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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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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13>

제2강 시경(詩經)-3

다음 시는 정(鄭)나라에서 수집한 시입니다. 정풍(鄭風)입니다. 음탕하다고 할 정도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褰裳(鄭風)

子惠思我 褰裳涉溱 子不我思 豈無他人 狂之狂也且
子惠思我 褰裳涉洧 子不我思 豈無他士 狂之狂也且

褰裳(건상)-치마를 걷다. 惠思(혜사)-사랑하고 사모하다.
溱(진),洧(유)-하남성 密懸부근에서 합류하는 鄭나라의 강.

<치마를 걷고서>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남자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내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이 정도의 번역은 상당히 점잖게 새긴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편만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 역시 국풍입니다. 시경을 사실성의 관점에서 읽다보니까 국풍만을 읽게 됩니다.

陟 岵(魏風)

陟彼岵兮 瞻望父兮 父曰 嗟予子 行役夙夜無已 上愼旃哉 猶來無止

陟彼屺兮 瞻望母兮 母曰 嗟予季 行役夙夜無寐 上愼旃哉 猶來無棄

陟彼岡兮 瞻望兄兮 兄曰 嗟予弟 行役夙夜必偕 上愼旃哉 猶來無死

岵(호), 屺(기), 岡(강)-푸른 산, 민둥산, 산등성이. 瞻望(첨망)-멀리 바라봄.
夙(숙)-이를 숙, 새벽. 無已(무이)-쉬지 못함. 上-尙과 같은 뜻. 부디.
旃(전)- 之焉의 준말. 之와 같은 뜻.

위(魏)나라는 순(舜), 우(禹)가 도읍 했던 땅으로 유명하지만 강국(强國)인 진(秦), 진(晋)과 접하여 잦은 전쟁과 토목공사로 이산(離散)의 아픔을 많이 겪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는 전쟁터에 징병되었거나 만리장성 축조에 강제 징용된 어느 젊은이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 당대에 가장 보편적인 이산의 아픔이었다고 짐작됩니다.

감옥 속에서 내가 이 시를 읽었을 때의 감회가 생각납니다만 생각하면 이산의 아픔은 산업사회와 도시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보편적 정서이기도 합니다.

고향을 떠난 삶이란 뿌리가 뽑힌 삶이지요. 나는 사람도 한 그루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시의 정서는 3천년을 격한 옛날의 정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산에 올라>

“푸른 산에 올라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아들아.
밤낮으로 쉴 새도 없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머물지 말고 돌아오너라.
잎이 다 진 산에 올라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어머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우리 막내야. 밤낮으로 잠도 못 자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이 어미 저버리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등성이에 올라 형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형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동생아.
밤이나 낮이나 단체행동 하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만리장성에 올랐을 때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책에도 이 시를 소개했습니다.

나는 관광지로 유명한 팔달령(八達嶺)으로 가지 않고 찾는 사람도 별로 없는 사마대(司馬臺)로 갔었습니다. 팔달령은 관광목적으로 개축하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회가 덜 할 것 같았지요. 반면에 사마대는 단 한 명의 관광객도 없는 쓸쓸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눈까지 내려 그 엄청난 역사(役事)에 감탄하기도 하고 벽돌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리장성은 동쪽 산해관에서 서쪽 가욕관에 이르는 장성입니다만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은 산해관의 망루에서 1km정도 떨어진 발해만의 노룡두인데 이곳에 맹강사당(孟姜祠堂)이 있습니다.맹강녀의 한 많은 죽음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맹강녀(孟姜女)의 전설은 이렇습니다. 진시황 때 맹강녀의 남편 범희양이 축성노역에 징용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편지 한 장 없는(杳無音信) 남편을 찾아 겨울옷을 입히려고 이곳에 도착했으나 남편은 이미 죽어 시골(屍骨)마저 찾을 길 없었지요.

당시 축성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죽으면 시골은 성채 속에 묻어버리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맹강녀가 성벽 앞에 옷을 바치고 며칠을 엎드려 대성통곡하자 드디어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맹강녀는 시골을 거두어 묻고 나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는 것이지요. 맹강녀 전설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이 나오다니 전설은 전설입니다.

그러나 사실과 전설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진실한가를 우리는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실보다 전설 쪽이 더 진실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어떤 혼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시경의 시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간에서 불려지는 노래를 수집하는 까닭은 이러한 진실의 창조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려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채시관들이 조직적으로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공자도 그 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지요. 악여정통(樂與政通)이라는 것이지요. 음악과 정치는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오늘의 서울에 와서 음악을 듣고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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