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들의 금요예배가 있었던 12일,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 1시 예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전통의상이나 단정한 복장을 차려입은 무슬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눈길에 뭍어나는 불안함은 평온한 거리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모스크 정문은 소총으로 무장한 5~6명의 경찰들이 신분증과 소지품을 철저하게 검문하고 있었다. 9.11 항공기 테러 사건 직후 시작된 출입단속에 이제는 불쾌감도 무뎌진 듯 양 팔을 벌리고 몸수색을 받는 무슬림들의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출입을 요구하는 기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경찰 관계자는 출입 통제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요즘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연한 조치 아니냐”는 반문으로 일축했다.
9.11 사건과 미국의 보복전을 보는 무슬림들의 견해는 과잉 대응을 하는 미국도 반대하지만 테러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또 언론에 확전설이 보도되면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전쟁이 다른 아랍권 국가로 확산될 것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파키스탄 출신의 아짐(33. 개인사업) 씨는 “이번 전쟁이 파키스탄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 가장 걱정된다. 만약 미국이 지나친 공격을 계속하게 된다면 파키스탄 국민들의 반미 감정이 매우 커질 것이다”며 미국의 공격 중지를 요구했다.
미국의 보복전에 대해서도 “테러를 당한 미국이 보복을 하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빈 라덴이 범인이라는) 정확한 증거도 없이 공격하는 건 잘못됐다”며 “미국의 공격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노인들과 어린이들까지 다치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격분했다.
또 “빈 라덴 한사람 때문에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슬람을 미워한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고 심경을 밝혔다.
국내 거주 무슬림들은 이번 사태로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아짐씨는 출입국관리소에서 연장비자를 신청했는데 담당자가 “파키스탄 사람들에게는 비자를 주지 않는다. 그냥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비자를 내주지 않아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라필(32. 파키스탄)씨도 “한국인 한명이 사무실에 물건을 사러 왔다가 내가 파키스탄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냥 돌아가버렸다”며 한국인들의 편견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아자르(33. 파키스탄. 무역업)씨는 “이슬람과 테러리스트는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무슬림들을 전부 테러리스트인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슬람교는 평화적인 종교”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이날 중앙성원에는 신도들의 발걸음도 평소보다 30~40% 가량 줄었다. 성원 근처에서 이슬람 음식점을 운영하는 가심(36. 방글라데시)씨는 “평소에는 1천여 명의 신도들이 참석하는 금요예배에 6백여 명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며 “점점 금요예배에 참석하는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 마석에 있는 이주 노동자 조합인 서울경인지역 평등 노동조합의 분위기는 보다 심했다. 불법 체류자가 대부분인 이 지역 무슬림들은 종교 생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상 생활까지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의 서선영 교육국장은 “경찰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한다. 무슬림들은 무서워서 집밖을 나오려 하지 않는다”며 “노조 사무실에도 요즘 이주 노동자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고 밝혔다.
불법 체류 노동자인 주다(29. 방글라데시)씨는 “경찰들의 압력이 많이 심해져서 동료 중에는 강제 출국의 두려움으로 정신병 증상을 겪는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또 경찰들이 예배를 주관하는 사제 집으로 찾아가서 “무슨 내용으로 기도를 했냐”고 캐물으며 “예배 시간에는 기도만 하고 다른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주다씨는 또 “미국은 이슬람인들을 너무 오랫동안 억압해왔다”며 “만일 이번 전쟁이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라면 미국에 대항해서 싸울 용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 사무실 주변에서 만난 타주(35. 파키스탄)씨도 “무슬림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전쟁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슬람과의 전쟁이 확실하다”며 “탈레반 같은 근본주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무슬림으로써 마음으로나마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직접적인 가해 위협은 없었으나 공장 주변에서 한국 사람들이 “너희는 빈 라덴과 똑같은 놈들이다. 이번에 다 죽어야 한다”는 욕설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고국의 불안한 상황에 대한 걱정과 함께 강제 출국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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