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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보니…

[시민정치시평] 'NLL 포기' 발언은 없다

국정원이 불법 공개한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보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개성, 해주, 강령군 등과 같은 북한 땅을 남한에 '준다', '주겠다'는 등의 표현을 일곱 차례 이상 반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완고한 2급 보수"라고 지칭한 북한 군부의 입장에서는 적대국 정상에게 자기 땅을 '준다'는 표현이 못마땅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준다'는 표현이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그곳에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이지, 영토를 포기한 것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회의록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북한은 중국에게 동북 4성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하자, 노 전 대통령은 "동북 5성으로 만들어 가지고 남측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부르라고 하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고 대답한다. 남한의 '무도한 3급 보수'가 이것도 영토 포기 발언이라고 우기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지만, 사실 노 전 대통령의 그 발언 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NLL 논란에 대한 핵심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네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신뢰의 바탕 위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 경제 협력 확대, 통일과 화해라는 세 가지 의제를 제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북미 관계 정상화,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철도 도로 개통, 금강산 관광 특구 확대, 해주 지역 남북 공동 경제 특구 설치, 이산가족 상봉, 남북 정상 회담 연례 개최, 당국 간 상설 협의기구 설치, 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 한국전쟁 유해 발굴 송환 등과 같은 구체적 사안들이 망라돼있다. 이후에 노 전 대통령은 "이번에 이 많은 공부를 해 왔는데"라며 오후 회담도 가질 것을 여러 차례 제안한다. 이를 두고 한국의 보수 세력은 노 전 대통령이 비굴하게 김 위원장에게 일곱 차례나 매달리며 간청했다고 조롱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덕담이나 하고 사진이나 찍으려고 김정일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방북한 것이기에 두 시간의 오전 회담이 턱 없이 짧은 시간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어쨌든 노 전 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대해 김 위원장은 남북문제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정신으로 풀어야 하며, 남한의 자주성 결여로 기존의 남북 합의가 거의 대부분 '빈 종이짝'이 됐으며, 서해 군사 경계선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모두 발언을 한 후,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불러 6자회담 결과를 남북정상 모두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아울러 남북경협 확대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때까지 이룩한 민족자주경제는 다 파괴되고, 시장경제 말려들어가고, 주체공학이 없어지고 하는 이런 정신적인 재난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시기…"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북한의 최고 존엄 김 위원장이 남한의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이러한 궁색한 처지를 밝히는 것은 과연 '협상 전략'에 속하는지, 혹은 '비굴한' 일에 속하는지 한국의 '비굴불가' 보수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김 위원장의 자주성 발언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남한이 미국에 의지해왔고 친미국가이며 북한이 하는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자주 국방, 주적 용어 폐기, 작전통제권 환수, 용산미군 기지 이전, 작계 5029 폐기 등과 같은 노력의 '자주성'을 강조한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이러한 발언과 함께 미국 "제국주의 역사", "패권적 야망",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 등과 같은 노 전 대통령의 이후의 발언을 두고 위험한 반미 발언이라고 공격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분단된 독립국가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당연히 고민하고 해결해야할 당위의 사안들이다.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심지어는 박정희와 같은 가장 친미적인 나라의 정상에게조차도, 미국이 갖고 있는 현실적 힘을 때로는 제국주의적이고 패권적이고 평화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필수적인 정치 소양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바로 이어지는 발언에서 노 전 대통령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자고 말하면서, "되지도 않으면서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이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로 김 위원장의 자주성 발언을 반박한다. 또 다른 대목에서는 "남북이 말하자면 완전한 협력관계에 들어서고 북측이 국제관계에 들어서고 나면 쫓아내지 못하거든요. 지금은 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위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되거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라며 대놓고 반박해,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곧바로 "옳습니다. 노 대통령님의 견해를 충분히 알았습니다"라고 답변하게 만든다.

자주성 발언을 이렇게 정리한 후, 노 전 대통령은 남북경협의 확대를 놓고 김 위원장을 본격적으로 설득한다. 그리하여 한강하구 개발과 해주 공단 설치를 포괄하는 서해안 경제협력 평화지대 구축, 원산 조선공업 단지 설치, 남포 조선소 건설, 서울-개성 간 철도 및 고속도로 건설, 항공로 구축, 부총리급 경제협력공동위원회 설치, 개성지구 통행과 통신 개방 등과 같은 경제협력 사업들이 두 정상 간에 합의됐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에게, NLL 문제는 확대된 남북경협, 특히 서해안 경제협력 평화지대의 틀 속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김 위원장은 오전 회담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는 취지의 내용을 두 번에 걸쳐 발언한다. 그리고 오후 회담에서는 "서해를 남측이 구상하는 또 우리가 동조하는 경우에는 제 일차적으로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 거 하면 해상에서는 군대는 다 철수하고 그다음에 경찰이 하자고 하는 경찰 순서"라는 취지의 내용을 세 차례에 걸쳐 반복한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오전에는 "이걸 풀어나가는데 좀 더 현명한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 거기 말하자면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 "이 문제를 깊이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게 아니냐",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거든요"라고 일관되게 서해 평화협력지대라는 구상을 내놓는다.

그리고 오후에는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 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큰 그림을 하나 그려놓고, 어로협력 공동으로 하고 한강하구 공동 개발하고", "평화협력체제, 앞으로 평화협력지대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해야 합니다",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 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 동안에 NLL 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라고 일관되게 서해 평화협력지대 설치라는 그림으로 대응한다.

이러한 구상은 NLL이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남아있는 마지막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에 뭔가 문제를 풀어야 된다"는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NLL에 대해 '바꿔야 한다'라든가 '김정일 위원장과 생각을 같이 한다'는 발언은 한반도의 분쟁 화약고인 서해에서의 충돌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의 변경과 동의일 뿐,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부가 쾌재를 부르고 지난 대통령 선거와 이번의 국정원 정국에서 곶감 빼먹듯이 써먹는 'NLL 포기'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국회는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남북정상회의록 원본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국정원이 불법 배포한 8쪽 짜리 발췌본이 정상회담록을 악의적으로 왜곡했듯이, 국정원의 원본도 온전한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 원본만으로도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NLL을 둘러싼 정치 공세가 터무니없는 위험한 짓이라는 것은 다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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