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왕 2년(1390) 5월,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순안군(順安君) 왕방(王昉)과 밀직사 동지사인 조반(趙胖) 등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져온 소식이 고려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중국 예부(禮部)가 이들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파평군(坡平君) 윤이(尹彛)와 중랑장(中郞將) 이초(李初)란 사람이 중국에 가서 황제에게 고려를 쳐달라고 청했다는 것입니다.
시중 이성계가 종실이 아닌 자신의 인척 왕요(공양왕)를 세워 임금으로 삼았으며, 왕요가 이성계와 함께 모의해 군사를 움직여 중국을 범하려 해서 재상 이색 등이 반대하자 이색,조민수,이임,변안열,권중화(權仲和),장하(張夏),이숭인,권근(權近),이종학(李種學),이귀생(李貴生) 등을 잡아 살해하고 우현보(禹玄寶) 등은 잡아서 먼 곳으로 귀양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살해당하거나 쫓겨났다고 윤이, 이초에 의해 거명된 사람들을 순군부 옥과 청주(淸州) 감옥에 가두고 국문케 했습니다.
6월에 공양왕은 이성계와 심덕부를 불러 죄수를 풀어주고 이조판서 조온(趙溫)을 청주에 보내 교지를 내렸습니다. 옥중에서 죽은 윤유린과 죄를 자복한 최공철, 도피중인 김종연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정황이 명백하지 않으니 고문을 가하지 말고 각처에 안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성계는 이 문제로 11월에 글을 올려 사직했습니다. 공양왕은 이성계를 삼사(三司) 영사(領事)로 삼았습니다.
김종연은 서경에 가서 천호 윤귀택(尹龜澤)과 심덕부 휘하의 선공시(繕工寺) 판관(判官) 조유(趙裕)와 공모해 이성계를 살해하려 했습니다. 윤귀택은 계획이 누설될까봐 몰래 이성계에게 가서 변고를 고발했습니다.
“김종연이 심 시중과 지용기 등과 함께 모반을 꾸미고 있습니다. 조유도 심 시중이 자신과 조언 등 부하 장수들을 시켜 장차 군사를 일으키려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공에게 이롭지 못할 것입니다.”
이성계가 그 말을 몰래 심덕부에게 알리니, 심덕부가 조유를 옥에 내려 가두었습니다. 이성계가 임금에게 아뢰었습니다.
“신은 심덕부와 한마음으로 나라를 받들어 본디부터 시기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청컨대 조유를 신문하지 마셔서 우리 두 신하의 관계를 끝까지 보전케 하소서.”
공양왕이 조유를 풀어주려고 하니 사헌부에서 글을 올려 국문하기를 청했습니다. 조유는 죄를 자백해 교수형에 처하고, 심덕부,지용기,조언 등은 모두 지방으로 귀양보냈습니다.
공양왕은 사헌부의 청에 따라 대장들의 직인을 모두 거둬들였습니다. 12월에 다시 이성계를 문하부 시중 겸 도총중외제군사(都摠中外諸軍事)로 삼았습니다. 이성계가 글을 올려 사양했지만, 임금은 윤허하지 않고 비답(批答)을 내렸습니다.
이듬해 1월, 5군(軍)을 줄여 3군으로 만들었는데, 도총제부(都摠制府)가 중앙과 지방의 군무를 통솔케 하고 이성계를 도총제사(都摠制使)로 삼았습니다. 이성계는 3월에 글을 올려 사직했지만, 임금은 역시 윤허하지 않고 비답을 내렸습니다.
6월, 대간(臺諫)에서 우현보의 죄가 이색과 같다며, 지금 이색이 이미 징계를 받았으니 같이 물리쳐 귀양보내야 한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글이 모두 세 번 올라갔지만 다 보류시켰습니다.
공양왕은 이성계의 집으로 가서 대간을 금지시키도록 청하라고, 우대언(右代言)으로 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게 지시했습니다. 대언은 나중의 승지(承旨)죠. 이성계가 탄식하면서 말했습니다.
“게다가 내가 대간을 사주했다고 하시는가?”
그러고는 글을 올려 사직했습니다. 왕이 좌대언(左代言) 이첨(李詹)에게 가서 왕명을 전하라고 지시하고, 곧 비답을 내려주었습니다. 이성계가 아뢰었습니다.
“나라에 큰일이 있어 함께 의논하고 변경이 위급해 막도록 신이 할 수 있는 일로써 책임지운다면 신이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지금 신이 임무는 크고 직책은 무거워 그것만으로도 견디지 못하는데, 병까지 이것저것 신을 괴롭힙니다. 원컨대 의원과 약으로 스스로 보양(保養)토록 해주소서.”
공양왕이 윤허하지 않고 억지로 나오게 했습니다. 이성계는 사양하며 나가지 않은 채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공양왕은 글을 보고 이방원에게 말했습니다.
“시중이 글에서 말한 것은 모두가 내게 뜻밖의 것들이다. 내가 능력도 없이 외람되이 왕위에 있는 것은 오직 시중이 추대하는 힘만을 믿는 것이다. 시중을 아버지처럼 받드는데, 시중은 어찌 나를 저버리는가? 윤이, 이초와 신창을 세우고 신우를 맞이할 것을 함께 모의했다는 사람들은 이미 지난해에 의논해 증거가 명백치 않다고 해서 특별히 사면했고, 시중도 찬성한 일이다. 지금 대간이 다시 사면 전의 일을 들어 처벌을 청하기에 경으로 하여금 시중에게 가서 만약 대간을 보게 되면 이런 뜻으로 깨우쳐달라고 했을 뿐이다. 경이 시중에게 어떻게 말했기에 시중이 굳이 사퇴하려 하는가? 만약 시중이 사직한다면, 나 또한 어찌 감히 이 자리에 편안히 있겠는가?”
그러고는 눈물을 흘리고 하늘을 가리키며 간절하게 맹세했습니다. 곧 이방원을 보내 업무에 복귀토록 타이르게 했으나, 이성계는 끝내 업무를 보지 않았습니다. 공양왕이 다시 대간에게 타일렀습니다.
“우현보의 죄상은 애매하고 게다가 사면 전의 일이니, 다시 청하지 말라.”
그러고는 이성계를 부르게 했으나 이성계는 아프다며 거부했습니다. 심부름 간 자가 억지로 나오라고 하니, 이성계가 사람을 시켜 아뢰었습니다.
“신이 병 때문에 나갈 수 없는데 지금 억지로 나가라 하니, 어찌할 바를 몰라 황공하고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공양왕은 화가 나 심부름갔던 자를 순군부 옥에 내려 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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