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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울릴 진짜 바람아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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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울릴 진짜 바람아 불어라!

[서남 동아시아 통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지난 7월 26일 도쿄의 동쪽에 위치한 고가네이(小金井) 시에서는 색다른 기자 회견이 열렸다. 이는 7월 20일 일본에서 개봉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風立ちぬ)>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를 한국 기자들이 인터뷰하는 자리였다.

보통 외국 감독의 기자 회견은 한국에서 개봉할 즈음에 감독이 내한하면 이루어진다. 전 세계 배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여러 국가의 기자들을 일제히 초청하여 인터뷰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처럼 개봉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도 딱 하나의 국가를 지정하여 기자 회견이 열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모임이 누구의 주도하에 어떠한 경위로 성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이유는 추측 가능하다.

이 애니메이션이 제2차 세계 대전 시 일본 해군의 주력기이고 가미가제 특공대가 이용하기도 하였던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소위 '제로센(ゼロ戰)'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한 누군가에 의해서 개최된 '설명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기자 회견 이후 일본에서의 '반발'이 거셌다. "애니메이션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마라", "이 작품은 절대 전쟁 찬미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제로센은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다", "한국은 언제나 역사 문제에 대해서 과민 반응이다" 등등의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한국으로서 다소 황당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바람이 분다>는 한국에서 개봉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개봉을 반대한다든지 움직임도 없었다. 게다가 그 기자 회견은 일본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쪽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도대체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었기에 이럴까?

▲ 제로센 앞에서 동료들과 웃고 있는 호리코시 지로(가운데). ⓒwikipedia.org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40일을 기다려야했다. <바람이 분다>는 한국에서 9월 5일 개봉하였다. 나는 개봉 다음날 조조할인으로 싸게 구입한 티켓을 손에 들고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작품은 어린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이 만든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으로 시작한다.

꿈속에서 호리코시는 존경하는 이탈리아인 비행기 설계자 카프로니(Giovanni Battista Caproni)를 만난다. 카프로니는 주인공의 꿈속에 몇 번이고 등장하여 대화를 나눈다. 그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연은 깊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 회사의 이름 '지브리(ジブリ)'는 이탈리아어(ghibli)에서 왔다.

원래 발음은 '기블리'이지만 미야자키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한다. 기블리는 '사막의 바람'이라는 뜻이고, 카프로니가 1930년대 중엽 설계하여 아프리카 사막을 날아다니던 폭격기의 이름이다. 즉, 미야자키 하야오는 예전부터 존경해오던 카프로니를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서 등장시켰고,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호리코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분신이기도 한 것이다.

비행체의 등장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단골 메뉴이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에서 기상천외한 모양의 비행체가 날아다니고, 시대를 알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소년, 소녀의 모험이 그려져 왔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에서는 소년, 소녀의 모험 이야기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비행기도 배경도 사실적이다.

비행기 설계를 꿈꾸던 호리코시 지로는 도쿄 대학 공학부를 들어가고, 어느 날 기차를 타고 가다 관동 대지진이 일어난다.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는 와중에 그는 사토미라는 여성을 만난다. 작품은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된다. 하나는 호리코시가 대학 졸업 후 미츠비시 중공업에 들어가 전투기 설계자로 두각을 나타내어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결핵에 걸려 죽어가는 사토미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일본의 패전과 사토미의 죽음이 중첩되며 이야기는 종결된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windrises.kr
미야자키 하야오는 호리코시와 같은 인물을 무조건 나쁘게 볼 수는 없고 한 시대를 열심히 살은 사람이기에 그리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는 이 애니메이션이 '전쟁 찬미'가 아니라는 일본 언론들의 주장과 맞물린다. 사실 이 작품이 전쟁을 찬미하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전쟁이 거의 그려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관동 대지진 장면이 무서울 정도로 세밀히 묘사되고 있는 반면, 전쟁에 대해서는 대사를 통한 언급만 있을 뿐, 영상으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 육군과 해군을 위해서 열심히 비행기 설계를 하였던 호리코시의 노력이 몰역사화된다. 그밖에도 몰역사화를 위하여 미야자키 하야오는 많은 노력을 기한다.

사토미와의 사랑 이야기는 호리코시 지로와는 전혀 상관없는 소설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이 작품 속의 호리코시는 전투기를 설계하면서 언제나 말한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

완성된 전투기 앞에서도 그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연발할 뿐이다. 이 대사는 주변국과의 대화 없이 일본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는 아베 신조 총리의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國へ)>(2006년)를 상기시킨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안이한 역사관은 작품 전체에 스며있다. 호리코시는 1930년대 독일의 융커스회사를 방문하여 독일의 전투기 및 폭격기를 견학한다. 그는 '가난한' 일본과는 상대되지 않는 독일의 뛰어난 비행기 제작 기술에 놀란다. 당시 일본은 오키나와, 조선, 대만(타이완)을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고, 중국을 침략 중인 제국주의 선봉에 선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가난하고 독일을 배워야한다고 호리코시는 외친다. 게다가 <바람이 분다>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상대자인 미국인이나 이미 침략을 받고 있던 중국인이 등장하지 않고 언급조차 없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타자는 주인공의 심정을 동정하는 독일인들과 카프로니라는 이탈리아인뿐이다. 즉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추축국 국민간의 대화만이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야기되는 것은 자신들의 피해이지 전쟁 상대국이나 아시아의 이웃이라는 타자에 대한 인식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베 총리의 개헌에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바람이 분다>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는 왜 개헌에는 반대하는지, 의아해하는 이들이 있지만, 일본의 소위 '반전' 또는 '평화주의'가 결코 침략과 식민지 지배라는 그들의 가해에 대한 반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즉, 가해자라는 반성이 아니라, 일본인 자신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이를 반복하지 말자는 피해자 의식의 발로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이 분다>는 전쟁 미화라기보다는 일본인의 피해자 의식의 미화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이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어 90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눈물을 흘렸다는 관객 평이 인터넷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일본인들의 눈물을 자신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의 타자를 위한 것으로 바꾸어줄, 진정한 '바람'은 언제 불어올 것인가.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강태웅 광운대학교 교수(일본학과)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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