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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장판사의 충고 "이런 기사는 박근혜도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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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장판사의 충고 "이런 기사는 박근혜도 싫어해!"

[편집국에서] 16세 소녀의 죽음, 그 이후

지난 6월 1일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나고 나서 첫 송사에 휘말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허리디스크 수술 등으로 유명한 우리들병원이 "허위 사실 보도로 명예가 훼손되었다"면서 5000만 원의 손해 배상과 해당 기사 삭제 등을 요구하며 민사 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이제 막 협동조합이 기지개를 펼 때에 이런 송사에 휘말렸으니 해당 기사를 취재, 작성한 담당 기자 입장에서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다만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송사 사실을 알리는 이유는 우리들병원이 법원을 통해서 보내온 소장을 아무리 꼼꼼히 읽어 봐도 도무지 납득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허위 사실이라는 말인가?

열여섯 살 소녀의 죽음, 그 진실은?

눈치 빠른 독자는 알겠지만 문제의 기사는 아랍에미리트의 열여섯 살 소녀가 우리들병원에서 척추 교정 수술을 받다가 지난 6월 13일 새벽에 사망한 일을 최초 보도한 건이다. 몸무게 30킬로그램이 조금 넘은 이 소녀는 세 차례에 걸친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을 받다가 마지막 수술을 받던 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꿈 많던 소녀가 이국에서 싸늘한 시신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간 지 한 달 가까이 이 사실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프레시안>은 지난 7월 9일 이 소녀의 사망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 사건이 정부가 밀어붙이고 우리들병원과 같은 병원이 호응하는 이른바 '의료 관광'의 어두운 면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 (☞관련 기사 : UAE 16세 귀족女, 우리들병원서 수술 중 사망)

현재 이 소녀의 사망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중재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들병원의 주장대로 이 소녀가 "운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병원이 책임을 져야할 일이 있는지 판가름이 날 것이다. 물론 <프레시안>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알릴 예정이다.

한 부장판사의 충고

ⓒ프레시안(최형락)
우리들병원 혹은 <프레시안>의 잘잘못은 앞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테니, 여기서는 이 기사를 둘러싼 씁쓸한 일화 하나를 독자와 공유할 생각이다. 애초 우리들병원은 이 기사를 법정에 세우기 전에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했었다. 우리들병원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을 테니 이런 중재 신청은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

안타깝게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두 차례의 만남이 있었지만 우리들병원이 '허위 사실 보도로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중재는 결렬되었다. 그런데 이 중재 과정에서 정작 기삿거리를 제공한 것은 우리들병원이 아니라, 바로 이번 건의 중재위원으로 나선 서울의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였다.

8월 16일 오후 5시 30분. 두 번째 중재가 시작되자마자 양쪽의 입장을 확인하던 그 판사가 대뜸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끼리니까 뚝 까놓고 얘기할게요."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자는 우리들병원의 고집스런 태도에 이 판사가 문제를 제기할 줄 알았다. 바로 전의 중재에서 그는 <프레시안>이 우리들병원의 반론문 정도를 받기를 권유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판사의 시선이 기자를 향하는 게 아닌가? 메모에 적힌 몇 마디를 그대로 적는다.

"이번 건은 <프레시안>이 오버한 거예요!" "한국에 먹고살 게 뭐가 있어요. 그나마 의료 관광이라도 해서 외화를 벌어야지." "의료 관광이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런 기사는 일반 국민도 납득 못해. 칭찬은 못해줄망정."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런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도 싫어하실 걸요."

이런 판사를 앞에 두고 내심 유리한 전개를 기대했으니 기자 생활 10년을 헛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거침이 없었다. 말문이 막힌 기자를 향해서 이런 충고가 이어졌다.

"소송 가면 100퍼센트 <프레시안>이 집니다." "우리들병원은 변호사 선임할 능력이 되잖아요? <프레시안>이 그런 능력이 되나?" "그냥 기사 삭제하고 없었던 일로 해요."

판사의 종용에 "취재 과정이나 해당 기사에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의료 관광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 역시 정당했다"고 답하고 나서 입을 닫았다. 그는 즉시 "결렬"을 선언했고, 그 때까지 입을 꾹 닫고 있던 다른 중재위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 관광, 이어서 '섹스 관광'도?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의료 관광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등의 공무원이 "닥치고 의료 관광"을 외치는 건 이해할 만하다. 더 이상 국내 환자만으로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성형외과, 척추 병원 등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불법 브로커까지 동원해 외국 환자를 유치하는 돈벌이에 나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렇다고 해서 언론이 의료 관광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을 파헤치고, 필요하다면 사회적 토론을 이끄는 역할까지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국격'에 의료 관광이 과연 어울리는 일인가? 의료 관광의 모범 국가로 꼽히는 태국(타이)은 의료뿐만 아니라 '섹스'를 산업화해 외화 벌이를 하는 나라다!

마지막으로 그 부장판사에게 한 마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들병원과의 송사는 프레시안협동조합의 훌륭한 조합원 변호사 중 한 분이 기꺼이 무료 변론에 나서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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