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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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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53>

제6강 논어(論語)-12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爲政)

道(도) : 導이다. 이끌다. 政(정) : 행정명령. 法敎. 齊(제) : 강제하다. 가지런히 하다.
民免而無恥.(민면이무치) : 형벌은 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다
格(격) : 바르다. 진심으로 따르다. 正也.

이 글의 뜻은 한마디로 덕치주의(德治主義)의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가려고 하거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러한 규제를 간섭(干涉)과 외압(外壓)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그러한 규제와 형벌에 저촉되지 않으려고 하는 소극적 대응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그러한 부정을 저지르거나, 행정적, 사법적 제재(制裁)를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덕(德)으로써 이끌고 예(禮)로써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정편의 이 구절은 법가적 방법보다는 유가적 방법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법은 적극적 가치가 아닙니다. 포지티브(Positive)의 개념이 아니라 네거티브(Negative)개념입니다.

그런 점에서 덕치주의는 법치주의에 비하여 보다 근본적인 관점 즉 인간의 삶과 그 삶의 내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법치주의는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 즉 공동체라는 시스템의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춘추전국시대는 법가에 의해서 통일됩니다.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총체적 난국에서는 단호한 법가적 강제력이 사회의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불가피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덕치(德治)가 평화로운 시대 즉 치세(治世)의 학(學)이라고 한다면 정령과 형벌에 의한 규제를 중심에 두는 법치(法治)는 난세(亂世)의 학(學)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법가와 유가의 차이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이 구절을 2가지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물론 형(刑)과 예(禮)를 인간관계라는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것입니다. 나중에 법가(法家)에 관하여 강의할 때 다시 부연 설명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사회의 지배계층은 예(禮)로써 다스리고 피지배계층은 형(刑)으로 다스리는 것이 주(周)나라 이래의 원칙이었습니다.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이지요. 형은 위로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예는 아래로 서인에게까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물론 예(禮)의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만 여기서는 형(刑)과 예(禮)의 차이를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하지요.

예와 형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은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에 비하여 예는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우회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관계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는 입장이지요. 사회적 질서는 이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회의 기본적 질서가 붕괴된 상황에서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이란 한낱 환상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형벌에 의한 사회질서의 확립이 더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과 예는 그 접근 방법에 있어서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간관계의 개념으로 재조명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란 바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형(刑)은 인간관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며 반대로 예(禮)는 인간관계를 열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춘추전국시대를 법가가 통일하였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통일제국인 진(秦)나라가 단명으로 끝납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법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견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진한(秦漢)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봐요. 진나라의 시기는 통일과 건국과정이며 그것이 곧 법가적 통치방식이었으며 한(漢)나라의 시기는 이를 계승하여 통일제국을 다스려나가는 시기라고 보아야 하며 그것이 곧 덕치를 기본으로 한 통치방식이었다고 하여야 옳습니다.

따라서 법치와 덕치의 비교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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