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부키는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영향으로 포르투갈 문학을 연구했고 대학에서 포르투갈 문학을 가르쳤으며 페소아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타부키에게 글쓰기는 특별한 형태의 번역이었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우리의 정신 속에 있는 혼란스럽고 모호한 형태의 관념을 문자라는 쓰인 형식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 <수평선 자락>(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그래서 타부키의 작품은 비관적이지 않다. 작품의 소재와 내용은 비극적일지 모르지만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 뭔가를 꽁꽁 감추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변화시키려는 긍정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타계한 타부키의 작품들이 뒤늦게나마 국내에 소개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이번에 나온 안토니오 타부키 선집 <수평선 자락>(박상진 옮김, 문학동네 펴냄), <꿈의 꿈>(박상진 옮김, 문학동네 펴냄), <플라톤의 위염>(김운찬 옮김, 문학동네 펴냄)은 앞에서 언급한 타부키의 문학적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수평선 자락>은 어느 시체 안치소에 운반된 신원미상의 주검을 접한 영안실 담당 스피노가, 시체의 스냅 사진과 재킷을 단서로 신원을 추적해나가는 추리 형식의 소설이다. 추리 소설은 대개 난해한 비밀에 휩싸인 범죄가 논리적으로 서서히 해결되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작품은 죽음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죽은 자의 존재의 흔적은 진실 위에서 계속 미끄러지고 그 의미는 계속 유보된다.
작품의 이러한 특징은 그 제목 '수평선 자락'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는 수평선 자락은 우리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하학적 장소라고 말한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듯하지만 수평선은 따라오는 사람한테서 계속 멀리 도망간다. 스피노는 죽은 자의 존재했던 자락을 계속 따라가지만 존재의 비밀은 끝내 온전히 밝혀지지 않는다.
스피노는 왜 죽은 자에 대해 알려고 하느냐는 신부의 질문에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에게 사람을 진공상태에서 죽게 놔두는 것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이었다. 스피노는 사물을 이루는 하나의 질서가 있으며 어떤 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법이 없고, 우연이란 사물들 사이의 진정한 연결을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물들 사이의 진정한 연결을 파악하는 것, 죽은 자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 그것은 산 자의 의무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일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은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 <플라톤의 위염>(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김운찬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우리의 존재를 억압하고 예속하는 폭력에 대항하여 자유를 찾아가야 한다는 타부키의 삶의 철학이 담긴 또 하나의 작품이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이승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이다. 포르투갈의 리스본, 외롭고 병약한 페레이라는 아내의 죽음 이후 모든 의욕을 잃고 죽음만을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문학적 열정을 자신이 맡은 신문 문화면에 실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청년 몬테이루 로시와 그의 여자 친구 마르타를 만나면서 현실에 눈뜨고 잠재했던 욕망과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타부키는 살라자르 독재 치하의 포르투갈에서 일어나고 있는 언론 탄압과 폭력을 고발함으로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 아래의 이탈리아 현 상황을 비판하고, 큰 부정을 경험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페레이라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젠 부정을 떨치고 용기 있게 일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평선 자락>에서 작가가 추리 소설이라는 형식에 스피노자의 철학적 사유를 연결시켰듯이,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에서는 '정신의 연합체'라는 정신분석학적 이론으로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변화를 설명했다. 사람은 하나의 정신을 가진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정신이 합쳐져 있고, 하나의 지배적인 자아가 이 정신의 연합체를 지배하는데, 때때로 새로운 정신이 기존의 지배적 자아를 물리치고 새로운 지배적 자아가 되면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정신과 존재를 다층적으로 바라보고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해가는 가운데 나와 타자,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문이 열릴 수 있으며, 이러한 이해가 단지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사고는 타부키 문학 전반에 흐르는 흐름이다.
▲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이승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이 서한 말미에서 타부키는 '세상은 하나의 감옥일 수 있고 빛을 밝히기도 쉽지 않고 성냥 한 개비의 희미한 불빛에 만족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불빛, 미네르바 성냥개비 하나라도 켜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성인의 의무는 거대한 폭력과 압제 앞에 침묵하며 조용히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파솔리니처럼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추적하려고 노력하고, 글로 쓰는 모는 것을 알려고 노력하고, 오래된 사건마저도 조직해보고자 노력하고, 총체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치적 구도의 무질서하고 단편적인 조각을 함께 모아보려고 노력하고, 자의성과 광기와 신비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논리를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타부키의 문학에는 갈망, 꿈, 환상이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꿈과 환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꿈이나 무의식이 현실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에 타부키는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폭력적인 현실을 꿈이나 환상 등을 통해 파헤쳐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다른 예술가들의 꿈 또한 알고 싶어했다.
▲ <꿈의 꿈>(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타부키의 작품에는 혼란스럽게 엉켜있는 존재의 미로를 따라가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끈질긴 추구가 있다. 하지만 그 추구는 나 개인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존재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타인들과의 관계로 확산된다. 숨겨진 진실까지 파헤치며 존재의 사슬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세상을 바로 이해하고 세상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타부키는 자신이 존재의 어둠을 밝히는 미네르바 성냥개비 하나가 되길 원하며, 수많은 미네르바 성냥개비들이 켜져 어둠을 환히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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