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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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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43>

제6강 논어(論語)-2

춘추(春秋)시대(BC.770-BC.403)와 전국(戰國)시대(BC.403-BC.221)는 사회경제적 성격에 있어서 구별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春秋)’는 물론 공자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노(魯)나라 은공(隱公) 1년부터 애공(哀公) 14년까지의 왕(王)의 행(行)을 기록한 것입니다.

‘전국시대’는 송(宋)의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집필하면서 당시의 강국인 진(晉)이 한(韓)· 위(魏)· 조(趙) 3국으로 분열된 BC 403년부터 전국시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춘추’와 이어지는 시기이나 굳이 그것을 피한 까닭은 자기가 성인(聖人) 공자(孔子)를 잇는다는 평판을 기피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경’과 ‘춘추’가 공자의 저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공자는 역사학의 개조(開祖)로 불립니다. 그러나 ‘서경’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주(周)의 문,무,주공(文,武,周公)의 사적(史蹟)만이 사실이고 그 이전은 후에 가상(加上)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춘추’의 공자 저작도 의심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으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를 후세에 남김으로써 불충한 신하와 불효한 자식을 외포(畏怖)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고 하나 공자가 과연 이러한 역사관을 가졌는가도 의심스럽지요.

‘춘추’의 집필과 그 집필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것은 맹자 이후 유교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자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구전(口傳)되어 오던 사화(史話)들을 한대(漢代)에 문자화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으로서 경문(經文)의 해설서로 귀중한 자료입니다. 지리멸렬한 ‘춘추’보다는 이 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춘추좌씨전’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역사책 이야기로 흘러버렸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특징은 다음 3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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