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고전 원문을 함께 읽고 해석하는 일에서부터 강의가 시작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은 대체로 한자공부나 한문공부가 없는 세대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나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나 역시 한문은 전공과도 멀고 소양도 부족합니다.
고전강독에서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고전으로부터 사회와 인간에 관한 담론을 재조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조명을 통하여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하여 다시 한번 근본적 사고를 간추려보고 나아가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모색하는 일입니다.
한자나 한문공부는 부차적입니다. 물론 욕심입니다만 교재에 있는 고전문장을 여러분들이 다 암기하면 좋지요. 암기는 못하더라도 혼자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강의시간으로는 그것을 확인하거나 습득하게 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문공부에 왕도는 없습니다. 다른 어학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름길이나 편법은 없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서당에서 수학하던 방법은 참으로 우직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습니다. 무조건 암기하는 것이지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암기하는 그런 우직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서당 방식 놀랍다
서당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록자대야(麋鹿者大也)라는 이야기입니다. 미록자대야란 ‘미(麋)는 사슴중의(鹿者) 큰놈이다(大也)’라는 뜻이지요. ‘麋’은 ‘큰사슴 미‘자거든요. 당연히 麋, 鹿者, 大也라 띄어 읽어야 맞지요.
그런데 아침에 책방도령의 글 읽는 소리를 듣자니 麋鹿, 者大也로 읽더라는 것이지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책방도령의 읽는 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麋, 鹿者, 大也로 바르게 끊어서 읽더라는 것이지요. 스스로 깨치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직한 방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매우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영어공부를 대체로 10년정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어논문을 쓰거나 영시를 짓고 감상할 정도가 되기는 어렵지 않나요?
그러나 과거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는 4, 5년이면 뛰어난 문장력과 작시(作詩)수준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과학적 방식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암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확실한 성과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요. 나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고전원문을 선택해서 암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왕 내친 김에 한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학교육은 어학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님의 탄식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받은 영어교과서는 I am a boy. You are a girl.로 시작되거나 심지어는 I am a dog. I bark.로 시작되는 교과서도 있었지요. 저의 할아버님께서는 누님들의 영어교과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그 뜻을 물어보시고는 길게 탄식하셨지요.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는 교과서와는 그 정신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천지현황’과 ‘나는 개입니다. 나는 짖습니다‘의 차이는 큽니다. 아무리 언어를 배우기 위한 어학 교과서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한자나 한문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학보다는 그것에 담겨 있는 담론에 주목하면 충분합니다. 그 담론을 열심히 천착하는 동안에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항간에서는 그것을 뭐라고 표현하는지 아세요. 소머리를 삶으면 귀는 절로 익는다고 하지요.
물론 한문공부를 열심히 해서 스스로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그러나 일단은 고전에 담겨 있는 사상을 중심으로 그 뜻을 이해하고 구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맘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그것을 암기하는 식으로 순서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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