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정일 정력제
"김정일 정력제라고 혹시 아세요?"
그의 표정이 묘했다. 은근한 미소…. 음담패설을 하는 순간의 남자들은 그런 은근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낄낄거리는 농담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끼리 은밀한 정보나 교환해 보자는 눈빛을 담은 말랑말랑한 표정이었다.
"제가 아는 분이 사업상 중국에 출장을 자주 다니시는데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연변 쪽에서 무슨 사업을 하시나 봐요. 그 분이 어느 날 중국에서 구한 거라고 하면서 저한테 뭘 한 병 주시는 거예요. 중국이랑 북한을 오가는 보따리상들이 있대요. 그쪽 루트를 통해서 얻었다면서, 이게 그 전설의 김정일 정력제라고…."
이야기인즉 비아그라나 씨알리스 비슷한 발기부전 치료제가 북한 내에서 자체 개발되었고, 그 효능이 어찌나 좋은지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약들은 다 알약이잖아요. 근데 이건 액체더라구요. 갈색 앰플 병 같은 데에 들어있는데, 병 디자인이랄까 그 유리병 위에 있는 글자 같은 것들이 진짜 촌스럽더라구요. 백두산 그림이 있었던가…. 암튼 어쨌거나 긴가민가하면서 먹어봤는데…."
효과가 어마어마하더라는 것이 그의 증언이었다. 전에 비아그라, 씨알리스 등도 먹어 보았지만 소위 김정일 정력제라는 그 약은 가슴이 뛴다거나 얼굴이 붉어진다거나 민망하게 계속 발기상태가 유지된다거나 하는 부작용도 없고, 필요할 때만 정확히 반응이 오는 것이 정말 묘하기 짝이 없더라는 칭찬이 무려 5분 동안 이어졌다.
"우와, 정말 신기한 거예요.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가, 아주 약간의 자극이나 생각만 하면 그 순간 반응이 딱딱 오는 게…. 저한테 그거 주신 분이 그러는데 북한에서 김정일을 위해서 특별히 개발한 거래요. 그러니까 설마 건강에 안 좋은 걸 넣었겠어요? 온갖 좋은 것만 다 넣었을 거 아녜요."
실제로 몇 년 전, 김정일 정력제라며 무허가 약을 팔던 탈북자 등이 적발된 일이 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제조된 씨알리스 성분에 기타 약초가 섞인 것에 불과했다. 그것이 진짜 김정일 정력제였는지 아니면 진품의 '짝퉁'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김정일이 먹는 정력제라는 홍보 덕분에 엄청난 양이 팔려나갔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하필 '김정일 정력제'였을까? 세계적 제약회사 파이자에서 비아그라를 개발할 당시 쓴 돈이 1조 5천억원 이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비아그라가 '정력제'라는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하지만 가난한 국가 북한에서 그 정도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했을 것 같지는 않다. 설사 몸에 좋다는 온갖 것이 다 들어갔다 해도, 약품이라는 견지에서 '김정일 정력제'는 검증되지 않은 어떤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정일이 먹는 거니 좋겠지"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남한이 북한보다 돈도 많고 과학기술도 앞서 있지만, '노무현 정력제'나 '이명박 정력제'가 있다 해도 사람들은 분명코 '김정일 정력제'와 같은 기대와 선망을 품지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세계 최고의 바이오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미국에서 '오바마 정력제'가 나온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2006년 발기부전치료제 성분으로 제조한 불법 건강 보조식품이자 가짜 '김정일 정력제' 용비환과 보양환을 경찰이 압수했다. ⓒ연합 |
무소불위의 권력자와 정력, 이 두 가지 개념 사이에 어떤 친화성이 있는 것 아닐까? 이것이 원래 필자의 문제의식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는 여자도 많이 밝힌다느니, 나폴레옹도 색을 밝혔다느니, '영웅은 호색'이라느니 하는 그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가 성욕이 실제로 강한지 아닌지 여부는 의학적 탐구의 대상일지는 몰라도 필자의 관심사는 아니다.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대개 남성인 권력자라는 존재, 그리고 남성성의 상징인 정력, 이 두 가지가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문화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단히 동양적이며 한국적인 어떤 사고의 산물이다.
잠깐 우리의 대통령을 생각해 보자. 지금 현직에 계신 대통령께서는 공교롭게도 여성이니 비교가 불가능하고, 대신 시계를 몇 달만 되돌려서 전임 대통령을 생각해보자. 그 분은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고, 담배를 피운다는 이야기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고 4대강 자전거도로를 누비며 해맑은 웃음을 짓는 그 분의 사진에서는 일흔 살이 넘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의학적 지식이 아무리 없어도 김정일이 복부 비만이었음은 누구나 알 수 있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기는커녕 꽤 좋아했을 것도 같다. 척 보기에도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등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을 것 같고, 역시나 세상을 뜬 원인도 심장 질환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의 모 연예인이 김정일에게 다녀왔다는 둥 루머가 퍼지면 사람들은 그럴싸하게 받아들였다. 각종 좋은 음식과 온갖 정력에 좋다는 것들을 섭렵한 덕에 복부 비만에도 불구하고 그쪽으로는 꽤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호색한이라고 깎아내린 남쪽의 집요한 인신공격 탓도 있을 것이다.) 남북 정치지도자 정력 대결이라도 벌어졌다면 북이 완승을 했을 것만 같다.
즉 체지방과 혈중 콜레스테롤과 순환기의 건강이 성적 능력도 좌우한다는 서양 의학적 사고와는 정반대되는 관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래의 글을 한 번 읽어보라. 십 년쯤 전에 나온 북한의 논평인데 A4 용지 두 장 남짓한 글에 '정력'이라는 단어가 30번 정도 등장한다. 주요(?) 대목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누구에게나 왕성한 정력이 필요하지만 정치가에게 있어서 정력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비범한 사상 이론 활동과 탁월한 영도력이 비상한 정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에는 백두산의 아들이신 민족의 태양 김정일 영수님처럼 그렇듯 놀라운 정력을 지니신 천출위인은 없었다. 경애하는 김정일 영수님은 지칠 줄 모르는 무한대의 정력을 지니시고 조국과 민족, 시대와 인류를 이끌어 나가시는 희세의 정력가이시다.(중략)
경애하는 김정일 영수님의 왕성한 정력은 이북의 방방곡곡을 찾아 쉬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데서 (…) 그분께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이어가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강성대국의 탑이 우뚝 솟구치고 있고 이북 민중의 행복의 노래 소리,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 영수님은 (…) 희세의 정력가이시다. 김정일 영수님의 무한대의 정력의 세계, 바로 여기서 통일 번영할 강성대국의 미래가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 영수님의 초인간적 정력 덕분에 강성대국의 탑이 우뚝 솟구치고 있다니…. 설마 이 대목에서 이상한 연상을 안 해 보는 사람도 있을까?
이런 종류의 글은 북한의 각종 정부 매체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정일과 '정력'을 연관 짓는 글은 수없이 많다. 김정일은 출중한 정력을 바탕으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민생을 돌보기 위해 수많은 현장을 방문하고, 또 그 뛰어난 정력을 바탕으로 틈틈이 사상과 이론을 가다듬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그렇게 바쁜 틈에도 예술적 취미활동을 하는 등 초인적인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정력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밤일 잘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나오는 이런 종류의 논평을 보면서 이 정력을 그 정력으로 오해하며 읽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낄낄, 이거 좀 웃긴데" 정도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한 쪽에선 '희세의 정력가'로 칭송받고 그 바로 옆 동네에선 '김정일 정력제'가 불티나게 팔렸다는 사실, 그것은 과연 단어의 용례에 따른 우연의 일치이기만 한 것일까? 정치 지도자의 덕목인 정력, 그리고 성적 쾌락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고 또 상대방에서 줄 수도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정력, 그 두 가지가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 언어가 또 있을까?
▲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
2. 권력, 그리고 침실의 파워 퍼포먼스
사실 정력(精力)이라는 단어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어떤 일에 쏟는 정신적 에너지를 의미하기도 하고, 왕성한 신체의 기운을 일컫기도 한다. 또 남성의 성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한데, 이 마지막 경우조차도 정력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누구나 그렇듯 필자에게도 정력제를 판다는 스팸 메일이 많이 오는데, 어느 날 한방 천연 정력제를 판다는 어느 업자에게 온 이메일을 열어본 필자는 큰마음 먹고 답장을 보냈다. (여담이지만, 스팸 메일에 답장 보내본 독자가 계실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굉장히 기분이 이상하다.)
안녕하세요? 파시는 XXX에 대한 광고 메일을 받고 갑자기 궁금증이 일어서 이메일 드립니다. 저도 요즘 막연하지만 뭔가 정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어서 정력제에 관심이 있는데요,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거든요. XXX를 먹으면 구체적으로 뭐가 개선된다는 건지요? 그러니까 발기가 자주 되고 섹스를 자주 할 수 있다는 건지, 아니면 한 번 할 때 오래 하게 만들어준다는 건지, 아니면 사그라지는 정신적 욕구 같은 걸 되살려준다는 건지, 정액의 양이 증가된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성기의 크기인지… 이런 이메일에 일일이 답변하시기 귀찮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관심이 많아서 그러니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연 답장을 보내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그리고 과연 열어보기는 할까? 흥미진진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날 답장이 도착했다. 그런데 필자는 의외의 답변을 마주하게 되었다.
저희 XXX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혀 귀찮지 않으니 앞으로도 얼마든지 연락 주십시오. ^^
정력이란 말씀하신 것 중 성기의 크기를 의미합니다. 꾸준히 복용할 경우 길이나 굵기가 증대되어 여성을 만족시킬 자신감을 갖추게 되는 것이지요. 저희 천연 한방 XXX는…(후략)
크기라니? 그것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어떤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각종 보형물이나 수술적 방법을 통해서나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정력이란 곧 크기를 의미한다면, 태어나기를 크게 타고 태어난 사람들은 곧 정력이 좋은 것인가? 그리고 정력제(건강보조식품)를 입으로 먹어서 거시기가 커진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기는 한 것인가?
즉 정력(精力)이라는 단어에는 리더십의 원천부터 아랫도리의 물리적 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남자들의 크기에 대한 집착을 생각해보면 성기의 크기를 빼고 정력을 논한다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다. 정력제 업자의 한 마디를 너무 침소봉대한다고 생각된다면, 멀리 15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신라 지증왕의 고사를 떠올려 보자.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의 성기는 1자 5치로, 부인을 맞아들이는 데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한다. 도량형이 오늘날과 같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만일 같다면 그 길이는 무려 45cm에 이른다. 첫날밤을 지내면 신부들이 전부 도망을 가서 어려움을 겪다가, 마침내 키가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여자를 찾아내서 결혼을 했다는 것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감이 안 오시는 독자들을 위해 방금 필자가 재 봤더니, 나름 롱다리라 자부하는 필자에게도 무릎에 닿는 길이다. 물론 문헌에 의하면 지증왕은 키가 2미터가 훌쩍 넘는 장신이었다 하니 무릎까지 내려가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지증왕이 누구인가? 신라의 23대 왕이자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왕으로 바꾼 사람으로, 신라의 기초를 닦은 이다. 순장 제도를 폐지하는 등 사회제도를 개혁하며 비로소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었고, 광개토왕이나 장수왕 등 주변국의 기세에 눌려 비실비실하던 신라를 중국에서 인정받게 하는 등 국제 외교무대에 정식으로 등장시켰으며, 활발한 영토 확장을 이뤄서 신라판 광개토대왕이라고 여겨지기도 한 사람이다. <독도는 우리 땅> 노래 가사에 나오는 "신라 장군 이사부"도 지증왕의 명을 받아 우산국을 정복했다. 신라라는 국가명도 지증왕 대에 만들어졌다. 천마총이 바로 이 지증왕의 묘로 추정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 또한 한국 역사상 전설의 대물(大物)이었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박노자 교수는 이 대목을 "신라인들이 가장 숭상했던 '성의 능력'을 과시해서라도 위상을 높여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추정한다. (☞바로가기 '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 <한겨레21> 제740호, 2008년 12월 19일자) 즉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내가 왕이다"라고 주장하려면 그 정통성을 확립해야 하는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도 기본적인 성 능력의 우월함을 통해서 그 리더십을 세웠다는 말이다. 속된 말로 다른 남자들의 '야코'를 죽여서 끽소리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메커니즘이었다는 해석이다.
▲ 그대,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
그렇지만 지증왕이 설마하니 "짐은 거시기가 크니라"라고 떠들고 다녔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런 소문이 간접적으로 왕권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즉 침실에서의 파워풀한 퍼포먼스와 강력한 (다른 말로는 독재적인) 정치 지도력을 연관시키는 민중의 연상 작용을 우리는 150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김정일이나 지증왕이 실제로 침실 퍼포먼스가 강력했다거나, 나아가서 김정일이 지증왕에 비견되는 역사적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님을 첨언한다. 북한 사이트만 들여다봐도 문제 삼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말까지 덧붙여야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참고로 위의 북한 문건은 구글 '저장된 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것이니 괜한 시비는 걸지 마시라.)
그것이 상대방 여성에게 성적 만족감을 주느냐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지증왕의 경우에도 뭇 여성들이 다 도망갔다고 하지 않는가? 즉 여기서 중요한 성적 능력은 상대방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주느냐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이다. 한국 남성들의 정력에 대한 관심과 집착은 그 정력의 수혜자(?)인 여성, 혹은 섹스 파트너들의 만족도와는 독립되어 있다. 마치 '남자들한테 예쁘다고 여겨지는 여자'와 '여자들이 보기에 예쁜 여자'가 조금 다른 것과도 비슷하다.
'정력'이라는 개념을 탐구하다보면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 남자가 "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 대척점에는 여성성이라는 것이 마주서 있고 말이다.
누군가는 80세가 넘어 성욕이 사라지며 마침내 속박에서 해방된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정력이라는 놈은 내적 욕구도 아니요 쾌락의 정도도 아닌 '능력'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타인의 관점으로부터 평가되는 어떤 것일 뿐 그로부터 해방될 수도 없다. '성욕'보다 더 지독하게 한국 남자들을 얽어매는 '정력', 그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앞으로 계속될 연재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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