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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파산의 진실…GM이 원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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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파산의 진실…GM이 원흉이었다!

[기고] 디트로이트 파산과 자동차 기업의 책임

지난 7월 18일 미국의 디트로이트 시(市)가 파산을 신청한 것을 두고 이례적으로 많은 관심이 쏠렸다. 자동차 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가 세계적으로도 잘 팔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 도시가 파산했다는 소식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보통 채무가 많은 개인이나 부실기업이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는 많아도 도시가 이런 신청을 하는 것은 우리에겐 생소한 일이기도 하다. 시의 파산 신청이 주(州)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찰과 소방공무원 퇴직자 단체가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어 연방 법원이 이 파산 신청을 승인할지도 관심거리다.

파산 신청이라는 극단적인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고, 디트로이트 시의 자산을 월가에 헐값에 넘기려한다는 주장도 있는 등 파산 신청 배경에 대한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관련 기사: 디트로이트 파산 신청, 속셈은 따로 있다)

총 185억 달러로 최대 규모에 달하는 파산액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미 퇴직해서 연금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는 주 공무원이나 교사, 경찰, 소방관 등에게 지불해야 하는 연금이나 건강보험 급여의 미적립 채무이다.

미래에 지출해야 할 금액을 포함하고 있어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현재 알려진 바로는 그 규모는 약 35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시의 파산 신청으로 연금 외에는 달리 생계를 꾸려갈 방도가 없는 이들 퇴직 노동자는 파산 처리 결과와 무관하게 연금액이나 건강보험 급여 혜택이 줄 수밖에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 외에도 이번 파산 신청으로 더욱 어려워질 사람들은 과거 자동차 공장에서 퇴직한 노동자들이다. 이 퇴직 노동자들은 과거(2009년) 크라이슬러(Chrysler), 제너럴 모터스(GM) 등 자동차 산업 구조 조정으로 연금액 삭감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고, 도시를 떠나지도 못한 채 비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당시 자동차 기업 구조 조정의 가장 큰 명분 중 하나는 과도하게 높은 레거시 비용(legacy cost)이었다. 퇴직하면 지불하기로 기업이 약속한 연금 및 건강보험 급여였던 이 비용이 기업 간 흡수 합병을 방해하고 따라서 외국 기업과 경쟁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당시 자동차 산업 경쟁력 저하의 진실은 다른 데 있었다. 우선 GM 등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는, 자신들이 원하는 차만을 만들었고, 이를 소비자에게 강요했다. 나아가 GM의 파산이 자동차 할부 금융 회사였던 지맥(GMAC)의 파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GM 매출의 80퍼센트를 담당하던 지맥은 1990년대 후반 모기지 회사를 인수하고, 초국적 사모 펀드인 서버러스(Cerberus Capital Management)와 합작으로 금융 투기를 일삼았다. 그러다가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서 대출도 중단되었고, 더 이상 대출로 자동차를 살수 없는 소비자들은 일본차를 구매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이런 식으로 GM을 파산에 이르게 한 것이다. 대량 해고가 일어났고, 연금액은 대폭 삭감되었다. 고용주가 적립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 삭감된 연금액은 사실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이었던 것이다. GM과 크라이슬러는 그 어느 국가보다도 기업에 더 우호적인 파산법(Chapter 11)에 따라 파산을 신청했다. 연방 정부는 800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 금융을 지원했고, 기업은 다시 살아났다.

이 레거시 비용 처리 문제는 철강 산업에서도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철강 수입 관세를 새로 만들어 기업을 지원하고자 했으나 기업들의 미적립 부채를 해소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고용주 기여금 축소, 노동자 기여금 인상에서부터 건강보험 급여를 해당 고용주로 일한 기간만으로 제한하거나 연금 계획을 일방적 종결하는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다. 퇴직 연금액을 줄이기 위해 결국 두 산업 모두에서 노동자로 일생을 바쳤던 퇴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지불이 미뤄진 임금을 구조 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일순간에 날려버렸던 것이다.

노후의 가장 중요한 재원이 공적 연금과 기업 연금 급여로 구성되고, 미국은 공적 연금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의 파산과 공적 연금 축소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시민들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자동차 기업들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업이 생산 공장을 지원 혜택이 더 좋은 다른 도시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장 이전은 자유일 수 있으나 필요할 때는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다양한 유인을 약속했다가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이를 지키지 않는 것, 또 지불했어야 하는 임금을 나중에라도 지불하지 않는 것은 이 자유에 포함될 수 없다.

비용을 줄여 도산을 막고자 했는데도 강성 노조(전미자동차노조(UAW))의 반발 때문에 위기를 자초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의 병원비 부담을 기업 복지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후 복지를 지키기 위해 자기 할 일을 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일은 생산 인원 감축, 해외 공장 설립 이라는 고통을 감내하는 대가였다.

기업 구조 조정을 빌미로 연금 비용을 일방적으로 줄이고 연금 계획을 폐지함으로써 연금 적자를 일시에 해소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기업 연금, 특히 확정 급여형(defined benefit : DB) 연금 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란 무엇보다 연금 자산의 운용이 과도하게 기업주의 재량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금 적자가 누적되면 기업 경영자들은 확정 급여형 연금 계획을 폐쇄해버리거나 확정 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 DC) 계획으로 대체할 수 있다.

연금 계획을 종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업 파산 신청이었다. ERISA로 알려진 미국의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에 따르면 연금 자산의 시장 가치가 현재 지급 계획의 90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면 기금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해당 기업은 5년 안에 이 부족분을 보충해야 한다.

만약 기업이 이 부족분을 채우지 못해 연금을 지불하지 못하거나 파산을 하게 되면 준(準)연방 기구인 연방급여보장공사(PBGC)가 개입해 퇴직자들에 약속된 연금 지급을 보증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수많은 기업들의 연금 적자를 떠맡게 된 PBGC마저 파산 위기에 내몰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업들은 이러한 제도를 이용해 파산 보호를 신청하고 이름을 바꾸어 새로운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따라서 문제로 치면 기업파산법의 무분별하게 사용한 기업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당시 자동차 기업들의 연금 자산 적자가 그 대부분을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데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주식 가치가 높은 시절에 확정 급여형 연금 계획을 이용해 기업 수익을 부풀렸다. 부풀려진 수익을 바탕으로 상승한 기업 가치와 여기서 생긴 연금 자산 잉여(pension surplus)는 연금 가입자들에게 분배되지 않고 기업이 독식했다.

심지어는 기업주의 마음대로 연금 계획을 종료하여 초과 적립금을 회수해가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연금 채무가 누적되어 지불이 불가능해지게 되면 기업들은 이 비용 때문에 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하면서 그 부담을 정부에 전가하려 했다. 이와 같은 사태는 임금 일부를 적립해서 생긴 연금 자산을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에 투자하고 여기서 수익을 올리려는 자본이 이를 부추기는 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2011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디트로이트 GM 공장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 ⓒwhitehouse.gov

본론으로 돌아와 디트로이트 시는 향후 채권 보유자, 주정부 노동자들, 퇴직자들이 시로부터 받아야 할 채무를 둘러싸고 양보 없는 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처럼 오클랜드,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이 다른 대도시들의 파산 선언이 뒤를 이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를 파산으로 내 몬 기업들의 노동자나 퇴직자들에 대한 무책임, 그리고 금융 투기로 수익을 올리려 했다가 오히려 파산을 초래한 방만한 기업 경영이다. 퇴직금 제도를 대체하면서 도입한 기업 연금의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 기업들에게 연금 계획 종료와 같은 사태는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산업 메카 디트로이트 20조 빚더미…과잉 복지에 파산"(<조선일보>), "21조 원 빚더미…'자동차 메카' 디트로이트 파산"(<중앙일보>), "기업 떠나고 마구 돈 써 파산한 디트로이트의 교훈"(<동아일보>) 등 이른바 '분석' 기사들을 진실인양 써대는 든든한 '후원군'이 있는 한 기업들의 파렴치한 행위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더구나 '강성 노조'를 핑계로 공공 의료 기관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몰염치한 지방 정부와 이를 묵인하는 중앙 정부, 그리고 분개는커녕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간판 내리는 일을 방조하고만 있는 그런 도시가 있는 한 기업들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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