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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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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11>

제2강 시경(詩經)-1

지난 시간에는 동양사상의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특징'이라는 것에 관해서 입니다. 특징이라는 것은 비교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다면 특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징은 반드시 비교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이가 특징의 내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동양사상의 특징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서양사상과의 비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서양 사람의 얼굴의 특징이라는 것은 동양 사람의 얼굴과 비교한 것입니다. 따라서 동양사상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경우 그 특징이 어떤 것과의 관계에서 규정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주로 관계론적인 내용을 동양사상의 특징으로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양사상의 존재론적 특징과 비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근대사회를 그 기본적 구조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어내는 담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론부분에서 그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면서도 막상 빠트린 것이 많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추후에 첨부하겠습니다.

오늘은 ‘시경(詩經’)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어떠한 논의이든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일관된 관점을 견지하는 일입니다. 그 관점이 자의적이거나 경우에 따라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경우는 논지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시경에 관해서도 숱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3백여 편이 넘는 시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주(註)가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시경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의 사실성(寫實性)에 있습니다. 이야기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지요.

시경은 민요이며 민요는 개인 창작이 아닙니다. 집단 창작입니다. 그리고 그 전승과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 노래가 계속 불려지고 전승될 리가 없습니다.

시경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실성(眞實性)과 진정성(眞正性)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이 지극히 불안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진정성 그리고 사실성의 문제는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소위 상품미학과 사이버 세계, 그리고 바로 여러분들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신세대들이 매몰되고 있는 자본주의 문화 일반에 대하여 그 허구성, 가공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반성적 시각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경의 독법은 바로 그러한 시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시경의 시 한 편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지요.

汝 墳(周南-지역명)

遵彼汝墳 伐其條枚 未見君子 惄如調飢
遵彼汝墳 伐其條肄 旣見君子 不我遐棄
魴魚赬尾 王室如燬 雖卽如燬 父母孔邇

汝(여)-하남성 강이름. 墳(분)-강둑. 條(조)-가지. 枚(매)-줄기.
惄(역)-생각하다, 調(주)-朝. 肄(이)-움, 싹(베어낸 자리의) 遐(하)-멀다.
棄(기)-버림. 赬尾(정미)-붉은 꼬리. 孔(공)- 매우.
毛詩序는 殷末 紂王의 使役을 이 시의 배경으로 들고 있으나 西周 末로 보는 것이 현재 통설.

우선 전체의 뜻을 새겨보지요.

<여강 둑에서>

“저 강 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기다리는 님은 오시지 않고 그립기가 아침을 굶은 듯 간절하구나. 저 강 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저기 기다리는 님 오시는 구나. 나를 멀리하여 버리지 않으셨도다. 방어꼬리 붉고 왕실을 불타듯 하도다. 비록 불타듯 하지만 부모가 바로 가까이에 계시는구려.“

주(註)를 보면 대강의 의미는 짐작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에서 먼저 이 시가 보여주는 그림을 여러분들이 그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 연에서 그려볼 수 있는 그림은 이렇습니다. 길게 흐르는 여강과 그리고 그 강물과 함께 뻗어있는 긴 강둑. 그리고 그 강둑에서 나뭇가지 꺾으며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입니다.

전쟁터로 나갔거나, 또는 만리장성 축조 같은 사역에 동원되었거나 벌써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낭군을 기다리는 가난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땔감으로 나뭇가지 꺾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병역이나 사역에 동원될 리가 없지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요.

두 번째 연에서는 기다리던 낭군이 돌아오는 그림입니다. 자기를 잊지 않고 돌아오는 낭군을 맞는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돌아온 낭군에게 하는 다짐입니다. 그 내용이 지금의 아내나 지금의 부모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시국에 대한 인식입니다. 방어의 꼬리가 붉다는 것은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방어는 피로하면 꼬리가 붉어진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왜 피로한 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방어는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왕실여훼’란 중앙정치가 매우 어지럽다는 뜻이지요. 권력투쟁을 둘러싼 정변이 잦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왕실이 불타는 듯 어지럽더라도 그러한 전쟁이나 정쟁에 일체 관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지요.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부모가 바로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내의 논리지요. 가정의 논리입니다.

그것이 곧 아내의 정치학이 되고 있지요. 정치학이라기보다는 소박한 민중의 삶이며 소망입니다.

나는 이 ‘여분’이란 시를 참 좋아합니다. 그 시절의 어느 마을, 어느 곤궁한 삶의 주인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궁금하기는 이 노랫말에 어떤 곡이 붙었을까, 매우 궁금합니다.

원래 시경에 실려 있는 시들은 가시(歌詩)였다고 합니다. 악가(樂歌)지요. 辭(시) + 調(노래) + 容(춤)이었다고 전합니다.

즉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정의(情意)가 언(言)이 되고 언(言)이 부족하여 가(歌)가 되고 가(歌)가 부족하여 무(舞)가 더해진다(毛詩 大序. 毛詩는 毛亨의 시경 주해서)고 하였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말로써도 부족하고 노래로써도 부족하고 춤까지 더해서 그 뜻의 일단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악곡(樂曲)은 없어지고 가사(歌辭)만 남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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