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는 아예 식물 공장을 농업 분야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규정했다. 앞으로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로 전 세계의 작황이 안 좋아질 게 뻔한데, 식물 공장은 외부 기후 변화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작물을 키울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형 공장에서 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식물 공장이 대안이라는 얘기도 덧붙는다.
▲ '햇빛과 토양 대신 발광 다이오드와 영양액 공급으로 식물 공장에서 재배한 상추, 대형 마트에서 팔리고 있다. ⓒ롯데마트 |
한 술 더 뜨는 이들도 있다. 식물 공장이 이른바 '환경 농업'의 미래라는 것이다. 우선 식물 공장은 도시나 교외에 조성될 가능성이 크니, 먹을거리를 옮길 때 들어가는 자원과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식물 공장이야말로 말 그대로의 '도시 농업'이고 또 진정한 의미의 '지역 먹을거리(local food)'라는 주장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식물 공장에서 토양 대신 사용하는 영양액에는 해당 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양분만 맞춤해서 넣는다. 이미 수십 년간의 관행 농업으로 농약, 화학 비료에 오염될 대로 오염된 땅에서 성장한 작물과 비교하면 훨씬 더 안전하다는 것.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는 식물 공장이야말로 진정한 '유기 농업'의 미래다.
▲ <밥상의 전환>(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모심과살림연구소 지음, 한티재 펴냄). ⓒ한티재 |
우선 기후 변화로 전 세계 농업은 어떤 미래를 맞을까? 일부 낙관론자는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 작물 재배의 북방 한계선이 높아져서 더 많은 작물을 생산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만, 기후 변화에 취약한 열대 지방에서 줄어들 생산량을 염두에 두면 식량 생산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전 지구적인 먹을거리 고갈 사태에 대비해 식물 공장을 짓는 게 왜 문제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답할 수 있다. 식물 공장에서 먹을거리를 재배하려면 인공조명을 켜고, 영양액과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적절히 유지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에는 당연히 전기나 열이 필요하다.
이런 전기나 열은 어디서 얻을까? 현재 상태대로라면 전기 에너지는 대형 화력 발전소나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것일 테고, 열에너지는 석유나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서 얻은 것이리라. 화석연료가 탈 때 나오는 온실 기체 때문에 기후가 망가져 먹을거리 생산에 위기가 닥쳤는데, 그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다시 화석연료를 태우는 일이 용인될 수 있을까?
임송택 박사의 연구를 보면, 보통의 상추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대표적인 온실 기체인 이산화탄소가 약 0.252킬로그램 배출되는데 반해서, 식물 공장에서 상추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경유 8.7리터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투입되고 14.6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상추의 약 15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셈이다.
그러니 농림축산식품부는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기후 변화가 초래할 작황 부진을 걱정한다면, 식물 공장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추켜세울 게 아니라 금지시켜야 마땅하다. 기후 변화에 대비한다며 그것을 되레 악화시킬 식물 공장을 육성하는 일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
더구나 식물 공장은 화석연료나 핵발전소에서 쓰이는 우라늄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이 있어야 지속 가능하다. 하지만 석유의 생산량이 조만간 정점을 찍고 나서 급격히 하락하리라는 경고가 계속해서 나오는 데다, 우라늄 매장량 역시 수십 년 내에 비슷한 길을 걸으리라는 전망을 염두에 둔다면 이 역시 낙관할 수 없다.
<밥상의 전환>이 강조하듯이, 온실 기체의 배출을 최소화하고 토양을 보호할 수 있는 유기 농업의 비중을 늘려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농업 위기의 시대에 대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이런 유기 농업으로의 전환은 그 자체로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이다.
"농지는 온실 기체 배출량보다 흡수량이 많은 기후 변화 완화의 수단이다. 벼 생산지의 경우 이모작을 해도 토양의 탄소 고정 효과에 의해 흡수량이 배출량의 네 배 가까이 되고, 옥수수의 경우에는 약 16배, 콩은 23배, 고구마의 경우 31배에 달한다." "일본 내 농지의 온실 기체 완화 잠재력은 연간 380만 이산화탄소 톤으로 파악된다." (91쪽)
식물 공장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농업은 공동체를 묶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한살림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서 유기 농업은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를 같은 공동체로 묶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전 세계의 농촌 곳곳에서 진행 중인 에너지 자립 마을 역시 그 토대는 바로 토지와 농업에 기반을 둔 마을 공동체이다.
하지만 식물 공장에서 이런 일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식물 공장 상추를 생산하는 농민(?)과 그것을 소비하는 소비자 사이에 어떤 유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공산품을 만드는 공장 노동자와 소비자 사이를 생각해 보라!) 앞으로 식물 공장의 여러 공정이 자동화된다면 사실상 농민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될 텐데,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식물 공장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맞서야 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기후 변화, 농업 위기, 자원 고갈 등과 같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상사태가 예견될 때마다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해결 방식이 그럴듯한 옷을 입고서 우후죽순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식물 공장이 보여주듯이 이런 해법은 실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상황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일수록 상호 작용하는 여러 가지 변수를 동시에 아우르면서, 위기를 극복할 공동체를 형성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밥상의 전환>은 이런 엉터리 해법을 간파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훌륭한 참고서다.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방안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두 번, 세 번 정독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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