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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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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7>

제1강 고전강독 서론

그러나 동양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생기(生氣)의 장(場)‘으로 인식하는 통체적 사상 특히 자연과의 조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생기(生氣)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농본적(農本的) 성격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동양사상의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양사상의 바로 이러한 특징이 후기산업사회의 모순구조를 드러내는 것과 아울러 대립면을 상실한 현대자본주의의 패권적 속성을 명쾌하게 조명해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동양사상에 있어서 자연은 하나의 장(場)입니다. 장이란 비어 있는 공간이란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자력장(磁力場), 중력장(重力場), 전자장(電磁場)과 같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힘의 질서입니다. 그것을 ‘생기(生氣)의 장(場)‘이라 합니다.

그 장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조화되고 통일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조화 통일됨으로 인하여 장이 되고, 그래서 최고의 어떤 질서가 됩니다. ‘부분적 총체들의 복합체(the complex of partial totalities)’이며 ‘관계들의 총화(the ensemble of relation)’입니다.

개개의 부분이 곧 총체인 구조, 다시 말하자면 관계망(關係網)과 연기(緣起)의 장(場)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존재하고 있는 것 중의 최고(最高), 최량(最良)의 어떤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우주(宇宙)의 개념으로 확장됩니다.

우(宇)는 상하사방 즉 공간의 개념으로서 유한공간(有限空間)--->체(體)--->지(知)--->상도(常道)의 체계를 구성하고, 주(宙)는 고금왕래(古今往來) 즉 시간의 개념으로서 무궁시간(無窮時間)--->용(用)--->도(道)--->무상(無常)의 체계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유한과 무한의 통일 즉 공간과 시간의 통일체로서 최고, 최대의 개념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일부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이루는 것이지요. 시간과 공간이 통일되는 태극(太極)의 상태 태극의 질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설명이 다소 추상적입니다만 예를 들어 진흙(空)은 그릇(色)이 되고 그릇은 다시 진흙으로 되돌아갑니다. 만약 그릇이 그릇이기를 계속 고집한다면 즉 자기(主我)를 고집한다면 생성 체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흙-그릇-진흙의 과정 즉 생성이 계속된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 질서는 변화하는 것입니다. 생주이멸(生住移滅),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한 것으로 됩니다.

이러한 통체적(holistic) 체계와 질서에 있어서 어떤 한 존재가 특별히 자기를 고집한다거나 확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주의는 그런 점에서 이러한 자연주의 속에 해소됩니다.

인간주의에 대하여도 특별한 지위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어느 특정분야의 불균형적 자기확대는 곧바로 다른 것과의 생성관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화와 절제가 당연한 가치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러한 가치는 현실적인 삶에 있어서 욕망의 절제로 나타나고 절용휼물(節用恤物), 수분지족(守分知足), 나아가서 안빈(安貧)함으로써 낙도(樂道)하는 삶의 철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항상 천(天), 지(地), 인(人) 즉 삼재지도(三才之道)의 관점에서 규정됩니다. ‘봄여름에는 도끼와 낫을 들고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지 않고 촘촘한 그물로 하천에서 고기를 잡지 않는다.’ (맹자) 자연과 우주의 생성체계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지요.

동양사상의 현실주의란 이러한 자연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두루 포괄하는 사회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규정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초월적 가치로부터 인간을 상대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을 처음부터 부분이면서 전체인 생기의 장에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사상의 인간주의는 서구적 휴머니즘과 다른 차원의 의미내용을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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