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주역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관계론(關係論)’입니다. 효와 그 효가 처한 자리(位)의 관계, 효와 효의 관계 즉 응(應), 비(比). 그리고 괘와 괘의 관계 등 ‘관계’가 판단과 해석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주역사상은 지난 시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사물과 현상, 그리고 존재와 변화에 관한 범주적(範疇的) 판단형식(判斷形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역사상에서 우리는 동양적 판단형식 즉 동양적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형식과 사고방식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개별적 존재나 개별현상에 대한 존재론(存在論.實體論이 더 적절한 용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적 관점보다는 존재와 존재들이 맺고 있는 관계망(關係網)에 대한 관점이 기본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학파가 십익(十翼)을 이루어 놓기 이전은 ‘주역(周易)’이 물론 복서미신(卜筮迷信)의 책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십익(十翼) 이후의 해설은 매우 철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역의 복서(卜筮)도 사실은 단순한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점(占)이라 하는 것 역시 그 본질에 있어서는 어떤 현상과 상황을 우리들의 일상적 관점과는 다른 논리로 재해석하고 조명하는 인식체계입니다.
그것 역시 사물과 변화에 대한 판단형식의 일종이며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철학적 구조를 띠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역은 사회경제적으로 농경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유한공간(有限空間)사상이며 사계(四季)가 분명한 곳에서 발전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합니다. 무수한 반복적 경험의 축적과 시간관념의 발달 위에서 성립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년 내내 겨울이 지속되는 극지(極地)나 반대로 일년 내내 여름인 상하(常夏)의 나라에서는 발달하기 어려운 문화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복적 경험을 통해서만이 사물과 사물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하여 천착해 들어갈 수 있으며 변화를 반복해서 경험하는 동안에 비로소 그 변화를 법칙적으로 읽으려는 노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역사상은 유목적 생활환경에서는 발전하기 어려운 사상형태입니다. 유목생활은 기본적으로 무한공간(無限空間)사상입니다. 일정한 토지에 정착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 갑니다.
따라서 어제의 경험이 오늘이나 내일에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반복적 경험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농본적 문화가 과거의 경험을 매우 중시하는 이를테면 ‘노인보수문화’임에 비하여 유목적 문화는 어제의 경험이나 노인들의 경험이 별로 의미가 없는 문화입니다.
오히려 청년전위(靑年前衛)문화입니다. 상(商)문화는 유목적 문화로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주나라 문화는 상(商)문화와 여러 면에서 구별됩니다. 아마 상(商)과 주(周)의 차이에 대하여는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주역은 주(周)나라 문화와 사상의 토대이며 이후 중국문화, 동양적 사고의 기본적 틀이 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죽간(竹簡)으로 되어 있는 주역의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다음 시간부터는 주역 대성괘를 예제로 하여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구성이 어떤지 그리고 괘사(卦辭)와 단전(彖傳)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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