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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딸의 손목 자른 이유? 핏빛 동화는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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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딸의 손목 자른 이유? 핏빛 동화는 현재진행형!

[3인1책 전격수다] <그림 형제 민담집-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동화 비틀기'라는 단어는 가끔 한심하게 느껴진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동화의 익숙한 설정에 기댄 채 현대적인 설정을 양념 친 다음, "이제는 어른도 읽을 수 있다"라는 과시적인 홍보 문구를 덧붙일 뿐이다. 왜 동화 자체를 한켠으로 치워버리는 듯한 '어른스러운' 우쭐거림으로,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이라도 존재하는 듯 가정하는 걸까? 동화는, 혹은 민담은 어린이의 탈을 뒤집어쓴 채 잠깐 즐거워하고 마는 카니발에 불과한 걸까?

민담 연구의 대가이자 <옛날 옛적에>(김경연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의 저자 막스 뤼티는 "만약 어떤 것이 이렇게 결정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거나 내칠 수 있다면 거기에는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이 있다고 짐작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림 형제가 200여 년 전에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민담의 완역본 <그림 형제 민담집>(그림 형제 지음, 김경연 옮김, 현암사 펴냄)을 읽다보면 '동화는 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생각은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신데렐라, 라푼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장화신은 고양이 등의 익숙한 캐릭터들을 맨얼굴 그대로 마주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이계(異界)의 낮은 문턱을 매끄럽게 넘어간다. 매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도서평론가 이권우(한양대 특임교수), 서평가 이현우(필명 '로쟈'), <프레시안> 기자 김용언 세 명이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선정하여 같이 읽고 토론하는 자리, '3인 1책 수다'는 인터파크도서 웹진 <북앤>(☞바로 가기)에 동시 게재된다. <편집자>


▲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용언, 이권우, 이현우. ⓒ프레시안(최형락)

우리는 모두 '계몽사' 세대였다

▲ <그림 형제 민담집>(그림 형제 지음, 김경연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이권우 : 새삼스럽게 <그림 형제 민담집>(그림 형제 지음, 김경연 옮김, 현암사 펴냄)을 꺼내든 건 아무래도 어린이날을 맞아 자녀 독서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토론할 만한 책을 골라보자는 의도였습니다. 요즘에야 어린이들 책이 워낙 다양하지만, 예전엔 책이 무척 귀했지요. 아마 그 시간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없애기 위해서도 <그림 형제 민담집>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각자 어린 시절을 책과 함께 어떻게 보냈는지 고백해 볼까요?

김용언 : 책을 읽기 시작한 게 80년대 초반부터였습니다. 언니 오빠와 나이 터울이 좀 났어요. 그래서 언니 오빠가 읽던 훨씬 예전 책들을 물려받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즐겁게 읽었던 건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소년소녀 명작동화집 시리즈입니다. 빨간색 표지였어요.

이현우 : 아, 색색가지 표지가 아니었던가요?

김용언 : 제가 갖고 있던 판본은 빨간색이었어요. 정확하게는 주황색과 빨간색을 같이 사용했었는데…

이권우 : 얼마 전에 복간됐죠.

김용언 : 네, 제가 읽은 50권짜리는 아닌데, '어린이 세계의 명작' 15권짜리가 복간됐어요. 그런데 한정판이라서 그런지 '골든북'이 포함되면서 가격이 상당히 비싸더라고요.(웃음) 저도 다시 사고 싶은데 가격 때문에 고민 중입니다. 아무리 다시 돌이켜봐도 그때 그 계몽사 시리즈는 정말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익숙한 동화들만 있는 게 아니라 북유럽 동화부터 아일랜드 동화, 한국 현대 동화, 혹은 당시만 해도 '빨갱이' 국가였던 중국과 러시아의 동화들까지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50권짜리 동화책들만 몇 년 내내 주야장천 수십 번 읽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그 내용을 전부 외울 정도에요. 거기서 알게 모르게 자극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평생 내가 가볼까 말까 한 낯선 외국의 면모를 동화책을 통해 처음 엿본 경험이었지요. 몇 년 지나니까 원래 낡았던 책이 이젠 거의 읽기 힘들 만큼 너덜너덜해졌어요. 그래서 1986년쯤에 어머니가 큰마음 먹고 에이브 문고를 사주셨습니다. 동서문화사에서 막 출간됐는데, 88권짜리였어요.

나중에는 친구네 집에서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또 다른 시리즈인 에이스 문고를 발견하고는 신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에이스 문고에서 J. R. R. 톨킨이라든가 어슐라 르 귄의 소설을 처음 접할 수 있었어요. 딱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의 독서 단계는 그렇게 다들 비슷합니다. 계몽사와 에이브가 양대 산맥, 에이스는 좀 마이너했고요.

이현우 : 저도 계몽사 세대입니다. 다들 계몽사 시리즈를 한창 읽은 시기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중반까지인 듯싶어요. 전 70년대 말,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어요. 옆집을 들락거리면서 책을 자주 빌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부모님이 50권짜리 시리즈를 사주셨습니다. 제가 아까 커버 색깔을 물어본 게, 제가 가진 버전은 책의 종이 덮개가 무지개 색이었거든요. 한데 꽂아두면 색깔이 죽 이어지면서 보기에 괜찮았어요.

계몽사 시리즈를 졸업한 다음에 읽은 건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입니다. 저한테는 세계문학전집의 첫 경험인 셈이죠. 요즘도 인터넷에서 가끔 검색하면 계몽사-금성출판사, 혹은 계몽사-에이브 문고로 이어지는 특정 세대들이 보여요. 그걸 여러 번 읽고 성장한 사람들이 대개 비슷한 진로를 택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웃음)

▲ 이권우. ⓒ프레시안(최형락)
이권우 :
차이라면 우리 때는 계몽사 시리즈만 있었다는 거죠. 용언 씨가 에이브 문고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부터 이미 우리 때보다 문화적 토양이 두터웠다는 걸 뜻합니다. 전 계몽사 시리즈를 끝낸 다음부턴 독서에 대한 욕구를 주로 만화방에서 해소할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만화방 직전에는 잠깐 자유교양문고가 있었습니다. 일전에 다뤘던 <1960년을 묻다>(권보드래‧ 천정환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에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당시 학생들에게 자유교양문고를 읽힌 다음 '대통령기쟁탈전국자유교양대회'에 참가시켰지요. 전 초등학교 3학년 때 춘천에 살 때 학교에서 처음 자유교양문고를 접했어요. 그때 처음 읽은 시리즈가 말하자면 '민족사를 드높인 위대한 인물들'이었고,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라는 책 제목을 처음 본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자유교양문고 학년별 리스트를 죽 보다보니 <삼국유사><사기> 등이 상급생 목록에 포함되어있더라고요.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1년 지나면 저런 새 책들을 읽겠구나 하고 기대에 부풀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다 성남으로 이사를 갔는데, 이제 막 도시가 생겨나는 초창기 무렵인지라 다른 문화적 토양이 전혀 없었어요. 허허벌판에 벽돌집을 죽 급조해서 세워놓았을 뿐, 자유교양문고도 없고 서점도 없었어요. 그때부터 정말 만화방밖에 못 갔지요. 공간의 이동이 문화적 감수성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이현우 : 다들 계몽사 시리즈를 읽었다는 공통점이 있었군요. 그렇게 되면 이권우 선생님과 저와 김용언 기자가 같은 세대인 셈이네요.(웃음) 그림 형제의 책도 처음에 다 같은 판본으로 본 거구요. 계몽사 판.

김용언 : 계몽사가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미친 영향이 정말 어마어마했다는 실감이 듭니다.(웃음)

왜 '동화'가 아니고 '민담'인가

이권우 : 오늘 우리가 얘기할 책에는 그림 형제 '동화책'이 아니라 <그림 형제 민담집>이라는 제목이 붙었지요. 역자 김경연 선생님은 독문학 전공자 중에서도 특이하게 아동‧청소년 분야를 전공하셨습니다. 이번에 완전판으로 번역을 하셨는데, 부제에서부터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라고 못을 박았지요. 아동만 읽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이야기책이라는 점에서도 저는 아주 반갑게 읽어봤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읽은 이야기와 원본의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다들 소감이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김용언 : '옮긴이의 말'에 핵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16쪽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우리는 흔히 독일어의 '메르헨(Märchen)'을 동화로 옮기는데, 메르헨은 어원상 '이야기'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 형제의 메르헨은 작가를 알 수 없이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 즉 폴크스메르헨(Volksmärchen)을 수집하여 다듬어 낸 것이다."

왜 '동화'가 아닌 '민담'이라고 쓰는 게 맞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형제의 이야기가 근대 독일 문학의 원류가 됐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게, 다른 작가는 차치하고서라도 E. T. A. 호프만의 소설을 읽고 나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호프만의 소설은 그림 형제 이야기에서 굉장히 많은 원형을 가져왔고, 그걸 좀 더 과장하고 괴기스럽게 변형한 버전이니까요.

게다가 어제 <그림 형제 민담집>을 읽은 다음 안데르센의 동화도 펼쳐 봤는데, 거의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림 형제가 채집한 민담이 독일만의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집단적인 이야기였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 이현우. ⓒ프레시안(최형락)
이현우 :
이번에 <그림 형제 민담집>을 읽으면서, 2012년이 그림 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초판본 출간 200주년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림 형제 민담집>은 1857년 최종판(7판)을 원본으로 하되, 최종판에 수록되지 않은 모든 이야기들까지 합해 완역본 개념으로 만들었더라고요. 동화에 특별한 관심이 없더라도, 이렇게 정본 역할을 할 만한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요.

그 다음으로는 그림 형제 이야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었는데…(웃음) 흔히 아는 주요 작품들이 이 완역본에선 1/4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세 번째로는 이야기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아이들 용으로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고 심지어 가이드북이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권우 :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그림 형제 동화가 얼마나 순화된 버전이었는지 새삼스럽더라고요. 그 많은 중요한 내용들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바꾼 이유 역시 중요한 연구 대상 아닐까요. 어떤 문화적 환경 속에서 그림 형제의 원본을 훼손해서 들려줬을까 하는 지점들이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200편이 넘는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들끼리의 관련성이 보이지요. 그 모티브가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를 관찰하면, 융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림 형제로부터 보편적 무의식의 세계를 끄집어내고 싶어했던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전 어릴 때부터 익숙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죽 읽었는데요. 이현우 선생님도 앞서 얘기했다시피 가이드북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오이겐 드레버만 지음, 김태희 옮김, 교양인 펴냄)이 좋은 예지요.

먼저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를 잠깐 소개하자면, 저자는 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에요. 내용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림 형제 이야기 중 '재투성이 아셴푸텔', '장미 공주', '라푼첼', '영리한 엘제' 네 편을 분석하면서 여성 심리 체계에 대해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쳐요. 저자가 실제로 심리 상담을 진행한 예를 함께 얘기하는데, 민담과 현실의 예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결국 동화가 아닌 민담이란 말이 맞는 겁니다. 전래됐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의 동의를 얻었다는 뜻이므로, 그림 형제 이야기는 집단 무의식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를 읽으면서 거꾸로 <그림 형제 민담집>의 위대함을 알게 됐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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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오이겐 드레버만 지음, 김태희 옮김, 교양인 펴냄). ⓒ교양인
이현우 :
저도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를 보면서 단 네 편만으로도 이토록 정밀하고 다양하게 분석해놓아서 좀 놀랐습니다. 대학원에서도, 특히 문학 전공자들에게 이런 민담이 좋은 분석 텍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각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반복적인 모티브는 주로 가정의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됩니다.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매우 보편적인 요소인데, 이 이야기들을 분석하면서 자기분석 또한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죠. 전래 동화를 대하는 시각이나 태도 자체도 좀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권우 : 그림 형제 이야기가 다양한 인문적 사유로 재해석이 가능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저작으로는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신화에서 역사로>(주경철 지음, 산처럼 펴냄)도 추천합니다. 그럼 각자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얘기해볼까요.

살인 사건부터 남편과의 결별까지

김용언 :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이야기가 '노래하는 뼈다귀'입니다. 일반적인 동화 카테고리는 아니고, 일종의 도덕극이라고 해야 하나…. 질투심 많은 형이 동생을 물에 빠뜨려 죽인 다음 동생의 공로를 가로채지요. 하지만 몇 년 뒤 어떤 목동이 동생의 뼈다귀를 발견하자, 그 뼈가 형의 악행을 폭로하는 노래를 시작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읽기엔 끔찍한 내용입니다. 존속 살인에다가 유령이 나타서 보복하는 얘기니까요.

'노래하는 뼈다귀'를 읽고 딱 떠올랐던 게 에드거 앨런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였어요.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시체를 마루에 묻었는데, 경찰이 집 안에 들어오자 결국 시체의 심장 박동 소리에 시달리다 살인죄를 자백하고 맙니다. 이런 이야기의 원형이 '노래하는 뼈다귀'가 아니었나 싶은 겁니다. 재미있는 건 보통 아시아 쪽 전래동화에는 문자 그대로의 귀신이 등장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여기서는 신체의 일부가, '신체 없는 기관'이 전체로 기능하면서 보복한다는 차이점이 흥미로웠어요.

두 번째로는 '파란 등잔불'이라는 작품인데요. 어제 제가 <안데르센 동화집>(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을 들춰봤을 때 '부시통'이라는 동화가 있었어요. '파란 등잔불'과 거의 유사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도 그 동화 읽으면서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에 재독하면서는 끔찍하기까지 했어요. 그림 형제 버전에서는 병사가 몽유 상태의 공주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서 하녀로 부리며 학대하고, 안데르센 버전에서는 매일밤 몽유 상태의 공주의 뺨에 키스하지요. 큰 틀 자체는 영리한 병사가 못된 왕을 이긴다는 줄거리지만, 그 영리함을 무기로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를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이 서브 내러티브가 제게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 김용언. ⓒ프레시안(최형락)
<그림 형제 민담집>의 또 다른 이야기 '닳아빠진 구두'의 경우엔 자진해서 지하 세계로 내려가 남자들과 밤새도록, 구두가 닳아 없어질 만큼 춤을 추는 공주들이 나오는데요. 이럴 경우에도 결국 '영리한' 남자가 그 비밀을 폭로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한 공주들이 벌을 받게 됩니다.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가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되는 민담들은 정말 조심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이권우 :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가 바로 그런 여성의 착취 문제를 다뤄요. 특히 '영리한 엘제' 이야기를 분석하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영리한 엘제'라고 불리면서 성장한 엘제가 한스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곡식을 베러 들판에 나갔다가 일은 안하고 잠을 자버리죠. 그걸 본 한스가 엘제 주변에 종을 단 그물을 씌워버리고요.

저자 오이겐 드레버만에 따르면, '영리한 엘제'는 아버지의 통제라는 심리적 압박 속에서 영리한 척 굴며 자란 여성이 또다시 아버지와 닮은 남성과 결혼하고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 광인으로 추방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심리적 파국의 드라마에요.

그림 형제 이야기에는 대부분 비약이 존재합니다. 어느 부분에 이르면 이야기가 탁탁 튀거든요. 그게 동화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 심리의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비약이나 도약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다른 민담과도 관련지어 살펴봐야지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립니다.

오이겐 드레버만은 그림 형제 이야기를 통해 분석한 여성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해답도 줘요. 성숙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이해와 사랑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많은 민담들이 결혼으로 끝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모험과 어려움을 겪고 나서 결혼에 이르는 주된 내러티브가, 심리적인 성숙을 위한 사랑의 반려자를 찾는 과정이라는 거지요.

이현우 : '영리한 엘제'의 마지막이 아주 재밌어요. 방울 달린 그물을 쓴 엘제가 "난 나일까, 아닐까?"라고 헛갈리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스에게 "안에 엘제 있어요?"라고 물어보자 한스는 시침 뚝 떼고 "엘제는 안에 있소"라고 답하죠. 그러자 엘제는 "오 하느님, 그럼 난 내가 아니구나"라며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여느 동화에는 이런 파격적인 결말이 없죠. 보통은 문제가 해결되면서 해피엔딩이 찾아오지만, 여기선 엘제가 떠나 버립니다. 이것 역시 동화의 관례라고 가정한다면 엘제의 떠남 역시 해피엔딩으로 읽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묘해지죠. 엘제가 부모나 남편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찾았구나, '영리한 엘제'라는 정체성에서 해방됨으로써 그 자유를 찾았다고 해석해야 하는 겁니다. 오늘날 시각에서 봤을 때에도 아주 도발적인 결말입니다.

김용언 : 그 마지막 장면에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났습니다.(웃음) 자꾸 자신의 키가 줄었다 커졌다 하자 혼란에 빠진 앨리스가, "넌 누구냐?"라는 쐐기의 질문에 "글쎄요, 선생님. 지금 현재는 저도 모르겠군요. 오늘 아침 제가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제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뭔가 여러 번 변했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누군지 도대체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는 그 장면이요. '나'라는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서 시작되는 혼란이 어린 시절과의 작별이라고 한다면, 저 역시 '영리한 엘제'가 해피엔딩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시는 부모님이나 남편의 믿음에 그대로 부응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이와 어른 사이의 끝없는 긴장 관계

이권우 : 그림 형제 이야기는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지요.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중에 <헨젤과 그레텔>이 있었지요? 혹시 추천하고 싶은 다른 영화가 있나요.

김용언 : 아, <헨젤과 그레텔> 같은 경우는 요즘 할리우드에서 많이 사용하는 컨셉트로 만들어졌더라고요. 영화의 부제가 '마녀 사냥꾼'인데, 어릴 때 학대당한 헨젤과 그레텔이 어른이 되어 마녀를 잡으러 다니는 사냥꾼이 됩니다.(웃음) 동화를 현대적 성인 버전으로 바꿔서 판타지 블록버스터로 응용한 거지요.

▲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1999) ⓒ오키우라 히로유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 형제 기반 영화로는 <인랑>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각본을 맡은 작품인데요, '빨간 두건'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1960년대 전공투의 투쟁을 연상시키는 반정부세력과, 이들을 제압하는 특수경찰(일명 '인랑(人狼)', 즉 인간늑대) 간의 갈등을 다룹니다. 반정부세력의 일원인 '빨간두건단'에 속한 소녀와 특수경찰관이 비극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보통 '빨간 두건'이 영화화될 때는 소녀와 낯선 남자간의 성적 긴장을 극대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인랑>에서는 짐승과 결별할 수 있는 인간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로 방향을 비틉니다. 좀 특수한 경우였지요.

이현우 :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네요. 원본에서는 아이들을 버린 사람이 친어머니였는데, 그 사실이 아이들에게 너무 충격적으로 받아 들여질까봐 결국 의붓어머니로 수정되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김용언 : '헨젤과 그레텔'과 '어느 불쌍한 소년의 죽음', 그리고 이 책에는 포함 안 되었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를 같이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 형제가 원래 '피리 부는 사나이' 민담도 채집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아베 긴야의 역사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양억관 옮김, 한길사 펴냄)를 보면, '피리 부는 사나이' 같은 경우 하멜른이라는 도시의 옛 기록에 흔적이 남아 있는 만큼 다른 민담과는 다르게 증거가 남아있다는 전제를 세웁니다. 그에 따라 민담의 전승 과정과 실화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옛 기록들을 바탕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이 실종된 연도를 추정할 수 있고, 그 시기에 관련된 각종 사회상 자료를 찾다보면 아이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가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그때는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없었고 그저 작은 노동력으로만 바라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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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아베 긴야 지음, 양억관 옮김, 한길사 펴냄). ⓒ한길사
결국 아베 긴야의 책과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당시 아이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노동에 시달렸고 사회에서 쉽게 버림받았는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헨젤과 그레텔'의 아동 유기라든가 '어느 불쌍한 소년의 죽음'의 아동 착취 역시 현실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어요.

이현우 : 아까 <그림 형제 민담집>이 보편적인 가정의 갈등 구조를 다룬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시기는 지금과 비할 수 없이 아이들의 생사여탈권이 부모의 손에 달려 있었겠지요. '손이 없는 소녀' 이야기도 그런 식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악마에게 딸을 내주어야 하는 아버지가 "얘야, 내가 너의 두 손목을 자르지 않으면 악마가 나를 데려가겠다는구나. 나는 겁이 난 나머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고 고백하자 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버님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저는 아버님의 자식인 걸요." 물론 동화적인 해법으로 결말에선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새 손이 자라났다고 하지만, 본문으로만 보자면 따로 각색하지 않아도 이게 잔혹동화다 싶지요.(웃음)

김용언 : 이 잔혹한 이야기들의 해피엔딩은 갑자기 성급하게 단 몇 줄로만 등장합니다. 직전까지의 고난은 엄청나게 자세하게 묘사하다가 "두 사람은 왕국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달랑 한 줄로 끝나는 패턴을 보노라면, 뭐랄까, 일종의 후렴구를 따다 붙인 느낌이에요.(웃음) 그 직전까지가 진짜 본론이고, 맨 마지막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그저 결말용 관용구가 아닐까. 그러니까 동화를 읽을 때 뒷부분은 따로 떼어놓고 여기까지만 읽으면서 분석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권우 : '라푼첼'의 경우는 어떤가요? 어머니가 딸에게 자기 소망을 투여하고, 딸을 세상과 격리시킨 채 오로지 자신의 소유물로 삼는 얘기인데요. 드레버만이 이 이야기도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에서 자세하게 분석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이를 무척 원하던 어머니가 마녀의 정원에 있는 상추를 먹은 다음 딸을 낳지요. 라푼첼이라는 이름 자체가 상추라는 뜻이고요. 흥미로운 것은 엄마와 마녀가 동일인물이라는 분석이에요. 그리고 마녀가 라푼첼을 데려가다 탑에 가두고 키웁니다.

아이에 대한 전권을 전부 어머니가 갖는 셈인데요, 결과적으로 딸에 대해 어머니가 갖는 집착과 소유욕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아이한테도, 어머니한테도 교훈을 안겨주고 성찰을 위한 거울 역할을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 그대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인 셈이지요.

과연 어린이는 그림 형제의 민담을 좋아할까?

이권우 : 이쯤 되면 그림 형제의 원본을 아이들에게 읽혀도 괜찮을지 의문이 듭니다.(웃음)

이현우 : 아동문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동문학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연구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 관점에서는, 아이들이 이런 원본을 읽더라도 100퍼센트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해되기 전에 뭔가 공감되고 전달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민담이 우리의 무의식을 형상화한 이야기라면,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받아들이는 해법 자체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을까요. 이유는 잘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느끼고, 뭔가 모르게 배우고 받아들이는 차원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권우 : 한번 정리해볼까요. <그림 형제 민담집>은 심리 분석적 차원으로 읽을 수 있고 역사적 상황에 비춰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장르의 원형이 다 여기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요. 지금껏 어린이용 책으로만 알려져 있던 그림 형제의 민담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읽어볼 수 있게 된 것도, 우리 사회의 문화 지층이 넓어졌다는 의미겠습니다.

이현우 : 무엇보다 '그림 동화'가 그림이 곁들여진 동화가 아니라 '그림 형제'가 채집한 이야기라는 인식이 확실해질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웃음) 긴 시간 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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