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8일, 박근혜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부처별 업무보고 일정을 확정하면서도 인권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교직과 저술 활동으로 우리 사회의 법과 인권에 대해 발언해 온 안경환 서울대학교 교수는 특히 이 부분, 인권과 인권위에 대한 박 대통령의 태도에 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가 2006년 10월부터 2009년 7월까지 기관장으로 몸담았던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3년 남짓한 기간 영광과 수모를 드라마틱하게 경험했다.
그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해야 하는 이 기관의 성격 상 드러내놓고 사랑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적어도 이 독립 기관의 필요성을 용인해 주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하려 하는 등 필요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의 업무보고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본격적으로 인권위 무력화 작전을 시도, 직원 규모를 크게 축소시키고 시민단체로부터 큰 반발을 산 현병철 씨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 <좌우지간 인권이다>(안경환 지음, 살림터 펴냄). ⓒ살림터 |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어느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이 역사상 최고"라 자평했지만, 안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의 인권 무관심이 국제 사회에서의 망신을 자초했다고 술회했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이유는 이 전 대통령이 '인권위=좌파 정권이 유물'이란 생각을 떨치지 못한 데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안 교수가 강조하려 한 반박의 말이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인권은 좌의 것도 우의 것도 아니라는 것.
18대 대선 레이스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에 잠시 몸담았고 패배를 경험했지만, 이 책의 서문과 인터뷰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담백한 응원의 말을 보냈다. 박근혜 정부은 "이월부채"가 된 쌍용차,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사건 등 이명박 정부의 "반인권 사건"이 되풀이되지 말 것, 그리고 인권위의 "독립 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포용" 등을 촉구했다. 지난달 27일 그와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편집자>
프레시안 : <좌우지간 인권이다>를 쓰면서 인권위원장으로서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술회도, 현재의 인권위에 대한 발언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부담이 컸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반드시 책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안경환 : 회고록이라면 나보다 나이나 경험이 많은 분들이 쓰거나, 자신의 최고 직위에서 내려온 다음에 쓰는 게 보통이다. 그렇지 않은 내가 직위에서 물러난 지 3년도 안 되어 회고록을 쓴 것은, 조금이라도 더 기억이 생생할 때 인권위에 대한 회고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인생에서 잠깐이라면 잠깐 동안 경험한 일이지만 시대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체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위원장을 하면서 국민들이 인권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른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꼈다. 현안의 성격과 언론의 입장에 따라 인권위에 대한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인권위가 어떤 성격의 기관인지 국민들이 좀 더 알아줬으면 하는 심경이 컸다.
한편으로는 인권위원장으로서 소위 말하는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를 한 번씩 겪으며 절반씩 경험했으므로, 이때의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새 정부의 출발에 맞춰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했다. 앞으로의 판단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할까. 또 내가 떠난 뒤 인권위가 정상적으로 돌아갔으면 오히려 아무 이야기 필요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 않나.
프레시안 : 그게 아니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후임인 현병철 현 인권위원장은 임기 기간, 특히 초기에 언론에 드러난 잡음이 많았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 안경환 서울대학교 교수(제4대 국가인권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
사실 내가 임기보다 일찍 물러난 이유는 모든 언론이 그렇게 쓴 것처럼 (인권위 축소 등 탄압에 대한) 항의의 의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를 국제 사회의 리더로 만들고 국격을 높이는 작업, 구체적으로 말해 내가 추천하는 후임자를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의장으로 만들기 위해 지원하는 작업을 위해 선택한 도박 내지는 작전이었다. 나는 ICC의 부의장이었고, 5개 대륙별로 3년 주기로 돌아가는 의장 자격의 다음 차례가 아태 지역이었으니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을 비롯해 대통령 주변 분들에게 미리 그런 뜻을 전달하고, 구체적으로 인물도 제안했다. 국제 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니 설사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도 (후임자 지정은) 잘 될 거라고, 전향적으로 생각했다. 기대하면서 물러났다.
그런데 인사 뉴스를 보고 실로 뜻밖이었다. 국제 사회에 배경이 없는 분이고, 내 계획도 실패한 도박으로 끝난 셈이다. 후임자에 대해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고 그 역시 임기 내 잘 한 일도 많겠지만, 내가 연임에 반대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인권위는 기본적으로 정부에 비판적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당당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내부적으로 성향이 다른 여러 사람들을 아울러서 지내는 것이 장의 역할인데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징계를 내렸다. 이건 상당히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도 쓴 것이다.
'보복' 당한 국가 기관 위원장
프레시안 : 책 제목에서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닌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인권은 좌파 정권의 것'이라는 흔한 통념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임기 내에도 느꼈듯이 한국에서는 그것이 좌파 정권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안경환 : 사실 우리 사회에서 좌파가 뭐냐, 우파가 뭐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 만약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체제가 완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이 우파라면 당연히 인권은 좌파의 것이다. 그럴 경우 현 체제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게 좌파가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좌·우파는 그런 구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태도, 야당을 지지하느냐 여당을 지지하느냐의 여부로 판단된다.
적어도 내 재임 기간 중의 인권위는 그렇지 않았다. 인권위 자체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모든 정부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한 기본이다. 그런데 왜 '인권위=좌파 정부의 전유물'로 여겨지게 되었을까. 애초부터 인권위 설립 취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았다. 국가인권기구는 세계적 추세 속에서 만들어진 건데, 김대중 정권 당시 여당이 제출한 인권위법이 통과되면서 구도가 정치적으로 갔다. 기자들도 싸움 붙이는 데 골몰했다. 이 책도 그게 아니란 걸 재차 강조하기 위해 쓴 건데, 여전히 언론에선 새 정부에 대한 비판만 요구한다. (웃음)
"설령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도 인권위는 탄생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하면 유엔이 주도하는 세계적 추세를 수용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1993년 유엔 총회가 설립 권고안을 채택할 당시 불과 5,6개 회원국이 이런 유형의 국가인권기구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2012년에는 130개국으로 확대된 사실을 감안하면 인권위 설립은 정권의 성격과 무관한 시간 문제였다.
(…) 지극히 근소한 표차로 마침내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야가 동시에 다른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표결에 부쳤는데 (…) 이렇듯 출범 당시부터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치적 논쟁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기존의 사법·행정 기관에게 인권위는 느닷없는, 기이한 성격의 존재로 비치기도 했다. 인권위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알려 하지 않고 '좌파 정부의 전위대'로 공격하는 정치적 정서도 이때부터 잉태된 것이다." (<좌우지간 인권이다> 7~8쪽)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의 위상과 정권의 성격 간의 관계는,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에 걸쳐져 있는 회고록인 이 책 속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창립 이후 6년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아래서 인권위가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틀에서 그 기능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와 양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른 사람을 인용해 이명박 정부가 '인권 알레르기 정권'이었다고 말했고, 그 표현이 아니더라도 비판적인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차이에 대해 좀 더 부연하자면.
안경환 : 유엔이 말하는 인권위의 기준은 '독립적인 기관'이다. 입법, 행정, 사법 기관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존립 조건이다. 그 기준에 따라 인권위를 만들어 놓은 이상, 독립성에 대한 인식과 양해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에 걸친 6년간은 마음에 안 들어도 '독립성'에 대해서만큼은 참아줬다. 이명박 정부는 참아주지 않았다. 이런 독립적 기관이, 인권이란 가치를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러면서 언론이 싸움을 붙였고, 정치권이 북한 인권 이슈를 가지고 인권위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 과(過)를 인권위가 고스란히 덮어 쓰면서 더욱 더 정치적인 기관으로 보이게 된 거다.
프레시안 : 2009년 인권위 축소안이 나왔을 때 촛불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안경환 : 보복이 분명하다. 촛불 집회 당시 인권위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를 주장하는 진정 사건 조사와 직권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평화로운 집회와 경찰의 방어적 진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기에 경찰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 다루지 않았다고 언론이 난리를 쳤다. 이상득 의원이 경찰도 맞았다며 불 같이 화를 냈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물론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경찰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구제할 권한이 없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만을 다룰 뿐, 공권력에 '대한' 침해는 관할권 밖이다.
이명박 정부에는 인권위라는 기관에 대한 이해와 우리가 '종합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경위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었고, 정부 자체에 여유도 없었다. 얘기를 들으려는 노력도 일절 하지 않았다. 다양한 공식 채널로 접촉하려 애썼지만 대통령은 업무 보고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으니까. 아마 현 위원장 임명하고 나서부터는 받아 주었을 것이다. '안경환은 전직 정부가 임명한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분류해 둔 모양이고, 촛불이라는 '기회'로 인권위를 탄압한 셈이다.
"그해(2009년) 11월 늦은 어느 날, 비교적 균형 감각이 있는 청와대의 모 수석을 만났다. (…) 이젠 촛불도 꺼졌고 정부도 안정되고 했으니 대통령께서도 크게 보실 기회를 드려야 하지 않느냐고 권했다. 그는 난색을 표했다. "아니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그 말의 의미를 깨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후일 알고 보니 이미 이때부터 청와대에서는 괘씸한 인권위에 대한 보복 조치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 되돌아보니 청와대의 목표가 분명했다. 인권위의 기구 축소와 '좌파 척결'이었다." (117~118쪽)
ⓒ프레시안(최형락) |
인권위 필요 없다? 제도가 '완전'하다면!
프레시안 : 앞서 말했다시피 인권위의 존립 조건은 독립성이다. 입법, 사법, 행정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제4의 기관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거다. 이 책에서는 인권위가 겪은 정부와의 긴장 외에도 사법부와의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사법 기관과의 관계는 어땠나.
안경환 : 검찰과 사법부는 인권위를 처음부터 싫어했다. 김대중 정부 때 법무부장관도 인권위 설립에 엄청나게 반대했지 않나. 우리나라 사법 제도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기 싫은 거다. 물론 사법은 나름대로 오랜 시간 검증된 사람들의 것이니 인권위가 하는 일에 대해 '검증 받지 않은 사람들의 간섭'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감히 어디서 나한테 뭐라고 해?'라는 정서라고 할까.
인권위가 확실하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국제 인권법이 국내 사법 제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감시하고 권고하고 추진하는 역할이다. 우리나라 헌법 체계 내에서도 국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의 일부가 되어 있는데, 보통 재판에서 아무도 그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인권위가 나서는 것이다. 법원에서는 이 역할 또한 좀 싫어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국가인권기구 자체가 현대의 사법 제도, 권리 구제 제도가 불충분하다는 인식 때문에 만들어지게 된 거다. 사법 제도로 권리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시간도, 돈도 많이 든다. 그때 조금 더 신속하게 진정을 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게 인권위는 존재한다. 설령 시민이 먼저 문제제기를 하지 않더라도 권리의 침해가 일어나고 있지는 않나 늘 정부를 감시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제기권만 주고 집행권을 안 주지 않나. 다시 말해 기존 사법 제도에 대한 대체가 아니라 보충인 셈이다. 이 역할에 대한 인식이 없고 몽테스키외의 3권 분립을 들며 고릿적 이야기를 하는 분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현재까지 인권위원장에 임명된 다섯 사람 모두 법률가다. 이것이 "(인권위가) 성숙된 정착을 이루지 못했다는 징표"라고 말했는데.
안경환 : 그건 법률가에 치우친 위원장 임명 때문이 아니라, 위원장 임기를 끝까지 채운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다만 법률가가 가진 성향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다. 인권을 법의 문제로만 파악하게 되면 통합적인 이해가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법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의 문제다. (모든 수단을 쓴 다음)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언젠가는 좀 더 넒은 안목을 가진 다른 분야의 사람이 위원장을 맡는 날도 왔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인권위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근거 중 하나가 미국이나 일본에는 이러한 국가인권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안경환 : 그 나라에 인권 침해 구제 기관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미국에는 고용 평등 위원회 같은 게 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나라들 특징이, 사법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깊다는 점이다. 사법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름 잘 되어 있다는 감각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사법에 대한 불신이 강한 나라다. 결국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 때문에 (인권위가) 탄생한 것 아니겠나. 그걸 부정하고 체제 완결성을 굳게 믿는 분들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책에서 인권에 대한 감정을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그것에 견주기도 했다. 왜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기대를 많이 했는지 속내를 듣고 싶다.
안경환 :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많이 다르다. 다른 이유가 굉장히 많다. 출신 배경이, 성별이, 신체 조건이…. 그게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서로 존중하자는 것. 그것이 법, 인권의 토대다. 나아가 사람이 다 다르지만 평등하게 대하자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중에서 형편이 좀 나은 사람이 형편 나쁜 사람을 조금 더 배려해 주는 것, 이게 법이나 인권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평생 법학자로서 이 지론을 가지고 살아왔고, 형편 나은 쪽에 문제제기를 해 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법은 대체로 제도를 가진 다수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고, 인권은 소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인권이란 가치, 인권법이란 제도는 소수자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수는 이미 사회의 다른 제도나 힘을 갖고 있으니까. 이런 식의 훈련을 해야 사회가 균형 있게 발전하고, 다 같이 형편이 좋아질 거란 믿음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해 온 거지 특별한 '인권 사랑'이 아니다. (웃음)
'독립된' 국가 기관을 지켜 달라
프레시안 : 어떻게 하면 인권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나.
ⓒ프레시안(최형락) |
두 번째는 내부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독립 기관이라는 게 참 외로운 존재다. 정부의 모든 사람들은 싫어하지, 시민 단체들은 더 '세게' 하라고 그러지… 외로운 만큼 필요한 게 "우리는 정부에 쓴 소리를 해야 하는 독립 기관이다"라는 자부심이다.
세 번째는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과 격려다. 인권위를 탄압해서는 안 된다고 지켜주어야 한다. 앞서 6년간은 적어도 앞에 두 가지 조건은 충족이 됐었는데, 문제는 이명박 정부 때 세 가지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러니 조직이 많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세 번째 조건은 아직 충족된 적 없다는 얘기인데, 다시 말해 인권위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감각이 아직 일정 수준 이하라는 얘기다. 한 나라의 인권 수준이 나아지려면 인권위만 잘 해서 되는 게 아닐 텐데,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안경환 : 억지로 해서 되는 게 아니고 결국 국민이 결정할 일인데, 그 여론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언론이다. 그런데 이번 책을 소개한 언론도 얼마 안 됐고, 성향도 한 쪽으로 치우쳤다.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본다. 그러나 인권은 '결국 오게 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복지 문제를 강조했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복지 소리 꺼내기만 하면 '좌익' '빨갱이' 소리 들었다.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이 이렇게 좌우 관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그걸 조금 더 앞서서 물꼬를 터주는 게 인권위다. 지금은 시끄러워보여도 어떤 기관은 먼저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적어도 그런가 보다, 하는 자세를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이 책에서 꼬박 한 장(章)을 들여 관심을 표명한 인권 이슈가 바로 장애인 인권이다. 인권위 사건 중에 장애 사건의 비중이 전체의 11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높고, 인권위 개소와 동시에 가장 먼저 접수된 진정도 장애인이 제기한 것이라며 "장애는 인권의 상징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아 보인다. 어떻게 접근하고 싶나.
안경환 : 나는 장애인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유념의 시선을 받지 않고 공공장소에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70년대부터 외국 경험을 하면서 그런 '신기한' 모습을 많이 봤고 오랜 관심사였다. 2004년 서울법대 학장으로 재직할 때 최초로 전맹(全盲) 시각장애인을 입학시키기도 했다.
장애인 인권 문제는 조금 더 가진 사람이 뒤처진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전체적인 기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가령 인권 문제에서 '돈이 드는 일'과 '안 드는 일'을 보자. 정도의 문제이긴 하나 시민적 자유 같은 것은 비교적 돈이 적게 드는 일이다. 사회권 문제는 돈이 많이 드는 문제다. 그러면 돈 많이 드는 일을 위해 복지 예산을 충당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나라는 많이 늘어났다고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기준으로 복지 예산이 밑바닥이다. 부(富)에 의한 차별이 심하다는 얘기다. 결국 전반적인 사회 기조가 과거와 같은, 성장 속도에 대한 집념을 덜하게 만들어야 한다.
"장애 인권 정책의 실현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인식 변화와 함께 보편적 복지 정책으로의 전환, 그리고 복지 예산의 확대와 전달 체계의 개혁에 달려 있다." (97쪽)
박 대통령, '국민 누님'이 되어 달라
프레시안 : 재직 중, 인권위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 유난히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안경환 : 전임 위원장들에 비해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했다. 나는 인권위 만들 때 관여한 게 없는 사람이다. 활동가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 텐트를 치고 노숙 농성을 할 때도 현장에 가지 않았다. 그런 내가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풍부한 국제적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좌우로 갈라진 국내 정치적인 첨예한 대립을 불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아쉬운 게 우리나라가 ICC의 의장국이 되지 못한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모범 사례로 알려져 있고 여러모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의장을 탄생시켰다면)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이미지 개선이 됐을 것이다. 이게 늘 아쉽다. 모두 국내 문제를 놓고만 싸우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얻고 잃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안목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선거 전에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나. 그걸로 국내 표는 얼마간 모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국제적으로는 나라의 위상 문제와 직결된다. 그게 나라 바깥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이 없었던 거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프레시안 : 그건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기 때문인가?
안경환 : 아니다. 그건 개인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라기보다 세계적 추세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의 문제다. 설사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선거 전에 그렇게 민감한 이슈를 가지고 발언한 건 문제가 된다. 한국 사회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데, 국내 표 문제만 가지고 판단했다는 게 실망스러운 거다. 국제적인 감각이 없었다.
프레시안 : 선거 전 이야기를 하니,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 '새정치위원장'으로 합류한 것이 생각이 난다. 공격을 받을 만한 위험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당의 일에 관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안경환 : 문재인의 당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의 낙선을 바랐기 때문에 참여했다. 이건 박근혜 개인에 대한 불신은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평가 때문도 아니다. 문제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성향이었다. 그 지지 세력은 이명박을 지지했던 그룹과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이어져 왔는데, 특징을 보면 대개 '집중을 통한 성장'에 비중을 두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복고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 나는 그렇게 가면 갈수록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화되고 빈부 격차가 커질 거라고 봤다. 이명박 시대에 인권을 통해 접했던 경험이 하나의 징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대학에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해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보는데, 내가 재직하는 대학에도 갈수록 집안 배경이 어려운 학생들이 들어오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여실히 느낀다. 집이 부자가 아니고 아버지의 권세가 없는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장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다. 절대 이 구도를 유지시키거나 심화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 없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청년들이 갖는 정치에 대한 냉소다. 여당 정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출세와 그것을 교두보로 한 신분 상승이라는 생각,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적잖이 부패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편 야당 정치는 투사 아니면 '정치 건달'의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정상적으로 정치가가 될 수 있겠나.
문재인 캠프는 그래도 미래 세대에 대한 꿈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집권을 하면, 움직이지 않는 견고한 새누리당 쪽보다는 실현시킬 힘이 있다고 봤다. '안철수 현상'이 왜 떴겠나. 양대 정당에 대한 불신 때문 아니겠나. 이런 좌절과 그 끝에 불타는 열망을 통해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있어서 자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이 책 서문이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이다. 인권 문제에 있어 그에게 어떤 것을 주문하고 싶나.
안경환 : 이명박 정부가 인권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그 반대로 간다면 한 것 보다 효과가 훨씬 더 좋지 않겠나.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48퍼센트의 젊은 분들을 봐달라는 것이다. 그를 지지했던 51퍼센트는 대부분 나이 많은 분들이다. 이쪽이 숫자가 높다고 휘둘릴 게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 나갈 젊은 반대자들을 배려해서 이끌어 가면 좋을 거라고 본다.
또 여성 대통령 아닌가. 여성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미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여성 리더는 보살피는 리더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국민 어머니, 국민 누님이 되어 달라. 그럼 다 잘 풀린다.
프레시안 : 이 책에 담긴 시간으로부터 4년 정도가 흘렀다. 한국의 인권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지는 않은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거라고 보는가.
안경환 : 좋아져야지. 낙관적으로 본다. 어쨌든 지금 (새 정부가) 처음 시작하는 단계고, 발목을 잡을 게 아니라 격려와 축복이 필요한 때다. 나중에 필요하다 싶으면 강하게 비판하고, 과거를 떨치고 미래로 가달라는 주문도 해야겠지. 아무튼 역사를 결정하는 건 지도자 하나가 아니라 국민 각각의 결단이다. 나는 역사의 발전, 인권의 진보를 믿는다.
안경환 교수는 오는 8월, 오랫동안 몸담아 온 서울법대 교수직에서 물러난다. 퇴임 전까지 어떤 형식으로든 2~3권의 책을 더 낼 계획이며, 그 후로도 다양한 저술 활동에 주력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학교를 퇴임하는 거지 저술가 인생을 마감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웃었다. 지금은 자신보다 한 세대 위의 논쟁적인 인물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라고 귀띔한다.
그는 "어두운 시대에 운 좋게 서울대 교수가 됐고, 그래서 세상에 대해 일종의 책임의식을 느껴 왔다"며 "아직 열리지 않은 시대의 빗장을 열도록 돕는 작업"을 앞으로도 저술 활동 속에서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 대학교의 종신 교수직 제안을 거부했다며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한국 현대사의 일부"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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