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란 생계와 생활을 토대로 한 다양한 집단(노동조합처럼 구성원의 경계가 분명한 조직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세대나 이념 집단처럼 동질적이라 가정되는 느슨한 공동체일 수도 있다)들로 구성된다. 가족, 직장, 주민 공동체, 이익 집단, 공익 집단, 견해 집단, 취미 집단… 이질적인 여러 집단에 중첩되어 속한 개인들이, 정치 공동체 전체의 중대 문제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다수의 결정을 만들어내면서 작동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다.
▲ <정치가 떠난 자리>(김만권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
예컨대 '경제가 어렵다'는 동일한 현상에 대해, 기업 집단은 구조조정과 해고의 자유를, 노동자 집단은 사회 안전망과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한 규제를 주장할 수 있다. 각 집단의 주장은 그 집단뿐 아니라 정당과 언론을 통한 정치 활동, 다양한 시민 집단들의 동맹을 통해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공론의 장에서, 의회에서, 거리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정치 과정을 거쳐 잠정적인 승자가 갈린다. 그런데 항상 기업 집단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수 없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동료 시민들 간에 자유로운 연대가 가능한 제도와 구조, 문화 속에서 작동할 수 있다. 나의 이익에 대해 집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자유로워야 한다. 권력과 자원이 풍부한 이들은 굳이 집단을 만들지 않아도 이야기할 많은 공간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집단으로 연대해야만 자기 이야기를 사회화할 수 있다. 함께 모여 집회를 하고 파업도 해야, 언론에 보도도 되고 동료시민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나와 같은 혹은 다른 집단에 속한 이들의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쉬워야 한다. 생활의 일상 언어가 곧 정치 언어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연대하는 다양한 행위에 가능한 한 제약이 없어야 한다. 이런 구조와 제도를 갖추는 것이, 책이 주장하는 '성숙한 시민(the well-informed public)'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good person)은 사회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지만, 좋은 시민(good citizen)은 좋은 정치 체제를 전제로 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주의에서 좋은 시민은 일상의 밖에서 별도로 가치와 규범을 학습하고 계몽됨으로써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생활과 생계의 공간에서 일상의 언어로 이익과 가치를 말하고 교환하고 연대하는 과정, 일상의 삶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한 학교가 될 수 있는 정치 체제에서 가능한 것이다. 한 사람의 좋은 학생이 만들어지려면 개인의 의지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학교의 체계와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는 어렵다. 정치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구조와 제도를 갖추는 일이 여전히 더 시급하고 중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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