무럭무럭 크는 것을 바라볼 때의 심정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그 흐뭇한 마음, 안도(安堵)의 마음이 바로 미(美)의 본질(本質)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물건(상품이 아닌 물건)은 그 사용가치 즉 유용성으로서 비로소 물건이 됩니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아름다움도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면, 즉 일회용 상품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면, 관계 속의 당사자로서의 인간이라면 인간의 미란 그것의 외적 형식이 아니라 그 인간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인간미(人間味)라고 하는 경우의 의미와 같습니다.

그 인간성이란 철저하게 인간관계에서 형성되고 인간관계를 통하여 발휘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인간관계 그 자체를 황폐화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의 본령을 그 외면적 형식으로부터 예(禮)의 문제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온당한 자리매김을 하는 이 논어의 대화는 매우 뜻깊은 것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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