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난 도일을 읽는 밤>(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
잘 알려져 있듯 이 위대한 이야기의 창조자는 코난 도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셜록 홈즈의 엄청난 인기에 눌려 작가로서의 모습은 그다지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안과의사, 참전, 스포츠맨, 심령술 같은 가십성 정보가 근엄한 입매와 콧수염이 인상적인 사진에 겹쳐져 알려져 있을 뿐이다. 코난 도일이 태어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피카디 플레이스 11번지에는 셜록 홈즈의 동상과 작은 동판만이 남아 있지만, 셜록 홈즈가 머물렀던 베이커 스트리트 221B(그것도 가공의 주소)에는 박물관이 설립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한다. 코난 도일은 살아생전에 하숙집의 가정부 허드슨 부인에게까지 매일매일 팬레터가 도착한다는 걸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쯤 되면, 탐정의 이름만 남고 작가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는 걸 걱정해서 아예 이름을 동일하게 만든 엘러리 퀸의 재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클 더다의 <코난 도일을 읽는 밤>(김용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은 '셜록 홈즈'의 창조자로서만 기억되는 코난 도일이 아닌, 당대 최고(물론 현재까지도)의 인기 캐릭터를 창조해낸 작가 코난 도일에 대한 헌정이다. 또 빅토리아 시대 후기와 에드워드 시대의 문학에 대한 자전적인 탐색기(記)이기도 하다. 30년 넘게 <워싱턴 포스트>에 문학 기사를 기고했고, 퓰리처상을 수상할 만큼 서평으로 일가를 이룬 마이클 더다는 코난 도일에 대해 섣불리 전기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코난 도일의 생애가 궁금한 독자라면 마틴 피도의 <셜록 홈즈의 세계(The World of Sherlock Holmes)>(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와 마틴 부스의 <코난 도일(The Doctor and The Detective, a Biography of Sir Arthur Conan Doyle)>(한기찬 옮김, 작가정신 펴냄)을 참고하시길.)
책을 통해 스무 살까지의 삶을 회고했던 <오픈 북>(이종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에서처럼, 마이클 더다는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으며 작품을 통해 코난 도일을 탐색해나간다. 그리고 <코난 도일을 읽는 밤>은 <오픈 북>에서 유년 시절 파트의 두 번째 챕터를 차지했던 바로 그 책에서 시작된다.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문의 개>(1902)는 내가 최초로 접한 '어른스러운' 책이었다. 그 책은 내 삶을 바꿔 놓았다."
▲ <셜록 홈즈 전집 3 : 바스커빌 가문의 개>(아서 코난 도일 지음, 시드니 파젯 그림, 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코난 도일은 훨씬 많은 글을 남겼다. 굳이 '알려진 것보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60편이 눈앞에서 터지는 플래시처럼 코난 도일이 쓴 모든 텍스트의 광휘를 앗아갔기 때문이다. 코난 도일은 50여 년 동안 매년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낸 성실한 작가였고, 평생 동안 21권의 소설과 150여 편이 넘는 단편, 수백 편의 기사와 수많은 논픽션 그리고 세 권에 달하는 시집을 남겼다.
마이클 더다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설들을 능수능란하게 소개하며, 코난 도일의 명판 위에 쌓인 먼지를 조금씩 털어낸다. 독자는 이야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당대 최고의 직업 작가'라는 글자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에세이나 기고 등의 논픽션을 통해서는 스스로의 묘비명처럼 '강철처럼 진실하고, 칼날처럼 곧았던 (Steel True, Blade Straight)' 코난 도일의 삶을 드러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후예이자 엄격한 예수회 교육의 수혜자로서, 코난 도일은 한평생 이상적인 가치를 수호했다. 그는 스스로 고결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에 가장 충실한 글을 썼으며, 일단 신념을 갖게 되면 상대방에게는 가장 강력한 설득자였다. 스스로 폄하했던 셜록 홈즈의 이야기에서조차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삶에 대한 코난 도일의 태도가 진실했다는 뜻이리라.
코난 도일은 죽기 이틀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짧은 말이지만, 마이클 더다가 궁금해하던 그 문학적 본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수없이 모험을 했다. 이제 가장 크고 멋진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출처 Wikimedia Commons) |
장르소설을 읽는 것은 낭만적이면서도 원초적인 경험이다. 나 역시 마이클 더다처럼 캔디 바를 손에 쥐고 담요 속을 파고들던 순간이 있었다.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그 경이로운 떨림은 결코 잊지 못한다. <코난 도일의 밤>의 마지막 책장을 넘겼을 때 "아, 부럽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건, 오래도록 그 순간을 꿈꾸는 저자와 그 헌정이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코난 도일을 읽는 밤>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배고픈 밤 어디선가 풍기는 라면 냄새처럼 사람을 허기지게 한다는 점이다. 챌린저 교수 시리즈 외에는, 코난 도일의 다른 작품은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물론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외하고). 이 책을 기점으로 코난 도일의 다른 글들이 더 많이 번역돼 소개되기를, 그래서 베이커 가 특공대처럼 오랫동안 꿈꿀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