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가 번역을 해오면 편집자는 원서 대조, 교정교열 과정을 거치며 원고를 수정해 나간다. 적당한 긴장관계 속에서 실랑이도 벌어지고, 결과적으로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번역서는 원고 작성자-담당 편집자 간에 상호작용이 좀 더 격하고 팽팽하다 할 수 있다. 옮긴이 역시 '해석자'로 개입하기 때문에, 편집자의 조력 없이는 원고를 100퍼센트 장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옮긴이 앞에 나서 적극 변호하는 위의 경우는 확실히 '훈훈한' 쪽에 속한다. 서로 간의 상호작용과 협의에 실패한, 명백히 '나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번역자는 자신의 오역을 편집자 탓으로 돌리며, 어떤 편집자는 이름값 때문에 믿고 맡겼던 번역가의 원고를 눈물을 머금고 처음부터 재번역하기도 한다.
마감을 둘러싼 혈투, 붉은 색으로 점철된 교정지. 그러나 그 속에서 한 텍스트를 단 둘이 처음 나눈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정이 싹튼다. 번역을 주제로 한 '프레시안 books' 3주년 특집호는 편집자 입장에서 본 번역의 현장을 싣는다. 단어 하나를 둘러싼 경험부터 나쁜 번역자의 예까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유형 별로 엮어 보았다.
알고 맞아도 아프다 인터넷에 그렇게나 많이 공개적 비난이 쏟아진 경우는, 애니북스로서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 처음이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만큼 팬이 많고 기대가 컸을 테니까. 그동안 해적판도 몇 차례 나왔으며 새로운 불법 스캔본이 아직도 올라오는 중이다. 이걸 먼저 접한 독자들은 아무래도 비교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동친다 하트!'처럼 이른바 '짤방'으로 유명해진 대사나 장면들이라면 더더욱 먼저 접한 버전으로 내주길 바랄 것이다.
문학 단행본과 비교하면, 만화는 장기 기획이 많아 스케줄이 타이트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완벽을 기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만화 번역자들 실력이 나쁜 게 아니라, 대우 수준이 워낙 낮다. 그래서 애니북스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지급하고 있다. 이번에도 최대한 신경을 썼고, 번역 작업 자체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이번 블로그 글처럼 논란에 대해선 설명할 필요도 느꼈다. 독자가 공식적으로 항의할 창구는 열려 있고, 증쇄할 때 반영할 생각도 있다. 그런데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만든 '죠죠' 전용 이메일 계정으로는 지난 7~8개월간 겨우 한두 분이 메일을 주셨을 뿐이다. 조롱에 가까운 익명 댓글로만 불만을 제기하는 건 많이 아쉽다. (애니북스 천강원 편집장) 번역에 대한 항의야 늘 있다. 가령 <반지의 제왕>(J. R. R. 톨킨 지음, 한기찬 옮김)을 펴냈을 때엔 호빗의 세계 '미들어스(Middle-Eerth)'의 번역어인 '중원'이 문제되기도 했다. 판타지 소설인데 무협지 느낌이 난다는 이유였다. 번역상으로 틀린 건 없지만, 무조건 우리 편집부 판단이 옳다고 우기거나 일을 키울 건 없다. 독자 무시하면 안 된다. '나는 이렇게 읽었는데?'하면 사실 할 말 없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게 번역이라 독자 항의는 어떻게 해도 반드시 나온다. 부담? 안 가질 수 있겠나. 논란이 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더 꼼꼼하게 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전에 번역을 '잘 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번역자를 정할 때 비용이 들더라도 가급적 뛰어난 분을 섭외하려고 한다. 장르문학은 평소에 즐겨 읽는 책도 중요하다보니 알음알음 인맥으로 맡겨서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이쪽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 쓰는 친구인데 집에서 놀고 있어? 이러면 맡기기도 하고…. (황금가지 김준혁 편집장) 지난해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의 번역을 두고 말이 많았는데, 오역이라고 문제시된 것들 중 상당수가 말맛의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번역을 검토할 기간이 더 길었다면 문제시된 부분이 분명 줄었을 테지만, 한편으론 두 번, 세 번 작업해도 역자는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자신이 선택한 단어로 옮길 것이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당시 가장 핫한 책이었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논쟁이 가열되었다는 생각이다. (인문·예술 분야 편집자 A) |
똑같은 번역본이 난무한다고?
시장에 똑같은 작품의 번역본 여러 종이 경쟁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는데, 출판사에 소속된 입장으로 변호하자면, 잘 팔리는 책을 해야만 안 팔리는 책도 할 수 있다. <오만과 편견>, <위대한 개츠비>가 있어야 독자들이 많이 찾지 않는 제3세계 소설도 소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매대만 놓고 보면 쏠려 있는 것 같아도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면 그런 측면도 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팀 손미선 차장) |
번역자도 편집자도 헛갈린다? 번역된 철학서를 편집하다 보면 프랑스 철학자의 책에 대한 독일 철학자의 해석을(혹은 그 반대를) 다시 한국어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말하자면 중역이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과 독일 철학 모두에 능통한 번역자가 별로 없다 보니 정체불명의 해괴한 번역어가 나타나기 일쑤다.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게오르크 바타유가 되고,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페터 베르거가 되곤 한다(버거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으니 참작해줄 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은 그나마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이보다 더 '마이너'한 사람들의 경우는 나 자신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그래서 늘 생각하는 것은 '인문학 번역어 사전' 같은 것이다. 이런 번역 인프라가 온라인으로 활용 가능하다면 인문학 번역에 대한 오역 시비도 줄고 번역의 질도 좋아지지 않을까. (사월의책 박동수 편집팀장) |
ⓒ프레시안 |
이런 번역자를 원한다! 해당 외국어 실력은 당연히 0순위. 그 다음엔 내용과 문맥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겠고, 두 번째는 저자의 문체나 목소리를 캐치해서 거기에 맞는 정확하고 적절한 한국어 어투를 찾아내 입히는 능력일 것이다. 세 번째, 해당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서 합의된 용어를 찾아서 쓸 수 있어야 한다. 번역 용어들이 세련되지 못해도 기존에 합의, 유통되었다면 그걸 찾아서 써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초벌 번역, 최소한의 원서 대조, 우리말 교열 한번 이상, 재수정' 등 기본적인 과정을 알고 지키는 것. 마지막으로 편집자와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번역자가 좋다. 서로의 의견을 100퍼센트 수용하지 않는 상태, 서로 약간 의심하는 상태 속에서 텍스트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반비 김희진 편집장)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번역자라면, 내가 담당하는 분야에서 번역의 질은 비슷하다고 본다.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역자와 편집자도 일하는 관계인지라, 사회성 있는 역자를 만나면 행복하다. 물론 자신의 번역에 대한 자부심은 기본이고, 거기다 자기 실수도 쿨하게 인정할 수 있는 분이랄까? 그런데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건 '좋은 책을 함께 한 역자'다. 얼마 전에 굉장히 좋은 책을 번역자 분과 고생하면서 작업했는데, 이걸 했으니 이 회사를 그만둬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본문학 담당 편집자 B) 일단 작업한 책에 애정을 갖고 있는 분들, 문장 속의 고민과 번역 후기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리고 문장 속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밤을 새서 구글 지도를 뒤지고, 사비로 자료를 구입하고, 직접 감수자를 찾는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 무엇보다 번역이 훌륭한 분들. 작가의 세계관, 작품의 구조와 문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마치 '신탁'을 받은 무녀인 양 작품의 목소리를 전해주시는 분들. 이런 분들의 번역이라면 일정이고 단가고 상관없이 결국엔 '부탁드리길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산북스 박여영 팀장) |
번역자 선생님, 사랑합니다 자신의 번역에 대해 회의하는 분들,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분들의 번역이 더 좋다. 실력 좋은 분들일수록 겸손하다. 이세욱 선생이 그런 경우다. 그 정도의 경력이라면 편집자가 어떤 의견을 내놓을 때 화를 낼 수도 있는데, 굉장히 잘 들어주신다. 또 우리나라 사전의 틀린 부분들도 세세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굉장하다. 편집자가 사전을 보고 '이 단어는 이런 뜻인 것 같은데요'라고 기계적으로 지적하면 그 사전의 오류를 되려 지적해줄 수 있는 분이다. 사전의 오류들을 아쉬워하면서 번역자들끼리 모여 각 분야와 관련한 '번역어 사전'을 만들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다. (책세상 김지연 팀장) 모비딕과 함께 마쓰모토 세이초 전집을 낸다고 했을 때 언론에 기사가 많이 나갔다. 그때 이런저런 전화를 참 많이 받았다. 김욱 선생도 그 중 하나였다. <지적 생활의 발견>(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등을 번역하셔서 존함은 익히 알고 있었다. 세이초 책을 원서로 거의 다 봤고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라면서 번역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조심스러웠다. 한 작가의 전집은 한두 분이 전속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도 김소연 씨와 이규원 씨가 번갈아 번역하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자를 섭외하기 까다로운 상황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무척 아쉬워하셨다.
그분 정도면 본인이 책을 고를 수 있을 텐데, 하고 싶은 작품을 위해 출판사에 오셔서 적극적으로 프러포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출판사에서 귀찮아 할까봐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이메일 보내는 게 보통일 텐데, 이 분을 겪고 적극적인 프러포즈 역시 번역자의 중요한 자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번역도 잘 하셨기에, 내겐 잊을 수 없는 역자가 됐다. 내가 번역자이고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김욱 선생처럼 하지 않을까. 상대방이 귀찮아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웃음) 그러니까 연애랑 약간 비슷한 거 아닌가 싶다.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가장 인상적이고도 무서웠던 분이 있다. 유명하신 분인데 이름을 밝힐 순 없다. 내가 만난 번역가 중 연세가 가장 많기도 하신데, 심지어 우리 사장님이 편집자 시절에 이분 때문에 눈물을 쏙 뺀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이 분은 글에 대한 소신이 확고해서 편집자가 원고 고치는 걸 싫어한다. 한번은 교정 수위를 정하러 샘플 교정본을 들고 찾아뵙기로 했는데, 방문 전 통화에서부터 목소리가 언짢으신 듯했다. 댁에 가서 선물을 건네 드리고 굳은 표정 앞에서 설명을 하는데 엄청나게 긴장되더라. '선생님 문장을 고치려는 게 아니다, 오탈자 위주로 잡되 불필요하거나 반복되는 대명사나 조사만 고쳐도 되겠느냐' 등등 열심히 말씀드리니까 그분도 좀 누그러지셨다. 잠시 뒤엔 작업 중인 원고나 그림 같은 것들도 보여주셨다. 우리도 격하게 반응해드렸다. 의외로 아이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편집을 끝낼 즈음, 표지에 들어갈 약력을 확인받으려 전화를 드렸더니 '그까짓 거 그냥 알아서 넣어라' 하시더라. 이력이 정말 굉장하신 분인데 그걸 짧게 압축해서 조심스러워하던 참이라 의외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겉으로 보이는 당신의 모습보다 당신의 작업물을 더 중요시하는, 작품이 곧 자신인 천상 문학가구나 싶었다. 여러 모로 느낀 바가 컸다. (인문·예술 분야 편집자 A) |
'뒷담화' 좀 합시다 본인이 예전에 번역한 작품인데, 저작권이 없어서 출판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인세를 요구하는 경우를 봤다. 우리 쪽으로 왔을 때는 저자 수준의 인세와 지속적인 마케팅을 요구하셨다. 물론 저작권료가 나갈 필요가 없고 잘 나가는 책이니까 대우해 드리긴 했지만… 번역자 역시 저자와 다름없는 애정과 집착을 보였다고 좋게 해석하고 싶다. (인문 분야 편집자 C) 가장 곤란한 유형은 아무래도 잠적하는 타입이다. 전화나 이메일을 일부러 확인 안 하는 분들도 있고, 심한 분은 '지금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남겨야 겨우 답이 온다. 당신의 부모님과도 연락 두절된 경우도 있으니…. 마감 회피 핑계도 상상을 초월한다. '아프다'는 기본이고 가족의 사망, 애완동물의 사망, 이사, 우울증, 교통사고 등등, 별의별 핑계가 쏟아진다. 출간 일정을 조절할 수 있으니, 마감 한 달 전에라도 미리 연락해서 스케줄을 의논해주면 좋겠다. 일방적으로 마감 순서를 어기는 것도 곤란하다. 어차피 책 나오는 걸 보면 우리 책을 미루고 다른 출판사 일을 먼저 했구나, 하는 정도는 다 안다. 이쪽은 원고를 못 받아서 속이 타는데 '내가 이번에 한 책이 어찌나 좋은지~'하는 분들도 있다. 진짜 수화기를 쥔 손이 부르르 떨린다. 원저자에게 훈계하는 스타일도 있다. 책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처음부터 맡지 않으면 좋을 텐데, 편집자에게 작품이 형편없어서 너무 힘들었다고 대놓고 푸념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역자 후기나 각주를 통해 원저자에게 훈계를 하기도 한다. 실수를 차분히 지적해주는 건 도움이 되는데, 의기양양한 어조로 험담을 써 보내면 다시는 일을 같이 하고 싶지 않아진다. 보통은 의논을 거쳐 그런 부분을 들어내기도 하지만, 번역가가 고집을 부려서 그대로 책이 나왔을 때 독자들이 불쾌해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문학 담당 편집자 D) 역자 후기에 책에 대한 꼬투리를 잡은 분이 있다. 보통은 장점만 이야기하고 단점은 감추기에 마련인데, 이 이야기에도 나름대로 취할 바가 있었다. 역자 후기는 광고문안이 아니지 않은가. 자기의 소감이나 심정을 밝히는 거니까. 감정적으로 욱해서 저자나 출판사를 비난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피할 게 있다면 과도한 헌사다. (출판사 대표 E) 지나치게 번역 많이 하는 분들! 편집자가 다 뜯어고쳐야 한다. 1년에 10권씩 하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 아닌가. 100퍼센트 엉덩이로 하는 작업인데, 그런 속력으로 좋은 번역을 유지하겠나. (편집자 F) 이미 계약금을 받아놓고는 도중에 갑자기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은 차라리 낫다. 양심적인 분은 계약금을 반환하기도 한다. 그러나 번역이 너무 안 좋아서, 몇 번이고 수정 요청을 해도 나아지질 않아서, 다시 역자를 섭외해야 하면 정말 슬프다. 끝까지 자기 번역이 괜찮았다고 우기면 그 원고가 출간되는 게 아니어도 전체 번역료를 지급할 수밖에…. 편집자가 다 뜯어고치는 경우? 엄청 많다. 특히 자기계발서는 '고스트 트랜슬레이터'가 적잖이 있다. (과학 분야 편집자 G) |
시간과 비용, 더 드리고 싶지요 예전 일인데, 유명한 유럽 작가의 신작을 출간 일정에 맞춰서 급하게 내야 했다. 적합한 번역가를 섭외했는데 문제는 겨우 2개월뿐인 기한이었다. 출간되고 나니 번역에 대한 지적이 잇달았다. 역자는 '시간을 더 줬으면 오역을 줄일 수 있었는데'라며 좀 억울해 했다. 하지만 유명 작가의 신작이라 출판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누가 봐도 베스트셀러가 될 게 확실한 작품을 번역할 기회를 얻는다는 건 번역자로서도 좋은 일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번역도 늘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교수들이 전공 분야 번역을 많이 해줘야 할 텐데, 학업적으로 실적이 큰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라서 많이들 기피한다. 교수들이 기피하면 전문 번역가들이 힘들어진다. 어려운 책, 할 때마다 매번 도전인 책을 몰아서 맡을 수밖에 없으니까. 전공자들이 번역을 기피하는 경향 자체가 제도적인 문제인 것 같다. 계속 이렇게 가다보면 결국 아무런 학문적 발전이 없지 않을까. (1인 출판사 대표 H) 한국에 나오는 모든 번역서를 놓고 본다면 평균적으로 질이 굉장히 안 좋다. 문제는 비현실적으로 낮은 번역료다. 예전부터 안 좋았지만 출판 상황이 악화되면서 개선될 가능성이 더 줄었다. 재작년인가 모 대학 번역학과 사람들이 단행본 출판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해서 자리에 불려나갔는데, 정말 현실적으로 얘기했더니 다들 번역 안하겠다고 하더라. (웃음) 내가 말하고도 마음이 무거웠다. 출간 일정이 문제 아니냐고? 한국은 뭐든지 빨리 해야 하니까.(웃음) 그런데 그것 또한 돈 문제랑 직결된다. 전문 번역만 해서 먹고 살기 쉽지 않으니까. 대학 교수의 번역, 부업으로서의 번역은 생업에 밀리니까 출간이 늦어지게 되고, 그러면 편집자는 독촉하게 되고, 실수가 나오고. 악순환이다. (편집자 I) |
번역도 하고 편집도 한다
아무래도 자사 책을 번역하면 원고가 책이 되는 과정을 계속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책임감이나 애정이 더 생긴다. 부족한 원고를 맡게 된 동료나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도 한편에 있지만. 장점은 역시 역자-편집자 간 의사소통의 원활함에 있다. 애매한 게 있으면 옆자리에 대고 물어보면 되니까. (웃음) 하지만 실수했을 때 민망한 정도 역시 훨씬 높다. 편집한 책에서도 정작 책이 나온 뒤에야 '왜 만들 때는 안 보였을까' 싶은 오탈자가 눈에 띄곤 하는데 번역도 마찬가지 같다.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읽고 다듬다보면 어느새 거기 파묻혀 전체적인 그림을 못 보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 접하는 신선한 눈으로 지적과 수정을 해주는 사람의 역할이 무척 크다는 것을 느꼈다. (문학동네 해외문학3팀 양수현 과장) 편집자로 일한지 5년 정도 됐을 때 회사 내 아동 출판 브랜드의 책을 번역했다. 그 뒤로 몇 번 더 아동물을 맡았고, 점차 어른들이 읽는 과학책을 번역하다 보니 지금까지 죽 하고 있다. 벌써 10년쯤, 해마다 한 종 이상 번역하고 있다. 내부 직원이 번역을 맡으면 회사 입장에서 여러 수고와 부담이 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에게 웬만한 수준의 문장 구사 능력과 교정 능력이 있으니까. 직원은 마감을 안 지킬 수 없으니까 좀 더 계획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전문성이나 역자로서의 지명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그걸 감내하고 진행해도 되는 책들' 위주로 맡게 된다. 그런데 자기가 번역한 걸 자기가 편집하는 데서 오는 단점도 있다. '깔때기'가 없어지는 거니까. 아동물은 그렇다 쳐도 성인 단행본은 분량이 많으니까 내부 직원들이 읽어줄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1인 책임번역-책임편집-책임출간이 되어버린다. 외부 감수를 보내서라도 한 번은 '하드하게' 읽어줄 장치가 필요하다. 직원이 자사 번역물을 번역하면 돈을 따로 안 주는 일도 있다. 양심적인 회사, 여유가 있는 회사는 외부에 지급하는 고료의 절반부터 그에 상응하는 금액까지 지급한다. 업무 시간에 하라고는 하지만 잡무를 하다보면 자연히 일과 후나 주말에 하게 된다. 결국 직원에게도 애정이라든지 공부라든지, 웬만한 동기부여 없이는 어려운 셈이다. 내 경우, 독립해 출판사를 차린 지금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출간할 책의 번역을 직접 맡곤 한다. (공존 권기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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