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케이트 그린어웨이 그림, 로버트 브라우닝 글, 김기택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시공주니어 |
아이들에게 읽히는 책에서 그토록 명백하게 어른들의 불길한 감시의 시선을 드러내는 예는 또 없었다. 내게는 어릴 때부터 배웠던 성경과 더불어 저 동화책들이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외부의 (어쩌면 하늘의?) 시선을 상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늘 잠자리에 누운 채 오늘 하루 동안 내가 저지른 죄악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10개만 안 넘으면 착하게 보낸 하루라고 생각하고 안심하며 잠을 청했다.
나이 들어 다시 읽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버트 브라우닝 글, 케이트 그린어웨이 그림, 김기택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의 느낌은 좀 달랐다. 다소 건조한 그림 동화와 달리, 빅토리아 시대 낭만주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유려하게 고쳐 쓴 글 때문이었을까? 예전처럼 아이들 입장에서 느끼는 공포보다는,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미지의 수수께끼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그건 거꾸로 피리 부른 사나이와 그 뒤를 좇는 아이들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에 내 시선이 겹쳐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길게 흘러내리는
반은 빨갛고 반은 노란 이상한 외투,
크고 깡마른 몸집,
바늘처럼 파랗고 날카로운 두 눈,
풀어헤친 엷은 머리칼과 까무잡잡한 살갗,
여자처럼 매끄러운 뺨과 수염 없는 턱,
그러나 웃음을 머금은 듯 만 듯한 입술."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난 유월에는 타타르 지방의 황제를 엄청난 모기떼로부터 구해 주었고, 멀리 아시아 인도의 한 지배자를 끔찍스러운 흡혈박쥐 떼로부터 살려 주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저 멀리 동방의 이국에 대한 호기심과 판타지의 신비스러운 매력으로 스스로를 치장한 사람, 그는 "비밀스러운 마법"을 사용하여 "사람을 괴롭히는 생물들, 두더지, 도롱뇽, 두꺼비, 살무사 따위"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줄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하멜른의 무수한 쥐들을 없애주겠노라 단언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가 쥐 떼를 강물로 유인해 모조리 죽인 다음 하멜른 시민들은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유괴범'이라는 통상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그의 신비로운 이미지 때문에 두려움이 가중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보고 하멜른의 한 시민이 읊은 것처럼("저승 사자의 나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나 봐. 막 단장한 무덤에서 걸어 나왔을 거야!"), 그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존재이며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도 확인할 길이 없는 존재이자, "하찮은 피리"만으로 마법을 걸어 너무나도 손쉽게,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쥐떼를 가볍게 박멸함으로써 '합리적인' 마을 사람들의 노력을 무위로 돌아가게 한 존재다. 그는 심지어 국적과 성별마저 모호하다. 그는 중세 하멜른 사회에서의 상식에 의거했을 때, 감사와 존경보다는 공포와 (그 공포를 억지로 누르기 위한) 경멸을 자아내는 존재다. 그래서 그는 모욕당하고 기억에서 지워져야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무시했고, 엄청난 보복을 당했다.
마을의 합리적인 성인들로부터 멸시받고 등한시되는 존재였던 사나이는, 그 자신만큼이나 천대받거나 혹은 진지한 취급을 받지 못하던 쥐와 어린이를 자신과 함께 동반시켰다. 그의 복수는 자신을 모욕한 이들에게 자신들의 사랑과 모욕이라는 얄팍한 감정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태곳적 방식대로, 눈에는 눈, 기만에는 기만으로. 사나이의 피리 소리에 맞춰 하멜른의 모든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작은 발은 타박타박, 나무 신발은 딸가닥딸가닥,
조그만 손은 짝짝, 조그만 혀는 조잘조잘.
마당에 보리를 뿌리면 몰려드는 닭처럼,
아이들은 모퉁이를 돌아 뛰었습니다."
불과 몇 장 앞에서 피리 소리에 끌려 "세상은 커다란 건어물 가게가 되었다"라고 행복해하며 강물로 몸을 던진 쥐 떼처럼, 아이들은 피리 소리 속에서 "우리 마을 이웃에 있는 즐거운 나라, 맑은 물 흐르고 과일 나무 자라는 곳"을 꿈꾸며 그 지상 낙원의 약속을 믿고 사나이를 따라 나선다.
케이트 그린어웨이의 그림은 바로 그 순간, 공포의 클라이맥스를 가장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아베 긴야의 책 표지도 그린어웨이의 그림을 표지로 채택했다. 순수하고 황홀경에 가득찬 아이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그만큼 잘 잡아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우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피리 소리가 그들에게 어떤 영생과 낙원과 영원한 행복과 쾌락과 영원한 순수를 약속한다고 했을 때, 그 소리에 홀린 아이들의 표정은 텅 비어있다. 완벽한 기대감으로만 가득한 그 아이들의 넋이 나간 표정은, 아이들을 붙잡지도 못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른들의 얼어붙은 표정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가장 가슴 아픈 존재는, 다리를 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사나이를 재빨리 따라가지 못해 코앞에서 언덕의 입구가 닫히는 걸 봐야 했던 아이다. 아이는 슬프게 고백했다.
"내 다리가 곧 나을 참인데
피리 소리가 그쳤고 나는 여전히 서 있었지요.
나는 언덕 밖으로 밀려나 있었고,
엉겁결에 나만 혼자 마을에 남아서
전처럼 절뚝거리며 다녔지요."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한 아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존재를 더 확신하며 평생 그것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아이는 어쩌면 또 다른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기를 꿈꾸며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망상의 세계를 남겨진 이들에게 전염시킴으로써 자신의 복수를 끝마친 셈이다.
이는 어딘지 모르게 평생도록 어린 아이들의 환상과 공포에 가득한 세계를 그리다가 홀로 죽어간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헨리 다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죽은 다음에야 그의 방에서 비로소 발견된 '비현실의 왕국' 연대기와 그림들, "비현실의 왕국이라 알려진 세상에서/비비언 자매들의 이야기에 관해,/어린이 노예의 반란으로 일어난/글랜데코 안겔리니아 전쟁의 폭풍에 관해"라는 머리글과 함께 작성된 "잔인하고 진부하면서도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아슬아슬하게 유아 성욕의 위협을 비껴간 개인적인 망상의 세계 말이다. (헨리 다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세계 환상 문학 걸작 단편선 2>(무라카미 하루키, 로빈 매킨리 외 지음, 이매진 옮김, 황금가지 펴냄)에 수록된 엘리자베스 핸드의 '뒤집어 보기 : 헨리 다거에 대해'를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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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아베 긴야 지음, 양억관 옮김, 한길사 펴냄). ⓒ한길사 |
다만 이 정도까지만 말해두겠다. 1284년 6월 26일, 독일 베저 강가의 마을 하멜른에서 130명의 아이들이 사라졌다. 이것은 '사실'로 보인다. 아베 긴야는 13세기 독일의 사회상을 도시 건설, 정교분리, 경제 발전, 신분제도, 축제의 의미 등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분석하며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이들'의 당시 처지에 대해 수긍 가는 해석을 덧붙이고, 이 끔찍한 유괴담 이면에 숨겨져 있던 당시 천민들의 삶을 따뜻하게 복원한다.
역사학자가 '단순한' 전설을 정교하게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추리소설이다. 그러니까 "전설이란 옛날이야기나 동화와는 달리 어떤 역사적 사실을 핵으로 하여 형성되고 변형되어가는 것"이라는 전제 하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이 시간의 흐름 앞에 스러지지 않은 채 조금씩 살을 붙여가며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는 그 안에 아주 보편적인 감정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각자의 시대적 생활상에 따라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에 "자신의 은밀한 바람을 투영한 결과", 전설은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베 긴야는 바로 이 생활상의 (비교적) 정확한 진단을 통해 전설의 핵심을 뚫고자 하는 성실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노력은 충분히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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