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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싫어" 넘어선 동아시아! '고뇌의 연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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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싫어" 넘어선 동아시아! '고뇌의 연대'를 묻다

['번역'의 의미] <여행의 사고> 윤여일을 만나다

'프레시안 books'가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산지니 펴냄)·<여행의 사고>(전 3권, 돌베개 펴냄)의 저자 윤여일을 만나게 된 계기는 지근거리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그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휴머니스트 펴냄)의 번역자 정도로 알고 있던 그가 단독 저서를 낸 사실도 몰랐던 무렵, <여행의 사고>에 대한 서평 원고가 세 번 연속 다른 필자로부터 '자발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세 권짜리 책이긴 하나 한 지면에서 세 번이나 다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여행기에 대한 관심 치곤, 아니 한 저작에 대한 관심으로 봐서도 이례적이었다.

<여행의 사고>의 프로필을 보면 "읽고 쓰고 다니고 옮긴다"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수유너머의 일원이었고 2007~2008년 도쿄외국어대학의 외국인 연구자 신분으로 일본에서 체류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전중~전후에 걸쳐 활동한 중국문학 연구자 다케우치 요시미와 다케우치를 포함한 일본의 사상사를 연구한 중국의 쑨거(중국 사회과학원)를 한국어로 소개한 것이 지식 사회에서의 주요 이력이며, 세간에 발표한 글들은 대개 2008년 이후에 쓰인 것들이다. 올해 4월 쑨거와의 대담집 <사상을 잇다>와 쑨거의 평론집을 기획해 번역한 <사상이 살아가는 법>(모두 돌베개 펴냄)이 함께 나왔는데, 곧 <사상의 번역>, <상황적 사고>, 이후 <사상의 원점>이라는 저서가 잇달아 출간될 예정이다.

'읽고 쓰고 다니고 옮기는'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해야 할 운명에 처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겐 어떤 게 적절할까. 동아시아 연구자, 혹은 번역가? 평론가나 에세이스트? 출판계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결과를 낸 게 여행 책이니 여행 작가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지식세계 안에서의 영역과 위치를 직접 말해달라고 하자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그것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글 쓰는 자로서 갖춰야 할 사회적 기능성에 관한 의식은 아직 흐릿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독자들이 기대하는 답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하고 그 부근에서 마감된다.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은 특정한 사회 내부에 있고, 그 사회로부터 형성되고 글감을 얻는다. 글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대한 반영이자 발언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그 바깥 혹은 내부에서 반성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추궁하는 글도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글을 쓴들 사회와 자연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타인을, 현실을 1밀리미터도 바꾸기 힘들다. 그렇게 무력한 자가 그나마 믿으려 하는 것은 쓴다는 행위로써 자신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거나 다른 언어를 옮겨오는 행위는 결국 자폐적 곡선일 따름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읽고 쓰고 다니고 옮기'는 것일까?


지난달 24일, 합정역 인근 카페에서 윤여일을 만났다. 나의 인터뷰 질문지 맨 위엔 <여행의 사고, 하나>에 나오는 한 대목이 인용되어 있었다. 멕시코 여행 중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마르코스를 연구하는 구스타보 씨와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하고 난 후의 장면이다.

"원주민의 절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파티스타, 그리고 그 언어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마르코스, 그들을 연구하는 구스타보 씨, 스페인어를 한국어로 옮긴 통역자, 그리고 한국에서 접해 온 내용을 바탕으로 그 말을 이해하려던 나 사이에는 대체 몇 겹의 번역 행위와 언어의 단층이 가로놓여 있을까. (…) 번역을 거칠수록 현실은 옅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동등한 무게를 지닌 채 복수로 존재하는 것일까." (129쪽)

인용의 이유는 그동안 인터뷰를 하며 가져왔던 어떤 생각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지닌 고유한 고민의 깊이를 어떻게 '저널리즘의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 '번역'은 대개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치환하는 건조한 작업을 칭하지만, 윤여일에게는 다른 쓰임새를 갖는다. 다른 맥락으로 전환해 옮겨심기, 모어의 가능성 안에서 원작에 생명을 불어넣기. 그러므로 번역 작업은 그에게 책 표지에 등장하는 '옮긴이 : 윤여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터뷰에서 드러나겠지만 번역 행위는 그가 지금껏 간직해온 사상적 자원 자체다.

그래서 인터뷰 진행자의 불안을 전하며 포문을 열었다. 신문의 문법은 빠져나가는 것이 많은 그릇이다. 어떤 이야기든 잘려나가고 매끄러워지고 단면으로 제시되고 재미있게 각색되어야 하는데, 혹시 그것을 알고 있어서 부러 인터뷰를 피해 온 것 아니냐고.

그의 대답은 이쪽의 과보호적인 방어선을 산뜻하게 뛰어넘었다. 그저 인터뷰 제안이 온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책을 읽은 '구체적인 독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이 대화 속에서 '젊은 연구자'로 불리는 그가 집에서는 인터넷 사용도, TV 시청도 하지 않으며, 집밖으로 나오는 일도 드물다는 걸 덤으로 알았기에, '젊은 기자'라 불리는 진행자 역시 신기해 할 수밖에 없었다.


첫 질문은 다음의 대목에서 끄집어 냈다.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그의 글에서 반복해 이야기되는 화두는 언제부터 삶에 떠오른 걸까?

"원리적으로 말해 지식이 대상의 운동을 기술하는 작업인 경우, 그 대상이 어디서 어디로 운동하는지를 파악하려면 지적 주체는 대상 바깥에 머물러 대상을 조망해야 한다. 그러나 대상의 바깥에 있는 지적 주체는 대상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그런 운동의 궤적을 그리는지 알지 못한다. 그 메커니즘을 알려면 대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인식론의 가장 기본적인 딜레마, 즉 인식대상과의 거리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

만약 인식주체가 대상 바깥에 머무른 채 대상의 운동을 정확히 기술하고자 꿈쩍 않고 있다면, 인식의 결과 인식주체 자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든 자신은 상처 입지 않을 안전한 거리를 마련해두고 인식이 이뤄진다. 여기서 지식의 윤리성이 화두로 떠오른다. 즉 지식이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는지, 옳은지 그른지만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인식주체 자신이 바뀔 수 있는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14~16쪽)


자신의 독자, 자신의 증인


▲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윤여일 지음, 산지니 펴냄). ⓒ산지니
프레시안 :
지금까지 작업하신 책들을 읽는 동안 계속 맴도는 단어가 있어요. '지식의 윤리성'입니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에서 지식의 속성을 자의적으로 정합성, 기능성, 윤리성의 세 가지로 구분하셨어요. 정합성이 그 지식이 해당 대상을 얼마나 정확히 설명해내느냐의 문제이고, 기능성이 얼마나 널리 유통되고 현실을 움직이는지와 관련되는 거라면 "그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관련된 윤리성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셨죠.

이 문제의식이 촉발된 과정을 여쭙고 싶습니다. 책을 통해 유추해 보면 2004년에 "타자는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란 질문으로 시작하는 쑨거 선생의 강의를 들은 순간이 상당히 큰 계기로 보이는데요. 그 전후에 또 다른 일들이 있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여일 : 저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어요. 큰 자극을 받은 수업 중 하나가 사회조사방법론이었죠. 소위 질적 연구에서 저는 생애사 연구를 위한 인터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상대로부터 생애사의 본질적인 이야기를 유도해내려면 질문을 크게 던지고 상대가 망설임과 동요의 시간을 거쳐 꺼내는 첫 마디를 중시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처음부터 제게 너무 큰 질문을 주시네요. (웃음)

막연하게나마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화두를 의식하게 된 건 보다 이전 일입니다. 수유너머에서 생활한 경험이 주효했습니다. 수유너머의 모토는 "좋은 삶과 좋은 앎을 일치시킨다"였습니다. 수유너머는 코뮨을 구성하고자 할 때 이념적 지주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외부와의 접속' '경계의 횡단'을 활동의 지향성으로 삼았죠. '너머'가 그 지향성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너머'를 위한 숱한 마찰들이 수유너머의 개성을 발효시켰죠. 수유너머에게 '너머'란 문제의 극복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제기를 뜻했기 때문입니다.

저희에게 문제는 존재하는 것이자 생산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하려면 자신이 사용하는 지식의 용법을 시험해야 했죠. 분석 대상이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바깥의 지식은 자신의 삶을 통과하고 나서야 진정 자기 정신의 일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건 수유너머가 제게 남겨준 귀중한 유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지식의 윤리성'을 화두 삼아 제기하려는 물음은 이런 것들이겠네요. 지적 주체가 다루려는 대상 안에 지적 주체는 내재하는가? 지적 주체가 생산하는 지식은 주체 자신을 향하고 있는가? 그 경우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지식은 지식으로서 성립하며 지적 주체는 자신을 쇄신할 수 있는가? 물론 당시에는 그 물음들을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개념어로 정착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 개념을 끄집어낸 시기는, '지식의 윤리성' 말고도 제가 이따금 사용하는 '사상의 번역', '맥락의 전환', '고뇌의 연대' 같은 다른 화두들이 떠오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2004년보다 나중인, 2007~2008년 무렵이겠네요. 일본에 체류하던 시기고, 처음 지면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제 언어와 제 사고를 구하던 시기였죠.

프레시안 : 지금까지 나온 책들엔 대부분 2008년 이후부터 쓰인 글들이 실려 있고, 그래서 그 이전의 생각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니까 20대 초중반 시기 어떤 고민을 하셨고 어떻게 읽고 쓰는 진로를 택하게 됐는지를 묻고 싶어요. 2007년 이후의 여정이 시작되기 전에 꿈꿨던 길은 무엇이었나요?

윤여일 : 1998년에 사회학과에 입학했어요. 사회학은 저처럼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기보다 강렬한 문제의식들을 좇아 유동하는 유형에게 어울리는 학문입니다. 물론 이제 박사논문을 써야 하는데, 이번만큼은 저도 제가 자신할 수 있는 영역을 마련하고 싶지만요. (웃음)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비유적으로 말해, 거인들이 내는 고주파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는 게 바람이었습니다. 가청권에서 벗어나 있으며, 시대를 가로질러 먼 훗날까지 울려 퍼지는 천재들의 목소리 말이에요. 어젯밤엔 자기 전에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를 읽었는데, 그는 자신이 신선한 공기로 둘러싸인 높은 곳에서 말한다고 하죠. 그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지상의 인간은 몹시 드물다고도 하고요.

니체만이 그런 의식을 가진 건 아닐 겁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시대와 함께 떠내려가지 않을, 높은 주파수의 언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치 구름 위 정상은 산 아래서 보이지 않지만 정상에서는 다른 정상이 보이듯이, 고주파로써 시대를 가로지르며 이따금 다른 시대의 천재들이 포착해내는 그런 소리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게 대학에 들어올 때 부풀었던 기대였습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니고 제 동기 중에도 그렇게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여러 명 있었습니다.

입학하고는 자극적인 선배들과 지내기를 좋아했고, 그러다보니 노동자 진보정당 추진위원회 후신 조직의 형들과 어울리며 '붉은 신문'을 학내에서 만들어 월요일에 배포하곤 했어요.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데, 1학년 때 3월 28일이었죠. 형들과 청량리의 철거 지역에 있다가 형들이 연락을 받고 급하게 자리를 뜨기에 따라갔어요. 용산 도원동에서 철거 투쟁이 발생했다는 연락이었어요. 형들은 위험하니 따라오지 말라고 말렸지만, 호기심 때문에 나도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제게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먼저 철거 현장의 모습은 충격이었어요. 운동장 몇 개만한 공간이 철거되고, 중심에 골리앗이 서 있고, 경찰 병력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그곳에서 불과 몇 분만 내려오니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이 이어지는 모습이었어요. 아이들은 놀고 상인들은 물건을 팝니다.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저로서는 처절한 싸움터와 일상의 공간이 너무도 인접한 것처럼 보였고,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경찰이 철거지로 못 들어가게 막아, 동행한 형이 용산을 구경시켜준다기에 따라나섰습니다. 저는 대전 출신이에요. 지금은 용산에서 살지만, 그날 처음 용산을 봤죠. 내려오는 길에서 꺾으니 성매매 지역이 나왔어요. 형은 저를 그 골목으로 데려갔습니다. 형도 와본 일이 없던 듯한데, 둘 다 고개 한 번 들지 못한 채 아득해 보이는 수십 미터를 걸었어요. 다음은 용산 미군 기지였고, 그 너머로 다국적 기업들의 고층빌딩이 보였어요. 그날 하루, 처음 가본 용산에서 철거 지역, 일상의 풍경, 미군기지, 성매매 현장 등이 겹쳐진 모습을 경험한 거죠. 그 혼란스러움을 이해해야겠다는 게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생긴 목표였습니다.

과거에 어떤 전환이 있었노라고 지금 고백조로 말한다면 거기에는 편집과 과장이 따르기 마련이겠죠. 그래서 예전 일을 이렇게 말하는 건 자기 극화를 꾀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지만, "정말 이랬어요"보다는 "지금은 이렇게 기억해요" 정도로 들어주세요.

프레시안 :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후기가 '자신의 증인'이에요. 이 책은 읽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자신이 읽기 위해 쓰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글을 쓸 때 어떤 부분에선 분명 독자를 고려하게 되고,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는 거잖아요. 혹시 주요한 독자, 청자라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습니까?

윤여일 : 누구를 독자로 상정하느냐는 어떤 글을 쓰느냐와 관련 있겠죠.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문체도 달라집니다. 문체에 따라 글 쓸 때의 감정 상태도 달라지고요. 저는 제 문체를 갖고 싶습니다. 문체가 기교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체는 언어감각이 체화되는 방식, 사고를 표현으로 전환시키는 방정식 같은 거죠.

▲윤여일. ⓒ프레시안(최형락)
몇몇 독자에게 제 글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행의 사고>보다는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가 그랬어요. 그 책은 남이 어떻게 읽어줄 것인지보다 제가 어떤 문장까지 써낼 수 있는지를 관건으로 삼았습니다.

글이 어려운 데도 이유는 여럿이겠죠. 표현을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해서 혹은 논리가 깨져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애정을 갖는 작가들의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이유가 다릅니다. 보통 남들은 수사적으로 끝낸 지점에서 사고를 출발하려는 작가가 있고, 남들은 두 걸음 만에 가는데 그걸 촘촘히 백 문장으로 쪼개서 가려는 작가도 있고, 문장을 이어나간다기보다 문장마다 하나의 세계로 비약시키려는 작가도 있습니다. 혹은 아예 세계 인식 내지 정신적 좌표가 기존 틀과 달라서 글이 어려운 작가도 있겠죠.

그런 문장을 그냥 어렵다고 해서는 안 되겠죠. 그런 문장은 안이한 공감을 거부합니다. 그런 문장을 써내려면 작가는 내적 전투를 치러야 할 겁니다. 물론 제 글이 어렵다면, 제가 애정을 가진 작가들의 문장이 갖는 어려움과 같은 이유는 아닐 거예요. 그렇게 시도하려다가 실패했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그 실패의 글들이 제게는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남을 때가 있어요.

저는 자기 글의 독자이고 싶어요. 저처럼 두서없이 쓰는 사람에게 글은 안식할 거처보다는 방황을 기록하는 이정표로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 사고의 임계치와 대면하는 글만이 이정표로 남을 수 있겠죠. 나중에 그 글을 다시 돌아보면 당시의 절박했던 물음이 환기되며, 그 물음으로부터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왔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거죠. 그렇게 이정표가 되는 글들을 모으면 생각의 지도 같은 걸 작성해나갈 수 있겠죠. 거꾸로 말하면, 이정표가 되지 못하는 글들은 훗날 스스로 읽을 가치가 그다지 없어요. 저는 미래의 저를 독자로 부를 수 있을 만한 글을 지금 써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물론 그런 글만, 혹은 그런 식으로만 쓰는 건 아니죠. 논문이라면 그 주제에 관심을 지닌 타인에게 제대로 자신의 고민과 추론 과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적확하게 써야 해요. 또 여행기는 타지의 사건과 맥락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동시에 제 체험에서 독자들과 공유할 만한 요소를 끄집어낸다는 '이중의 번역'에 도전한다는 의식으로, 보다 여러 사람에게 읽힐 수 있도록 쓰려고 해요. 여행기를 쓸 때가 저 자신도 즐거워요.

하지만 제게는 제가 아닌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쓴다는 의식도 있어요.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본질적인 독자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가령 제가 번역했고 지금도 번역하고 있는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의 본질적인 독자였죠.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이 남긴 문자를 읽어낼 뿐만 아니라, 루쉰이 문면으로 밝힌 내용만큼이나 쓰지 않고 버린 내용 혹은 숨겨둔 마음을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루쉰이 지니고 있던 내재적 모순을 이해하려 했고, 루쉰과 시대상황 사이의 긴장관계를 이해하려 했죠. 그렇게 해서 루쉰의 텍스트에서 여전히 읽혀지지 않은 사상적 요소를 건져 올려 냈습니다.

저는 다케우치 요시미 역시 문자를 새길 때 드러낸 것만큼이나 버린 것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신이 루쉰을 향해 다가갔던 방식은, 자신을 향해 다가올 미래의 독자를 위해 깔아둔 복선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는 루쉰을 향한 다케우치의 고투가 마음에 걸리며, 다케우치의 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미래에 있을 그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쓴다는 의식이 있어요. 드러낸 문자 이면에 있는 제 고충과 결의 같은 걸 헤아려줄 독자죠. 그 독자를 얻으려면 그럴 만한 작가가 되어야겠죠. 지금 한참 미달이지만, 그 독자를 향해 쓰고 있다는 의식은 있어요.

정신의 자서전, 호흡의 여행기

프레시안 : 번역이 아닌 직접 쓴 단행본으로 가장 먼저 출간된 건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인데, 가장 최근에 나온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보니 대담이 5년 전에 이뤄졌더라고요. 또 2012년에 나온 세 권의 여행기는 2008~2009년에 쓰인 것으로 보였고요. 작업 순서와 출간 순서가 뒤섞여 있는 것 같은데, 이를 정리하면 어떻게 되죠?

윤여일 :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가 출간된 첫 책이긴 하지만 사실 가장 나중에 쓴 책이에요. 원래 구상은 '일곱 편의 에세이'였는데 <오늘의 문예비평>에 1년간 네 차례 연재한 것에 한 편의 글을 추가해 일단 지금 형태로 냈습니다.

애초 첫 저작으로 상정한 건 <사상의 원점>이라는 책이에요.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여러 각도로 쓴 논문들을 모은 것인데, 그 작업은 2007년부터 시작해 2011년에 마감됐거든요. 그게 첫 책일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제목을 '사상의 원점'이라고 정했어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지난 5년간의 작업을 결산하는 책으로서는 가장 마지막에 나올 것 같아요.

사실 '사상의 원점'은 그 책 안에 담긴 다케우치 요시미에 관한 글의 제목이기도 해요. 저로서는 다케우치 요시미에게 바치는 헌사였죠. 그리고 '정치의 원점'이라는 제목은 제가 존경하는 연극인인 사쿠라이 다이조 씨에 관한 글에 바쳤습니다. 그 글은 <상황적 사고>에 수록될 예정이에요.

<사상의 원점>을 쓴 건 <사상을 잇다>라는 대담이 계기였어요. 쑨거 선생과 대담하기 위해 많은 물음을 준비해뒀는데 그 중 일부만 <사상을 잇다>에서 활용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대담에서 꺼내지 못한 물음들에 스스로 답하며, 혹은 꺼냈으나 쑨거 선생과는 다른 식으로 대답을 찾아가며 쓰게 된 게 <사상의 원점>이에요. 그래서 대담집입니다만, 실질적으로 저의 첫 작업은 <사상을 잇다>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애초 그 대담은 쑨거 선생의 사고가 지닌 품과 깊이를 담아내기 위한 기획이었으나, 오히려 선생의 사고를 쫓는 과정에서 제 사고가 형성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올봄 쑨거 선생이 서울에서 체류하는 동안 교류하면서 다시금 느꼈는데, 역시 그 대담은 선생의 사고를 담기에는 무척 비좁죠. 대신 5년 전 저로서는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프레시안 : 그렇군요. 그래도 출간된 순서를 축으로 말씀드려 볼게요. 먼저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인데요. 아주 힘겹게 읽었어요. (웃음) 정신의 흐트러짐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바닥까지 내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외람된 표현이지만, 그래서 누군가의 나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자신의 꾸밈없는 모습인지 일종의 가면인지 궁금합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끝맺고 있거든요. : "'지식의 윤리성'을 화두로 삼아 써야 할 주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몇 년 후에 이 책은 다시 나올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은 화장이 진해져 있으리라" 화장이 진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윤여일 : 후기 격인 '자신의 증인'이라는 글에서 "자기 반영적임과 자기 반성적임이 맞닿는 곳까지"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게 이 책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바였어요.

글을 쓰는 행위는 솔직한 행위는 아니죠. 애초 계산적인 행위죠. 일기라도 그럴 겁니다. 저는 이 책을 '정신적 체험에 관한 자서전'이라고 본문에 적은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예요. 글로 꺼내기 전에는 입 안에서 몇 차례고 혀를 굴릴 수 있죠. 가공된 순진함, 약은 우회, 겉멋 든 과잉, 내숭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쓰지 않는다면, 그런 것들을 경험할 수조차 없을 겁니다.

따라서 써야만 애초 솔직하지 않고 불투명한 자신을 잘 직시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요. 그런 의미에서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는 저한테 '솔직한' 책은 아니지만, 제가 추구하는 본질에 가까운, 따라서 저로서는 진실한 책이었어요. 당시 저로서는 쓴다는 행위에 대해 끝 간 지점까지 사고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책이기도 해요.

'화장이 진해질 것'이라고 쓴 건, 나중에 '역사감각에 관하여', '사유감각에 관하여'라는 두 편의 글을 보태 새로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일곱 편의 에세이>를 낼 때는 전의 감정 상태 혹은 태도와는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에요.

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사람의 사고가 성장해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어떤 국면들 같은 게 있는 거겠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문장은 막 자신의 사고, 자신의 언어를 갈구하며 방황하고 고심하던 시기에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만 그런 건 아니죠. 자신이 자신이려고 하는 시기에 나온 작품들은 여러 작가에게 있습니다. 비록 완성도가 높지는 않더라도, 저는 그 작가들이 그때의 작품을 두고두고 소중히 여길 거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보면 낯 뜨거울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다고 이제 자신의 사고, 자신의 언어를 마련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긴장감이 떨어져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그 책을 마치고 후기를 쓰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이 시기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예감에, 저로서는 다소 안타깝게 표현한 문장이 "나중에는 화장이 진해질 것"이었습니다.


▲ <여행의 사고, 하나>(윤여일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프레시안 :
그 책에 비해 <여행의 사고>는 숨 돌리듯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웃음) 물론 가벼운 여행기는 아니지만요. 일단 이 세 권 긴 여행의 배경부터 여쭙고 싶어요. 또 이 역시 문예지에서 연재된 것으로 아는데, 어떤 경위로 출간까지 이르게 된 건지도 궁금합니다.

윤여일 : 여행기 역시 <사상을 잇다>로부터 출발합니다. 도쿄에서 쑨거 선생에게서 받았던 훈련 과정이 제게는 흥미로웠어요. 제가 질문하면 바로 답을 내주는 게 아니라 그걸 물음으로 되돌려주되 거기에 당신의 체험을 주입해서 돌려주는 식이었죠. 선생과 헤어지고 나서도 그 훈련을 홀로 이어가고 싶었어요.

전 사회학을 전공했고 연구실에서는 주로 유럽의 정치철학을 공부했는데요. 눈높이로 말하자면 사회과학에는 세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이 잠재해 있죠. 문학이라면 횡으로 세계를 대할 겁니다. 철학이라면 세계를 아래로부터 보거나 바닥을 파고 내려가는 영위겠죠.

저는 제게 익숙해진 눈높이를 조정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문학 작품을 써볼 능력은 제게 없죠. 그래서 여행을 다니며 타지의 삶을 옆에서 보고, 아울러 제 체험을 글로 옮기려 시도했던 거죠. 그래서 일본 체류를 마친 2008년 가을, 바로 귀국하지 않고 멕시코로 떠났습니다. 마침 직전에 <인물과 사상>에 사회과학자로서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청탁을 받아 레비스트로스로부터 시작되는 한 편의 글을 보냈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이후 여행기를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떠돌아다닐 운명에 처한 인류학자였던 그는 여행을 사고의 소재로 삼아 자신을 되돌아봐야 했다. 그에게 여행이란 단지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장소를 옮기더라도 자신의 고국으로부터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이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그 점을 주목했다. 그래서 <슬픈 열대> 곳곳에서 그는 여행자의 시선에 배인 고약한 감각을 문제 삼는다.

(…) 그는 인류학자를 두고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자기 사회에 대해서는 비판자이자 다른 사회에 대해서는 동조주의자." 이 어구에서 강조점은 '동조주의자'보다는 '비판자'에 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회를 내려다보는 태도만큼이나 자칫 그 사회를 신비화하여 결국 알 만한 대상으로 만드는 태도를 경계했으니 말이다." (<여행의 사고, 하나> 중 '여행의 사고', 21~24쪽)


여행기를 쓰게 된 또 다른 이유라면, 제게는 글로 표현하고 싶은 주제가 많습니다. 가나다순으로 말하면 '가'나안 땅에서 '하'늘빛에 대한 것까지요. 연구자나 평론가로서 쓸 수 있는 소재는 한정되어 있죠. 그런데 여행기를 쓰면 여러 사색을 구체적인 체험과 접목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제게 여행기는 잉여분입니다. 그렇다고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여행기야말로 주제와 문체를 자유롭게 고르고 여러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장이니, 글을 쓰는 제게는 숨 쉴 수 있는 여지가 됩니다.

<인물과 사상>은 월간지여서 매달 한 번씩 총 20개월을 연재했습니다. 그것들이 1권과 3권에 수록되었고 2권 인도·네팔 편은 대체로 연재물이 아닌 새로 쓴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연재를 이어가다보니 어느 순간 역전이 되어 '갔던 경험을 쓰는' 게 아니라 '쓰기 위해서 가는' 식이 되었어요. 타지의 모습이 죄다 글감으로 보이고, 낯선 만남을 글감으로 소비하고, 글감이 될 만한 체험을 좇고, 일부러 험하게 다니고, 그것들을 과대 포장하는 종류의 편향이 생긴 거죠. 그래서 2010년 봄에 중국을 다녀온 뒤로는 작년 겨울까지 여행을 중단했습니다. 연재도 중단되었고요.


▲ <여행의 사고, 둘>(윤여일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프레시안 :
글감 이야기를 하시니 <여행의 사고, 둘> 처음에 나오는 이런 문장이 생각나요. "글을 쓰는 자는 지옥 속에서도 숨 쉴 공기를 찾을 수 있다. 지옥에 관한 글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자에게 잃는 것은 잃었음을 얻는 일이다." 콜카타에 도착했을 때 이상 증상으로 며칠간 말도 안 통하는 격리병동에서 꼼짝 못한 경험이 나오는 대목인데요.

어쨌든 낯선 곳에 가면 유독 더 활발해지는 사고회로가 있고, 그래서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글감이나 연상의 소재를 더 많이 발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그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잖아요. 나중에 기억이 바뀌어버리기도 하고요. 이 책 속의 차분한 글들은 여행 중이 아니라 그 후에 작성된 거겠죠?

윤여일 : 네. 그날그날 메모는 하지만 여행 다니면서 차분하게 생각하고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어요. 제가 여행하면서 작업하는 건 번역이에요. 원서 한 권과 노트북, 전자사전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능하니까요. 그렇다고 평소에 못하니 나갔을 때 번역하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제가 번역하는 책들은 제게 영감을 주는 것들인데, 여행하며 그 책을 차분하게 읽는 동안 여행의 체험도 풍부해지는 걸 자주 경험했어요. 책을 읽으며 얻은 단상과 그날의 체험이 맺어지면, 소중한 글감이 생기죠.

말씀하셨듯이 날것의 체험만 갖고 쓴 여행기가 아니며 사후적인 기록이에요. 그리고 다른 글을 쓸 때보다 여행기를 쓸 때 그간 미뤄뒀던 여러 책들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 경우 제게 유익한 텍스트는 타인의 여행기보다는 사상서, 철학서였어요.

책에서 얻은 영감과 길에서 얻은 체험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이어주려고 할 때 제 안에서는 문장들이 쌓여요. 따라서 여행기를 쓰는 일의 한 가지 의미는 책과 길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자칫하다보면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써 내리누르는 식이 될 수 있겠죠.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눈높이, 혹은 여행 작가의 윤리성 같은 문제의식은 제게 중요합니다.

프레시안 : 여행기라는 장르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전에 여행 자체가 특별한 경험에 대한 탐욕이 커지기 쉬운 행위이기도 하고요. 시간과 돈만이 아니라 "거기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부대껴 지내며 일궈놓았을 삶의 논리와 가치들"도 가벼운 경험담으로 소비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요. 누구나 진정한 체험을 갈구하지만 그 희망 자체가 기만적일 수 있는 여행에서 알리바이 이상의 여행기를 길어 올릴 수 있는 방법, 이를테면 '사상의 자원'을 발굴할 수 있는 경험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었나요?

윤여일 :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는 식의 일반론은 말씀드릴 수 없겠네요. 다만 제가 왜 여행기 쓰는 일을 중시하는지로 우회할게요. 하나는 '읽다'와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표현하다'와 관련됩니다.

첫째 방금 말씀드렸지만 여행기를 써야 평소에 아껴뒀던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저는 씁니다. 텍스트 자체의 훌륭함도 있겠지만, 그 텍스트와 만나기에 좋은 시기란 것도 있을 거예요. 자칫하면 전에 읽어봤기 때문에, 오히려 잘 만날 수 있는 때를 놓치는 수도 있겠죠. 좋은 텍스트와 만나는 좋은 시기는 읽는 자가 마련해야 할 겁니다.

이제껏 많은 시간을 들여 여러 좋은 책을 탐독했지만, 읽기만 한다고 남는 건 아니라는 안타까움도 자주 맛봤어요. 제 경우는 쓰는 활동에 유의미할 수 있는 책이 남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쓴다'는 자각이 없이 읽으면 훌륭한 책도 제게 훌륭하게 작용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논문과 평론만 쓴다면, 저는 여러 좋은 책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거예요. 여행기를 쓰니 다양한 종류의 책들과 만날 수 있었어요. 여행은 익숙한 곳을 떠나 지속되는 삶이니까요. 더구나 여행은 내 일상으로부터의 일탈과 타인의 일상으로의 인접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무신경하던 영역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습니다. 이렇게 주제가 삶이고 일상이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읽어야 할 책도 많습니다.

둘째,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행기는 표현의 훈련을 위한 장이기도 합니다. 이번 여행을 다녀온 뒤 언론에 실린 <여행의 사고> 서평들을 봤는데 대체로 '윤리적 여행'으로 수렴되는 인상이었어요. 그건 중요한 주제고, 저 역시 몇 군데서 언급하긴 했지만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주제예요. 그리고 <여행의 사고>는 '윤리적 여행'보다는 '윤리적 쓰기'에 관한 문제의식이 보다 농후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여행에 관해 쓴다'보다 '쓰기 가운데 여행이 있다'가 여행기 쓰기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역시 여행을 매개해서만 쓸 수 있는 주제와 소재가 있기 때문이죠. 이와 더불어 '여행의 쓰기'는 다른 감각을 요구하기도 하고요.

여행자가 찾는 곳은 낯선 세계입니다. 여행자가 낯선 세계에서 의미를 발견하려거든 먼저 그 시도의 버거움을 직시해야 합니다. 의미는 현지의 실상을 파고들어서 건져낸다기보다 여행자 자신의 한계를 응시해서만 드러날 겁니다.

또한 여행자는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독자에게 전해야 하죠. 하지만 날것의 체험과 감정이라면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없을 겁니다. 경험담은 자신의 것이지만 제게 밀착되어 있지 않고 타인과 공유할 만한 요소를 품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표현을 일궈내야 할까요.

여기서 여행 작가는 개체의 체험이 지니는 구체성을 소중히 다루되, 사변적이거나 상투적인 언어로 그 체험과 감정을 정제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표현을 일궈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여행기가 줄 수 있는 사고의 실험이자, 쓰기의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여행기라는 소중한 매개체는 배경지식을 함부로 남용하는 식이거나 풍경의 서툰 묘사, 장황한 체험담, 덜 익은 감상의 진열장이 되기 십상이죠. 제 글도 그런 혐의가 짙습니다. 그래서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해보려고 해요.

ⓒ프레시안(손문상)

윤여일의 5년, MB의 5년

프레시안 : 조만간 두세 권의 저서가 출간될 예정인데요. 혹시 그 출간 일정을 추월할 현재 작업하고 있는 다른 책은 없나요?

윤여일 : 지금은 박사논문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또한 올해는 당장 발표하기 위한 글은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그간 '프레시안 books'의 서평 청탁을 거절한 이유기도 해요. 이해해주세요. (웃음)

덩어리로 나올만한 건 지금까지 능력껏 끄집어냈고, 지금은 바닥을 긁는 느낌입니다. 지금의 제 힘으로는 더 쓰기가 힘듭니다. 지금은 잠시 중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지난 5년간 간직해온 쓰고 싶다는 절실함, 쓸 때의 긴장감이 줄어들려 하고 있어요. 글을 쓰는 게 다소 관성처럼 되었다는 느낌이에요. 그간 그다지 써내지도 못한 주제에 이렇게 말한다면 주제 넘는 일이지만, 제 주제, 제 능력이 이러니 저로서는 인정하는 수밖에 없죠.

한편으로는 어떤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생겼어요. 이번 대선 기간에는 여행지에 있어서 투표를 못했어요. 미리 예상했기에 제 딴에는 정신적 투표 행위라는 차원에서 '이 시대의 정신승리법'이라는 글을 발표해놓고 여행을 갔어요. (<상황적 사고>에 수록) 그게 현 시점으로서는 제가 발표한 마지막 글이네요.

저의 지난 5년은 대학원 수료 이후 학생 신분에서 자유로워진 5년, 타지에서 생활하거나 여행하게 된 5년일 수도 있지만, 이명박 정권의 5년이기도 했어요. 그동안 얻게 된 여러 쓰라린 감정들로 무력하나마 몇몇 평론을 썼는데 '이 시대의 정신승리법'은 그 과정의 결산인 셈이죠.

이번 여행을 다니는 동안 박근혜 씨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인터넷으로 확인했어요. "이렇게 또다시 5년인가"라는 생각에 무겁고 우울했고요. 당선일 직후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관문인 페루의 오얀타이탐보라는 도시에서 묵었어요. 하루 숙박비 4000원쯤 하는 허름한 여관이었는데, 방에 달력이 걸려 있었어요. 그런데 2008년 달력인 거예요. (웃음) 그 달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묘하게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5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흘러왔구나. 결국 앞으로 5년 동안 나는 제약된 조건에서 아등바등하겠구나. 대신 5년을 겪어봤으니 전과 같은 감정적 기복은 다스리고 대단한 기대도 갖지 말고 충실하게 아등바등하자. 그러면 지난 5년 동안 그랬듯이 몇 편의 글을 얻을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여유가 생겼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보다 긴 호흡으로 작업하기 위해 무턱대고 쓰는 일은 일단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껏 쓰는 데 힘이 달리는데도 스스로 재촉하고 무리해서 써왔고, 그러다보니 이정표가 될 만한 글은 점차 줄어들었어요.

올해는 박사논문에만 집중하려고요. 지금껏 제게 강렬한 대상을 붙잡고 상대에게 육박하는 식으로 글을 써왔는데, 사회과학적 논문을 쓰려면 다른 감각과 시야, 문체가 요구되겠죠. 제게는 필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프레시안 : 지금까지 이야기해주신 일련의 단행본 작업, 읽고 쓰고 다니고 옮기는 작업을 몇 가지로 구획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윤여일 : 기본적으로 네 가지 방향인 것 같아요. 하나는 연구자로서 동아시아라는 사유공간에 관한 문제의식을 여러 각도에서 논문으로 작성해왔어요. <사상의 원점>이 그 모음이죠. 두 번째는 일종의 평론이에요.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가장 사변적인 언어로 리얼리티를 만들어 내려는 도전이었다면, <상황적 사고>는 매 글마다 구체적인 사건이 있으며 거기서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사상의 자원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를 고민해 작성한 책입니다. 둘은 역상(逆像)이며, 저는 둘 다 평론이라고 부릅니다.

세 번째가 번역이죠. 제게 매우 소중한 작업이에요. '자신의 증인'에 저는 본질적으로 두 명의 번역자라고 쓴 적이 있어요. 그때는 쑨거와 다케우치 요시미를 의식했었죠. 지금은 앞서 말씀드린 연극인 사쿠라이 다이조의 번역자도 되고 싶습니다. 아무튼 이 경우 번역은 문자적 번역만이 아니라 사상의 번역까지를 포함합니다. 이 각도에서 다케우치 요시미와 쑨거에 관해 쓴 책이 <사상의 번역>이에요. 얼마 전 나온 <사상을 잇다>도 제 안에서는 이 계열에 속하고요. 끝으로 이 모든 것의 여집합에 해당하는 여행기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사상의 번역, 번역의 사상

"루쉰은 다케우치 요시미를 통해, 다케우치 요시미는 쑨거를 통해 다시 한 번 사상적 생명을 얻었다. (…)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는 시대상황에 철학적인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들의 글은 불투명하다. 그리하여 좀처럼 계승하기 어려운 존재이며, 역사 속에서 아주 드물게 자신의 동요와 긴장감을 읽어줄 '사상의 번역자'를 만날 수 있다. 그 드문 '사상의 번역자'가 루쉰에게는 다케우치 요시미였으며, 다케우치 요시미에게는 쑨거였다."

프레시안 : 아직 출간되지 않은 <사상의 원점> 서문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방금 '사상의 번역' 이야기도 하셨는데, 일련의 책을 읽으면서 독특한 번역론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여러 책을 읽다보니 루쉰에서 다케우치 요시미, 다케우치에서 쑨거로 계승되는 어떤 흐름이 반복해서 목격돼요. 먼저 구체적인 만남의 사건들에 대해 묻고 싶어요. 2007년 도쿄에 간 목적이 쑨거 선생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나요?

윤여일 : 저는 2007년 봄부터 도쿄에 있었고 쑨거 선생이 도쿄에서 체류하기로 결정하신 것은 2007년도 하반기이니 선생의 수업을 듣고자 일본으로 간 건 아니었어요. 대신 선생이 2008년에 체류하시기에 저도 1년간 체류 기간을 연장했어요.

도쿄에서의 교류에 앞서 2005년에 베이징의 선생 자택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2004년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의 짧은 강의가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는데, 당시 선생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석사 논문을 마치고 이후 공부의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차에 무작정 찾아갔어요.

▲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쑨거 지음, 윤여일 옮김, 그린비 펴냄). ⓒ그린비
당시 저는 중국어도 일본어도 못했는데, 재일조선인 친구 김우자 씨에게 부탁해 그가 동행해 통역을 해주었죠. 쑨거 선생을 뵙고 당시의 고민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어요. 선생은 어설픈 이야기를 경청하고 애정 어린 조언도 해주셨어요. 이 사람은 스승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고, 차분히 선생의 글을 읽고자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을 번역하기로 마음먹게 된 거죠. 일본어를 배운 주요 동기도 쑨거 선생과 대화할 수 있는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에요. 중국어보다 익히는 데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사상사적 순서로는 루쉰-다케우치-쑨거겠지만 저는 반대 방향으로 접했어요. 먼저 쑨거라는 동시대 인물과 만났고, 선생의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을 독해하며 거기에 구현된 다케우치 요시미의 인물상에 매료되어 다케우치 요시미의 선집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리고 다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적 원점을 추적하다가 다케우치의 초점에 맺힌 루쉰 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고요. 전에도 루쉰의 글을 접한 적은 있지만, 이때부터 루쉰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프레시안 : <사상의 원점>에 "다케우치의 언어에는 불투명한 구석이 있다. 혼돈을 야기하는 사회적·역사적 먼지가 잔뜩 껴있다. 번역하려고 해도 번역 불가능한 요소가 남는다"라고 쓰셨어요. 이 번역 불가능성은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요. 왜 다케우치가 번역이 불가능한 사상가라고 생각하며, 그건 다른 번역 작업과 비교해서 든 생각인가요?

윤여일 : 제가 이제껏 번역한 건 쑨거와 다케우치 요시미의 글들뿐이니 다른 번역의 경험과 비교해보기는 어렵네요. 존 어리의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휴머니스트 펴냄)도 옮기긴 했지만, 그 경우는 지금 얘기하는 의미에서의 번역자란 자의식은 없었습니다.

둘에 한정해 말한다면, 제게 번역은 우선 정밀하게 읽기 위한 과정이에요. 솔직히 저는 외국어 서적 가운데 제가 번역한 책 말고는 통독해본 일이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필요한 부분만을 읽어요. 번역할 책을 고르는 경우에도 다 읽고 나서 번역을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계기로 확신이 들면 번역하며 정독합니다. 즉 애초 출간을 위해 번역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도 계약하지 않은 채 번역하고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저는 번역의 속도로 읽기 위해 번역해요. 번역의 속도로 읽는다는 건 원작을 형성되던 가상의 시간으로 되돌리는 일이죠. 원작의 작가가 한 문장을 적고 이어갈 다음 문장을 고심하던 시간을 엿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번역의 속도로 읽고 번역한다는 건, 한 문장을 번역으로 매듭짓고 서둘러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이음매로 들어가 한 문장 이후에 나올 수 있었던 가능성의 문장들을 떠올려보고 작가가 왜 저렇게 문장을 남겨야 했는지, 작가의 내적 고민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원작은 이미 완성되었으나 번역자는 번역의 경험을 통해 생성 중이던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실제로 다케우치 요시미의 문장은 번역하다 보면, "나라면 다음 문장을 어떻게 이어나갈까"를 자문하도록 이끕니다.

인용하신 문장에서 '번역 불가능성'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수사죠. 그건 다케우치 요시미는 번역자에게 문자적 번역 이상을 요구한다는 의미의 수사입니다. 그는 말할 때 속내를 다 내보이지 않았죠. 말할 때는 무언가를 삼키고서야 토해냈거든요. 문장을 쓸 때는 거시적 범주나 이론적 전제에서 출발하지 않았죠. 대상을 기성의 지식에 꿰맞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상의 섬세한 결, 균열, 틈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표현을 길어 올립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관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개념을 사용할 때는 거기에 무게를 싣습니다. 지금 텔레비전을 켜보면 인간이 역사에서 힘겹게 만들어낸 개념들, 가령 정신, 혁명, 자유라는 단어들이 얼마나 헐값에 사용되는지 그 타락상을 목도할 수 있죠. 그는 개념들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겠다는 자의식이 투철한 작가였습니다.

또한 말을 신용하지 않는 유형의 작가였습니다. 말은 사고를 형상화하지만, 자신이 형상화해낸 말이 자신의 사고라고 속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용할 수 없더라도 자신의 사고가 세계와 맺어지는 일점이 바로 말입니다. 따라서 말을 최후의 거처로 삼을 수 없지만, 또한 말로서만 사고는 형상을 취해 현실에 닿을 수 있다는 역설적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죠. 다케우치는 그 점을 강하게 의식하며 집필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를 옮긴다고 번역해내기는 힘들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독자가 글을 읽는다고 그의 고민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정신적 문턱이 있으며, 독자는 자기 전환을 통해 다케우치가 남긴 문자의 의미를 자기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내야겠죠.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그의 글은 번역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비약과 섣부른 추상화를 허용치 않는 그의 지난한 사고 과정이 독자에게 오히려 보편적 물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의 언어는 타인의 삶과 내밀하게 맺어지려고 하죠.

프레시안 : '문자적 번역 이상의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가령 <여행의 사고, 셋>에서 쑨거 선생의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이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저 문자를 대응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문자가 쓰인 토양 자체를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입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여행하듯이 말도 여행을 한다. 여행이 그러하듯이 번역되는 원작도 환경의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원작의 원어는 그것이 출현한 시대와 상황에 잔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저 단어 수준에서 말들을 대응시켜 번역해본들 그 잔뿌리들은 우두둑 뜯겨나간다. 원작의 생명력을 보존하려면 번역자는 그 원작을 낳은 토양을 지반째 옮겨야 하지만, 결국 번역에서 가필하거나 새로 쓰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번역은 원문이 지니는 가능성의 폭 안에서 그 생명력을 되살려내는 금욕적 실천이다. 번역자는 번역을 통해 다른 시대와 상황, 그리고 언어의 토양 안에서 원작을 되살려 낸다. 벤야민은 이를 두고 '원문의 사후의 삶'이라고 불렀다." (144쪽)


▲ <여행의 사고, 셋>(윤여일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윤여일 :
네. 그건 '사상의 번역'이라는 문제의식에 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범박하게 말해서 하나의 사유가 출현한 장소 바깥으로 유의미하게 전달될 때 그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을 거 같아요. 한 가지는 그것이 출현한 장소에 내리고 있는 잔뿌리를 털어내더라도 생명력을 지닐 수 있도록 번역 가능성을 내장하는 방식이죠. 이런 경우 추상도는 높아지며 대개 이론의 형태를 취합니다. 그만큼 다른 장소에서 응용 가능성도 높아지죠.

다른 한 가지는 애초 그 사유가 발화의 장소에 깊게 뿌리를 내린 경우입니다. 굳이 이론과 대비하자면, 저는 이걸 사상이라고 불러요. 사상은 자신의 시대와 함께하며, 이론과 달리 자신의 시대에 쓸려 내려갈 운명입니다. 그래서 사상은 그 모습 그대로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전환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즉 번역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때의 번역은 문자적 번역이 아니죠.

사상의 번역에서 의미의 등가성이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생산되는 것입니다. 그때의 등가관계란 경계를 넘어 동일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사상의 등가성이란 조건은 다르지만 고민의 심도가 닿을 때 발생하는 마주봄이며 대화라고 부를 수 있겠죠.

너무 추상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으니 예를 들어 볼게요. 저는 다케우치가 자신의 상황에서 내놓은 고민과 발상을 제 상황으로 옮겨보려 한 적이 있었어요. 가령 2008년 촛불이 한창이던 때 쓴 글은 다케우치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1960년 안보투쟁 시기에 제출했던 '체험의 일반화'라는 테제를 저의 상황으로 이식해보고자 한 것이죠.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어요. 일단 달아오른 운동은 늘 분화의 계기를 품기 마련이죠. 촛불 운동처럼 여러 세대, 다양한 계층과 배경의 시민들이 참여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운동이 절정을 지났다는 인식이 발생하면, 그 이미지는 빠르게 확산되어 실제로 운동이 힘을 잃게 만듭니다. 운동이 고양되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도 공동의 화음을 이루지만, 공동의 목표를 상실한 다음에는 같은 현실도 체감하는 방식이 갈라집니다.

저는 촛불 운동이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연대의 기초를 단단히 다져놓지 못한다면, 그 에너지가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소멸될 때 찾아올 허탈감이 두려웠어요. 그래서 앞으로 찾아올 분화의 계기를 먼저 상상하고 촛불 운동이 생산한 무형의 성과를 주목하여, 그것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보다 많은 이들의 공통된 체험으로 일반화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물론 제 글은 당시 쏟아진 숱한 글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죠. 다만 다케우치 요시미의 고민을 제 상황으로 옮겨보고자 시도했던 하나의 사례로서 말씀드립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자신의 현재 혹은 미래를 쑨거의 '사상의 번역자'로서, 혹은 번역했던 사상가인 다케우치와의 공동 생산자로서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위치로 자리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중요한지를 묻고 싶습니다.

윤여일 : 쑨거 선생께 이렇게 물은 적이 있어요. 종종 회자되는 '루쉰-다케우치 요시미-쑨거'라는 계열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쑨거 선생은 그들과 나란히 거론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그들이 자신에게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요. 저로서도 그들의 여러 사상적 계승자 가운데 한 명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뿐이네요. 그들의 다음 세대로서 그들의 고민을 나름대로 이어받고자 합니다.

저는 일본 사회에 어떤 애착을 갖고 있어요. 그곳에서 한동안 살아서기도 하지만, 일본 사회는 제가 애정을 느끼는 인간이 출현하고 자라났던 토양이며, 일본 사회의 문제가 그 인간의 과제였기 때문이죠. 그 인간에 대한 애정이 그 사회를 향한 관심과 무관할 수는 없겠죠. 다케우치 요시미만이 아닙니다. 일본에는 지금의 열악한 조건에서 분투하는 제 친구들이 있어요.

얼마 전 총리인 아베 신조의 망언을 접하며 저는 '아베가 너무 싫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힘들게 고민하고 있을 일본의 친구들도 떠올랐습니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저는 그들과 고민을 매개해 같은 세대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적은 저의 적이기도 합니다.

만약 제 친구들이 저처럼 "다케우치라면 지금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는 함께 다케우치의 다음 세대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쑨거 선생은 저보다 연장자지만, 그 각도에서는 같은 세대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종류의 세대의식에서는 생물학적 나이보다 시대 인식이나 고민의 내용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케우치 그리고 루쉰의 '고민의 계승자'가 되고 싶습니다. 함께 계승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동아시아라는 고뇌, 고뇌의 동아시아

프레시안 : 이제 동아시아라는 공간에 대해 물어볼 차례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글 속에서 동아시아는 단지 지리적 공간으로만 불리고 있지 않아요. 동아시아를 지리적 공간이 아닌 공동의 사유의 공간으로, 혹은 타자의 고투를 나눠 갖는 장으로서 '번역 공간'이라고 명명하고 싶다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동아시아를 지리적 실체가 아닌 사상적 물음으로 삼는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생각의 절차란 어떤 걸까요?

윤여일 : 지난 글들을 들춰보니 제가 자주 꺼내는 화두들이 있었어요. 지금 인터뷰에서도 반복된 것 같은데 지식의 윤리성, 사상의 번역, 고뇌의 연대, 맥락의 전환과 같은 것들이죠. 제게 동아시아는 이것들이 모두 함유된 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지역을 살아가는 이들이 '동아시아'를 인식하려면 그것은 자기 인식 그리고 자기와 관련된 타자 인식을 요구합니다. 동아시아라는 사유공간에서는 인식 주체와 대상 혹은 타자가 매개 없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유동적 상황 속에서 한데 얽혀 있죠. 대상에 대한 인식이 대상을 거쳐 자신에게로 되돌아오죠. 그런 의미에서 지식의 윤리성을 시험하는 장일 수 있습니다.

'사상의 번역'에 관해서는 방금 말씀드린 것 같으니 '맥락의 전환'과 '고뇌의 연대'라는 문제의식과 관련해서만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맥락의 전환'은 한 사회에서 올바른 주장, 일국의 논리가 다른 사회에서는 그대로 통하지 않기에 고민해야 할 주제죠. 이 지역 내의 국가들은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를 입에 담지만, '공동 번영'이라는 수사로는 감출 수 없는 적대 관계가 잠재해 있죠. 무거운 역사 기억, 영토 문제, 근대화를 향한 각축 가운데 각 사회 사이에 적대성이 어지러이 깔려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정치적 올바름과 정형화된 이론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바로 동아시아는 단일 사회라면 등장하지 않았을 '맥락의 전환'이라는 문제가 발생하는 공간이죠.

도식적인 정리이긴 한데,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는 '고뇌의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동아시아의 연대는 '동아시아 공동의 인식'을 모색한다는 섣부른 기대로 성사될 수 있는 일이 아닐 겁니다. 지리적·역사적·정치적 규모와 사회 체계의 차이로 말미암아 각 사회의 표상은 그대로는 교환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렇듯 각 사회가 처한 현실이 다르다면 기도할 수 있는 연대는 '조건의 연대'가 아닌 '고민의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즉 같은 조건을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연대가 아니라 조건은 다르지만 서로의 고투의 농도 그리고 심도가 닿는 연대입니다. 그리하여 중요한 과제는 공동의 조건을 확인하거나 이념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타자의 고투를 나눠 갖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투의 내실을 그대로 나눠 갖는 일은 비대칭성, 적대성, 몇 겹의 분단선으로 인해 불가능하죠. 따라서 서로의 고투는 서로에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다보니 다시 '사상의 연대'로 돌아오게 되는군요. 결국 저 용어들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동아시아를 '맥락의 전환' '고뇌의 연대' '사상의 번역'을 기도하기 위한 장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그 방향으로 노력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 '동아시아가 지리적 실체라기보다 사유의 공간이다'라는 지금의 말은, 소위 동아시아론을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요. 학계의 주류 관점과는 다른 건가요?

윤여일 : 한국 학술계 내에서 동아시아가 이토록 회자되는 건 지역적 범주 이상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겠죠. 동아시아는 이념적 가치를 띠고 운운되기도 하며, 제도적 권역의 한 가지 이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구상해나가야 할 미래상인 '기획의 동아시아'가 있다면,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과제와 관련된 '기억의 동아시아'도 있겠죠. 또한 '지역 패권' '지역 질서'로서의 동아시아가 있다면, '지역 연대'로서의 동아시아도 있습니다.

동아시아를 사유공간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저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께서 노력하고 계십니다. 다만 그 사유공간을 이해하는 각도는 다를 수 있을 테며, 저는 저러한 몇몇 화두들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 <사상을 잇다>(쑨거·윤여일 대담, 돌베개 펴냄). ⓒ돌베개
프레시안 :
<사상을 잇다>를 보면 도쿄에 있을 때 만나게 되었다는 물음이 하나 있어요. 일상의 번역 감각과 관련된 건데, 외국 생활이나 적어도 해외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조금씩은 느껴봤을 문제입니다.

"도쿄에서 지내며 학회 등의 자리에서 만난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화제가 국가주의나 계급갈등 등 사회 문제로 번져가곤 했다. 그때 상대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들추면 나도 그런 문제가 한국 사회에 있다는 식으로 맞장구치곤 했다. 물론 비슷한 문제가 양측 사회 속에 있을 수도 있지만, 실은 양상이 다른데도 상대와의 우호를 위해 혹은 대화의 소재를 끌어내고자 그렇게 말하곤 했다. (…)

맥락이 다른데도 양측 사회의 문제를 비슷하다고 전제하는 이런 대화에서는 미묘한 대목이 가려지며, 말의 위상에서는 같은 용어를 주고받지만 결국 문제 상황의 무게는 서로가 공유하지 못하고 만다. 여기서 나는 타국인과의 교류에서 '나'라는 개체가 모어사회의 상황이나 역사를 얼마만큼 동일시해서 대화 속 소재로 활용해도 되는가라는 물음과 만났다." (9쪽)


이른바 '국제 교류'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어사회의 역사나 현실을 자신의 재산처럼 사용해 상대와 교환하는 감각"에 대한 얘기인 것 같은데요. 이 문제와 관련된 대화 속에서 쑨거 선생은 "자국에서 태어났다고 모어문화 안에 있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모어문화에 진입하려면 만만치 않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한 진입은 대표성을 무너뜨림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국가라는 큰 정치의 전제 위에서 아무것도 매개로 삼지 않은 채 자신의 언동을 결정하기란 한 개인으로서 거의 불가능" 함도 지적하고 있어요.

어쨌든 이런 순간에 누구나 '한국인'으로서 대표성을 갖고 발언할 수밖에 없는데, 한편으론 이걸 무너뜨리지 않으면 모어사회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역설로도 들려요. 대표성을 무너뜨린다는 건 어떻게 가능한지, 또 이런 모순된 상황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여일 : 대표성을 문제 삼는 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상호 단순화를 경계하기 때문이죠. 여행도 마찬가지인데, 모어 사회에 근거해 여행지의 실상을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실은 모어 사회에 대한 이해 방식도 단순해지죠. 역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타지의 사건에 대할 때 단수가 아닌 복수의 맥락을 의식하며 접근해야만, 자신이 속한 사회 내부의 간극과 틈새로 진입하는 민감함도 길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국제 교류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국제 교류'라는 말이 지닌 함정이 있죠. '제(際)'라는 말을 사용하니 교류는 나라 단위로 발생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쑨거 선생은 그 '제'를 나라 안으로 내재화시키려 하셨죠. 그게 <아시아라는 사유공간>(김월회·최정옥 옮김, 창비 펴냄)을 끌어가는 중심축입니다.

제 경우 여행은 타지를 거쳐 제 사회 속으로 진입하는 행위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을 다니며 '어떻게 상호 단순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문제의식의 개발을 얻기도 하죠. 또한 이를 위해서는 타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멋대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진정 애정을 갖는다면, 그 대상은 자신의 사고를 초과한다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죠. 애정을 갖는 대상이야말로 진입해야 할 대상이지만, 진입하기 어려운 대상이기도 합니다.

중국 연구자로서 다케우치 요시미는 '내재하는 중국'이라고 표현했어요. 중국이라는 대상은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 그리고 자기 안의 고통으로 존재할 수 있을 때에만 중국은 진정한 대상일 수 있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대상 속으로 자신을 투입하고 또 끄집어내는 왕복의 과정을 반복하며, 대상의 변화는 자신할 수 없지만 자신이 변화할 때 진정 교류라는 게 발생했다고 할 수 있겠죠. 동아시아의 교류도 그러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쿠라이 다이조와 루쉰

프레시안 : 지식인이 혹은 작가가 '시대에 진입한다'고 했을 때 많은 경우 직접 상황 속에 참가해 행동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글로서 싸운다'는 말도 있듯 운동의 효용성을 고려한 글을 써내는 경우를 가리키기도 하고요.

그런데 일련의 저작들, 대담집 속에서 이야기되는 차원은 뭔가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쑨거 선생은 "사상적 당사자로서 유동하는 상황에 몸을 맡겨 거기서 살아있는 원리를 발굴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직접 발을 담그거나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발언하는 것을 실천적이라거나 참여적이라고 말하는데, 다케우치 요시미와 쑨거의 경우, 또 윤여일 자신의 경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고 싶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윤여일 :
음, 그게 지금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문제입니다. 일단 다케우치 요시미에 관해 말한다면, 그가 동시대의 사건에 개입할 때는 상황 속에서 유의미한 사상의 자원을 건져내겠다는 자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생각해요. 현실 사회 안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성'을 드러내려 했죠. 두 가지는 다릅니다. 문제가 현상적으로 드러난 소재라면, 문제성은 그 이면에 있는 역사적 구조, 사상적 의의와 관련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사건 속으로 뛰어 들어가 거기서 뒹굴며 그 문제의 문제성을 부각시키고 생산적 쟁점을 길어 올리려고 했습니다. 이 점이 평론가로서의 면모로 나타나죠.

쑨거 선생은 다케우치보다 학자적 기질이 강한 것 같습니다. 선생은 해당 사안과 관련해 현실적인 성패를 중시하기보다 그 사안을 인식론의 위상에서 살피려고 합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난다면 그 사건도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그 사건이 지나간 후에도 그 사건에 대한 분석이 사상사 안에서 자리 잡을 만한 요소를 지니는지, 달리 말해 다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참조항으로 삼을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며, 그것이 사상사 연구자로서 선생이 인식론의 위상을 중시하는 이유겠죠.

현실 사건을 대하는 거리감에서 둘은 차이를 보이지만, 사건에서 사상의 자원을 길어 올린다는 문제의식에서는 닮아 있습니다. 제게는 저러한 사회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 결여된 상황 속에서 '사회에 대한 책임'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사회 참여나 사회적 발언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건지 등이 궁금합니다.

윤여일 : 사회 참여적 성격을 띠는 평론은 <상황적 사고>에 수록될 몇 편에 불과합니다. 그 글에서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태의 추이를 예견하거나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는 글은 없었습니다. 상황 속에서 사고하고 사고거리를 모아두려는 시도였어요. 저는 현실 사건이 전개될 때 먼저 치고나가는 역할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유형입니다. 차라리 사건이 지나가고 남긴 흔적들 가운데 유의미하다고 보이는 것들을 주워 모으는 게 어떤 분업으로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배로 비유하면 뱃머리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맨 뒤에서 바다 위로 흐트러지는 것을 보는 데 관심이 더 많아요.

더구나 지금껏 제 공부 방식은 글을 쓰는 동안 드러나는 제 한계를 조금씩 극복, 극복이라기보다 파고드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면 쓰는 동안 다음 쓸 것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건 자신에 대한 책임이지 사회에 대한 책임은 아닙니다. 지식의 정합성, 기능성과 구분해 지식의 윤리성을 제 중심 화두로 삼은 것도 어찌 보면 지식의 기능성, 즉 사회적인 쓰임새에 다소 무신경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누가 읽는가와 관련한 물음에도 널리 읽혀 사회적 자극을 주고 싶다고 하기보다는 미래에 만날 본질적인 독자에 대한 기대로 답했던 거겠죠. 그게 지금 저의 문제라고 여기기에 당분간 글쓰기를 중지할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쓴다는 행위에 관한 불신도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고 무언가가 바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글에서 그 무력감을 토로하곤 했죠. 이명박 정권을 경험하며 그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다만 가상의 투쟁장에서 이명박을 상대하는 동안 그를 매개로 제 사고를 조금씩 벼릴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역사는 제 손 끝을 통해 제 방 안에서 흐른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얼마간 자폐적 의식 같은 건지도 모르죠. 지금 저의 문제입니다.

프레시안 : 혹시 그에 대한 돌파구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나요?

윤여일 :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했던 어느 강연에서 "만약 정권이 교체되면 루쉰을 읽고 싶고, 그렇지 않다면 루쉰과 니체를 읽고 싶다"고 발언한 적이 있어요. 루쉰은 다케우치 요시미에 관한 연구 이후로 줄곧 염두하고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니체를 거론한 건 니체가 독일인의 감각을 추궁했듯이 저를 포함한 한국인을 대해보고 싶다는 의식 때문이었죠. 그 경우라면 루쉰 역시 중국인의 근성을 파고들었으니 루쉰을 읽어야 할 다른 계기가 마련되겠죠. 그들이 자신의 사회 풍토를 비판했던 방식으로 이명박 정권, 그리고 연이어 박근혜 정권을 등장시킨 한국사회의 토양, 한국 대중의 감각을 추궁하고 싶은 거죠. 그건 바로 저 자신을 직시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시도하고 싶은 건 텐트 연극을 하는 사쿠라이 다이조라는 한 인간에 관한 르포를 쓰는 일이에요. 그분에게 다가가는 일은 저로서는 '사상의 번역과 계승'에 관한 문제의식의 극점에 있는 일입니다. 그는 도쿄, 타이페이, 베이징 등지를 전전하며 텐트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환갑이 지나셨는데, 그분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안 따라다니며 그가 남기는 말만큼이라도 줍고 싶어요.

이 작업이 제게는 일종의 사회적 책임의식입니다. 쑨거와 다케우치가 그랬듯이 '이 사람을 알았기에' 내 모어사회 안으로 옮겨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추동하는 분이예요. 쑨거와 다케우치는 그 작업을 할 분들이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도 늘어나겠죠. 하지만 사쿠라이 씨의 존재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학술계나 저널리즘을 통해 알려지기도 어려운 존재고요.

사쿠라이 씨는 지난 40년간 텐트연극을 하며 '행동으로서의 반일'을 이어왔는데, 그 과정에서 80년 광주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7, 80년대의 한국의 노동자, 작가 그리고 재일조선인 시인들에게서 사상적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는 30년 전에 쓴 어떤 글에서 "언젠가 조선에 진 빚을 갚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조선은 한국을 지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역사적 의미에서 '조선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건 '키타조센(북조선)'을 포함한 남북한 상황이기도 하고, 식민지 조선이기도 하고, 재일조선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분이 '조선(성)'을 경유해 고민하고 활동한 내용들을 지금의 한국 사회 안으로 다시 들여와 한국인조차 억압하고 있는 조선성을 문제화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분이 조선에 진 빚을 한국인인 제가 갚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저로서는 사회적 책임의 한 가지 방식입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으로 이제 어디로 갈 건지를 물으려고 했어요. <사상의 원점> 서문 마지막에 지금까지 생각의 궤적을 연장하면 루쉰에게 다가가리라는 예감으로 향한다고 썼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루쉰에게 도착하면 그곳은 어떤 극점일 텐데, 그를 떠난다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루쉰 너머는 암흑인 것 같다", "거기에 이르면 이 공부를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쓰여 있어서 뭔가 공포를 느꼈는데(웃음), 지금 말씀하신 사쿠라이 다이조가 제가 준비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건가요?

윤여일 :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게 글 쓰는 행위는 한계를 드러내는 행위이며, 그로써 다음에 내디뎌야 할 일보를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쓰는 동안 쓸 게 생깁니다. 지금껏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루쉰을 떠올리면, 루쉰을 상대한 이후 그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보이지 않아요. 쑨거 선생과 다케우치 요시미로 향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과 예감입니다. 그래서 루쉰에게로 어서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그 시간을 유예시키고 싶은 마음, 두 가지가 공존해요. 사쿠라이 다이조와의 작업은 그 이전일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제게는 여행기라는 소중한 보험이 있어요. 늘 방에만 있는 저를 두고 어머니는 "피지도 못하고 진 꽃"이라고 하시더군요. (웃음) 이렇게 지내며 저도 생각해요. 쓰기로 마음먹은 글, 써야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낼 텐데 나중에 혹시 쓰는 동안 무엇을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러울까. 역시 지구인으로 태어나 지구의 여러 풍경을 보지 못한 것, 한 사회인으로 자라나 다른 사회를 겪어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쉽지 않을까요. 하지만 쓰지 않는다면, 여행할 기회를 만들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앞으로도 여행은 갈 거고 여행기도 좀 더 써나가려고 합니다.

프레시안 : 그 말을 들으니 독자로서 안심이 돼요. 본인에게 여행기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인 것처럼 저뿐 아니라 다른 독자들도 그렇게 느낄 거라고 봐요.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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