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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를 떠도는 검은 개가 내 인생에 생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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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를 떠도는 검은 개가 내 인생에 생채기를…

[프레시안 books] 마이클 더다의 <코난 도일을 읽는 밤>

'셜록 홈즈'라는 이름으로 글을 시작하는 일처럼 부담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굳이 뭔가 더할 까닭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이미 이 영웅을 잘 알고 있다. 1887년 <비턴스 크리스마스 애뉴얼>에 중편 <주홍색 연구>(아서 코난 도일 지음, 시드니 파젯 그림, 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가 발표된 이래, 셜록 홈즈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절판되지 않았다. 열성적인 팬들은 셜록 홈즈의 모험담을 추종하다 못해, 이야기의 빈 공백은 물론 그 과거와 미래, 죽음 이후와 다른 차원에서의 삶까지 만들어내곤 했다. 셜록 홈즈는 이미 책장을 벗어난 지 오래고, 우리는 '어디서나 그의 이름을 들으며'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한다. "I am Sherlocked."

▲ <코난 도일을 읽는 밤>(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장르적으로 살펴봐도 셜록 홈즈의 이야기는 독보적이다. 시기상 미스터리 장르의 초기에 해당되는 이 작품들은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고전 추리소설의 구성(기괴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성적인 탐정이 등장하고,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뜻밖의 결말로 마무리되는)을 거의 완성된 형태로 보여준다. 근대적 의미를 지닌 최초의 추리소설(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의 장점을 계승하고, 황금기(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영어권 추리소설의 최전성기)의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이 이야기들은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추리소설로 남게 되었다. 추리소설에 익숙하든 혹은 그렇지 않든, 누군가의 머릿속에 각인된 추리소설의 개념은 결국 셜록 홈즈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위대한 이야기는 한 장르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전설이며, 수많은 이들에게는 낭만의 출발점이 돼왔다.

잘 알려져 있듯 이 위대한 이야기의 창조자는 코난 도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셜록 홈즈의 엄청난 인기에 눌려 작가로서의 모습은 그다지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안과의사, 참전, 스포츠맨, 심령술 같은 가십성 정보가 근엄한 입매와 콧수염이 인상적인 사진에 겹쳐져 알려져 있을 뿐이다. 코난 도일이 태어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피카디 플레이스 11번지에는 셜록 홈즈의 동상과 작은 동판만이 남아 있지만, 셜록 홈즈가 머물렀던 베이커 스트리트 221B(그것도 가공의 주소)에는 박물관이 설립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한다. 코난 도일은 살아생전에 하숙집의 가정부 허드슨 부인에게까지 매일매일 팬레터가 도착한다는 걸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쯤 되면, 탐정의 이름만 남고 작가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는 걸 걱정해서 아예 이름을 동일하게 만든 엘러리 퀸의 재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클 더다의 <코난 도일을 읽는 밤>(김용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은 '셜록 홈즈'의 창조자로서만 기억되는 코난 도일이 아닌, 당대 최고(물론 현재까지도)의 인기 캐릭터를 창조해낸 작가 코난 도일에 대한 헌정이다. 또 빅토리아 시대 후기와 에드워드 시대의 문학에 대한 자전적인 탐색기(記)이기도 하다. 30년 넘게 <워싱턴 포스트>에 문학 기사를 기고했고, 퓰리처상을 수상할 만큼 서평으로 일가를 이룬 마이클 더다는 코난 도일에 대해 섣불리 전기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코난 도일의 생애가 궁금한 독자라면 마틴 피도의 <셜록 홈즈의 세계(The World of Sherlock Holmes)>(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와 마틴 부스의 <코난 도일(The Doctor and The Detective, a Biography of Sir Arthur Conan Doyle)>(한기찬 옮김, 작가정신 펴냄)을 참고하시길.)

책을 통해 스무 살까지의 삶을 회고했던 <오픈 북>(이종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에서처럼, 마이클 더다는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으며 작품을 통해 코난 도일을 탐색해나간다. 그리고 <코난 도일을 읽는 밤>은 <오픈 북>에서 유년 시절 파트의 두 번째 챕터를 차지했던 바로 그 책에서 시작된다.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문의 개>(1902)는 내가 최초로 접한 '어른스러운' 책이었다. 그 책은 내 삶을 바꿔 놓았다."

▲ <셜록 홈즈 전집 3 : 바스커빌 가문의 개>(아서 코난 도일 지음, 시드니 파젯 그림, 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다트무어의 어두운 황무지를 어슬렁거리던 하운드 견은 소년 마이클 더다의 삶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 그것은 두려움이자 경이로움이었으며, 평생을 책과 함께할 삶에 대한 어떤 예언 같아 보이기도 한다. 폭풍우 치는 밤, 캔디 바를 손에 쥐고 담요 속을 파고들며 책 속으로 빠져들었던 소년은 훗날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코난 도일은 훨씬 많은 글을 남겼다. 굳이 '알려진 것보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60편이 눈앞에서 터지는 플래시처럼 코난 도일이 쓴 모든 텍스트의 광휘를 앗아갔기 때문이다. 코난 도일은 50여 년 동안 매년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낸 성실한 작가였고, 평생 동안 21권의 소설과 150여 편이 넘는 단편, 수백 편의 기사와 수많은 논픽션 그리고 세 권에 달하는 시집을 남겼다.

마이클 더다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설들을 능수능란하게 소개하며, 코난 도일의 명판 위에 쌓인 먼지를 조금씩 털어낸다. 독자는 이야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당대 최고의 직업 작가'라는 글자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에세이나 기고 등의 논픽션을 통해서는 스스로의 묘비명처럼 '강철처럼 진실하고, 칼날처럼 곧았던 (Steel True, Blade Straight)' 코난 도일의 삶을 드러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후예이자 엄격한 예수회 교육의 수혜자로서, 코난 도일은 한평생 이상적인 가치를 수호했다. 그는 스스로 고결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에 가장 충실한 글을 썼으며, 일단 신념을 갖게 되면 상대방에게는 가장 강력한 설득자였다. 스스로 폄하했던 셜록 홈즈의 이야기에서조차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삶에 대한 코난 도일의 태도가 진실했다는 뜻이리라.

코난 도일은 죽기 이틀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짧은 말이지만, 마이클 더다가 궁금해하던 그 문학적 본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수없이 모험을 했다. 이제 가장 크고 멋진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출처 Wikimedia Commons)
<코난 도일의 밤>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몹시 낭만적인 책이다. 이 책이 전문가나 연구자가 아닌 애호가의 시선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더다는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태도로 코난 도일에 대한 존경을 고백하고 있는데, '베이커 가 특공대'의 은밀한 활동을 전하는 부분에 이르면 도저히 흥분을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경전을 숭배하며 그것을 따르고, 가공의 인물에 끊임없이 생명을 불어넣는 베이커 가 특공대의 '놀이'는 셜록 홈즈의 팬이라면 그저 부러움에 미소 지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특히 마이클 더다가 모임 내 자신의 이름인 '랭데일 파이크'(단편 '세 박공의 집'에 등장하는 인물로 사교계의 스캔들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는 인간 백과사전. 셜록 홈스와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사이이다)의 정체를 밝히는 부분은 '애호가의 최고 경지'라 할 만하다.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는 '랭데일 파이크 사건'은 아마 이 책이 쓰이게 된 이유가 아닐까?

장르소설을 읽는 것은 낭만적이면서도 원초적인 경험이다. 나 역시 마이클 더다처럼 캔디 바를 손에 쥐고 담요 속을 파고들던 순간이 있었다.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그 경이로운 떨림은 결코 잊지 못한다. <코난 도일의 밤>의 마지막 책장을 넘겼을 때 "아, 부럽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건, 오래도록 그 순간을 꿈꾸는 저자와 그 헌정이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코난 도일을 읽는 밤>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배고픈 밤 어디선가 풍기는 라면 냄새처럼 사람을 허기지게 한다는 점이다. 챌린저 교수 시리즈 외에는, 코난 도일의 다른 작품은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물론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외하고). 이 책을 기점으로 코난 도일의 다른 글들이 더 많이 번역돼 소개되기를, 그래서 베이커 가 특공대처럼 오랫동안 꿈꿀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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