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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딛고 성공한 멘토들? 진짜 '천재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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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딛고 성공한 멘토들? 진짜 '천재들'이 왔다!

[프레시안 books] 정혜윤의 <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PD에게 <사생활의 천재들>(봄아필 펴냄)이란 책을 받은 것은 서울도서관 행사 때였다. 그는 책을 건네며 공부방 아이들이 꼭 읽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이라니? 동화책 한 권 읽기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정혜윤 PD의 책을 읽힌다고? 나는 그가 우리 공부방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나 역시 그에 대해 잘 몰랐다. 그가 독서와 여행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냈다는 것을 안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책들을 읽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글은 몇 년 째 신문에 연재되는 책에 관한 칼럼이 전부였다. 신문에서 읽는 그의 칼럼은 덤덤한 나의 글쓰기와는 무척 달랐다. 스타일이 강하고, 감각적이고, 지적 유희가 많고, 화려했다. 동화책 한 권 읽기도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들이 과연 그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책을 펴들었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사생활의 천재들, 내 꿈의 주소'를 읽었을 때만해도 이번 책 역시 책에 관한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 <사생활의 천재들>(정혜윤 지음, 봄아필 펴냄). ⓒ봄아필
그런데 뜻밖에도 <사생활의 천재들>은 사람 이야기였다. 첫 번째, 박수용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게 뭐지?" 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공부방 대학생들을 떠올렸다. 윤태호 작가와 김산하 선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나는 그 책을 대학생들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마침 그날 공부방에서는 공부방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창작집단인 '도르리'가 인형극 책 더미 북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공부방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맨 채, 더미 북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청년들에게 <사생활의 천재들>을 이야기했다.

먼저 어린 나이에 농부이자 소장수인 아버지를 따라 소몰이꾼을 하게 된 11살 소년의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사내아이가 밤새 혼자서 두세 마리의 소를 몰며 합천 장에서 고령장으로, 고령장에서 거창장으로, 거창장에서 다시 무주장으로 오갔단다. 그리고 그 소년 소몰이꾼은 자라서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다. 그가 1995년부터 시베리아 호랑이를 찾아다니며 호랑이를 담은 장면은 1000시간이고, 육안으로 본 시간이 5000시간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호랑이를 찍기 위해 한 평짜리 지하비트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소금 뿌린 주먹밥과 얼어붙은 사과를 먹으며 휴지를 적셔 이를 닦으며 씻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불을 켜지도 못한 채 살았다.

무엇 때문일까? 스스로 처음에는 아무도 찍지 못하는 호랑이를 카메라에 담고 싶은 공명심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그 한 평짜리 비트에서 몇 달을 지내고 시베리아를 헤집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말겠다는 목적보다 호랑이와 함께 하는 그 순간에 있었던 것 같다. 한 평 비트 안에서 만나는 평화와 고독, 거대한 자연을 보고 싶은 욕망과 낯익고 편안한 관계 속에 있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의 갈등, 그 과정을 견뎌내고 만나는 호랑이 중의 호랑이 하쟈인, 하쟈인을 만나는 순간 느끼는 보잘 것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 그리고 비로소 자연과 하나 된 느낌. 아마도 박수용 감독을 살아있게 하는 시간이 그 시간이 아닐까?

정혜윤 작가는 독서광답게 인터뷰 곳곳에 책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 낯선 그의 글쓰기가 내게 울림을 준 것은 바로 나보코프의 인용문 때문이었다.

"체호프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자꾸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넘어지는 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불행하고 다른 이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형제나 가까운 지인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머나먼 타국 흑인들, 중국의 막노동자, 먼 우랄에 사는 노동자의 아픔을 이웃이나 아내가 겪는 불행보다 더 쓰라린 도덕적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

위의 인용문이 이 책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걷다가 무언가에 자꾸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일 거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영화감독 변영주, 만화가 윤태호, 야생영장류학자 김산하, 청년운동가 조성주, 사회학자 엄기호,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천문대장 정병호의 공통점은 그들이 자기 영역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린 이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렇고 그런 유명인들, 전문가들의 이야기인가 의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윤태호 작가의 이야기는 자칫하면 입지전적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미대는커녕 다른 대학도 나오지도 않은 그가 허영만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스스로 작가가 되기까지의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동안 나는 공부방 아이들에게 성공담이나 처세술에 관한 책은 권하지 않았다. 온갖 역경을 딛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자괴감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혜윤 작가는 윤태호의 이야기를 "온갖 역경을 불굴의 의지로 뚫고 마침내 성공했다"로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온갖 어려움을 많은 도움을 받고 간신히 뚫고 나왔으며 아직도 두려움과 불안으로 떨린다"로 읽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공부방 청년들에게 윤태호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줄 수 있었다.

윤태호 작가는 '어린선'이란 피부병을 앓았다. 그는 거울을 보며 항상 "난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태어났을까"하고 물었다. <이끼>와 <미생>으로 성공한 만화가가 된 지금도 종종 가난과 건강하지 못한 자신이 억울하고 분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지인들을 통해 그 배려와 존중보다 열등감과 원망으로 보냈던 십대를 후회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제는 거울을 앞에서 '난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라 묻고 난 뒤, 이런 몸으로 태어나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만화가로 뭔가 기여하게 된다면 그 것은 자신이 경험한 마이너의 세계와 관련된 일일 거라고 했다.

마이너의 세계에 관련된 일이라는 말에 또 가슴이 또 뛰었다. 내가 가장 최근에 공부방 청년들에게 권한 책은 정지아 작가의 <벼랑 위의 꿈들>(삶이보이는창 펴냄)이었다. 거대한 자본에 의해 벼랑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곧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나는 헛된 꿈을 꾸기보다 현실을 정확히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너도 언젠가는 잘 될 거야. 꿈을 이룰 거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책에 인용된 홍기빈 선생의 말처럼 "있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개인의 삶, 집단적 삶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공부방에서는 특수교사가 되기를 꿈꾸며 임용고시에 매달리는 아이에게, 이름 난 애니메이터가 되기 위해 하루에 수 십, 수 백 장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아이에게,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꿈꾸는 아이에게, 방송국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유명한 밴드의 드러머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무엇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왔다. 성공하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며, 현실의 문제를 그때그때 맞서고 개선해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아직 창창한 미래를 가진 아이들에게 체념과 포기를 가르치느냐고 비난했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 노동자가 되는 것이,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 왜 체념이고 포기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은 희망과 꿈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말해주었다. 진짜 희망은 나 혼자 성공해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미래 때문에 유보하지 않고, 지금 함께 서 있는 사람과 손을 잡는 일이라고 말이다.

<사생활의 천재들>을 읽으며 무엇이 되었으나 그 무엇이 되었다는 것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느냐에 더 집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책을 읽는 동안 나와 참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던 정혜윤 작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을 임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깊이 동감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공부방의 가난한 청년들이 <사생활의 천재들>을 통해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산하 선생이 긴팔원숭이를 관찰하기 위해 밀림에서 원숭이와 경주를 하고, 넘어지고 길을 잃어가며 긴팔원숭이에 다가가는 법을 느꼈듯이, 그래서 드디어 점점 긴팔원숭이의 움직임을 예측하게 되고 더 오래 지켜보고 살필 수 있게 되었듯이 그들도 그렇게 자신이 만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 길을 떠나고, 그 길에서 자신과 마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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