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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속 한민족, 공생과 불화의 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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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속 한민족, 공생과 불화의 정치경제

[서남 동아시아 통신] 지금 선양에서는…

중국 랴오닝성 성도 선양(沈陽)에서 다가오는 7월 5~9일에 제12회 한국주 행사가 개최된다. 기업 교류와 각종 문화예술 공연을 포함하는 이 행사는 노후화된 공업 지대를 개조하기 위한 대규모 구조 조정으로 선양 전체가 몸살을 앓던 2002년 처음 실시되었다.

'한국주'는 극심한 실업난을 타개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외자 유치가 절실했던 선양 시정부와 본국에서 외환 위기 파고를 겪은 뒤 급성장하는 중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한국 투자자들의 요구가 수렴되는 과정에서 출범했다. 그러나 한국주 행사가 갖는 의미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데, 이는 선양이 1만5000 한국인, 20만 조선족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북한인들이 모여 사는 동북 최대의 한인 집거 지역이자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는" 민족 화합의 실험장으로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다는 점과 연관된다.

올해도 이 행사의 주관 단체가 '심양한인(상)회'와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를 동시에 포함하는 데서 보듯, 한국주 행사는 한중 친선뿐 아니라 재중국 한국인과 조선족 간 '한인 동맹'을 견고히 다지는 중요한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족, 한국인들이 공동으로 명함을 파서 행사를 기획하는 가운에 불신의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한 기업가의 추억이 선양에서 살아가는 모든 한인들의 추억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2011년 이후 서탑(西塔)이라 불리는 선양의 한인 타운을 현지조사차 빈번히 드나들면서 내가 주목한 것은 한국인과 조선족 간의 뿌리 깊은 반목, 그리고 이 반목이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한중 양국을 가로지르는 글로벌 정치경제의 변화와 긴밀히 조응한다는 점이었다.

서탑은 한인 식당과 각종 유흥업소가 밀집한 까닭에 일찍부터 중국 동북 지역을 찾는 한국인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 여행 코스로 자리 잡았다. 특이한 것은 한국인들이 부동산 물권을 대거 구매하여 신흥 타운을 건설한 뒤 조선족이 뒤따라 이주한 중국 내 다른 한인 타운과 달리 서탑은 신중국 성립 이전부터 조선인들의 집거지로 출발했다는 점이다.

조선족 집단 내에서도 서탑의 역사는 개인의 삶의 궤적과 중국 사회의 변동이 조우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본(異本)을 만들어왔다. 해방 전 서탑은 한국과 조선족 신문에서 곧잘 등장하는 바, "국밥집 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던 비밀 장소"이기도, 지역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할머니들이 가볍게 묘사하듯 "굶주림을 피해 중국까지 건너온 조선인들이 간신히 정착한 황량한 똥탑"이기도 했을 것이다. "서탑의 진정한 역사는 신중국 성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조선족 정부 관계자의 주장대로 해방 후 서탑은 발전의 토대를 닦았지만, 그럼에도 대다수 조선족 노인들이 회고하듯 "변변한 국영 기업조차 없었던 자질 구리한 소수 민족 동네"라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역사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난 조선족과 다른 중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게 있다면 서탑의 "획기적인" 발전이 개방 후 한국인들의 본격적인 유입을 통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한중 수교 직후 보따리 장사들의 간헐적인 방문으로 물꼬를 튼 한국인들의 서탑 이주는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 정부가 투자 유치를 위해 세금 감면, 무상 임대 등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하고 이에 화답한 한국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대형 식당과 사우나, 호텔을 짓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절정을 이루었다. 낯선 중국 땅에서 모험을 감행한 한국인들과 개혁개방 이후 갑작스레 부를 축적한 중국의 신흥 중산층이 새로운 투자자를 찾기 위해, 독특한 '밤문화'를 즐기기 위해 속속 모여드는 가운데, 1997년 내가 처음 만났던 기차역 인근의 허름한 조선족 집거촌은 "북방의 작은 서울(北方小漢城)"로 재빨리 변모해 갔다.

▲ 화려한 서탑 거리의 야경(2011년 7월). ⓒ조문영

그러나 2011년 여름 선양을 다시 찾았을 때 사람들은 쇠락과 침체, 불신의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돈 쪼매만 있는 (한국) 것들이 들어와서 허세 떨다 쫄딱 망해 뿔고 빈털터리 되서 집에 돌아간" 사연을 조롱과 연민이 뒤섞인 어조로 얘기하는 조선족 거주자들, 조선족들이 "IMF 때 한국에서 돈 좀 들고 도망 온 사람들한테 달라붙어 실컷 뽑아 먹고 성공한" 사연을 분노에 차서 내뱉는 한국인들을 번갈아 만나는 경험이 유쾌할 리가 없다.

사실 2007년 5000명에 달했던 서탑의 한국인 거주자 수가 5년 후 1300여 명으로 급감하게 된 배경은 "교활한" 조선족과 "미숙하고 거만한" 한국인의 불행한 동거 너머에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과정에서 위안화 가치가 폭등하면서 한국인 공장들이 줄줄이 도산한 점, 이들을 주 고객으로 삼았던 한국 식당이나 술집도 덩달아 문을 닫기 시작한 점,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강화된 중국 정부의 비자 정책이 독자 기업을 세울 수 없는 한국인들의 체류를 힘들게 만든 점, 그 해부터 발효된 중국의 신노동법이 "값싼 노동"만을 믿고 중국으로의 모험을 감행했던 영세 공장주나 자영업자들에게 일격을 가했던 점 등 급격한 제도적, 정치경제적 변동 과정이 야기한 파국은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할 사안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이주자들을 강타했던 급격한 정치경제적 변동이 한국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의 축적을 시도했던 많은 조선족들에게도 고스란히 굴레로 남았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기 침체로 원화 가치가 폭락한 탓에 조선족 이주 노동자들의 송금과 환전이 대폭 줄어들어들면서 서탑에 "돈이 안돌기" 시작했다는 점, 한국인들을 주 고객으로 했던 조선족들의 민박집, 술집, 식당 또한 경영난에 직면해 있다는 점은 "사기"와 "배신"으로 조선족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한국인들의 이주 내러티브에서 배제된 이면이랄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예측 불가능한 구조적, 제도적 변화의 결과를 문화적 적대로 치환하는 작업이 이러한 변화에 쉽게 대처할만한 자본을 지니지 못한 채 삶의 불안정성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인, 조선족 중견 기업가들이 "한민족" 또는 "한중 친선"이라는 모토 아래 전략적 우애와 결속의 시간을 갖는 동안 내가 만난 많은 민박집 주인, 브로커, 행상인, 영세 식당점주, 사업 아이템을 물색하는 "백수"들은 개인적인 넋두리에서부터 실질적인 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의 불화를 강조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한국인이든 조선족이든 불안정성에 대처할 자본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은 바로 그 자본의 결여 때문에 비자 발급과 주거, 취업과 영업의 전 과정에서 음성적, 비합법적 관계망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안에서 "먹고 먹히는" 게임을 반복하느라 '연대'가 아닌 '적대'의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이 게임에 마지막으로 편입된 자들, 인건비가 치솟은 조선족·한족 종업원을 대신하여 불법 저임금 노동의 마지막 보루가 된 집단이 탈북자라는 사실은 약육강식의 시장경쟁 속에서 '민족'이 갖는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한 세기 전 중국 대륙을 떠돌았던 조선인 독립운동가 김산(1905~1938년)은 "국제 과부인 한국은 아직도 압록강 너머로 망명한 자기 자식들에게 구슬픈 손길을 내밀고 서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울며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뿔뿔이 흩어진 민족의 비애와 희망을 이야기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민족'이 착취로부터의 해방뿐 아니라 착취의 재생산을 돕는 기제가 되어 버린 풍경을 그는 상상할 수 있었을까?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화요일, 일요일 동시 게재합니다. 조문영 연세대학교 교수(문화인류학과)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1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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