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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개자식이고, 나도 그 개 같은 변호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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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개자식이고, 나도 그 개 같은 변호사예요!"

[TV PLAY] 진실의 딜레마,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괜히 의학드라마가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로, 법정드라마가 '법정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로 전락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장르물과 로맨스가 한데 어우러지기란 쉽지 않다. 병원, 법정, 주방처럼 전문적인 세계를 치밀하게 다루는 동시에 로맨스의 균형까지 맞추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MBC <파스타>는 서열이 뚜렷한 주방 공간을 뭉개지 않으면서도 가장 높은 위치의 셰프와 가장 낮은 위치의 막내의 로맨스를 맛깔스럽게 요리해 낸 좋은 예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마찬가지다. 박수하(이종석)와 장혜성(이보영), 장혜성과 차관우(윤상현)의 로맨스는 드라마의 핵심주제인 진실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계다. 장혜성과 박수하는 10년 전 진실을 말한 자와 그 덕분에 억울함에서 벗어난 자의 만남이다. 장혜성과 차관우는 진실을 파헤치는 변호사로 일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사랑이 싹튼 경우다. 초반 차관우의 순수한 열정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장혜성은 항상 죄의 유무를 떠나 약자의 입장에 서서 의뢰인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혀내는 차관우의 집념에 서서히 호감을 느낀다. 세 사람은 진실이라는 공통 화두로 묶여있다. 현재 장혜성과 차관우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박수하가 눈물을 흘리며 장혜성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 SBS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로맨스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상대방의 눈빛만 보고 속마음을 읽어내는 박수하의 재주 덕분이다. 그동안 드라마 속 커플들은 서로의 마음을 너무 몰라 어긋났고,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짜증과 분노를 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박수하는 장혜성이 말하지 않은, 말할 수 없는 마음까지 알아채면서 지금껏 보지 못한 '어린' 키다리아저씨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저 든든한 연하남이라고 단순화할 수 없는 캐릭터다. KBS <학교 2013>에서 이종석이 연기했던 고남순도 그러했다. 한없이 약하면서도 교사로서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려했던 정인재(장나라)를, 한참 어린 제자 고남순이 알게 모르게 감싸 안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수하도 그렇게 어른을 지켜주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키다리아저씨로 성장하고 있다.

로맨스가 한 축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과연 진실은 승리하는가', '진실을 말하는 것은 늘 옳은가'라는 질문이다. 10년 전 장혜성은 자신이 목격한 살해현장을 증언했고, 그것이 옳은 행동이었다고 믿고 살았다. 그러나 피해자는 결국 진실을 알린 자였다. 장혜성의 증언으로 감옥에 갔던 민준국(정웅인)은 장혜성의 엄마를 살해하는 복수를 감행했다. 심지어 법정에서 선 민준국은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박수하는 "내가 석방되면 다음 차례는 너(박수하)와 계집애(장혜성)야"라는 민준국의 속마음을 읽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제 장혜성이 변호사이자 피해자의 입장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모든 사건에서 증거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장혜성은 엄마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검사 도연에게 무릎을 꿇고 "증거 조작"을 부탁한다. 변호사로서 원칙을 지키라는 선배 변호사를 향해 장혜성은 이렇게 말한다.

"피해자가 되어본 적 있으세요? 이 나라에서 피해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재판에서 판사는 내 얘기보다 민준국 얘기를 많이 들어요. 무죄추정? 합리적인 원칙? 그딴 거 다 개소리에요. 변호사는 개자식이고. 저 역시 그 개 같은 변호사고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장혜성의 목소리를 빌려 '과연 법이 이 사회의 수호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수많은 딜레마와 함께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피해자이자 변호사인 장혜성은 원칙과 진실, 법과 정의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딜레마다. 10년 전 진실을 알렸다가 가족을 잃은 장혜성은 계속해서 누군가의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 이것이 그녀의 두 번째 딜레마다. 차관우도 딜레마를 겪긴 마찬가지다. 변호인 차관우에게 민준국이란, 무죄일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면 무조건 보호해야 하는 의뢰인이다. 그러나 장혜성의 남자친구 차관우에게 민준국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죄를 밝혀내야 하는 인간이다. "아주 나쁜 왕을 지키는 기사가 된 기분"이라는 차관우의 말은 그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한다.

차관우는 괴롭다. 장혜성은 배신감을 느낀다. 박수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다. 진실이라는 단 하나의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이 팔딱팔딱 살아 숨 쉰다. 복수도, 로맨스도, 진실 밝히기도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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