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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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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18>

제3강 서경(書經)-4

나는 이 무일(無逸)편을 여러분과 함께 읽으면서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읽으면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어떠한 반성적 시각인가를 묻게 됩니다.

첫째 나는 이 무일 편이 효율성과 소비문화를 반성하는 메시지로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능력 있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반성하는 경구로서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노르웨이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 저장탱크 속에 반드시 정어리의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정어리의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무일 편을 통하여 불편함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씹어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둘째 무일 편은 생산하는 사람은 업신여기고 소비하는 사람은 우러러보는 우리들의 사고(思考)는 과연 어디서 연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한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소비행위에 의하여 실현될 수 있는지? 적어도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그 사람의 고뇌와 삶의 지속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지를 반성하는 관점에서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셋째로 노인에 대한 태도입니다. 노인들을 아는 것이 없다고 업신여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세태였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IMF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퇴직연령이 낮아지면서 더욱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과거의 지식이 빨리 폐기되고 당연히 노인들의 위상이 급속히 추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 자체의 조로화(早老化)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낭비이면서 역사의 폐기입니다. 소위 ‘도시유목민‘이 정보화 사회의 미래상이라는 전망이 전제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목문화는 과거의 경험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동일한 공간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는 문화가 아니지요. 부단히 새로운 들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경험적인 노인문화보다는 청년문화(靑年文化)가 그야말로 전위문화(前衛文化)로 자리잡습니다.

인류의 정신사는 어느 시대에나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의 압축과 재조명에 의하여 그 진로를 모색하기 마련입니다. 어느 마을에 나이 많은 노인이 한 사람 살고 있다는 것은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의 속도와 변화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는 물론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사활적 자본축적논리의 비정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적 논리, 인간적 가치와는 한 점의 상관도 없는 것이지요. 인간적 가치와 인간적 논리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경험의 폐기이며 역사 그 자체의 폐기이며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폐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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