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쓴다며 당신의 이름을 적고 스스로 놀랍니다. 열일고여덟 무렵 처음 당신의 시를 읽고 지금까지 죽 당신은 제게 경의의 대상이었으니 소박한 팬레터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왔지요.
그런 제가 새삼 편지를 쓰겠다고 나선 것은, 마감의 공포에 쫓긴 탓이기도 하고 죽은 당신보다 더 먹은 뻔뻔한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 불러일으킨 추억 때문입니다. 얼마 전 세상에 나온 <김수영의 연인>(책읽는오두막 펴냄)이 그것인데, 45년 전에 떠난 남편을 어제 본 듯 그리는 당신 아내 김현경의 글을 보고 있으니 잊고 있던 풍경들이 떠오르더군요.
▲ <김수영의 연인>(김현경 지음, 책읽는오두막 펴냄). ⓒ책읽는오두막 |
인연의 아름다움보다는 인연의 지겨움을 더 실감하는 이즈음이지만 당신과 저를 이어주는 사소한 인연만은 여전히 저를 뿌듯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당신과 한동네 사람이라는 것, 당신이 닭을 치면서 살았던, 1968년 6월 15일 밤 버스에 치여 쓰러졌던 바로 그곳 구수동에서 제가 자랐다는 것이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가 소중히 여기는 추억이지요.
'아니, 고작!' 하고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궁색한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 이웃 사립학교 아이들이 '똥통학교'라 놀리는 초등학교를 나와 한 반 친구들의 거의 절반이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것을 보며 자란 제게는, 시인이, 그것도 당신 같은 빛나는 지성의 시인이 이곳에 살며 시를 썼다는 것처럼 흐뭇한 일이 없었습니다. 넝마가 산더미처럼 쌓인 고물상과 가발공장들이 즐비한 동네가 알고 보면 그 유명한 '풀'을 낳은 문화의 산실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가슴을 부풀리곤 했지요.
꼭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당신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처음 접하고 난해한 시편들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선뜻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作亂을 한다"는 요령부득의 시구로 시작하는 '공자의 생활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선언하는 표제작 '거대한 뿌리'도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하기만 했지요. 그나마 조금 알 것 같은 것이 '폭포'여서 그 시를 공책에 적어놓기도 하였지만, 한 점 의혹 없이 마음에 다가오기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만 한 것이 없었습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돌아보면 저는 이 시와 함께 나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경계의 시선으로 읽었던 십대 이십대로부터 공감이 깊어지기 시작한 삼십대를 지나 어느덧 조그만 일에만 옹졸하게 화내는 자신에게 더 이상 소스라치지도 않게 된 지금까지, '이만하면 되었지' 하고 자족하다가도 '이만하면 될까, 늘 옆으로 비켜서서 이대로 괜찮은 걸까'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하며 살았지요.
▲ <김수영 전집2-산문>(김수영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
불혹만 되어도 초연과 해탈을 운운하는 시인을 하도 여럿 보아서인지 저는 당신이 지천명을 앞두고도, 길에서 아내를 마구 때린 이야기를 담은 '죄와 벌'이나 아내와의 섹스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성(性)'을 쓴 것이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더구나 남편의 오입이며 부부간의 내밀한 성관계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아내 입장에서는 참 편치 않았을 '성'을 막상 세상에 발표한 것이 아내 김현경이었다는 데에는 놀람과 반가움을 넘어 고마운 마음이 들더군요. 그러고 보면 당신의 아내야말로 당신 말처럼 온몸으로 시를 밀고 간 진짜배기 시인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죽기 2달 전 발표한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말했습니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 의지하지 않는다." 아, 그러니 거기에 '이만하면'이 있을 수 없지요. 당신의 말을 빌리면, 그런 건 원군(援軍)이며 "원군은 비겁하고 자유는 고독한" 것이니까요.
당신은 비겁한 것을 싫어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만 그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고, 특히 "지식인은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 쳐야" 한다고 단언했지요. 그랬기에 이어령이 '에비'에 겁먹은 문화인들의 무지와 비겁을 비판했을 때 당신은 잘 꼬집어줬다고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정말 무서운 에비의 정체엔 눈 감은 채 이미 죽은 죄인을 매질하는 그의 비겁에는 실망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서슬 퍼런 진술은 거기서 나왔습니다.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 중) '김일성만세'라는 시를 '잠꼬대'로 제목을 바꿔 보내도 발표되지 못하는 현실이 엄연하건만 그 현실은 외면하는 반쪽 지성에 죽비를 내리친 것이지요.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로 시작하는 '김일성만세'를 읽습니다. 2008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이 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48년 전에 쓴 시가 맞나 하며 한 번 놀라고, 시 한 편을 읽는 데 반세기가 걸리는 세상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 하고 두 번 놀랐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당신의 시는 여전히 놀랍고, 그 시를 놀라운, 아니 불온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 또한 여전합니다. 그 세상에서 '김일성만세'는 자유주의자의 수사가 아니라 종북주의자의 찬가로나 읽힐 터이니, 당신이 오늘 이 세상을 보지 못한 게 저는 차라리 다행이다 싶습니다.
당신의 커다란 눈이 저를 노려보는 게 느껴집니다. 섣부르게 세상 탓이나 하다니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치시는군요. 과연 그렇습니다. 책장에 당신의 시와 산문을 전집으로 갖춰놓고도 늘 그림자를 의식하고 원군을 기다리며 혹은 원군 노릇이나 하며 "지루한 횡설수설"만 늘어놓는 제 자신을 두고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잡소리 집어치우고 당신 얼굴에 침을 뱉는"('시여, 침을 뱉어라') 뜨거운 사랑을 몸으로 살지 못한 제가 이런 세상을 만들었으니 다만 부끄러울 뿐이지요.
하지만 어설픈 고해성사는 그만두겠습니다. 당신은 신부도 아버지도 아닌 시인,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를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 죄 많은 것들끼리 힘껏 부대껴서 "복사씨와 살구씨가/ 사랑에 미쳐 날뛸 날"('사랑의 변주곡')을 이루리라 노래했던 시인인데 창백한 죄책감 따위로 당신을 괴롭힐 수는 없지요. 더구나 당신은 누구보다도 죄책감의 자의식에서 벗어나 무아의 사랑을 살기 위해 온몸을 던진 사람이거늘 명색이 당신의 독자로서 그 성취를 무화시켜선 안 되지요.
솔직히 예전에 당신을 읽을 때는 당신의 불안과 불만,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힘겨운 싸움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나이를 살고 다시 당신의 시와 산문을 읽으니 비로소 보입니다. "포즈는 버리고 사상을 취하려"(시 월평「 동요하는 포즈들」중) 당신이 얼마나 애썼는지, 행여나 절망과 반성에 익숙해질까 봐 그래서 자칫 절망의 포즈에 도취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나이가 들고 생활의 더께가 쌓일수록, 해면처럼 "양심과 독기를 빨아먹는" "정체 없는"('적') 적에게 발목이 잡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는"('하… 그림자가 없다') 싸움을 잊을까 당신은 불안해했습니다. 그래서 비 오는 거리에서 아내를 때리는 패악을 부리고 그러고 돌아와 고작 두고 온 우산이나 챙기는 자신을 폭로하는 시('죄와 벌')를 쓴 것이지요.
온몸으로 시를 쓰며 사랑하는 가족에조차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았던 당신, 치열하고 고독했던 당신의 싸움을 떠올리니 당신을 너무 빨리, 너무 오래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미안하고 부끄러워집니다. 당신의 시를 위해 당신의 적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당신 아내는 15번 이삿짐을 싸고 풀면서도 당신의 육필원고와 당신이 들여다보던 거울과 당신이 쓰던 책상과 의자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데, 당신 덕분에 비로소 현대시를 갖게 된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는 작은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니…….
오랜만에 당신을 추억하며 구수동을 찾습니다. 강물도 다리도 사라진 자리엔 구름을 위협하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다리 건너 마을엔 구립 도서관이 깔끔한 자태를 뽐냅니다. 어쩌면 지금 저 도서관에서 미래의 김수영이 시를 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 도서관에 당신의 자취와 함께 당신을 기리는 공간이 있다면 미래의 시인에겐 물론이요 콘크리트 숲에 찌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련만. 시인을 기리기엔 이 시대가 너무 부박한 걸까요.
그래도 저는 당신이 만년에 그렸던 저 뜨거운 절망과 차가운 희망을 놓치지 않으렵니다.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 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 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 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 같고
('꽃잎(1)' 전문)
온몸으로 떨어진 동백꽃잎이 붉습니다. 봄의 입구에서 당신의 오랜 이웃이 꽃잎 하나 드립니다. 부디 이 작은 꽃잎을 기꺼이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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