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로컬 푸드(지역 먹을거리) 바람이 거세다.
정부는 농산물 유통 구조 개선 종합 대책의 일환으로 로컬 푸드 직매장을 2016년까지 100개소를 설립한다는 목표 아래 올해 40여 개의 직매장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 푸드를 통해서 농가 경제에도 이바지하고, 소비자의 안전한 밥상을 책임지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조사에 따르면, 로컬 푸드 직매장의 판매 가격은 일반 소매 가격에 비해 최소 10%에서 최대 70%까지 낮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로컬 푸드 열풍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려면 많은 고민이 따라야 한다.
왜 로컬 푸드인가?
말 그대로 하면 로컬(local) 푸드는 글로벌(global) 푸드의 대안으로 나온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푸드는 대규모 단작과 자원을 다소비하는 농법에 의존한 녹색 혁명형 농업에 바탕을 둔 먹을거리를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된 먹을거리는 거대 농기업들이 생산한 종자와 비료 등의 투입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대규모 생산으로 인해 가공이나 유통 부분도 거대 농기업들에 의존하여 국경을 넘나드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푸드의 경우에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먹을거리 비용 중에서 거의 태반은 거대 농기업의 수중으로 돌아가고,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푸드는 장거리 운송과 긴 유통시간으로 인해 먹을거리의 신선도와 안전성에 문제가 많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지역에서 소비된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지역이 필요로 하는 먹을거리가 지역에서 생산된다면 글로벌 푸드로 인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시작된 것이 로컬 푸드라고 할 수 있다.
로컬의 함정
그러나 로컬 푸드에서도 나름 경계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 이른바 로컬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로컬 푸드가 글로벌 푸드로 인해 발생한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즉자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 글로벌이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로컬이라는 용어도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개념이다.
무엇보다 로컬이라는 것, 지역이라는 것을 획정할 때에는 그 이면에 배제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로컬 푸드의 가치에 대한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이라는 것을 방어적인 개념으로 생각할 경우에는 감성적인 '신토불이' 운동의 재판에 불과한 초라한 모양으로 그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로컬 푸드는 기본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의미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푸드로 인해서 망가진 농과 식의 관계들을 복원해 내는 것이고, 건강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를 지속가능하게 하자는 것이고, 로컬 푸드를 통해서 사회적 정의와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망가진 농과 식의 관계의 복원이나 사회적 정의와 경제적 정의의 실현, 지속 가능한 건강한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라는 목표는 물리적 거리의 축소에만 집착한 로컬 푸드로는 달성할 수 없다. 늘어나는 로컬 푸드 직매장의 숫자가 글로벌 푸드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로컬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로컬 푸드가 운동인 이유
로컬 푸드는 기본적으로 안전한 농산물을 지역의 소농들이 생산토록 하고, 이를 지역의 소비자들이 밥상에 올리고자 하는 운동이다. 글로벌 푸드에서 소규모 생산 농가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고,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규모화된 농가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소규모 생산 농가의 경우에는 더욱 불안한 시장에 항상 노출되어 있고 심지어 시장 참여의 기회의 협소하다.
소규모 생산 농가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규모화된 농가의 경우에는 단작 위주의 영농으로 인해 생태적 영농이 소규모 농가에 비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있다. 이런 이유로 로컬 푸드는 소규모 생산 농가가 우선적으로 고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로컬 푸드 직매장이 많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이 직매장에 대한 접근이 규모화 된 농가를 중심으로 물품의 공급이 이루어진다면 로컬의 함정에 걸린 직매장이 되고 말 것이다.
기존에 계통 출하하던 전업농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설계하면 사업의 편의성은 높아지겠지만, 다품목 소량 생산을 통해서 직매장의 판매 품목을 높이고, 이를 통해 농생태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낳고자 하는 로컬 푸드의 가치는 실현될 수 없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역에서, 혹은 농정에서 소외되었던 소규모 생산 농가가 로컬 푸드에서도 여전히 소외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정의의 회복이라는 로컬 푸드의 가치도 훼손될 것이다.
로컬 푸드가 보다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면 개별적이었던 소규모 생산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화 하는 것, 그리고 생산자들 스스로가 로컬 푸드의 가치를 체득하여 운동의 중심에 서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이 가능토록 하는 것은 직매소를 확대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한다는 깨우침과 신뢰만큼 로컬 푸드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관심이 쏠립니다. 하지만 정작 그 먹을거리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농업, 농촌, 농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적습니다. <프레시안>은 이런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자 윤병선 건국대학교 교수의 칼럼을 싣습니다. 이번 칼럼은 <한국농어민신문>에도 같이 실렸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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