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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소년, 잘 나가던 일본을 '시원하게' 멸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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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소년, 잘 나가던 일본을 '시원하게' 멸망시키다!

[뒤늦게 온 전설] 윤태호·연상호·이진이 말하는 걸작만화 <아키라>

아키라, 明(밝을 명), 晃(밝을 황), 昭(밝을 소), 光(빛 광) 등 빛과 관련된 한자들을 이렇게 읽곤 한다. 일본에서 주로 남성의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글자다. <라쇼몽>의 구로사와 아키라, <드래곤 볼>의 도리야마 아키라 등 유명한 창작자들의 이름으로도 익숙한 이 단어는, 1982년 이후 알파벳 대문자 'AKIRA'로 또 다른 쓰임과 심상을 갖게 되었다. 오토모 가쓰히로(大友克洋, 1954~)의 SF 사이버펑크 만화 (이하 <아키라>로 표기)의 탄생이다.

<아키라>는 첨단의 겉모습과 어두운 이면이 공존하는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정부의 비밀 계획과 이에 접근하는 반정부 조직의 싸움, 과학과 종교 사이를 오가는 통제 불능의 힘, 초능력과 신형 기계 등 소년들이 사랑하는 모든 요소를 버무려 펼쳐지는 이야기다. 아키라는 갈등의 핵심에 놓인, 거대한 힘을 가진 소년의 이름이다.

▲ <아키라>(한국어판 1권, 오토모 가쓰히로 지음, 김완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고단샤의 <영 매거진>에 1982년~1990년에 걸쳐 연재되었고 전 120화가 6권의 책으로 묶였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1000만 부 이상 팔리며 팬덤을 형성했고, 1988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오토모가 직접 감독을 맡은 애니메이션 는 해외에서 '아니메'란 장르가 맹위를 떨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80년대 말~90년대 초 한국에서도 이 만화를 접한 이들이 적지 않다. 정식발매나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던, 인터넷도 없던 시절 이들은 불법과 '왜색'이라는 벽 밑에서 힘든 과정을 거쳐 <아키라>를 손에 넣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홍콩 만화 <폭풍소년>으로 위장 개봉했다가 수입업체가 적발당한 일은 숱한 에피소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벽의 틈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렸던 <아키라>의 비였으나 어떤 이들은 옷이 흠뻑 젖었다. <이끼>, <미생>의 만화가 윤태호(1969년생), <돼지의 왕>을 만든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1978년생)도 그랬다. 만화학원에 다니던 윤태호는 <아키라>를 통해 새로운 그림에 눈을 떴고 소년이던 연상호는 <아키라>를 보고 만화학원으로 달려갔다. 한편 <아키라>가 출발한 해 태어난 소설가 이진(1982년생, <원더랜드 대모험>(비룡소 펴냄))은 오토모 가쓰히로가 영향을 끼친 일본만화의 계보 속에서 성장하며 대학 시절까지 만화가를 꿈꿨다.

2013년 7월, <아키라>가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됐다. 만화전문 출판사 세미콜론이 고단샤 USA의 임프린트인 고단샤 코믹스가 출판한 페이퍼백 판(2009~2011년, 전 6권)을 판본으로 계약했고 오랫동안 <아키라> 번역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김완이 옮겼다. 금지된 시기를 건넜던 이들 모두에게 반가움과 묘한 그리움을 안긴 한편, 기다림이 컸던 만큼 인쇄 질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이 작품이 30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뜨거울 수 있는 아이콘이라는 점과 이후의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 착안해 '프레시안 books'는 <아키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세대와 분야가 다른, 그러나 만화의 독자에서 '픽션'의 창작자로 성장했다는 데서 공통적인 세 명은 자신이 경험한 <아키라>를 들려주었다. <아키라> 속 소년들의 심리와 만화 밖 80년대 일본 사회를 종횡무진하며 전개된 이날 대담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아키라>는 어떤 이야기?
1982년(영화판 애니메이션에서는 1988년, 한국어판 <아키라>에서는 1992년) 일본 간토 지구에 신형 폭탄이 사용되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30여 년 후, 폐허에서 재건된 '네오 도쿄'의 구 시가지를 달리던 폭주족 소년들이 백발에 노인의 얼굴을 한 정체불명의 소년과 접촉 사고를 일으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고 직후 군부에 이송되어 이상한 실험을 받는 소년의 이름은 시마 데쓰오, 우연히 반정부 게릴라 조직에 휘말리는, 데쓰오의 친구이자 폭주족의 1인자 소년의 이름은 가네다 쇼타로다. 두 소년은 정부가 비밀리에 만들고 봉인해둔 거대한 힘 '아키라'의 존재를 알게 되고, 각자 다른 목적으로 힘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친구가 아닌 복잡한 대결 관계로 맞선다.

ⓒ프레시안(최형락)

전혀 새로운 만화가 나타났다

"스무 살 때 받은 충격의 여진이 아직 고스란히 살아있는 만화" (윤태호)
"(<아키라>를 보고)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키라는 내 꿈의 시작이었다." (연상호)


보기 드문 '라인업'이다. <아키라> 한국어판 추천사엔 영상과 만화 분야에서 활약하는 약 스무 명의 창작자·평론가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평소에는 이런 코멘트를 아끼던 사람들이 호화스럽다 싶을 정도의 칭찬을 내놨다. 윤태호 작가와 연상호 감독도 그들 중 하나다. 윤태호 작가는 원작만화를,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최초로 접했다고 한다. 지금 두 사람이 활동하는 분야를 생각하면 이 만남의 순서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 만화가 윤태호. ⓒ프레시안(최형락)
윤태호 :
1988년에 처음 봤어요. 제가 다니던 만화학원에 유명한 스토리 작가가 강사로 오셨는데, 그 분이 불법으로 마스터 인쇄·제본한 <아키라>를 가져왔어요. '야, 세상엔 이런 만화도 있어'하며 뻐기듯이 1권을 보여줬는데, 첫 인상은 사람이 굉장히 못생기게 그려져 있다는 거였죠. (웃음) 그런데 사람을 굳이 예쁘게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전체적으로 '너무너무' 잘 그렸다는 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배경. 출판만화에서 배경이 그렇게 구현된 건 처음 봤어요. 그때까지 제가 본 만화들은 대개 앞 그림과 뒤 그림의 배경이 이가 안 맞았거든요. 그래도 '만화니까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갔는데, 이 만화에선 공간이 마치 존재하는 듯 흐트러짐 없이, 화면이 바뀌어도 물 흐르듯 이어져가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펜선. 당시엔 옷 주름 같은 디테일을 대개 펜촉을 살려서 예쁘게 묘사했고, 그래서 유명 만화가들의 양식화된 옷 주름 패턴이 있었어요. 그래서 옷 주름만 보면 '이건 이현세 화실 출신이군', '허영만 화실의 누가 그린 것 같아'라고 대강 알 수 있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아키라>에선 펜 터치가 마치 데셍 선처럼 거칠고 자유롭다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졌죠. 제가 거친 화실은 허영만, 조운학 화실 둘뿐이었는데 거기에서는 펜선은 무조건 딱 떨어지게 예쁘고 깔끔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었거든요. <아키라>의 선들은 그 기준에서 보면 굉장히 지저분한데 자세히 보면 엄청나게 정교해요. '데셍은 설계도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더라고요.

'이런 게 출판만화에서 가능하구나'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길로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 있던 일본 서적상에 가서 <아키라> 콘티북을 샀어요. 이걸 보면서 데셍 선 연습을 죽어라 했죠. 오토모 가쓰히로한테 빠져서 <아키라>보다 전에 나온 <동몽(童夢)>도 구해 봤는데, 이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은 배경에 접근하는 태도 같아요. 칸을 채우기 위해 배경을 그리는 게 아니라 가상의 공간을 완벽하게 설계해 놓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그리거든요. 소실점에 대한 감각도 남다릅니다. 특히 <동몽>은 건축가의 스케치를 보는 듯한, 아파트 조경 설계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이러한 배경에 대한 접근은 당시 접했던 다른 일본 해적판 만화에서도 본 적이 없던 것이었죠.

"(오토모 가쓰히로와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의 세계관을 고집하는 점도 공통적이다. 거리의 간판, 그 부근의 가게, TV에 비치는 CM, 전차 등,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이나 캐릭터는 각각이 모습이나 분위기에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성능을 동반한 실질적 존재든 풍경으로서 등장하는 간판이든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야마구치 야스오, <일본 아니메 전사: 세계를 제패한 일본 아니메의 기적(日本のアニメ全史: 世界を制した日本アニメの奇跡)>(텐북스 펴냄) 126쪽)

연상호 : 저는 90년대 초반, 중학교 시절에 처음 접했어요. 이미 만화 좋아하는 소년들 사이에서 <아키라>란 이름이 전설처럼 떠돌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아키라>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보게 됐고, 바로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찬양했어요. 자연스럽게 원작 만화도 보게 되고, 저 역시 '성지'였던 중국대사관 앞 그 가게에서 콘티북을 구해 봤고요.

제겐 모든 게 새로운 작품이었어요. 저 자신이 창작자가 되기까지 받은 영향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대표적인 예가 하나 있어요. 1991년에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폭풍소년>이란 제목으로 위장 개봉한 적이 있었죠? 일본영화 상영이 금지되었던 때라 홍콩영화로 둔갑해서 100분쯤 잘려나간 채로요. 저나 친구들은 이미 비디오로 봤지만 또 보러 갔었어요. 한국어 더빙판이었고 주인공 이름도 한국 이름이었는데, 데쓰오는 도창호였어요. '도창호-! 도창호-!' 외치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웃음)

그런데 한참 지나 또래의 만화하는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 <폭풍소년> 이야기가 나왔어요. 데쓰오의 한국어 이름은 기억에 일치를 봤는데, 가네다 이름이 뭐였는지는 아무도 기억이 안 난다는 거예요. 포털사이트 지식검색 서비스도 해보고 난리가 났죠. 저는 나름대로 추측을 해봤어요. '가네다'의 한자 표기가 '金田(김전)'이니까 그와 유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김철'일 것이다! 그래서 <돼지의 왕> 주인공 이름이 김철이 된 겁니다.

일동 : 아아~

연상호 : 나중에 수소문을 해서 옛날 잡지 기사를 봤는데 가네다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강진우였나? 평범한 이름이었는데…. (정확히 기억하시는 분, 제보를!-편집자)

호시절이기에 가능했던 '큰' 이야기

<아키라>가 한국에 제대로 도착하기까지 걸린 30년, 문하생이 거장이 되고 소년이 감독이 되는 시간이다. 달라진 위치만큼 보는 눈도 달라졌을 법하다. 한편 이 해에 태어난 이진 작가는 만화 창작을 꿈꾸던 '만화 소녀'였지만 <아키라> 열풍을 실시간으로 느낀 세대는 아니다. 원조 '아키라 키드'와는 다른 감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섭외 이유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다시 본 <아키라>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세 명의 창작자들은 작품의 '크기'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시대의 화력을 꼽았다.

▲ 영화감독 연상호. ⓒ프레시안(최형락)
연상호 :
전 일본 원서와 국내 해적판도 갖고 있기 때문에 종종 봤었죠. 최근에 다시 보면서 <아키라>는 역시 가네다와 데쓰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도 여러 요소가 절 사로잡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 둘의 애증 관계에 특히 빠져들었고요. 당시까지 제가 봤던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식의 인물 설정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에반게리온> 같은 일본의 다른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에서도 느껴지는 특징인데,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액션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오토모 특유의 초능력의 성질이랄지, 거기서 캐릭터들 간의 관계가 설정되는 모습이 보여요. <아키라>의 중요한 소재인 초능력도 서로의 힘이나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능력이잖아요. <동몽>에서도 마지막에 주인공 여자아이가 어떤 노인과 초능력 대결을 펼치는데, 여자애가 탄 그네의 철봉이 확 휘어지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까지 초능력 하면 손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가는 정도로만 생각했지, 캐릭터가 팽팽하게 맞서다가 힘이 뒤틀린다든가 하는 관계 면은 잘 묘사되지 않았거든요.

윤태호 : 오랜만에 보니 <아키라>는 '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이즈가 아무리 커져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예요. 왜냐하면 가네다와 데쓰오의 관계는 마치 원자와도 같은, 변치 않는 테마를 내포하고 있거든요. 누군가는 항상 위에 있고, 다른 누군가는 위에 있는 사람을 향해 게임을 벌이는 테마죠. 내가 설정한 관계, 내가 설정한 나의 게임, 절대 이길 수 없는 구도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서 우위를 잡으려고 하는 집착, 누구나 갖고 있으면서도 쉽게 풀 수 없는 테마라고 생각해요.

사실 사이즈는 엄청나게 키웠지만 이야기 자체는 좁은 작품들이 비일비재해요. 이를테면 <다이하드>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아키라>는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진 : 중학교 때 '빽판'으로 애니메이션을 보긴 했지만 전체 내용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전 10대 시절에 정말 많은 만화를 봤고 대학교 들어와서도 만화가를 꿈꿨는데, 소녀만화 위주였기에 <아키라>에 대한 열광은 크지 않았어요. 만화를 가장 많이 봤던 때가 94, 95년이니 이미 <아키라> 열풍 이후이기도 했고요. 이때는 이미 '성전'처럼 된 때라 만화 그리는 친구들 집에 가면 무조건 불법 복제본이 갖춰져 있었어요. 오히려 '난 끝까지 안 볼 테야'라는 저항감이 생기더라고요. (웃음)

이제야 전설을 확인해보니 '일본의 80년대, 정말 좋은 시절이었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요. 두 분이 말씀하신 대로 <아키라>는 10대 폭주족 소년들의 애증과 갈등을 중심에 두는 내용인데, 달리 말하면 청춘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전인류적 재앙이라는) 어마어마한 배경이 등장하죠. 기술은 비약했지만 이런 만화를 손으로만 그리는 건 지금 시대로서는 더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오로지 손으로만 배경의 눈곱만한 돌마저도 처절하게 표현하는 제작 규모가 놀라웠어요. 확실히 과거의 유물인데 이제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유물을 보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웃음)

연상호 : 노동력으로 따지면 사실 <아이앰 어 히어로>나 <베가본드> 같은 요즘 작품들도 만만치 않지만 <아키라>처럼 보면서 '아 정말 크다'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한 것 같아요.

이진 : 맞아요. 징그러울 정도의 디테일은 요즘 대작 만화들도 전혀 부족함이 없지만 <아키라>가 주는 느낌과는 다른 것 같아요. 제 생각으로는 예전엔 편집부의 기획이 훨씬 덜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연상호 : 1권쯤에 가네다가 유령처럼 확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6권쯤 가면 왜 그때 갑자기 나타났는지 설명이 되잖아요. 연재를 거의 8,9년 동안 했는데 이런 소소한 설정을 비롯해 전체적인 기획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끝내놓고 시작했다는 점이 놀라워요. 연재라는 게, 게다가 이 정도 규모라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거고, 심지어 엎어질 수도 있잖아요? 과감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기획력이 보장되었단 의미라고 생각해요.

윤태호 : <아키라 클럽(AKIRA CLUB)>이라는 팬북이 있어요. 연재 당시의 속표지, 프로모션용 그래픽 등을 모아놓은 건데 여기 작가의 엔지 컷들이 실려 있어요. 사실 연재 중인 작가가 컷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새로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시간이 없으니까 정말 약간만 고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제 만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데도 여러 번을 바꿔 그렸어요. 인물의 동작이나 컷의 배치를 바꾼다든지 이미지를 반전시키면서 속도감의 미세한 차이, 시선의 이동 등을 다각도로 실험해 본 거예요.

가령 1권에 몇 페이지에 걸쳐 헬기가 착륙하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야말로 '만화 속'에 나올 법한, 보다 SF적인 느낌으로 그렸다가 '너무 나갔다' 싶어서 현실적인 느낌으로 고쳐 그려 냈다는 코멘트가 나옵니다. 그리고 3권 마지막 부분, 아키라의 각성으로 인해 네오 도쿄가 또 한 번 붕괴되는 시점에 '아침 체조하는 일상적인 풍경'이 나오잖아요. 이 컷 역시 다른 붕괴의 전조 앞에 둘까 뒤에 둘까를 고민하는 대목이 나와요. 무엇을 먼저 보여주고 어떤 걸 나중으로 뺄지 직접 그려보면서 실험한 거죠.

프레시안 : 이 만화에서 가장 좋았던 요소는 무엇인가요? '어떤' 이야기로 읽었나요? 많은 소년들이 폭주족과 바이크에 열광했고, 디스토피아 장르물로서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가네다와 데쓰오의 관계, 특히 데쓰오가 지니는 열등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 <아키라>(한국어판 3권). ⓒ세미콜론
윤태호 :
전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는데, 그게 '공정한' 관계는 아니에요. 이 이야기는 데쓰오가 끊임없이 게임을 걸기 때문에 진행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가네다는 뭐랄까, 좀 더 쿨하죠. 지금 이 작품을 봐도 모던한 이유는 비단 그림이 세련되어서가 아니라, 다루는 인물형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데쓰오처럼 자기가 만든 게임에 빠져 있는 사람,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열등감이나 망상을 확대재생산하는 사람이 지금도 널려 있잖아요.

연상호 : 가네다와 데쓰오의 관계가 가장 멋있긴 한데, 그 외에도 좋아하는 요소가 많아 일일이 꼽기 어렵네요. 일단 촌스러운 설정이 하나도 없는 게 놀라워요. 초능력도 그냥 잔재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도(道)나 사리의 깨달음과 연결되어 있잖아요. 데쓰오가 과학자들 앞에서 막 설명하잖아요. (웃음) "자신이라는 그릇을 깨부숴야만 하는 거야. 더 큰 힘을 쓰려면. 커다란 흐름이라는 게 있어." (5권 174쪽) 가네다가 주인공이란 점도 기발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주인공은 데쓰오처럼 비범하고 극적인 인물인데, 오히려 특별한 능력이 없는 가네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부분이요.

이진 : 전 멸망에 대한 이야기란 점에 주목했어요. 이미 한 번 '뻥'하고 터진 장소가 한 번 더 터져버리잖아요. 이 만화가 나온 일본의 80년대는 한국의 90년대가 그랬던 것처럼 밀레니엄,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 등 세기말적인 테마에 열광하던 시절인데, 거기에 열광하는 방식이랄까 멸망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 담대해요. 호시절이었기 때문인지 그릇이 크다고 할까요? 멸망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젊은이라는 설정도, '정말로 다 망했다'라는 느낌보다 새로운 시작의 느낌을 풍기는 엔딩도 그렇고요.

연상호 :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미야자키 하야오)의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이즈음 나왔어요. (원작만화는 1982년부터 도쿠마쇼텐의 <아니메쥬(アニメージュ)>를 통해 연재되었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1984년에 발표됐다.-편집자) 제겐 이 시대 일본에서 나온 작품 중 규모가 큰 느낌을 주는 만화가 두 개 있는데, 이거랑 <아키라>예요. 분위기는 달라도 사실 종말을 다루는 깊이는 비슷해요. 거의 같은 시기에 이처럼 커다란 이야기가 나와서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역시 그때 일본 사회에 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작가의 눈에 담긴 80년대 일본

▲ <아키라>(한국어판 6권). ⓒ세미콜론
작품이 연재된 1980년대에 일본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일본열도 개조계획의 연장선상에서 토지 '광란'이라 불린 재개발 사업이 강력하게 추진되었고 엔화 강세가 온존되던 상황 속에서 건설사들은 큰돈을 거머쥐었다. 1982년 총리로 취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공공기관의 민영화를 이끌었고 일본은 1984년 1인당 GNP 1만 달러를 돌파했다. 1983년 건설된 도쿄 디즈니랜드가 상징하듯 도쿄 인근의 공간들은 미디어의 이미지와 동일한 논리에 의해 구성되어 갔다. 우리는 이를 버블경제 시대라 부른다.

1984년에 제작이 결정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키라>에 10억 엔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작비가 쓰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을 터다.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켜 국제적 문화자본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춘 사정과도 맞물려 있다.

직접 전투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핵의 공포로 접어든 국제정치적 사정, 호화스러운 국토 개조와 도쿄의 메트로폴리스화, 소비 문화로 돌려진 정치적 열정, 과학 기술의 발전과 여러 종교의 발흥, 거기서 새로운 '일본적인 것'으로 재패니메이션이 발견된 모양새다. 이러한 현실은 일본 세기말 SF의 토양을 마련했다. <아키라>의 거대도시 네오 도쿄와 건설이 중단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도, 화려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해 가지만 곧 꺼질 듯한 불안을 내포한 80년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프레시안 : 80년대 일본의 안팎 사정이었던 호황과 냉전이 일본 SF의 보고였다는 분석이 있어요. 80년대 말~90년대 초부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는데 풍요를 상징했던 쇼와 천황 히로히토가 사망한 시점이 1989년이고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3차 대전이 1988년이란 점이 묘한 우연인 것 같습니다.

윤태호 : 양극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면 싹 갈아엎자는 생각이 들 수 있죠. 일본에서 신흥종교가 제일 많이 유행한 것도 이 시기였다고 하는데, 원래 독재시대처럼 질서가 분명한 시기엔 점을 잘 안 본다고 하잖아요. 경제적, 소비적 자유가 극대화된 시기에 오히려 종교적 신념을 보여주는 이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사람이 늘어나죠. 만화에서는 중요 캐릭터인 미야코가 애니메이션에서는 잠깐 등장하고 마는데, 혼란의 시기에 딱 어울리는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모습이에요.

프레시안 : 정부의 '아키라 프로젝트'를 눈치 채고 게릴라 활동을 벌이는 반정부 세력에선 전공투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그런데 오토모 가쓰히로는 전공투 세대는 아니에요. 1954년생으로 이른바 '시라케 세대'(しらけ世代, 무슨 일에도 관심이나 감동이 없다는 뜻의 '시라케'가 붙은 이 말은 일본의 학생운동이 시든 시기에 성인이 된,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해진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넓게는 1950년대~1960년대 전반 출생자가 여기에 속한다.-편집자)에 속하고 아마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겠죠.

여담이지만 정부, 미군마저 힘을 잃은 멸망 이후의 네오 도쿄에서 폭주족 소년들이 새로운 나라를 선포한다는 설정이, 정작 일본에서는 별로 반응을 일으키지 않은 반면 정치적 혼란기에 있던 다른 나라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는 점이 재미있더라고요. 수잔 네피어의 <아니메>(임경희·김진용 옮김, 루비박스 펴냄)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일본의 한 평론가가 1993년에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르비아의 사라예보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세 개의 커다란 패널을 발견합니다. 하나엔 미키마우스 귀를 한 마오쩌둥이, 다른 하나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슬로건이 그려져 있었는데 세 번째 패널엔 놀랍게도 무너진 빌딩의 잔해를 배경으로 한 가네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해요.

윤태호 : 전공투 세대가 아니고 투쟁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그 시대의 자장 안에 속하는 사람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학습할 때 그 시대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거죠. 6.25 전쟁 이후에 태어났어도 간접적으로 그 여파의 피해를 입거나 영향을 깊게 받아 과거사를 공부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일본의 경우엔 60년대 안보투쟁의 이미지가 이후의 상당 기간 문화 창작자들의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는 것 같아요. 몸으로 겪었건 아니건 그 얘기를 안 건드릴 수 없는 현실의 레퍼런스들이 존재하는 거죠.

프레시안 : 그 중 하나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전후 폐허가 된 일본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윤태호 : 물론 원폭에 대한 일본인들의 복잡한 감정, 공포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이 만화에서 파괴적 힘을 나타내는 이미지는 누가 와서 떨어트리는 원폭보다는 어떤 핵심에서 360도로 뻗어나가는 구(球)에 가까운 것 같아요. 밖에서 투하된다기보다 사람 내부에 있는 힘을 완전히 발현한다는 느낌이죠.

이진 : 그 얘기 하시니 떠올랐는데, 아키라나 데쓰오의 힘이 360도로 뻗어나가는 모습은 욱일승천기와도 닮아 있어요. 물론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각자가 가진 필터에 의해 해석될 수밖에 없겠지만, 당시 일본이 사회 발전의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인 것과 연관시키면 작가가 상당히 여러 가지 것들을 이미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연상호 : 오토모 가쓰히로는 이미지에 대한 센스가 정말 뛰어나요. 군중 신이나 신흥종교 교단을 보면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일본적'인 이미지를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집어넣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정치적 의도나 메시지가 있다기보다 자기 눈에 비치는 일본 사회의 편린들을 압축적인 이미지로 담아냈다고 할까요.

윤태호 : '일본적이다'라는 평가에 동의해요. 아무도 기모노를 입고 나오지 않는데도요. (웃음) 예를 들면 군중 신이 그래요. 도시가 멸망했는데 군중들이 섬기는 걸 하나 정해서 몰려다니잖아요? 특히 아키라와 데쓰오를 모시는 세력이 깃대 위에 오토바이 핸들을 장식해 놓고 치켜들면 뒤에 무리가 따르는 장면에서 그걸 느꼈어요. 개인이 아니라 피켓을 따르는 다수의 행렬을 묘사하고 싶은 거구나, 하고요.

데쓰오와 아키라가 기거하는 장소의 양식미나 반드시 아키라를 높은 곳에, 데쓰오를 아래에 두는 구도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고요. 벽에 쓴 구호들도 미국의 그래피티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일본 고전영화의 오프닝 장면에 나올 법한 붓을 힘주어 콱 찍어 쓴 느낌, 혈서 같은 처절한 서체죠.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5권에서 데쓰오 추종자들이 올림픽 대회장에서 화합을 위한 집회를 개최하는 장면, 아키라를 고철로 만든 가마에 태우고 가는 모습도 '마쓰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키라 '이전'

만화평론가 이명석은 "일본만화는 <아키라>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만화 표현사(史)의 선을 긋는 표현으로 "오토모 이전, 오토모 이후"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구분하는지, 그리고 그 구획 왼쪽과 오른쪽에 무엇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프레시안 : 오토모 가쓰히로가 작품 연재기에 가진 인터뷰를 보니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로 도쿄를 꼽고 있더라고요. 혼란스러운 도쿄를 무대 삼아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 싶었다고 해요. 제 느낌으로 네오 도쿄는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1995)의 공간과는 좀 다른데요.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홍콩과 비슷하다면 <아키라>의 그것은 오히려 뉴욕에 더 가깝다고 할까요?

윤태호 : 전 맨해튼보다는 원래 도쿄의 사이즈를 극대화시킨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6권의 마지막, 가네다 패거리가 바이크로 질주하는 장면을 보면 양 옆의 빌딩이 어마어마하게 크잖아요. 그 각도에서 그 사이즈로 보이려면 엄청나게 확대시켜야 하는데, 도쿄가 과하게 증폭해버렸다는 느낌이 들죠. 덧붙여 <아키라>의 공간 묘사의 최대의 미덕은 '적절성'이라 생각합니다. 하수구, 대령의 집무실, 술집과 당구장, 데쓰오가 갇혔던 병원, 그가 대장 행세를 하던 볼링장 등 어디 한 군데를 멋있게 묘사하기보다는 밀도를 동일하게 유지시키고 있죠. 공간의 느낌을 적절하게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진 : 보통의 일본만화는 인물이 전면에 나오고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으로서만 존재하는데, <아키라>는 처음부터 공간을 세트장처럼 완벽하게 설계하고 그 안으로 '던져진' 인물들이 움직이는 걸 그려내고 있잖아요. 일단 여기에서 오토모 가쓰히로의 만화로 영화를 넘어서겠다는 야심이 느껴졌고요. 덧붙여 '나의 도쿄'에 대해 갖는 야심, 뉴욕이나 서구의 다른 도시 그 어느 것도 아닌 가공의 미래 모습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애정을 초월한 야심 같은 게 느껴졌어요.

프레시안 : 실제로 오토모는 중학교 때 만화가를 지망했지만 고교 시절에는 영화에 빠져 있었고, 일단은 경제적 홀로서기를 위해 만화가로 데뷔했다고 해요. 또 인터뷰에서도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아서 펜, 1967), <이지 라이더(Easy Rider)>(데니스 호퍼, 1969) 등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가장 먼저 꼽고 있어요.

<아키라>에도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리들리 스콧, 1982), '매드 맥스' 시리즈, '스캐너스' 시리즈 등 당대 인기 영화들의 영향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나지요. 이 외에도 오토모 가쓰히로나 <아키라>가 흡수한 '아키라 이전'의 것들, 뭐가 있을까요?

윤태호 : 역시 뫼비우스 아닌가요? 장 지로(Jean Giraud, 1938~2012)라는 프랑스 만화가의 필명이에요. 판타지·SF 세계를 그릴 때 뫼비우스라는 필명을 썼어요. 아주 독특한 세계관과 필체를 보여주는 작가예요. 마치 평야에 그리드를 깔아놓은 것처럼, 공간을 투시도처럼 그려내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아주 아름답게 표현해 내요. 오토모 초창기 이후의 작품, 이를테면 <동몽>이나 일러스트집을 보면 뫼비우스 풍의 펜 터치, 컬러 쓰는 방식과 닮아 있어요.

프레시안 : 그리고 6권 마지막 페이지의 '땡스 투'에 데즈카 오사무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진 : 그분은 일본만화가들이 모시는 신이라서. (웃음)

프레시안 : 또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철인 28호> 역시 중요 레퍼런스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국민들 몰래 만든 비밀 병기라는 설정, 가네다 쇼타로라는 주인공의 이름, 아키라가 실험 번호 '28호'라는 것도 여기서 따왔다고 하네요.

연상호 : 오, 깨알 같네. '김철'처럼.(웃음)

ⓒ프레시안(최형락)

아키라 '이후'

프레시안 : 그럼 '이후', 즉 <아키라>나 오토모 가쓰히로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나 작품으론 무엇이 있을까요.

연상호 : 셀 수 없이 많죠. 일단 곤 사토시죠. 일정 기간 오토모 밑에 있던 사람이기도 했고, 만화가 시절 그린 작품을 보면 오토모 그림체를 많이 모방하고 있어요. 생각해 보니 <파프리카>(2006)의 꿈 속 장면은 아까 이야기 나온 아키라를 가마 위에 태운 장면과 굉장히 비슷하네요.

이진 : 전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 볼>이 바로 떠올랐어요. 거의 모든 전투 신에서 <드래곤 볼>에 끼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클램프의 <엑스>. 세기말 도쿄를 주제로 다루고 있고, 신흥종교단체 여성이 사람들을 모으고 조종하는 장면이 상당히 닮아 있어요.

▲ <바나나 피시>(애장판 11권, 요시다 아키미 지음, 김수정 옮김, 애니북스 펴냄). ⓒ애니북스
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요시다 아키미의 <바나나 피시>(한국어판 전 13권, 김수정 옮김, 애니북스 펴냄)예요. 순정만화에서는 소년만화의 <아키라>처럼 기념비적인 작품인데, 검색을 하면 언제나 <아키라>와 함께 나올 정도로 연관되는 지점이 많습니다. 물론 그림체의 화력은 요시다 아키미가 훨씬 떨어지지만 초기의 인물 묘사가 오토모 가쓰히로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해요. 일본에선 논란이 되기도 했대요.

요시다 아키미는 전형적인 순정만화가인데, <바나나 피시>는 <아키라>에서 영감을 받은 티가 많이 나요. 가네다와 데쓰오를 모티프로 한 듯한 소년 갱단의 1인자와 2인자랄지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줄거리 등이 그렇지요. 이게 순정만화 컨벤션에서는 '대박'이 나서 또 그 자체가 레퍼런스 바이블이 됐어요. 오토모 후배 세대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이후 세대로서 <아키라>의 힘이 더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프레시안 : 저도 <바나나 피시>의 팬이었는데 주인공이 못생긴 감자코 청년에서 점점 샤프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요. (웃음) 작가가 어느 시점 오토모 그림체에서 벗어나 진짜 미소년을 그리기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가는 눈, 짧은 다리 등 '못생긴 캐릭터'도 오토모 화풍의 특징적인 부분이었지요.

윤태호 : 이시카와 준도 <만화의 시간>(서현아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에서 오토모가 동양인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그린 점에 대해 경계를 넘어선 부분이라고 평가해요.

프레시안 : 한국에선 오토모 그림체를 따라한 작가는 없었나요?

윤태호 : 알고 있지만 밝힐 수는 없고요. (웃음) 챙기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어요. <아키라>가 음지에서 유입되면서 한국 만화가 화실의 몇 가지가 바뀌었어요. 일단 효과선, 즉 '자줄'이 달라졌어요. <아키라> 이전에는 한 면을 채우듯이 자줄을 넣지는 않았거든요. 보통 소실점이 있으면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든 소실점 하나만을 향해서 효과선을 넣었는데, <아키라>에는 효과선이 각각의 면에 붙어 있어요. 자선을 묘사하면서도 구별된 면이란 느낌을 확실하게 주는 거죠.

또 흔히 '때선'이라 불리는 걸 그리게 됐고요. 건물의 낡은 부분을 묘사하는 온갖 잡선들 있잖아요. 또 폭발 신에서 기름이 불타는 모습을 묘사한 검은 연기. 그런데 잘못 따라한 탓인지 한국만화에서는 산에 불이 나도 장작에 불을 때어도 이렇게 묘사되곤 했어요. (웃음)

연상호 : 이게 종이인데, 액션의 박력이 종이를 튀어 나올 것 같잖아요. 당시 만화학원 같은 데 가면 <아키라> 던져주고 베끼게 하는 게 수업이었어요. (웃음)

윤태호 : 연속되는 그림에도 물리법칙이 있잖아요. 그걸 잘 배치해야 '연출이 잘 되었다'라고 보는 건데, <아키라>는 분석하려고 읽다 보면 어느새 완전히 몰입해서 독자가 되어버려요. 워낙 물리법칙이 타당하게 그려져 있으니까요. 그게 거슬려야 '이상한데?'하면서 평가를 하게 되는 건데 말이죠.

"(만화평론가) 요네자와 요시히로는 데즈카 오사무에 의해 체계화된 만화 기법-기호화된 그림이 담긴 칸을 연속시킴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하는 만화 기법-과 구별하여, 사태를 한 장의 풍경으로 리얼하게 묘사하여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카메라 워크를 따라 화면의 연속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오토모의 기법을 '비(非) 데즈카적 기법'이라 불렀다." (일본 위키피디아 오토모 가쓰히로 항목, 원 출처 : <유레카(ユリイカ)> 1988년 8월 임시증간호 '만화로부터의 엑소더스')

프레시안 : 애니메이션 창작자로서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대단한 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연상호 : 전설이죠, 전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그만한 작품이 없어요. 애니메이션 <아키라>는 액션 묘사도, 음악도 그 자체로 전혀 다른 센스를 발휘하고 있어요. 기존의 뭔가를 가지고 와서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거든요. 특히 음악. SF에 그런 음악을 넣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저는 만화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모든 걸 제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애니메이션은 긴 내용을 압축했으니까 내용 자체는 그리 충실하지 못한데, 플라잉 플랫폼이 움직이는 소리라든가 바이크의 질주 등을 보면 애니메이션의 완성을 위해 모든 걸 염두에 두고 구상했나 하는 생각이 들죠.

ⓒ프레시안(최형락)

교차하는 시선

<아키라>는 이후 수많은 SF 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키라>의 폭발 장면에서 모티프를 얻어 <터미네이터2>의 핵폭발 장면을 완성했다고 한다. 오토모 가쓰히로 자신은 오타쿠도, 오타쿠 세대도 아니었지만 이후에 수많은 오타쿠, 특히 구미에서 재패니메이션 붐을 일으키며 '양덕(서양의 오타쿠)'을 양산한 발화점이 되었다.

이 과정은 흥미롭다. 최근 극장 개봉한 <퍼시픽 림> 열풍에서 알 수 있듯 오타쿠 중 최고봉은 양덕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일본 아니메로부터 받은 영향을 그들의 자본과 상상력 위에서 배양해 시각적인 최대치로 이끌어 내고 있다. 이들에게 영향을 준 일본의 50~60년대생 창작자들은 성장 과정에서 미국 서브컬처의 엄청난 세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작물을 발표, '일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오타쿠계 문화'를 만들어냈다. 아즈마 히로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타쿠계 문화의 기원은 애니메이션이든 특수촬영이든 SF든 게임이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잡지문화든 실은 2차 대전 후 5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수입된 서브컬처였다는 사실이다. 오타쿠계 문화의 역사란 미국문화를 어떻게 '국산화'하느냐 하는 환골탈태의 역사였으며, 그 과정은 고도 경제 성장기의 이데올로기를 매우 잘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문학동네 펴냄) 31~32쪽)

미국 사회 속 아시아인을 다루는 <사요나라 닛폰(さよならにっぽん)>(1981)을 비롯해 오토모 초기 만화 작품을 보면 전후 물밀듯 유입된 미국문화의 영향을 끌어 모아서 자신만의 동시대의 잡종성을 표현해 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점이 스시나 기모노처럼 전형적인 아이콘이 등장하지 않아도 독특한 '일본적인 것'이 빚어진 이유, 해외 팬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자아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처럼 미국 서브컬처와 일본 서브컬처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아키라>가 분기점으로 작용한 이유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연상호 : 요즘 드는 생각인데, 만화든 영화든 '가짜'잖아요. 가령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송강호가 아닌 척 굴고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누구나 송강호임을 아는 것처럼요. 어쨌든 매체는 다 가짜라고 접근하기는 하는데, <아키라>는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뭔가 진짜 '세계'가 구성되어 있는 거예요.

공간만 그런 게 아니라 로봇이나 미래형 탈것, 레이저건 등 기계가 있으면 그걸 작가가 직접 만들어본 것처럼 여러 방식으로 개조해서 사용한다든지 하는 디테일이 정말 리얼한 느낌이 들거든요. 주인공들이 진짜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요. 그런 작품은 그저 빠져드는 수밖에 없어요. 이런 게 마니아나 오타쿠를 양산한 이유 아닐까 싶어요.

이진 : 일본인 작가가 그렸는데 서구인의 시선과 시야로 도쿄와 일본인을 바라보는 만화는 이게 처음 아니었나 싶어요. '외국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욕망하는 일본인의 야망이 느껴지기 때문에, 일본 바깥에 있는 사람이 도쿄를 관찰하는 듯한 태도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더욱 와 닿지 않았을까요. 유엔이나 세계의 과학자들이 아키라라는 힘을 제어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걸 일본인이 외부의 시선으로 보여줬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어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일본 국내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이후 거의 십수 년에 걸쳐 저작권 수익, 팬북이나 DVD·블루레이 판매 수익으로 제작비 본전을 찾았다고 해요. 전 세계의 콜렉터들이 구한 거죠. (웃음) 어쨌든 오늘 이야기한 <아키라>의 자장 안에서 각자에게 이 작품과 비견할 만한 기념비적인 만화가 있다면 무엇을 들겠습니까?

이진 : <드래곤 볼>이요. <아키라>가 일본 안에 있는 것을 서방 세계의 시선으로 보여줌으로서 해외에서 성공을 거뒀다면, <드래곤 볼>은 시야를 확장시키다 못해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웃음) 참고로 도리야마 아키라는 홍콩영화 마니아로 알고 있어요. 주인공들이 쓰는 권법 대부분이 홍콩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거라고 해요.

윤태호 :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물장구치는 금붕어>, 그리고 <핑퐁>의 마쓰모토 타이요도 꼽고 싶어요. 이들은 확실히 '창조 과'인 것 같아요.

연상호 :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곤 사토시의 <퍼펙트 블루>를 <아키라>와 같은 반열에 두고 싶습니다.

2013년, <아키라>를 다시 읽는 방법

2013년 현재에 홀로 앉아 <아키라>를 읽는 동안 두 가지 부분이 과거에서 보낸 예언처럼 겹쳐졌다. 먼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방향을 달리 할 수 있었던' 거대한 힘이 통제 가능 범위를 벗어나 폭주한다는 설정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떠오른다. 동시대에 목격한 일 가운데 디스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사건이었던 만큼, 이를 통과한 이상 거의 모든 세기말 SF가 사후적 경고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는 아키라가 봉인되어 있던 장소가 도쿄올림픽 개최 예정지라는 설정. 아직 후보에 불과하나 현재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목표로 전 국가적인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도쿄올림픽이 치러진 1964년보다 경제력이나 사회 활력이 훨씬 떨어지는 지금의 '기우는 일본'에서의 올림픽에 대한 열망은, <아키라> 속 국민 화합 진흥 집회처럼 희미한 불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현실이 픽션을 따라잡거나 압도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키라>가 '전설'이었던 시기를 살지 않은 이후 세대들은 "감동적인 유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현재적 의미와 수용 방식의 변화 지점을 물었다.


이진 : 최근 작품 중엔 <아이앰 어 히어로>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아키라>와 마찬가지로 멸망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통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지난 세기의 호시절에 나온 <아키라>의 멸망은 거대한 구와 같은 추상적 느낌인데, <아이앰 어 히어로>에선 내 이웃이 나를 잡아먹는 구체적이고도 좁은 느낌이에요. 전체적인 조망을 하기보다는 철저히 개인을 따르고 있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서바이벌'이 갈등의 주된 골격입니다. 운전을 하느라 소변을 못 보는데 그냥 쌀지 말지를, 이미 다 멸망한 상황에서 법을 지킬 것인가 어길 것인가를 지극히 쪼잔하게도 몇 페이지에 걸쳐서 고민하는 거죠.

저는 이게 작가든 독자든 멸망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징후라고 생각해요. <아키라>는 멸망을 완전히 피부로 받아들이는 느낌은 아니고 전체적으로 미래를 꿈꾸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이제는 이처럼 거대한 힘의 대결과 멸망 이후의 새로운 시작을 그리는 '큰 만화'를 접하기 힘든 시대인 것 같아요.

윤태호 : 서양 점성학적으로 '물병자리의 시대'가 되었다고들 하잖아요. 물병자리의 시대는 곧 개인의 시대를 뜻합니다. 이제 거대 담론이 아니라 개인 안의 우주를 이야기하는 거죠. 창작물이 발표되는 시스템도 과거와는 달라요. 함께 모여서 보던 TV가 아니라 내 손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스마트 폰으로 쪼개졌고요. 무슨 병폐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경향이라니까요. (웃음)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시대의 양상이 달라졌기도 하고 즐길 수 있는 스펙터클도 워낙 많아서 한국 10대 소년소녀들에게 <아키라>가 예전에 우리에게 준 것과 같은 충격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과연 그들에게 이 작품이 매력적일까요? 또 우리에게 <아키라>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진 : 제가 요즘 96, 97년에 태어난 중학생들 앞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어서 보니까,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에요. (웃음) 그래서 아마 저나 이전 세대가 느꼈던 비밀스러운 쾌감이나 감동을 그대로 느끼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만화는 지금의 시대에 나올 수 없는 종류라는 점이에요. 그렇게 따지면 옛날 만화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아키라>는 일본의 좋았던 시대에, 다양한 대중문화를 스펀지처럼 흡수한 일본인 청년이 아니었다면 그릴 수 없었던 만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친구들이 우리와는 다른 관점으로 그런 부분들을 좀 더 재미있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윤태호 : 요즘 아이들 눈으로 보면 시시하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오토모는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러라기보다 비주얼리스트잖아요. 하지만 저는,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하기만 한다면 계속 보게 될 것 같아요. 물론 소문만 믿고 덜컥 이 두꺼운 책 여섯 권을 직접 사서 보기는 힘들겠죠. 하지만 윗세대가 소문을 내서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순 없고, 외부의 자극에 호기심이 많은 내부의 '첩자'가 그들 안에서 스스로 진동시켜야 한다고 봐요.

서양 점성학적으로 보면(웃음), 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영혼을 가졌다고 해요. 우리의 언어로 설득하려 하면 저항이 생기기 마련이죠. 우리가 할 역할은 아이들이 새롭고 흥미로운 자극을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 서로 본 만화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만화전문 리뷰 사이트 <에이코믹스>를 만들게 되었습니다!(웃음) 아마추어 필자들의 자발적 리뷰를 적극 유도해 그들끼리 스스로 진동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연상호 : 한국어판 인쇄 질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많은데, 그만큼 애정이 컸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제게는 정식 발매 자체가 감동적이에요. <폭풍소년>이 개봉했다가 일본영화인 게 발각되었을 때 9시 뉴스에 나온 적이 있어요. '일본산 불법 만화가 홍콩산으로 둔갑해서 개봉했다'라는 기사였는데, 이 '불법 애니'란 말이 이후로도 십여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아키라>를 다루는 방식이었지요. 하지만 그 말에 갇힐 작품이 아니잖아요.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대부>와도 같은 전설인데. 20년 가까이 지나 드디어 합법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고, 오랜만에 이야기되는 것 자체가 반갑고 대단한 일 같아요.

ⓒ세미콜론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토모 가쓰히로에게 기대하는 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윤태호 : 말하면 전해 주나요?(웃음) <사요나라 닛폰> 같은 작품에 나온 풍경화를 지금의 풍경화로 다시 한 번 그려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동몽> 한국어판은 안 나올까요? (세미콜론에 따르면 일본에서 작가가 절판 단계를 밟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어판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편집자)

연상호 : 반드시 <아키라>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3부작으로 완성하고 가셔야 합니다. (웃음)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토모밖에 없으니까요. 하나 더. 오토모가 최근에 모리타 슈헤이라는 젊은 창작자한테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아키라>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기는 <프리덤>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오토모와 함께 <숏피스>라는 옴니버스를 연출하기도 했어요. 오토모가 최근 이 모리타라는 친구에게서 과거의 어마어마하게 고생했던 작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발판을 보는 것 같아요. <스팀보이>의 실패 이후 뭔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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