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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직전의 한국 진보, 대처를 배워라!

[대처를 넘어서] 대처의 개혁에서 얻는 교훈 : 비전, 세력, 학습

17일 장례식을 앞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사망 소식은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멀리 우리에게까지 뉴스가 되고 있다. 단순히 지나간 역사적 인물의 사망 소식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대처의 사망 소식이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대처가 1980년대 이후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삶을 송두리째 바꾼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공세와 개혁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한 인물의 사망은 그가 만들었던 시대의 종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지만 대처의 경우 그의 죽음은 그가 만들어낸 시대가 끝났음을 확인시키는 대신 그 시대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 따라서 그 시대를 종식시킬 과제가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실로 우리의 삶을 돌봐주고 보호하는 "사회와 같은 것은 없(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으며 따라서 신자유주의 외에 다른 "대안은 정말로 없다(There really is no alternative)"는 대처의 명제는 설득력 있는 레토릭이자 물질화된 현실로서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죽은 세대의 전통이 악몽처럼 산 세대의 두뇌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에서 대처의 신자유주의 개혁과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에 남긴 지적, 제도적 유산을 살펴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와 체제를 수립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대처 자신이었다.

▲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로이터=뉴시스

대처, 영국을 개조하다!

전후 영국 사회는 자본과 노동의 계급 타협, 재정 정책을 통해 경기를 조절하는 케인스주의적 위기 관리 방식 그리고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하는 사회 복지 제도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강력하게 조직된 노동조합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포드주의의 위기,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석유 파동 그리고 케인스주의적 위기 관리의 실패라는 세계사적 변동 속에서 이러한 영국의 정치경제 질서도 위기에 빠진다.

노동당 정부에는 필요한 구조 개혁을 실행할 역량이 결여되어 있었고 위기에 빠진 경제에는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으로 긴축 정책과 임금 억제책이 시행되었다. 이에 따른 노동조합의 저항과 사회적 혼란은 1978~79년 겨울에 벌어진 노동 소요(이른바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에서 정점에 달한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보수적 중산층의 도덕주의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만에 빠진 노동자 상당수가 노동당 지지를 철회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1979년 대처의 집권은 보수당의 승리보다는 노동당이 자멸한 결과였다.

집권 경위가 어떠했든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을 지적 스승으로 섬기는 대처는 '현대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영국의 전후 체제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는 개혁을 시작한다. 여기에는 대처의 지도자로서의 비전과 역량뿐만 아니라 행운 또한 작용하였다.

초기에 대처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긴축 재정과 고금리를 포함한 통화주의 정책 그리고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감세와 민영화(사유화)를 핵심으로 했다. 이는 연 18퍼센트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복지를 축소하고 실업을 늘리며 제조업 생산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대처의 입장에서 이는 실패라기보다는 성공이었다. 대처는 다른 부작용이 있더라도 국가의 축소 및 재구조화 밖에 "정말로 다른 대안이 없다"고 확신했다.

더구나 대처의 정치경제적 목표는 비효율적 복지 국가의 중요한 지지 기반인 제조업과 공공 부문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일국적 산업 자본 대신 초국적 기업과 금융 기관의 축적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화이트칼라 중간 계급의 성장을 지원하여, 세계화라는 지구 정치경제의 변동 속에서 영국 자본주의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기 침체, 고금리, 물가 안정, 복지 축소는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금융 자본의 수익성을 높임으로써 영국의 자본주의를 재구조화하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대처와 보수당은 단기적으로 형편없는 경제 성과에도 불구하고 1983년 재집권에 성공한다. 1982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포클랜드 섬에 대한 전쟁을 불사하고 승리한 결과 국민의 높은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였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식, 전통, 도덕, 국가, 국민, 현대화 등에 초점을 둔 대처리즘의 문화적, 대중적 호소력, 보수당-노동당 양당에 대한 회의의 증가로 인한 사회민주당-자유당 연합의 약진, 그리고 보수당에 대한 대안 세력이 되지 못한 노동당의 역사적인 총선 참패도 한 몫을 하였다.

이제 대처와 보수당 정부는 1984년 탄광노동조합 파업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1986년 런던 시티(the City)의 금융 빅뱅(금융 자유화, 탈규제, 감세 및 국제화)과 같은, 때로는 권위주의적 행동을 불사하는 "작지만 강력한" 국가 개입을 통해 영국 자본주의의 재구조화라는 목표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 과정에서 대처 정부는 개인주의, 기업가 문화, 주택, 주식 및 사적연금 등의 금융 자산 소유를 내용으로 하는 '대중 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를 장려하였다.

예를 들자면 대중은 공적 자산의 민영화를 통해 주식을 소유한 자산 투자가가 되었다. 이러한 대중의 자산 소유 확대는 금융 자본의 축적 기회를 확대할 뿐만 아니라 국민을 보수화하여 보수당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동원하는 기제였다. 더구나 그것은 복지의 축소와 노동조합의 약화로 자신의 삶을 보살피고 보호하는 "사회와 같은 것이 없"고 따라서 개인과 가족이 스스로 자신을 보살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조건 속에서 각자가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있게 돕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결국 이러한 재구조화의 결과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영국 경제의 성장률은 회복되고 실업률도 줄어들었으며 런던 시티는 다시금 세계적인 금융 축적의 중심지로 도약하였다. 이른바 '영국병(British disease)'이 치유된 것이다.

대처는 어떻게 세상을 바꿨나?

대처가 만들어낸 영국의 이러한 새로운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질서는 1990년 대처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심지어는 1997년 노동당이 집권한 뒤에도 커다란 변화 없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존 메이저 내각(1990~1997년)은 대처도 반대하였던 철도 민영화에 앞장섰으며,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의 신노동당(New Labour) 내각(1997~2010년)은 노동조합과 복지 세력을 배제하려는 대처의 노골적인 '두 국민 전략' 대신 국민 통합적인 '한 국민 전략'을 추진했지만, 대처의 작지만 강력한 정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및 금융적 축적 전략을 거의 그대로 승계하였다. 2010년 집권한 데이비드 카메론의 보수당 정부는 '큰 사회(big society)'라는 구호를 통해 '사회'의 역할 강화를 주장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가 몰락한 자리에 흩어져 있는 개인들에게 국가의 책임을 더욱 더 미루는 것일 뿐이다.

대처가 영국에서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이러한 신자유주의 질서는 신자유주의의 모범 사례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참조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식되기까지 하였다. 예를 들자면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이 채택한 대기업 구조 조정 방식인 '워크아웃'은 영국의 런던 어프로치를 모델로 할 것이었고 2000년대 후반에 추진된 금융 허브 전략 또한 영국의 금융 빅뱅을 상당 부분 참조한 것이었다.

대처가 창조한 이러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힘은 무엇보다도 그가 역설한 동시에 만들어낸 사회의 부재와 대안의 결핍이라는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대처는 노동조합과 제조업과 같은 옛 질서의 사회적 기반을 사실상 해체하였고 그 결과 대처가 물러난 이후에도 구질서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더구나 대처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고갈시켜 버렸다. 사회 복지 제도나 노동조합과 같이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기관이 크게 약화된 상태에서 대처의 주장대로 사회와 같은 것은 없고 오직 무한 경쟁 속에 놓인 개인만이 있다고 믿게 되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신자유주의적인 자기 계발과 투자뿐이었다. 영국 등의 좌파 정치 세력 또한 케인스주의적 복지 국가의 실패 그리고 산업 민주화를 추진하는 '구조 개혁 좌파'의 패배로 인해 구체적인 대안을 상상하는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째, 이러한 '사회'의 공백 속에서 대처의 경제 개혁은 금융적 축적과 이에 대해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초국적 금융 자본 및 서비스 중간 계급)을 확대하여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물질적 기반을 만들어냈다. 제조업이 몰락하고 대신 금융 및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된 조건에서 전자가 아닌 후자를 통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제3의 길"을 선언하며 새롭게 변신한 신노동당 정부에도 자연스러운 선택이 되었다. 더구나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금융적 축적의 확대는 사적 연금이나 보험, 부동산 자산 소유 등의 대중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사회적으로 개인주의를 강화시켰고, 정치적으로 개인의 자산 보유 확대는 유권자를 전반적으로 보수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요약하면 신자유주의의 힘은 '사회'와 '대안'을 효과적으로 봉쇄하는데 있지만 '사회'와 '대안'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등의 신자유주의 세력이, 대다수 개인에게 삶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는 '사회와 같은 것은 없'으며 신자유주의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설득력 있게 전파하고, 그러한 환상에 근거한 강력한 물질적, 실제적 질서를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대처의 유산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회(보다 친숙한 언어로는 공동체와 가족)를 해체하고 실업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무한 경쟁의 불안감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극복은 대처 등의 신자유주의 세력이 해체했던 사회의 복원 또는 재건을 필요로 하지만 과거의 사회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에 새로운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처방은 일견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막연한 것만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대처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성공적인 체제 변동의 한 사례로서 신자유주의의 극복에 대한 교훈을 제시한다. 그것은 성공적인 체제전환은 특수한 현실 진단에 기초한 전략적 비전, 세력 관계의 변화 그리고 학습을 통한 제도적 조정과 적응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첫째, 한 사회를 바꾸려는 세력은 현실 진단에 기초한 국가, 사회, 경제에 대한 (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나아가 새로운 문명에 대한) 비전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사실 개인만이 있을 뿐이고 사회는 없으며 신자유주의 외에 대안이 없다는 대처의 주장은 (폴라니의 표현을 따르면) '시장 사회'라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의 강력한 장기적인 문명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영국이 당면한 여러 상황 중에서 특정한 것들을 핵심적 '문제'로 규정하고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그것은 경제적으로는 당면한 인플레이션과 국가 재정의 악화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으로는 국가와 노동조합을 포함한 사회 집단의 힘을 약화시키고 개인과 기업의 힘, 특히 비즈니스(영리 활동)의 자유를 강화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대처의 비전은, 그것이 설사 그런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라도 실업이나 불평등 심화와 같이 영국이 직면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는 매우 불완전한 대안이었다. 실제로 대처의 집권 초기에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사회적 저항은 고조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는 다른 문제들을 억누르면서 자신의 목표들을 오랜 기간 추구하였다. 그 결과는 물가와 국가 재정의 안정 및 비즈니스 자유의 획기적 증가라는 변화였다.

둘째, 비전의 지속적인 확산과 실행은 세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며 이는 사회적 세력 관계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자본-노동의 타협에 기초한 전후 영국의 전통적인 사회적 세력 관계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집권 이전에 세력관계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권 후에라도 세력 관계의 역전이 시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부의 정책은 단순히 사회적 세력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세력 관계에 영향을 주고 그것을 재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책은 언제나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집행된다. 대처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비판적인 미디어 보도, 사법적 제재,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복지 축소, 제조업 구조 조정을 통해 노동 운동을 현격히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1986년에는 좌파가 장악한 대런던시의회(Greater London Council)를 폐지하는 등 반대 세력의 기반을 적극적으로 허물어 버렸다. 동시에 대처 정부는 민영화와 금융 빅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대중화하고 금융화함으로써 초국적 금융 자본, 서비스 중간 계급, 자산 소유자 등 그 지지 기반을 확대했다. 간단히 말해 대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자신의 비전에 동조하는 세력(금융 자본과 중산층)을 확대하는 한편, 반대하는 세력의 물질적 기반(제조업과 복지제도)과 조직(노동조합)을 와해시켰다. 이렇게 반대 세력의 축소와 물적 기반의 해체 그리고 동조/지시 세력의 확대와 물적 기반의 건설을 통해 비전은 성공적으로 확산되고 집행된다.

셋째, 이렇게 세력의 기반 위에 서 있는 비전은 시행착오, 학습, 적응, 조정 등을 통해서 현실화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대처의 개혁을 통해 사회적 저항이 약화되고 다른 대안의 추구가 불가능해지자 영국 경제에도 학습을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기성 체제는 항상 더 나은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현존하는 체제를 옹호한다. 그러나 기존의 체제보다 모든 점에서 나은 대안은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 이론에서조차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낡은 패러다임보다 반드시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의 천체 운동 예측력은 오랫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진 당시의 천동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회의 변화는 급격히 일어날 수 있지만 사회의 진보는 패러다임의 변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적응을 통해 일어난다. 만약 모든 면에서 더 나은 대안이 있어야만 한다면 어떠한 사회 개혁이나 변혁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사회 변화는 그렇게 일어나지 않는다. 먼저 변화가 일어나고 이후에 학습과 적응이 뒤따르면서 개선이나 진보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적이다. 대처 정부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완전한 대안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처 정부는 그럼에도 장기 집권을 통해 반대 세력을 성공적으로 억누름으로써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응하고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나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적용에 부적합한 환경은 제거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정과 변경이 필요한 곳에서는 정책을 현실에 맞게 정교하게 다듬어,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배 계급을 위해 무리 없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처가 예시한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형식에 비추어 볼 때 신자유주의의 극복은 다음과 같은 비전의 수립과 확산, 세력의 전환 그리고 학습과 집행을 강력히 요청한다.

첫째,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비전은 물론 현실 진단에 기초해 현재의 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적으로 보다 풍요하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단순히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신뢰, 윤리, 연대, 복지를 포괄하는 사회와 국가의 복원과 재건을 목표로 하는, 대안적인 가치와 문명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의 수립과 확산을 요청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와 달리 모든 것을 영리 활동, 화폐 소득, 효율성과 같은 경제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둘째, 이러한 비전의 확산과 집행은 집권 이전이든 이후이든 물질적 기반의 해체와 생성, 반대 세력의 축소와지지 세력의 강화 등 세력 관계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전략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주어진 역사적, 지리적 환경 속에서 각 사회의 특유한 계급적, 세력적 지형 속에서 다수의 세력이 공유하는 통일적 이해관계를 구성하는 '국민적-대중적(national-popular)' 전략의 수립은 이러한 세력 관계의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신자유주의의 최종적 극복은 이러한 세력적 조건 하에서 처음에는 다소 유토피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비전과 정책들이 시간을 두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학습과 조정을 통해 참을성 있게 현실에 적응하고 정교화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세계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좌든 우든 위기에 빠진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적 비전, 그리고 그것을 추진할 정치 세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이 글에서 답할 수 없는 또 다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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