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이 발표를 놓고서 해석이 분분하다. 대다수 언론이 일제히 "원전 확대 더 안 한다" 등으로 핵발전소 확대 정책이 제동을 걸린 것으로 보도한 반면에, 환경 단체는 "핵발전소 추가 건설로 이명박 정부보다 후퇴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 시각차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번에 발표된 2차 에너지 기본 계획 권고안의 가장 큰 의미는 '공급 중심'에서 '수요 관리 중심'으로 전력 정책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수십 년간 이어온 핵발전소든 석탄 화력 발전소든 발전소를 많이 지어서 값싼 전기를 계속해서 공급하면 된다는 식의 전력 정책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불량 부품 비리 등으로 시민의 불신이 극에 달한 핵발전소의 비중을 40%대에서 20%대로 줄이기로 한 데도 이런 수요 관리 중심의 전력 정책으로의 변화와 맞물린다. 이런 변화에는 이번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을 마련하는데 참여한 환경 단체를 비롯한 시민 사회의 목소리도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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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핵발전소 확대가 멈출까?
현재 핵발전소가 전체 전력 생산 설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4%. 핵발전소가 현재 수준(23기 가동)에서 멈추려면, 2035년에도 전체 전력 공급량이 지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 권고안에서는 정작 2035년에는 전력 공급 수준은 공백으로 남겨 놓았다. 즉, 비율(20%대)만 말해 놓고서 정작 그 비율을 낳는 숫자는 언급하지 않은 것.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별도로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35년의 에너지 수요 전망치는 석유로 환산했을 때 2억4940만 톤, 이중 전력은 7200만 톤(29.1%)이다. 2011년의 전력 수요가 3910만 톤(19.0%)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25년간 전력 수요가 두 배 가까이(약 80%) 증가하리라고 예측한 것이다.
이런 수요 전망을 염두에 둔다면 핵발전소 추가 건설은 불가피하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전력 공급을 위해서 발전소가 늘어날 테고, 따라서 핵발전소 숫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거칠게 계산하면, 20%대의 비율을 맞추려면 2035년에는 핵발전소가 (최악의 경우에는) 현재의 23기에서 약 46기 수준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현재 건설 중인 신월성 2호기(경주시 양북면) 신고리 3, 4호기(부산시 기장군) 신한울 1, 2호기(울진군 북면) 등 공사가 진행 중인 5기는 물론이고, 계획 중인 신고리 5~8호기(4기) 신한울 3, 4호기(2기) 또 경상북도 영덕(6기) 강원도 삼척(6기) 등 총 23기가 예정대로 건설된다. 좁은 국토에 미국(100기 가동) 절반 수준의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놓고서 에너지정의행동은 "전력 비중 증가로 핵발전소 건설을 계속 유지하려는 조삼모사 계획"이라며 "이번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은 가장 중요한 수요 전망치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마치 핵발전소 건설 중단과 같은 대단한 변화가 생기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철강과 석유 화학 산업의 설비 증가로 전기 소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될지를 놓고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며 "이번 권고안이 밝힌 대로 성장 둔화로 최종 에너지 소비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접근은 수요 관리 정책으로의 전환이라는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번 안을 마련하는데 참여했던 시민 단체 관계자(김태호, 석광훈, 안병옥, 양이원영, 윤기돈, 이상훈)도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13일 보도 자료를 내서 "에너지 기본 계획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 수요 전망과 전력 수요 전망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일방적으로 수치를 제시함으로써 논란 끝에 최종 합의를 못했다"며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장대로 수요를 부풀린 상태에서는 현재와 같은 핵발전소 비중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핵발전소 숫자는 두 배가량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제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 권고안은 공청회를 거쳐서 연말에 확정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내세운 수요 전망치에 변화를 주지 않는 한, 이번 안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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