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54) 씨가 지난 7월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 자신의 심정을 피력한 단편을 발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문제의 작품은 25일 발행되는 '현대문학' 10월호에 실린 단편 '술 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로 언론사 세무조사와 사주 구속 사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DJ와 민주당은 물론, 추미애 의원과 시민운동단체 등도 싸잡아 비난했다.
이씨는 ‘정권을 맡은 신법당(新法黨)과 허영 많은 선의왕(選擬王)이 세리(稅吏)를 시켜 이 시대의 언관(言官)들을 굴비 두릅 얽듯 얽어 넣었다’며 언론자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언관들을 모조리 잡아넣은 정권의 얄팍한 처사’라는 표현으로 언론사주 구속으로 이어진 정부의 대응을 비난했다.
이씨는 지난 7월 자신의 입장을 게재한 한 일간지를 ‘신법당에게는 작지 않은 골칫거리’로 묘사하며 가장 호되게 물린 언관으로 표현했다.
또 ‘율사(律師)에서 선의왕의 총신(寵臣)이 된 한 여류(女流)는 저 사람을 구법당(舊法黨) 비밀당원으로 잘못 알고 난데없이 곡학아세(曲學阿世)로 몰아세우더니, 일이 잘 안 풀리자 술을 퍼마시고 아재비 뻘은 되는 저 사람에게 비가당자(非可當子=가당찮은 놈)라며 마구잡이 욕설을 퍼부었다’며 추미애 의원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개는 저마다 주인을 위해 짖는 법이라지만, 그 여류 키워도 너무 잘못 키운 개였다’며 추미애 의원의 취중 발언과 관련,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시민운동단체에 대해서는 "끝내 한자리 얻지 못하고 재야에서 이런저런 운동으로 민의를 사칭하며 써줄 날만 기다리는 패거리"로 묘사하면서 "다섯만 모여도 무슨 등장본청(等狀本廳=운동본부), 다시 몇 개씩 모여 거창하게 무슨 만민대동계(萬民大同契)라는 걸 꾸미고 짖어댔다"고 표현했다.
이씨는 주인공 ‘저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작품 말미에 밝혔다.
*이문열씨의 말=“약간의 거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추의원 등에 대한 표현이 좀 험해서 그렇지 소설가가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작품으로 썼다.120매 정도 되는 글인데 그 중 20매 분량 정도만 좀 감정이 개입됐다. 오는 10월에 낼 예정인 6번째 작품집을 위해 쓴 글이다. 작품집에 게재할 때는 손을 볼 예정이다. 글 속의 주인공이 귀향하는 장면에서 갈등 구조를 그리다 보니 감정이 거칠어졌다. 소설로써만 읽어 달라."
<문제 부분 발췌문>
정권을 맡은 신법당(新法黨)과 허영 많은 선의왕(選擬王:美利堅 사람들이 처음 대통령제를 만들 때는 <선거로 뽑은 왕>의 개념에 가까웠다고 한다)이 세리(稅吏)를 시켜 이 시대의 언관(言官)들을 굴비 두릅 얽듯 얽어 넣었는데, 저 사람이 그걸 참고 보아 넘기지 못한 게 그 발단이었다. 언관이라고 해서 세금을 포탈해도 된다는 법은 없지만, 그 빤한 이치를 내세우고 비위에 거슬리는 언관들을 모조리 잡아넣은 정권의 얄팍한 처사가 역겨워 <언관(言官) 없는 조정(朝廷)을 원하나>란 벽서(壁書)를 써붙이자 큰 소동이 났다.
겉으로는 엄연한 나라의 징세권(徵稅權) 발동을 저 사람이 언로(言路)를 막고 언관을 억누르는 일로 본 데는 연유가 있었다. 이번에 가장 호되게 몰린 언관은 여러 해 전 지금의 선의왕이 재야에 있을 때 그를 위군자(僞君子)로 탄핵하여 크게 시비한 적이 있었고, 근래에도 집권 신법당의 정책을 그때마다 겁 없이 꼬집거나 비아냥거려 왔다. 또 북쪽 붉은 진나라[赤秦=북한]의 참상을 자주 고발하여 폭살(爆殺) 위협을 받은 적도 있는데, 그 이세(二世) 두령과의 화호(和好)를 일통천하(一統天下)의 묘계로만 여기고 있는 신법당 정권에게는 작지 않은 골칫거리였다. 거기다가 전부터 붉은 북쪽에 동조해 온 무리들이 이제는 집권세력에 아부를 겸하여 <척(斥) 아무개 대동계>라는 걸 만들고, 그 언관에게 법에 없는 사형(私刑)을 가해 오고 있는 중이었으니, 그를 향한 징세권(徵稅權)의 때늦으면서도 갑작스런 발동이 어찌 공변되게 보일 수 있으랴.
하지만 저 사람의 글은 처음부터 오로지 언관들 쪽만을 편든 것은 아니었다. 집권세력과 언관들을 마주보고 달려오는 화차(火車)에 비유하고, 그 충돌의 위험을 먼저 일러준 뒤에, 그래도 정히 싸워야 한다면 언관들을 편들 수밖에 없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집권당과 선의왕을 떠받드는 무리가 벌 떼같이 일어나 저 사람을 몽둥이 질하듯 몰아세웠다. 대개는 언관도 세금은 내야 한다는 빤한 이치의 되풀이였지만, 개중에는 엉뚱한 시비도 있었다.
이를테면 율사(律士)에서 선의왕의 총신(寵臣)이 된 한 여류(女流)는 저 사람을 구법당(舊法黨) 비밀당원으로 잘못 알고 난데없이 곡학아세(曲學阿世)로 몰아세우더니, 일이 잘 안 풀리자 술을 퍼마시고 아재비 뻘은 되는 저 사람에게 비가당자(非可當者=가당찮은 놈)라며 마구잡이 욕설을 퍼부었다. 또 그러고도 분이 덜 풀렸는지 저 사람이 다른 데에 쓴 글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터무니없는 혐의를 덮어씌우기도 했다.
개는 저마다 주인을 위해 짖는 법[犬吠其主]이라지만, 그 여류 키워도 너무 잘못 키운 개였다. 실은 그게 주인과 그 식구들을 욕보이는 줄도 모르고, 함부로 짖고 물어대니 어지간한 저 사람도 참기 어려웠다. 못된 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라 하나 자칫하면 꼴사납게 되 물리는 수도 있어, 한때는 그 주인 신법당과 선의왕을 엄히 나무람으로써 개 잘못 키운 죄를 물을 궁리도 해보았다.
지난 시대 열심히 신법당을 따라다녔으나 끝내 한자리 얻지 못하고, 재야에서 이런저런 운동으로 민의(民意)를 사칭하며 불러 써줄 날만 기다리는 패거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둘만 모여도 무슨 계(契)요, 다섯만 모여도 무슨 등장본청(等狀本廳=운동본부)이 되는 것들이 다시 몇 개씩 모여 거창하게 무슨 만민대동계(萬民大同契)라는 걸 꾸미고 연신 성토다, 벽서질이다, 하며 저 사람에게 짖어댔다. 그 중에 <척 아무개 대동계>는 자신들이 은관 아무개에게 한 짓은 까맣게 잊고 거꾸로 저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셨으니 새대가리가 따로 없다.
그럴듯하게 싸바르고 치장하는 기술만 일품인 신법당에 홀리거나, 수상쩍기 짝이 없는 봉화와 사발통문에 턱없이 충성스럽게 반응하는 일부 젊은것들도 벌 떼같이 일어났다. 언제든 홍위병(紅衛兵)이 되어 거리를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은 먼저 저 사람의 전자(電子)사랑방에 몰려들어 과부하(過負荷)로 대들보가 내려앉을 때까지 별의별 욕설을 다 퍼부었다. 게 중에는 고의적으로 남의 말을 오해하고, 그걸로 저희끼리 찧고 까불다가, 공연히 달아올라 저 사람의 책을 반품하자는 억지스런 운동을 벌인 치들도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저 사람을 옳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면을 얻은 논객들은 글로 편들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민망스럽지만 상대와 똑같은 욕설로 맞받아쳤다. 저 사람도 잘 버티어, 시비 그 자체로 보아서는 이겼다 할 만했다. 어떤 전시(電視) 방송사는 저 사람의 글에 대한 찬반(贊反) 의견을 전화로 집계해 본 적이 있는데, 집권 신법당의 그 요란한 정책홍보에도 불구하고 과반수가 저 사람을 옳게 여겼다.
하지만 이겼다고는 해도 그 요란스런 한 달은 저 사람에게는 그대로 소모이고 피로였을 것이다. 겪어 본 사람은 무리지어 표현되는 무분별한 악의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파괴적인지를 안다. 악한 자는 그르다 하고 착한 자만 옳다고 하는 사람이 곧 옳은 사람이라는 성인(聖人)의 말씀이 계시기는 하나,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독한 소리를 내뱉는 무리를 마주해서 심지(心地) 평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뜻 아니하게 떠맡게 된 언관의 수호자 역할도 적지 아니 곤혹스러웠다. 저 사람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나라의 언로(言路)였지, 언관의 사적인 타락과 부패는 아니었다. 이전의 어떤 대담에서 저 사람은 오히려 아집과 집단이기주의로 권력화된 언관들을 다음 시대의 식자(識者)들이 가장 힘들여 맞서야 할 새로운 종류의 거령(巨靈=리바이어던)으로 예측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언관의 사적인 부패와 타락을 옹호한 것으로 굳이 몰아대니 답답하고도 울적한 노릇이었다.
그 시비를 통하여 그동안 물밑으로 가라앉아 있던 이 사회의 갈등이 다시 분열의 형태로 솟구치는 걸 보는 일도 괴로웠다. 공방이 거듭되면서 정객과 정객, 언관과 언관이 나뉘어져 싸우고 율사며 승려, 신부, 도사에 심지어는 환경미화원까지 이 나라 모든 집단이 패를 갈라 싸웠다. 특히 저 사람의 동료인 문사들까지도 찬반을 다투다가 정객들의 대리전(代理戰)으로 치닫는 데에 이르러서는 깊이 상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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