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을 제작할 수 있게 된 인류의 능력은 대체로 기원전 4000년 정도로 가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원료의 형태를 가공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물질들을 뽑아내 서로 합쳐낸 것으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일종의 '융합을 통한 창조'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원시의 붕괴를 가져온 일종의 혁명이었습니다.
동(銅)을 가진 자연석을 발견하고 이를 다루는 기술이나, 야금(冶金)을 위한 1000도 이상의 열을 내는 고로(高爐)와 기타 설비를 갖추려면 그것은 이를 뒤받침 할 만한 공동체의 기반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 청동제작술에 대한 정치적 주도권은 그 공동체의 안전에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이는 군사적 기밀에 속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치자(治者)의 권능이 이에 달려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우리말에 '다루다'라는 말의 뿌리가 청동기를 비롯한 금속 문명에 대한 주도권과 관련이 있고, 고려 시대 원의 장관 내지는 총독과 같은 '다루하치'라는 벼슬도 애초에 이 청동기 또는 철기 문명의 주도자를 뜻하는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한 지배자의 명칭임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스리다'와 '다루다'라는 말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음은 청동기 문명이 가졌던 정치적 위력이 남긴 역사적 흔적이라고 할만 합니다.
그런데 이 청동기, 즉 '쇠'의 등장은 그 모체인 돌에 대한 오랜 경험과 깊은 지식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인류의 무의식에 기록된 기억에서조차 아득하기만 한 길고 오랜 석기시대의 돌에 대한 익숙함이, 마침내 그 돌의 겉만 볼 때에는 파악할 수 없고 끄집어 낼 수 없는 물질들을 새 것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쇠'라는 말이 곧 '새롭다'의 '새'와 뿌리를 같이 한다는 추측은 크게 어긋나지 않게 들립니다. 그야말로 쇠를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연 것입니다.
하여, '돌'은 이를테면 이 '쇠'의 부모입니다. '돌쇠'라는 말은, 오늘날 흔히들 몸은 건장하나 무지한 하인이나 사나이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지만, 따지고 보면 돌로 쇠를 만들어냈던 무수한 고대의 장인들이 가졌던 보편적인 이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석기와 청동기의 중간쯤에는 주름을 잡았던 그 허다한 '돌쇠'들은, 보다 강력한 철기시대가 되면서 한때의 '다루하치'적 위상에서 주인이 함부로 부리는 일꾼 정도로 강등되었던 모양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문명은 언제나 그 원천에 대한 깊은 지식과 성찰이 반복되고 일깨워지지 않고서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루어 놓은 것에만 시선이 가는 이에게는, 그 이루어짐의 과정과 능력의 비밀에 눈뜰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에 더하여 '융합을 통한 창조'의 기초를 세울 수도 없습니다. 숨겨져 있는 것들에 대한 안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 문명의 원초적 석재(石材)들에 대한 관심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한 일깨움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가에 대한 각성이자,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충실하게 부여잡는 야금의 절차이기도 합니다. 돌에서 새 것을 뽑아내는 힘은 그래서 우리 자신의 문명사에서 무수한 돌쇠들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열려 나라를 세운 단군의 다스림은 그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동안 돌을 쪼아대고, 그 돌 속에서 문명의 혁명을 일구어낸 돌쇠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역사의 실체적 사건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벼운 유행과 잠시 반짝거리는 지식에 몰두한 채, 정작 고심하고 다가서야 할 문명의 원자재는 폐허처럼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돌쇠의 우직함으로 인류의 뿌리를 파고드는 저력과 내공이 절실해지는 개천절과 한글날이 이어지는 때입니다. 문명의 다루하치가 되는 길이 이로써 새로이 열릴지 않을까 합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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