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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마피아', 이렇게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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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마피아', 이렇게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기고] 밀양 주민 겁박하는 뻔뻔한 한국전력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가 자꾸 떠오르는 나날들이다.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불사신같은 몬스터와의 싸움, 잠시도 안심할 수 없고, 작은 빈틈만 있으면 어느새 뒤통수를 낚아채는 몬스터, 졸지에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이 상황이 정말 싫다.

대필, 날치기 보고서로 밀양 주민을 위협하는 한국전력

밀양 송전탑 전문가 협의체는 40일간의 활동을 마치고, 지난 7월 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회의원의 권고안 채택으로 종결되었다. 지난 40일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실무 간사로 활동한 나는 우리 측 위원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공부하고, 준비하는지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우리 측 위원들은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던 마지막 사흘은 거의 밤을 꼬박 새다시피 하면서 최악의 피로를 견디며 보고서를 집필했다. 그러나 한국전력 측 위원들이 작성한 보고서 초안을 받아든 순간, 우리 측 위원들은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력 측 보고서 초안은 온갖 외국 자료를 찾고 한국전력 측이 제출한 무성의한 자료들의 행간에 숨어 있는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며 며칠 밤을 새면서 작성한 우리 측 보고서를 완전히 우롱하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가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베껴 쓰고 풀어 쓴, 그야말로 '문도리코 찜쪄 먹을' 보고서였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한국전력 측이 제출한 한글 파일 분석 과정에서 이것은 베끼기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누군가가 대신 써 준 보고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기자 회견을 통해 그 증거들을 제출한 바 있다.

마지막 6차 회의가 아무런 토론도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종결되고 난 뒤, 백수현 위원장은 휴일인 토요일 저녁에 이메일을 통해 표결을 강행했다. 사실상 날치기 시도였다. 그리고 그는 이 결과에 다수결 결정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엉터리 보고서를 국회로 보냈다. 토론도 회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이메일로 주고받은 한 장짜리 의견서에 수천 명의 밀양 주민들의 생존권을 빼앗을 권능은 대체 누가 부여한 것일까?

이 보고서를 국회가 채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국회는 아주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판단을 했다. 그런데 한국전력은 아전인수격으로 국회 권고안 3항에서 주민들을 향해 '현실적 고려와 대승적인 태도를 주문'한 내용을 두고 자신들을 향하여 공사 강행의 명분을 준 것으로 왜곡하였고, 보수 언론은 이를 받아 해당 내용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국회는 전문가 협의체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으며, 해당 내용은 한국전력이 아니라 밀양 주민들을 향하여 권고한 내용이다. 한국전력이 끼어들어 '제논에 물을 댈'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다.


전문성이라굽쇼?

지난 7월 8일, 한국전력 측 위원들은 보도 자료를 통해 우리 측 위원들의 전문성을 언급했다. 자신들처럼 '스펙'도 떨어지는 탈핵 시민 단체 활동가들이 무얼 알겠냐는 것이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베끼기에 대필도 모자라 날치기에 협력해 놓고는 염치도 없이 상대편 위원들을 '무식하다'고 논박하는 것은 실로 서글프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거들고 싶다. 송전 선로 지중화 분야 전문가로 섭외되었고, 대필 논란의 한 주역이기도 한 장 아무개 교수가 제대로 된 토론조차 한번 없었던 우회 송전 가능성에 대해 '우회 송전 불가'로 내린 판단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6차 회의 내내 우리 측 위원들의 질문에 대해 주로 답한 이들은 한국전력 측 위원들이 아니라 배석한 한국전력 및 전력거래소 담당자들이었다.

한국전력 추천 위원들은 6차 회의 내내 배석한 한국전력 기술자들의 답변을 듣고 한두 마디 거드는 것 외에 별다른 활동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없이 질문하고 자료 요청하고 한국전력 기술자들과 성실하게 토론한 우리 측 위원들을 향하여 전문성을 운운하다니. 전문성이란 회의 때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중에 대필한 보고서에 자기 이름만 올려서 제출하는, 그래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지적 도덕적 나태'와 '후안무치'를 뜻하는 것인가?

주민 측 김 아무개 위원의 의견을 왜곡하지 말라

▲ 핵심 쟁점인 우회 송전에 대한 김 아무개 위원의 의견. ⓒ프레시안

위에서 보다시피, 김 아무개 위원이 제출한 의견서는 고리-서울 간 765킬로볼트 송전 선로가 건설되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평소 이런 식의 한 장짜리 의견서 표결 방식으로 의사 결정하는 것에 반대해오던 김 위원이 이런 의견서를 제출한 배경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 김 아무개 위원은 두 차례에 걸친 주민 및 야당 측 위원 자체 워크숍을 통해서, 그리고 사석에서 여러 차례 이 765킬로볼트 송전 선로가 한국전력이 밝히는 바와 같이 대구권 부하를 감당하기 위한 것이라면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 김 아무개 위원이 '밀양 송전탑 건설에 찬성'했다고 주장하는 한국전력과 보수언론의 논리는 그야말로 견강부회이다.

뻔뻔한 한국전력

한국전력은 지금 밀양 주민과 국회 그리고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다. 8년간의 주민 투쟁으로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만들어진 이 전문가 협의체의 파행의 책임은 바로 한국전력과 자신들이 추천한 위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전력의 형편없는 자료 제공과 일방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협의체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밝혀내었다. 밀양 주민들에게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 선로가 건설되지 않으면 광역 정전이 일어날 것처럼 겁박하는 논리가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며, 실제로 송전 선로의 고장으로 발전기가 탈락할지라도 정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내었다. (지난 13년간, 25건의 송전 선로 고장으로 인한 발전기 탈락에도 정전 사고 발생은 0건이었다.)

엉터리 시뮬레이션으로 기존 선로를 통한 우회 송전 논리를 부정한 것도 확인했으며, 기존 345킬로볼트 선로를 통한 신고리 3~4호기의 송전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에 들어가는 입력 전제에 관련된 데이터들이 방만한 계통 운영으로 실측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확인했다.

전가의 보도처럼 밀양 주민들을 님비의 화신으로 몰아가던 밀양 구간 지중화 비용 '2조7000억 원' 논리가 사실이 아니며, 실은 그 4분의 1의 비용인 6000억 원 이내에서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무엇보다 밀양 765킬로볼트 선로가 오히려 사고에 훨씬 취약하며, 송전 선로에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 여파는 기존 선로를 통한 송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피해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은 다루어지지 않은 채 날치기로 강행된 엉터리 표결의 결과로 다시 주민들을 향해 공사 강행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주민들을 위협하는 한국전력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나?

ⓒ연합뉴스

텔레비전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

국회는 전문가 협의체의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국회 권고안에 대한 아전인수 해석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내용 토론이 없었던 전문가 협의체의 양측 보고서에 대해 전문가 협의체에 참여했던 양측 위원들의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

나는,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진한 속살을 보고 있다. 밀양 송전탑 전문가 협의체 주민 측 실무 간사로 활동한 지난 40여 일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시간이었고, 내가 도회 생활을 마감하고 시골로 내려가게 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점검해 주었으며, 우리 사회가 누구에 의해, 어떤 힘에 의해 굴러가는지, 사회의 정의와 공동체의 도덕적 기율은 어떻게 바스러졌는지를 실감하게 하고 있다.

수많은 주민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이 싸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러했듯 주민들은 저항할 것이다. 누구나,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폭력에 맞서 저항할 천부의 권리가 있다. 보수 언론과 한국 전력은 더 이상 진실을 호도하지 말라. 세상은 당신들만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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