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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그깟 놈' 아닌 이유? "굶어도 계속되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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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은, '그깟 놈' 아닌 이유? "굶어도 계속되는 드라마!"

[권력 세습과 예술 정치] <극장국가 북한> 저자들에게 듣다

책이 인기를 끌면 그 책의 저자는 기쁘기 마련이나 동시에 씁쓸한 마음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책에 대한 수요가 그 책이 지적하는 현실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경우다. 지난 2월 12일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한 날 출간된 <극장국가 북한>(권헌익·정병호 지음, 창비 펴냄, 원제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은 날로 심각해졌던 한반도 긴장 상황과 함께 2개월간 꾸준히 이목을 끌었다. 저자들은 "이런 관심이 혹시 '극장'이라는 말이 주는 묘한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북한을 다룬 많은 책들이 국제정치학 서가에 꽂힌 것과 달리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베트남 전쟁의 추모 문화를 연구한 <학살, 그 이후>(유강은 옮김, 아카이브 펴냄)로 잘 알려진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케임브리지대 인류학 박사), 그리고 대북 인도적 구호 활동, 탈북 청소년 교육 사업 등 현장에서의 실천을 계속해 온 정병호 한양대학교 교수(일리노이대학교 인류학 박사) 등 두 명의 인류학자다.

이들은 북한이 경제적 곤궁과 외교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에 '과시하는' 거대한 공공예술 행사, 대형 기념물 등 상징을 분석했고 이것이 권력의 정통성 강화, 이념의 전파를 위해 고도로 고안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저자들은 이렇듯 과시적 상징에 온 힘을 기울이는 북한의 모습을 클리퍼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발리 연구에서 등장시킨 '극장국가'란 그릇에 담아내는데, 이는 연구의 질문 그 자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무엇인가? 부제인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다. 막스 베버는 전통적 권력, 관료적 권력과 구별되는 '카리스마 권력'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북한은 어떻게 안정적으로 카리스마 권위의 3대째 세습을 이룰 수 있었을까? 책에서 우리는 이 질문을 '극장국가'라는 개념의 도움을 받아 함께 살펴보게 된다.


▲ <극장국가 북한>(권헌익·정병호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같은 민족이나 그것을 인지하고 살아본 경험이 없는 많은 독자에게, 북한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국가'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곧바로 마주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 북한에는 카리스마 권력의 독특한 마력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잘 아는 대단히 능란한 정치 지도자가 있었다. (…) 북한은 현대 세계에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또 하나의 나라'일 뿐이라는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은 옳다." 저자들의 오랜 고민과 연구가 담긴 이 책은 '이상한 국가를 고치고 말겠다'라는 북한에 대한 거세지는 강박적 시선의 물줄기 위에, 그 흐름을 바꾸는 작은 돌을 얹어 놓는다.

지난 4월 12일 오후 연세대학교 연희관에서는 이 책의 주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한 '사회인문학 저작 비평회 Ⅱ <극장국가 북한>의 이론과 의미'라는 포럼이 열렸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사업단의 주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권헌익, 정병호 두 저자가 직접 참여해 토론자인 이우영(북한대학교대학원), 김영선(연세대 국학연구원)은 물론, 함께 한 학자·학생·시민들과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오간 열띤 비평의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해 싣는다. 저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일부 새롭게 만들거나 각색했고, 진행 순서를 다소 바꾸었다. 행사의 사회는 김성보 연세대 국학연구원 부원장(사학과 교수)이 맡았다. <편집자>


"여기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극장국가 북한>은 북한과 관련해 실천과 학문을 함께 해 온 정병호, 북한 문제를 사회주의 역사의 보편적 시각으로 접근해 온 권헌익 두 저자가 일궈낸 뜻깊은 연구의 결과다. 두 사람이 북한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연구를 함께 하게 된 경위를 듣고 싶다.

정병호 : 개인적으로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북한 어린이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이 그 시작이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일본문화론 수업을 하던 당시, 근처에서 '우리 어린이집'이라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활동을 했었다. 그때 북한 어린이들의 발육·성장 장애 문제를 접하면서 너무 심각하다 싶어 구호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분단 체제의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북한을 공부하게 되었다. 분단 체제가 나를 단련시켰다고 할까.

구호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베이징 등에서 노련한 전문가들을 만났고, 여러 협상의 기술과 접하고 거기에 당해보기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다 처음으로 평양에 가게 되었을 때 많은 충격을 받았다. 탁아소에서 아이들이 '우리는 꽃봉오리, 해님을 보면 따사롭고 복에 넘친다'는 노래를 진심으로 눈물겹게 부를 때 '여기선 뭔가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를 직감했다. 인류학자로서 정말 관심을 갖고 파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때그때 걸려 있는 실천적인 과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데이터를 모으면서 작업을 연기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는 어린이들의 발육 상태와 영양 문제를 제대로 조사하기 위해 옌벤 지역으로 갔고,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북한을 탈출해 오는 아동들의 생존 조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직접 보고들을 수 있었다. 거기서 베이징이나 평양에서 접한 북한과는 전혀 다른 결의 북한을 만났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평양과 마찬가지의 '해님과 꽃봉오리' 정신은 관철되고 있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아이들을 끝까지 도와주지 못하고 떠나오는 데 대한 커다란 죄책감이 있었다. 여기 서울에서는 크게 실감나지 않겠지만 비행기로 고작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그곳에서는 정말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생존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보고도 아무 도움을 못 준다는 사실, 나만은 언제든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다른 현실로 순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비참하고 또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던 중 옌벤 쪽에서 만난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2000년 무렵엔가 듣고, 하나원(북한 이탈 주민들의 사회 정착 지원을 위하여 설치한 통일부 소속기관)에다 '하나둘 학교'를 세우게 됐다. 하나원이라는 이름에 담긴 통일부의 지향점이 '하나가 되자'는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는 '하나둘 학교'를 통해 둘이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전혀 다른 사회화 과정과 의미 체계 습득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에 국가를 바꾸고 과거를 폐기하여 '하나'가 되라는 요구가 얼마나 큰 억압이고 폭력인지 아이들을 보며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은 하나여도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경험을 가져가자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그렇게 탈북 청소년 교육 사업을 하면서 탈북자 관련 다큐멘터리나 미디어 보도에 노출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다큐멘터리 중 하나가 <서울 트레인(Seoul Train)>(짐 버터워스·아론 루바스키·리사 슬리스, 미국, 2004년)이라는 작품이다. <서울 트레인>은 옌벤에서 몽골에 이르기까지 탈북자들의 탈출 전 과정을 밀착 취재하면서 그 모든 어려운 현실과 그들의 인권을 둘러싼 정치적인 문제들까지 다룬다. 이 작품을 만든 미국 작가들은 인도적 지원 단체나 탈북자 정치의 비인도성에 대해 알고 있었고, 미국 하원이나 유럽 연합 인권 위원회 등 국제 사회에서 탈북자를 어떻게 이미지화하는지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시각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 ⓒRowman & Littlefield
우리 내부에도 북한에 대한 왜곡이나 굴절이 있지만, 남북관계를 결정하는 실질적 힘을 가진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그것보다 더한 발췌, 왜곡, 이미지 소비가 만연하고 있다. 이런 것을 우려하던 차에, 권헌익 교수가 브뤼셀에서 이 작품을 보고 나를 찾아주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남북 문화 통합 연구 때문에 몇 번 만나 뵌 적이 있었다. 남북 문화 통합 연구는 조한혜정 교수(연세대학교)가 1990년대에 시작해서 오늘 토론자로 나온 이우영 교수, 정진경 교수(충북대학교), 권혁범 교수(대전대학교) 등도 참여했던 연구다. 나도 구호 활동을 하면서 점점 북한이 남한 사회에서 거론되는 방식으로 아주 예외적인 집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 국제 사회주의 역사의 흐름 속에 하나의 유형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포스트 소셜리즘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면서 권혁범 교수와 함께 쿠바나 헝가리 등의 국가에 찾아가 조사를 해봤는데, 포스트 소셜리즘 연구가 결코 '사이드'로 할 만한 게 아니라는 사실만 절실히 깨닫고 돌아왔다. 세계사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전문가와 결합되지 않으면 결실을 맺기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일단은 접고 있던 차에 권헌익 교수의 연락을 받게 됐다.

권헌익 교수는 영어권에 퍼져 있는 남북관계 관련 정보가 대단히 편향되고 왜곡되어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학술 연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 나도 이에 공감해 우선 영어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지난해 라는 결과물로 나왔고, 이를 번역하여 올해 <극장국가 북한>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다.

기어츠와 베버의 눈으로 들여다 본 극장국가

-제목에 나오는 '극장국가'가 북한을 바라보는 틀로 주목받고 있다. 이 극장국가론은 어떠한 배경을 갖는가. 또 막스 베버의 정치 이론도 주요한 참고점으로 제시되는데, 어떤 지점에서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아울러 이런 사회과학적 이론에 기반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이 북한 연구에서는 상당히 드문 편인데, 이것이 기존의 북한 연구와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학문적으로 어디쯤에 자리매김 되는지 듣고 싶다.

권헌익 : 정병호 교수는 동아시아 차원, 그리고 실천적 사고에서 북한을 연구해 왔고 그래서 북한 관련한 실증적 지식이 많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나 역시 주로 시베리아, 베트남 지역과 관련한 비교 사회주의 체제 연구를 계속했기 때문에 북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인류학자인 저자 둘은 북한을 조금 더 현대 사회 이론, 정치 이론, 권력 이론 속에서 보편화하는 작업으로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책을 쓰다 보니 어떤 구도가 잡히게 됐다. 내 생각에 그 구도란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자로서 역사에서 배우는 입장에서 집필하는 한편, 역사학에서 비교적 강조를 덜 하고 어려움을 겪는 개념화에 대한 사회과학적 틀을 제시하려 했다고 할까. 두 분야가 만나면 북한 연구에 어떤 진전이 있을 거라고 봤다.

저자 둘은 작업을 시작하면서 먼저 기존의 북한 연구에서 등장하는 '가족 국가론'과 '유격대 국가론' 등 역사학자들이 제시했던 틀을 가지고 읽고 배우고 토론하게 된다. 거기에서 머물 수는 없었고,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 틀을 이 가족 국가론, 유격대 국가론과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여기서 들여오는 중요한 이론가 두 사람이 클리퍼드 기어츠와 막스 베버다.

▲ 클리퍼드 기어츠. ⓒccs.research.yale.edu
인류학자라면 누구나 마주치는 이름인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 1926~2006)는 20세기 미국의 상징인류학과 해석인류학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기어츠는 1970년대 인도네시아 발리 네가라(왕국)의 사례를 연구했고 여기에서 겪은 탈식민지 국가의 상징 권력에 대한 고민을 '극장국가'라는 틀로 표현했다. 어떤 체제, 상황에서는 권력 창출에 있어 물리적 강제가 아닌 화려한 의례나 공연 등 상징과 과시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예술이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서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가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인민들의) 노동이자 국가 경영의 일환, 정치의 중앙으로 들어오는 의미에서의 예술이다. 이는 국가의 목소리를 인민에게 전달하고 인민이 국가의 목소리를 인지·체득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국민과 국가를 통합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중요하게 들어온다. 기어츠는 인류학사에서 굉장히 베버적인 사람이었고 또한 베버를 넘어서려 무진 애를 쓴 사람이다. 극장국가론에도 베버의 영향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 베버는 물리적 힘을 권위로 전환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상정하고, 각각의 권위 형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된다고 이해했다. 그가 비교하려고 한 대표적인 세 가지 전형의 정치적 권력은 카리스마 권력, 전통적 권력, 합리적-관료적 권력이고, 그 중에서 특히 카리스마 권력에 관심을 가졌다. 이 카리스마 권력 이론이 극장국가 이론, 그러니까 예술-정치의 관계 혹은 예술정치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과 거의 동등하게 (중요한 요소로) 이 책에 들어오게 된다.

전통적 권위 혹은 법-관료제 등 우리가 현대 국가의 권위 형태로 이해하는 시스템들이 위기 처했을 때, 마치 호랑이가 뛰어 오르듯 카리스마적인 인물 하나가 역사의 지평으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권위를 창출하려고 한다. 책에서 우리는 이러한 카리스마 권위를 20세기 역사에 있어 중요한 권력 형태로 보았다. 베버는 이러한 카리스마 권위에 매우 주목하면서도 그것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체제로서 지속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고 봤고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권력 형태로 여겼다. 이 권위는 리더(카리스마적 인물)와 추종자 사이의 마술적 관계에서 성립되기 때문에 특정한 위기 상황이 끝나면 사라지고, 결국 전통적 권위나 제도적 권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전반에 걸친 실제 역사의 과정이었으며, 베버의 이론상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리는 20세기 역사의 창출물인 북조선이라는 국가가 체제의 모든 힘을 기울이면서 의식적으로, 또 나름대로 카리스마 권력의 비영속성을 극복해 냈다고 보았다. 물론 북한의 지도자가 일부러 막스 베버의 이론을 읽고 '이걸 극복해 보자'고 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웃음). 여하튼 비교사회주의 연구에 등장하는 '정치가 예술이고 예술이 곧 정치'인 완벽한 합치의 예에 베버 식의 사회과학적 시각을 들여오고 다시 북조선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주체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기어츠를 들여오면서, "북한이라는 극장국가가 비영속적이라 여겨졌던 카리스마 권위를 통해 어떻게 영속적인 권위를 이루게 되었나"란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정리한 셈이다.

앞서 이 책의 구도에 대해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대화'라고 말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이 인문-사회과학을 연결하는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기존의 역사학적 연구에서 제시됐던 북한을 정의하는 틀을 중요하게 가져오면서, 거기에 인류학자에게 익숙한 상징과 정치라는 틀을 가지고 사회주의 혁명 국가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전반적인 중요성을 비교 사회주의학적인 차원으로 다루었다. 또 이것이 막스 베버의 권력 유형론이라는 사회과학의 중요한 틀과도 만나게 된다.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은가? 현실을 보라!"

-책을 쓰면서 저자들이 가졌던 주된 고민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어판이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계속 북한 문제로 시끄러운데, 이러한 상황을 보며 드는 고민 역시 궁금하다. 그것을 책의 메시지와 연결 지어 이야기한다면?

권헌익 : 책에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특정성을 강조하는 현대 인류학의 상대주의적인 접근 방식과 보편 이론화를 상기해야 하는 현대 사회과학의 접근 방식이 북한이란 주제 앞에서 첨예하게 부딪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대 인류학과 기존의 북한 연구에서 강조되는 내재적인 접근 방식은 어떤 체제나 시스템에 대해 좋다 나쁘다, 잘 됐다 못 됐다와 같은 도의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그 자체의 의미나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안으로부터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게 나의 학문 분과에서 토대적인 경향이 있다 보니 거기에 익숙했는데 이번 연구를 전개하면서 과연 거기에서 끝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민족에 있어서나 국제적으로나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문제인 북한 문제에 대해서 그냥 상대주의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참고로 정병호 교수는 상대론 쪽에 약간 더 가깝고, 나는 상대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를 하면서 약간 개종을 한 상태다. (웃음) 성향이 비슷하지만 이 책을 쓰면서 조금 달라졌던 두 사람이 만난 책이라고 할까. 그런 면이 재미도 있었다.

정병호 : 이 책의 한국어판이 우여곡절 끝에 올해 2월 12일에 나왔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웃음) 그래서 출간된 주말에 거의 대부분의 일간지에서 전면 혹은 반면을 털어 서평을 실어주었고 곧 2쇄를 찍었다. 남북 간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책이 잘 나가는 것을 반가워할 수만은 없더라. 책을 사는 분들이 정말로 책을 얼마나 읽는지는 모르겠다. 보시다시피 이 책 표지가 참 화사하다. 이런 표지와 '극장 국가'라는 부분이 우리에게 핵실험과 전쟁 위기라는 절대적 불안감을 해소시켜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대가 끝나면 막이 깨끗이 내리고 우리는 무사히 현실로 돌아오게 될 거라는 숨은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극장으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저자들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현실을 가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가상 또한 너무나 쉽게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도 악몽처럼 기어츠가 쓴 <네가라>의 첫 장을 읽는다. 그는 한 왕국의 최후의 날을 그리고 있다. 네덜란드 군인이 왕국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 그저 항복만 하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수 있을 때 왕은 화려하게 장례식 행렬을 만든다. 곧 네덜란드 군인들이 무차별로 쏘아대는 총탄 속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자살적인 행진을 하는 것으로 왕국은 운명을 마감한다.

<네가라>를 다시 볼 때마다 이 극장국가의 현실이 실제 우리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한 순간 뒤바뀔 수 있는 현실 위를 걷고 있으면서도 북한과의 관계와 그 운명을 완전히 남의 손에 맡겨놓고, 체념과 불감증과 무기력에 빠져있는 이 상황이야말로 초현실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북한 문화론 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공포감을 유포시킨다는 악평을 듣고 있다. (웃음) 그러나 제대로 바라보면 우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인류학 연구'에 '이것'이 없는 이유?

-북한에 대해서는 좌우 할 것 없이, 연구자-일반인 할 것 없이 어떤 도덕적 강박증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느니,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느니 하면서 윤리 교사 행사를 하려고 한다. 이렇게 북한에 대한 합리적 논의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두 저자의 유의미한 연구 결과는 시도 자체로서 굉장히 소중하다. 또한 북한 연구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국제정치학에만 갇혀 있는데, 그래서 인류학적인 시도인 <극장국가 북한>이 더욱 각별하다. 몇 년 전 통일연구원에서 북한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보고서를 낸 것이 국가 기관에서 욕망을 다룬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 게 21세기 한국의 현실이다. 앞으로는 이런 인류학적 연구를 비롯하여 심리학적인 연구도 많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아쉬움에 질문을 섞어 세 가지 정도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구성원 쪽 연구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북한 연구의 원천적인 난점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또 국가론이니까 권력 주체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주민들에 좀 더 주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시도 자체가 주민들을 수동적으로 그릴 가능성이 있다. 동의기제를 논할 때 비로소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는데, 사실 세뇌하고 동의는 다른 것이지 않나. 정병호 교수는 평양도 자주 방문하고, 이제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탈북자도 많다. 두 저자 모두 인류학자인 만큼 그 장점을 발휘해 인류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심층면접 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았겠나 싶다. (토론자 이우영)

권헌익 : 중요한 지적이다. 일단 정병호 교수는 북쪽에 네트워크가 많고 나 역시 넓지는 않지만 아주 가까운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취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과 나눈 대화가 나름의 방식으로 반영되었다고 본다. 예컨대 직접적으로 '아리랑 축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오랜 신뢰·친분 관계로 맺어진 이들과의 대화가 (연구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특정한 방법론을 연구한 것이다.

사실 나는 베트남에서 연구를 전개한 경험이 있어서 연구자에 대한 그러한 억제가 익숙해져 있는 편이다. 북한 뿐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 연구에서는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중국 연구에서는 1980년대 들어서부터, 그리고 소련 연구에서는 최근 들어 그런 시도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게 가능한 상황이 되면 이미 탈 사회주의 상황이기 때문에 시간 관계에서 상당히 어긋난다. 탈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웬만해서 '옛날 어려울 때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일반적인 인류학적 접근 방식으로 우리의 관심에 따라 구성된 질문을 가지고 취조해가는 방향이 아닌, 사람들이 얼마만큼 (극장국가의) 상징을 내재화했는가를 보려고 했다. 그리고 사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아래로부터의 실증적 연구(결과)는 영구히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당 방법론과 지역적 토대가 특정하게 관계 맺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이걸 어떻게 교정해 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미래에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부분이 있으리라고 본다.

정병호 : <꽃 파는 처녀>를 북쪽 사람들과 함께 본 적이 있는데, 보는 내내 "저 지주 놈을 때려죽이지 못해?" 이러면서 난리가 난다. 활자로, 영화로, 뮤지컬로 이 이야기를 얼마나 숱하게 봐 왔겠나. 다음에 무슨 대사가 나올지 아는 사람들이 판소리 추임새를 넣듯 그 흥을 타는 거다.

또 하나, 내가 만난 탈북 청소년들 중에는 언제, 누구보다 먼저 소년단에 입단했는가를 자기 성취의 첫 번째 기억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탁아소에서부터 시작되는 교육 과정에서 탈락과 배제를 계속해서 경험시키는 것이다. 가령 아리랑 축전을 준비하는 여고생에게 있어 최대의 형벌은 '본선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린 아이들을 억지로 훈련시켜서 내보내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아리랑 축전에 참여했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성취감이다. 우리로 치면 '올림픽에 출전해 보았다'라는 성취감이라고 할까.

이러한 수용의 태도나 학교 등 훈육의 과정, 생애 주기를 따라가며 정서적인 측면의 반응들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다면 (수용자 측면에서의 연구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한 권의 책 속에서 이것까지 담아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 이야기되는 지배자-피지배자 사이의 동의, 수용 관계를 논함에 있어 한 부분을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카리스마 권력의 경우 카리스마적인 지배자가 있고 거기에 동의를 하거나 하지 않는 피지배자가 있을 텐데, 극장국가의 경우 기획하는 지배층-수용하는 피지배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관객도 무대의 일원으로서 전체가 하나의 의례를 행하는 의미로 알고 있다. (사회자 김성보)

권헌익 : 지적한 대로 대형 의례의 경우 관객이 곧 배우, 참여자다. 이런 '참여' 과정은 인민들 스스로 국가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주체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카리스마 권위 이론으로 들어가면 앞서 이우영 교수가 적절하게 지적했듯 승인(recognition)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추종자들이 지도자의 권위를 승인해야지만 그 카리스마 권력이 유지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베버 이론에서 승인 문제는 실증적인 것이 아니라 개념적인 것으로 얘기된다. 사실 권력의 승인은 북한처럼 극단적으로 닫힌 사회가 아니라 할지라도, 즉 열린 사회에서도 실증적으로 밝혀내기 어려운 문제다. 어떤 사회든 그 구성원에게 '너희 나라 지도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면 심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어쨌든 피지도자가 국가의 의례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그 참여로써 형성된 지도자의 권위에 대해서는 '승인'을 해야 하는, 참여와 승인 간의 복잡한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것은 에밀 뒤르켐으로 들어가면 이론적으로 해소는 되겠지만 그렇게 개념적으로 끝낼 성격의 문제는 또 아닌 것 같다. 역시 나중에 올 누군가가 실증적 자료를 기반으로 밝혀내 주었으면 한다. (웃음)

-두 번째 아쉬움은 아리랑 축전이나 혁명열사릉 등 제시된 상징적 장치, 의례들에 위계 관계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점이다. 책 표지에 아리랑 축전 사진이 나오니까 이를 가장 중요하게 느끼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은데 과연 실제로도 그런가? 다른 기획들과의 차이는 없는가? 상징 권력들은 어떻게 연결되어서 작동하고 있는가? 이런 물음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결론' 장이 좀 낯설었다. 전체적으로 냉철하게 거리를 둔 분석을 하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베버의 설명과는 달리 특수하게) 카리스마 권력이 잘 작동하고 있다. 여러 극장국가의 기획을 동원해 그것을 유지하고 있고, 세습도 했다'라는 설명 뒤에 '그렇지만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가 오는 격이다. 이론적인 결과물과 현실적 판단 사이의 간극이라고 할까. (이우영)


권헌익 : 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인류학에서 상징과 상징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한 가지 상징에 대한 연구보다 더 중요하다. 베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미줄'을 연구해야 한다. 아리랑 축전과 혁명열사릉의 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봤다면 그것은 책의 분명한 한계라고 본다. 이건 앞서 말한 것처럼 아래로부터의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락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한계가 맞는 것 같다.

▲ 북한의 예술 공연 '아리랑'의 한 장면. ⓒ류재수

남북관계 벗어나 남북관계 보기

-사람들을 의례에 참여하게 하고 그들이 참여함으로써 주권을 공유하게 되는 과정에서 국가 폭력 문제가 개입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반적인 차원과 극장국가론에서 특화된 차원에서 이는 어떻게 다른가? 극장국가론에서는 물리적 폭력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건지, 아니면 아예 드러나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

권헌익 : 여기에는 구체적이기보다 약간 개념적인 설명이 동반될 것 같다. 1950년대 냉전의 경우, 한국과 같은 주변부에서는 국가 폭력이 전쟁이라는 물리적인 형태로 나왔는데 동시대 미국 사람들은 그것을 상징으로, 즉 수사학적인 의미에서의 폭력(가령 매카시즘)으로 경험한다. 기어츠가 상징 권력을 강조하며 극장국가론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인 20세기 후반기에 전 지구인들의 겪은 경험 상의 차이가 있다. 기어츠는 양쪽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어츠는 상징적 힘을 강조하기 위해 그것(물리적인 폭력)을 쓰지 못했다.

이를 베버와 기어츠의 관계에서 읽어보면, 베버는 현대 정치를 제도적, 관료적 권력으로 설명하는데 기어츠가 여기에 '그게 다가 아니다. 상징 권력도 중요한 힘이다'라고 반기를 든 셈이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공포와 상징적인 공포 양쪽의 교차를 봐야 하는데 기어츠는 그 교차관계보다 한쪽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할까. 마찬가지 측면에서 우리 책에서도 물리적 강제에 대한 언급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남한에서도 발견되는 연좌제나 혈연 내 연대 책임, 강제 문제 등 '국가 대 개인'이 아닌 관계에서의 물리적 강제기제를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이것들을 어떻게 병존시켜야 할지 불명확했다. 특정한 테마를 갖고 있는 저작에서 이 모든 것을 함께 다루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1970년대 초 닉슨과 키신저가 끌어낸 '데탕트' 국면과 그 이후에 걸친 남북한의 독재 정치, 1989년의 소비에트 붕괴, 1990년대 중반부터 촉진된 선군정치의 출현 등의 북한 체제 변동에 있어 저자들은 '아시아적 맥락'에서의 냉전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앞서 열거한 역사적 변동에 있어 북한의 '1970년대'라는 시간대가 갖는 중요성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앞서 우리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해를 지칭하는 '1989년 이후'라는 연대기적 구도를 무작정 아시아의 상황에 적용하는 데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 개념은 우리가 흔히 냉전의 종결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격변을 서구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 북한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는 '1989년 이후'라는 구도만으로는 적절히 이해할 수 없다. (…)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일주일"(닉슨 대통령이 자신의 1972년 중국 방문에 대해 쓴 표현)(…)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 1972년이 1989년보다 탈냉전의 글로벌 정치경제 체제 형성의 시작을 보여준다는 주장은 오늘날 여러 세계 체제 이론가들이 말하듯 나름의 일리가 있다." (70~72쪽)

그러나 여기에 남북한 체제의 적대적 상호 의존성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냉전 체제와 교차하여 남북한을 하나의 분석 범주로서 접근할 때, 혹은 '분단 체제'라는 분석 틀을 저작의 주제에 적용해 볼 때 새롭게 포착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토론자 김영선)

권헌익 : 냉전에는 남북 간 전쟁, 미소 간의 대립, 북한-중국-소련 사이에서의 관계 등 여러 모습이 있지만, 1970년대에 북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양극 체제(미, 소)에서 삼극 체제(미, 중, 소)로 변하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물론 남한 역시 중요한 변수였지만, 저쪽 입장에서 보면 중소 분쟁이나 미중 간의 악수로 인해 국제 관계가 완전히 복잡해지는 상황이 너무나 중요했다는 것이다.

남북이 같은 민족이니까 우리 중심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남이 아닌 '우리의 타자'를 이해하는 데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우리(남한)의 생각보다 우리가 북한에 중요하지 않은 것,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렇기에 북한의 역사가 그렇게 발전한 것이고 말이다. 가끔은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에서 남북한 중심을 벗어났을 때 그것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

중앙과 지방, 동심원 질서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여성 탈북자들이 나와 북한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맥주의 맛부터 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평양과 그 외의 지방이 매우 다르다는 얘기를 하더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느끼면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이를 느끼는지, 그걸 안다면 어떻게 그 차이를 삼키는지 의문을 가지게 됐다. 극장국가론이나 카리스마 권력의 세습을 가지고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 궁금하다.

정병호 : 평양과 그 외의 지방은 현격한 차이가 있고, 그 사이는 지리적으로도 국경 관리 수준까지는 못 가도 굉장히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다만 극장국가적인 퍼포먼스나 예술적 상징의 전달 체계는 가장 낮은 단위의 행정구역, 교육기관까지 관통되고 있다고 한다.

전에 놀랐던 일화가 하나 있다. 기근 시기에 평양에서 찍은 엘리트 탁아소 아이들의 퍼포먼스를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자 의사한테 보여주었더니 '우리 함경도 촌동네 아이들이 먹을 걸 못 먹으면서도 저걸 똑같이 했다'고 감탄한 것이다. 즉 적어도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한, 이러한 상징성의 전파는 상당한 우선순위에서 사회 활동의 근간이 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아리랑 축전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양에서 열리기는 하지만 전국에서 모여 든다. 2006년에 아리랑 축전이 열렸을 때 남한의 매체는 물론 통일부 사람들까지도 '북한이 저걸로 외화벌이를 노렸는데 잘 안 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검색을 해보면 '무리한 아리랑 축전, 외화벌이 실패' 운운하는 당시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전국에서 평양으로 모여든 수백 만의 주민들은 이것을 보고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고,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구나'를 느끼고 돌아갔다고 한다. 남한 사람들이 아리랑 축전을 보고 얼마나 기가 죽고 놀랐을지를 아주 자긍심에 차올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중앙) 권력자가 아니었고 지방의 중간 혹은 하급 관리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사례들로 볼 때 극장국가라는 설명이 사회·경제적인 특혜의 유무나 격차 양상보다 상징 체계의 보급 면에서 훨씬 더 보편성을 갖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으로 말하자면 모두가 (경제적인) 차이를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탈북자들은 무조건 서울에서 살기를 바라며, 한 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거의 폭동까지 일으킨 적도 있다.

권헌익 : 중앙과 변방 관련해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책에서 이것을 두 방향의 관계로 설명하는 챕터가 있다. 하나는 방금 정병호 교수가 말한, 아리랑 축전이나 집단 제전 등 변방에 사는 사람들이 중앙으로 모이는 경우다. 이런 실천만큼 중요한 것이 반대의 방향이다. 즉 중앙의, 그것도 중심 중의 중심인 사람들이 무리를 이끌고 변방의 끝까지 가는 '현지 지도' 실천이다. 중앙에서 변방으로의 이동은 카리스마 권력 형성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카리스마는 오히려 권력자가 변방의 구석으로 가서 땅바닥에 앉아 농민, 노동자들과 지방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면서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김일성의 카리스마 정치가 현재의 김정은 시기와 다른 부분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김일성 스스로 어떤 이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중앙집권화된) 카리스마 정치를 극단화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제어 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스스로 신비화만 한 게 아니라, 때로는 바닥으로 내려와서 사람들을 껴안고 만지고 하면서 평범한 사람 같은 행위를 보인 것이다. 물론 김정은 체제에서도 이런 행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카리스마 권력 형성에서 중심->변방 이동 축이 점점 더 약해진다고도 볼 수 있겠다.

우리가 북한이나 다른 사회주의 체제를 볼 때 피라미드식 위계질서에만 집중하기 십상인데, 이와 동시에 혹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중심-주변이나 내부-가장자리의 관계, 즉 동심원적 구도다. 이는 꼭 평양과 지방 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혁명열사릉에 가도 중심이 있고 이를 에워싸고 퍼져 나가는 동심원 구조가 보이며 중심과의 거리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진다. 이 중앙의 기원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부터 병존하는 피라미드식 위계질서와의 관계, 이것들이 어떻게 교차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앞으로의 북한 연구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 지난 15일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이한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남한도 극장국가다?

-책을 읽으며 어떤 면에서는 남한도 극장국가나 카리스마 권위의 세습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기어츠 이론을 남한에 적용시킨 논문도 읽은 적이 있다. 가령 박근혜는 물론 선출 권력이지만 대중의 심성 속에는 아버지인 박정희의 카리스마 권력과 그 신화가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 북한의 카리스마 권위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다른 체제로 확장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한편 정치와 예술이 합일된 형태는 다른 파시즘 국가, 특히 스탈린 시기 소련의 경우에서 강하게 목격되는데, 이렇게 다른 사회에도 적용이 가능한지 알고 싶다.

또 극장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김정일이란 개인의 성향이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부연하자면 김일성 시기에는 예술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정도가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는 것과 유사한 정도인데 김정일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다른 것 같다. 북한이 극장국가로 보이는 데에는 김정일의 개인적 취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아니었을까? 책의 결론 부분은 '이제 극장국가 그만 좀 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보이는데 김정일이 사라진 지금 어쩌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다못해 예전만큼 (극장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지 않나 싶다. 이러한 의문에 따른다면 '극장국가 북한'이라는 이론화 과정은 김정일의 성향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병호 : 우리가 말한 극장국가가 북한이라는 특수한 경우만을 설명하기 위한 틀은 아니며, 기어츠도 그 시기의 발리를 사례로 취했던 것이지 거기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경우라고 보지 않았다. 정치학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그러나 실제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권력 작동 방식으로서 이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적용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본다.

김정일의 개인적 특성이 영향을 미친 면은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건 김정은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주의해서 볼 것은 (카리스마 권력) 세습의 경우, 3대째의 세습이 이뤄지면서 이미 체제화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김정은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 황장엽이 '그깟 놈'이라는 말을 했고 한 거대 일간지가 이 말을 머리기사 제목으로 다뤘는데, 그걸 보고 체제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일본의 천황제처럼 오래된 체제와 비교할 수야 없겠으나 그런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체제화된다는 것은 그게 누구든 (권력의 크기로서) 대치 가능하다는 뜻이다. 가령 김정은이 아니라 다른 누가 권력을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그 체제가 상징과 믿음의 체계로 경직되어 작동하고 있는 한 그 자리에서는 계속 같은 힘을 가질 거라는 얘기다. 그 외형은 메이지 천황처럼 강력할 수도 있고 다이쇼 천황처럼 존재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스타일은 달라도 권력은 온존되는 체제의 작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국가의 의미를 갇힌 정형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새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가령 '극장국가적 요소'라는 차원에서 볼 때 북한이 국가 독점적 이미지 산업의 제조를 했다고 한다면, 남한은 투표라는 자유 경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권위의 세습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고 본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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