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개성공단을 방문한 59개 업체 96명의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지난 석 달간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기계 및 설비들을 점검하며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이날 북한의 개성공단 관리 기구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관계자들과 만나 "'설비를 갖고 나가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남측 주재기업들이 원부자재와 기계 설비를 반출하는 것을 두고 북측이 이를 공단 폐쇄로 생각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수 신영스텐 대표는 "총국 관계자가 북측 노동자 5만 3000명이 (공단의)재가동을 기다리고 있으며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북측이 절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안진권 대표 역시 "총국 관계자가 북측 노동자들이 즉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북측의 이런 입장을 반영하듯 이날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방문한 기업마다 해당 기업의 직장장(종업원 대표)과 총무 등 북측 관계자가 미리 나와 이들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북측 관계자들과 만나자 반가운 마음에 자연스럽게 서로 껴안게 됐다며 석 달 만에 재회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몇 년 동안 한솥밥을 먹고 지냈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 소회를 밝혔다.
▲ 지난 4월 27일 개성공단 내 남측 주재기업인들의 전원 철수 이후 75일 만에 개성으로 가는길이 열렸다. 이날 입주기업 관계자들 96명은 공장 시설 및 설비 점검 차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사진은 공단을 방문하기 위해 늘어선 입주기업 관계자들의 차량 행렬 ⓒ뉴시스 |
공장의 시설을 둘러본 이후 기업 관계자들은 정부의 대응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기업마다 규모와 설비가 다른데 기업 별 공단 방문 인원을 일률적으로 정해 시설 및 설비 점검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비 점검에 대해 김동수 대표는 "실제 설비를 가동해 보는 등의 조치는 남측 기술자가 같이 올라오지 않기도 했지만, 북측에서도 담당 노동자가 나오지 않아서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안진권 대표는 "우리 정부가 이번 방북 인원을 한 명으로 해서, 차량을 가져올 수도 없었다"며 정부의 방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입주기업, "북측에 재발 방지 약속 받아내야"
북측의 공단 노동자 전원 철수 방침 이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이날 공장을 둘러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북측으로부터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이 없으면 공장을 재가동할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바이어들이 불안해해서 계약을 할 수가 없다.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들도 재발 방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북쪽에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진권 대표는 총국 관계자에게 "사태의 직접 행동은 북측에서 한 것이니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재발 방지는 북측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일감이 많아야 노임도 올려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북측의 재발 방지 약속과 더불어 정부의 '발전적 정상화'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개성공단의 투자를 막은 것이 정부의 5.24 조치였는데, 남측의 공단 투자를 막으면서 외국기업들이 공단에 들어오는 '국제화'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북쪽의 문제가 있었지만 투자를 막은 것은 정부의 5.24 조치"였다며 "(정부가)국제적 기준, 외국기업들의 투자 등을 이야기하는데 지난 3년 동안 개성공단은 어떤 설비투자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한편 원부자재 및 완제품 반출과 관련해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급한 일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이미 석 달이 지난 상태에서 완제품도 쓸모가 없고 원부자재 역시 녹슬어 상품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또 개성공단을 영구적으로 폐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부자재를 들고 나갈 계획이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김동수 대표는 "원부자재 반출은 할 생각이 없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모를까"라면서 "원부자재 이야기하는 것은 언론들이 잘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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