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 양천구에서 일어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취재한 일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와 각종 언론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쓴 탄원서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건의 요지는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아동을 성추행해 실형을 선고받은 62세 노인이 그 이후에도 동일한 아동을 성추행했다는 것. 이 사건의 피의자 신모씨는 지난 99년 9월 자신의 집 1층에 사는 C(7)양과 지하에 사는 K(8)양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신씨는 K양을 성추행한 사실이 인정돼 2000년 4월 1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같은 해 12월 2심에서도 동일한 형을 선고받았다. 신씨는 99년 12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 후에도 신씨는 2000년 4월 “내 딸이 신씨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C양 어머니(48)의 신고로 다시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또한 같은 해 9월, 지난 4월 15-19일에 걸쳐 K양, C양, 이들의 친구 Y(7)양, L(7)양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신씨는 K양을 성추행한 사실 외에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신씨는 자신은 “지난 91년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후부터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이며 10년동안 발기부전이었기 때문에 성폭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C양의 어머니를 무고죄로 맞고소했다.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놓고 올 1월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의 담당 형사는 “2000년 4월에 고발된 성폭행 사건은 뚜렷한 목격자나 물증이 없고 몇 가지 조사 결과가 서로 엇갈리는 등 신씨의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수사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밝혔다. 신씨는 “그 아주머니 합의금 타내려고 딸 팔아먹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딸 팔아 합의금 타내려 한다?**
지난 10월 15일 발족한 아동 성폭력 피해 가족 모임인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푸른가족모임’(이하 푸른가족모임) 송영옥 씨는 “이러한 주위 사람들과 수사기관의 왜곡된 시각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송영옥씨는 ‘지난 98년 G 유치원 설립자 홍모씨(56)가 딸 희진양(가명 당시 6세)을 성추행했다’며 홍씨와 담임교사 김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이 판결은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네 차례나 무혐의 처분했던 것을 민사재판부가 4년만에 뒤집은 판결로 화제가 됐다.
“당신들 같으면 딸 팔아서 합의금 타내고 싶은지 묻고 싶다. 한번은 딸아이가 왜 그 유치원을 보냈냐고 원망하며 가위로 내 머리를 다 잘라 놓은 일도 있었다. 4년을 그렇게 보냈다. 내 딸이 기분이 좋으면 나도 좋고, 딸아이가 기분이 나쁘고 나도 나쁘고. 여섯 살짜리 얘가 성폭력 후유증으로 하루 종일 자위행위 하는 것을 보는 부모 맘이 어떤지 아느냐.”
***아동대상 성폭력 전체의 30%**
우리나라는 13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전체 성폭력 중 무려 30%에 달한다. 그 중 7세 이하의 유아 대상이 34.5%나 된다. 지난 8월말 무수한 논란 끝에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성범죄 예방 등을 목적으로 청소년 성범죄자 1백69명의 명단을 공개한 이후에도 성범죄가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신상공개 뒤에도 청소년 성매수, 미성년 매매춘 등이 증가했다. 성폭력 사건은 지난 8월 9백65건에서 9월 9백60건으로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발생 추이가 수그러들지 않았고, 구속자는 3백68명에서 4백16명으로 오히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위기센터 김현정 사무국장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성범죄가 일상적으로 만연돼 있다는 의미라고 보여진다”며 “신상공개로 성범죄가 단시일 내에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자 신상공개는 예방책이며 사회적 경고의 의미이지 성범죄의 해결책은 아니”라며 “아동 성폭력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푸른가족모임의 송영옥 씨는 “최근 경찰서에 아동.청소년계가 생겨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별도의 조사실 없이 피해 아동을 마치 죄인처럼 다룬다”고 경찰 수사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또 송씨는 “가뜩이나 정신적 상처를 받은 아이들에게 반복 진술을 요구하고 가해자와 대질심문까지 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사무국장도 “보통 만 7-8세가 넘어야 자기 진술에 일관성을 가지게 된다”며 “경찰이나 검찰에서 성폭력 횟수, 장소 등에 대한 진술이 엇갈린다며 피해아동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 아동 성폭행 처리 전담 수사팀과 특별법 제정 ▲ 성폭행 피해자 가족의 전문치료와 교육센터의 건립 ▲어린이 성폭행법 신원공개 ▲유아시설과 초등학교에서 성폭행 방지 의무교육 실시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동성폭력 외국에서는**
아동 성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이 주도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등 서구에서는 사회복지사, 성폭력전문상담원, 의사, 경찰이 한 팀을 이룬 ‘아동 성학대 전담반’이 조사를 담당한다. 피해아동은 이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꾸며놓은 별도의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는다. 이들을 지속적으로 상담한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과 피해 아동의 진술은 법적 판단에 중요한 자료로 인정된다.
한편 미국, 대만 등에서는 성범죄자의 신상공개 시 이름, 주소, 사진까지 공개한다. 미국의 경우 ‘메건법’(Megan's Law)에 의해 복역이나 치료를 마치고 석방된 아동 성범죄자는 그가 사는 사법 당국에 거주 이전 사실을 통보하고 사법 당국은 다시 이 사실을 피해아동의 학교와 가정에 통보한다.
또 성범죄자들의 이름, 거주지, 전자우편 주소 등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주민들이 자주 찾는 슈퍼마켓 등에서 이들의 사진과 명단을 담은 소책자를 무료로 배포한다. 텍사스 주는 성범죄자의 집과 자동차에까지 성범죄자임을 알리는 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하원은 아동 성범죄를 두 번 이상 저지른 자는 세번째부터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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