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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대-대기업-변호사? '영업' 할 수 있겠니?

[프레시안 books] 브라이언 타마나하의 <로스쿨은 끝났다>

K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에 가고 싶다던 너에게, 그 말을 들었던 당시에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외벌이에 처자식까지 부양을 해야 하는 네가 어떤 고민을 하면서 회사 생활에 얼마나 괴로움이 컸을지 짐작이 갔고, 그만큼 무겁게 네 고민을 얘기했을지 알 수 있었으니까.

너와 함께 모든 동기들이 과장으로 진급한 지 이제 2년이 되었지만, 회사를 다닐수록 캄캄한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다고,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네가 읊조릴 즈음에, 내가 회사를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불확실이 지배하고 있던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했던 5년 전이 생각나더라.

로스쿨을 가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러지 말고 회사에서 좀 더 버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다가 우리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테고 부장 승진에 마음 졸일 거고, 그러다가 잘 버티면 회사에서 대학 학자금을 받아낼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자의반 타의반 회사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말이야, 혹시 로스쿨에 입학하고 변호사가 된다고 해서 뭔가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늘 변호사를 꿈꿔왔던 이들의 꿈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릴 수도 있는 가혹한 말을 한다는 게 나 스스로도 참담하다. 이런 현실을 무릅쓰고, 그리고 변호사로 성공할 확률이 얼마든 간에, 꼭 로스쿨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신의 가호를 빌어주는 것뿐이다." (<로스쿨은 끝났다> 235쪽)

▲ <로스쿨은 끝났다>(브라이언 타마나하 지음, 김상우 옮김, 미래인 펴냄). ⓒ미래인
이 책을 네가 읽어봤으면 한다. 미국 변호사가 처한 환경과 변호사 자격증의 가치뿐만 아니라, 경제 규모, 문화적 차이 등 많은 것들이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은 불과 3000명 정도의 변호사를 배출한 한국 로스쿨 제도의 문제들이 미국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로스쿨은 끝났다>(브라이언 타마나하 지음, 김상우 옮김, 미래인 펴냄, 원제 "Failing Law Schools")의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미국) 로스쿨을 다니느라 수십만 달러의 빚을 지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더라도, 이제 고액 연봉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로스쿨에 입학하였거나 입학할 개인에게 로스쿨 진학이나 변호사 자격 취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것이 저자의 '돌직구' 충고다.

다시 말하지만, 19세기부터 로스쿨 제도를 운영해왔고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한 변호사협회가 로스쿨 인가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미국과 한국의 제도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

하지만 2013년 현재 미국과 한국의 변호사들(특히, 신규 진입 변호사들)이 직면하고 있는 시장의 냉혹함은 매우 비슷하다. 한국 로스쿨의 등록금 역시 구매력 수준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고,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비싼 등록금을 치른 후 자격을 취득하더라도 상황이 만만치 않아. 나는 운 좋게 자리를 잡았지만, 네가 로스쿨에 입학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취업 시장에 나올 2017년 즈음엔 상황이 더 악화될지도 몰라(아마 좋아질 확률보다 나빠질 확률이 훨씬 크겠지).

선배 변호사들로부터, 우리 법조시장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 한 해 1000명을 기록한 이후로(2000년경) 사법연수원 수료 후에도 많은 수의 변호사들이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구직 활동을 해야만 했다고 들었어(비단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 취업이 어려워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 결국 수요 공급의 문제니까). 인구 대비 변호사 숫자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여전히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구직 시장의 상황은 여전히 경직되어있고 학벌과 성적, 나이, 심지어 성별과 외모(!) 등으로 엄격히 분류되는 한국 변호사 취업 시장의 특수성도 신규 변호사들에게 장벽으로 기능한다. 말하자면, 네가 마흔 살이 되어서 변호사 자격을 갖고 나왔을 때, 아무리 서울대 좋은 학과의 학벌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당 기간 구직의 대열에 줄서서 네 차례를 기다려야 할 거야.

물론 네가 오직 '먹고 살기 위해'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게 아님은 나도 안다. 네가 기대한 바와 같이(?), 우리 법률은 변호사의 실제 생활이 어떠한지와는 별개로, 변호사의 사명과 지위를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제1조(변호사의 사명) ①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②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제2조(변호사의 지위)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수행한다." (변호사법)

멋지지? 그런데 한국의 만 7000여 명의 변호사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법률이 부여한 저 역할을 마음에 새기고 있을까? 법률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다'고 못 박고 있으니, 그야말로 변호사는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할 지경이다.

실제 현실은 어떠냐고? 일부 과장은 있겠지만, 개업한 변호사들이 수임 사건 수가 줄고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어떤 사건이라도 따내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게 진짜 현실이지. 물론 개업 초기부터 잘나가는 개인 변호사들도 많고, 대형 로펌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변호사들도 있지만 말이야. 말하자면, 빈익빈부익부가 변호사라는 전문 직역에도 심화되고 있다. 매우 심하게, 급격한 속도로 이 현상은 자리 잡을 거야. 서초동에서 당사자로서 느끼는 개업 변호사의 현실은 자영업자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을 거야. 네 나이를 생각해 볼 때, 좋은 자리에 취직하기보다 개업과 가까운 변호사 일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변호사로서의 영업'에 네가 얼마나 친화적인지 한 번쯤 더 고민하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 변호사들의 처지가 미국에 있는 저들과 다르지 않더라. 특히 미국 변호사들은 출신 로스쿨에 따라 소득 분포 자체가 확연하게 다른데, <로스쿨은 끝났다>에 인용된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같은 집단 내에서도 소득 차이가 크"고, 10대 명문 로스쿨 졸업자의 연평균 소득은 보너스를 포함해 16만 2000달러 였는데 11~50위 로스쿨 졸업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10만 7000~10만 8000달러였고, 51~100위 로스쿨 졸업자들은 9만 2000달러였다고 한다. 한국 로스쿨 역시 앞으로 서울 명문대 로스쿨 졸업자들과 지방대학 로스쿨 졸업자들의 연봉 차이가 점점 커질 거라고 봐.

한마디로 네가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이 호락호락 하지 않을 것이고, 변호사 내부 격차와 경쟁도 더 심해질 것이니깐 '잘해야' 한다는 말이야(근데, 뭘 잘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아마 로스쿨에 가겠지(나도 그랬으니까). 대기업 회사원으로 5년을 살아보고 변호사가 돼보니 이제는 조금 알겠다. 의사 변호사가 월급 꼬박꼬박 받는 회사원을 부러워하는 점도 있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그 반대의 사실들도 많지. 이를테면 변호사는 '굶을 수 있는 자유'가 스스로에게 허용되어 있는 직업이지. 그리고 스스로 여러 가지를 결정하고 혼자 일을 해나가야 하는 외로운 직업이기도 해.

무엇보다 변호사는 시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매우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권력'을 갖는 매력적인 직업이지. 명심할 것은 우리가 회사라는 조직이 주는 어떤 안온함을 벗어버린다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어지지만, 그만큼의 대가도 치러야한다는 거야. 곧 법학 적성시험을 칠 너에게 아직 시간이 있으니 한 번 더 깊이 고민해보길 바라.

"인생에서 안전한 투자는 없다. 미래를 보장하는 것도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경제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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