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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가 최고의 역사가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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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가 최고의 역사가인 이유!

[프레시안 books]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역사>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자신이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1969)(폴 오스카 크리스텔러 엮음,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펴냄)를 집필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영화이론>(1960)에서 사진을 위해서 행한 것을 이 논고에서는 역사를 위해서 행하고자 한다. 아직 완전하게 인정받거나 평가받지 못한 중간계 특유의 속성을 밝혀내는 것이 그것이다."

크라카우어 사후에 출간된 이 저서는, 역사를 하나의 풍경으로 보면서 그 풍경을 탐색하고 조망하는 자로서의 역사가는 어디쯤에 자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은 '아찔하게 높은 절벽'에서 자신만만하게 거닐었던 철학자 니체와 그가 거니는 모습을 '두려움과 즐거움이 섞인' 마음으로 올려다보며 니체가 보았을 풍경을 상상 속에 그려보려 애쓴 역사가 부르크하르트를 대비시키고, 부르크하르트에게 돈키호테-마성(魔性)을 벗어던진 자유인으로서의 산초 판사라는 카프카적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지금 크라카우어를 읽는 우리에게, 이 카프카적 우화는 <유아기와 역사>(1978)(조효원 옮김, 새물결 펴냄)의 조르조 아감벤에 의해 다시 한 번 굴절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인식의 주체이자 경험의 생산자이되 경험을 소유하지는 못하는 돈키호테와 경험의 주체이되 그것을 생산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산초 판사 간의 분열의 우화로 말이다. 사실 크라카우어의 <역사>는 이 분열을 해소한다기보다는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후자에게 내기를 거는 편을 택한다.)

▲ <역사>(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지음,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 엮음,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문제는 역사라는 풍경이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풍경이라는 데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새로이 발견되는 사실-지리상의 발견으로부터 보다 면밀하고 미시적인 조사에 따른 새로운 사료의 발굴에 이르기까지-에 따라 그 폭과 너비를 계속해서 더해가는 것이 역사적 현실(historical reality)이다. 게다가 이 현실은 자유와 필연의 세계 양쪽에 걸쳐 있는가 하면, 개별적 존재단위들에서부터 해석을 거쳐 "아찔하게 높은" 이념으로까지 상승하는 고도를 아우른다.

이것은 종결과 전체성을 허락하지 않는 "끝에서 두 번째 세계"이자 영원한 '대기실' 혹은 '중간지대'(intermediary area)이다. 이런 풍경을 탐색하고 조망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찾는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 터, 따라서 역사가의 과제는 낮은 곳에 거하는 자로 남으면서 ("사료의 질감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역사라는 풍경의 곳곳을 탐색하는 여행에 나서는 한편, 절벽 꼭대기에서 조망을 과시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 의심을 품는 것이다.

(크라카우어는 "새의 시야와 파리의 시야를 융합하자는 토인비의 제안은 원칙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면 "대개 새 쪽이 파리를 잡아먹는다.")

책의 곳곳에서 우리는 역사와 영화 사이의 유비를 꽤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걸 여기에 일일이 열거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크라카우어가 '카메라-현실'(camera-reality)이라 부르는 것이 역사적 현실과 어떤 점에서 구조적으로 닮아 있는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미 <영화이론>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영화는 실제로 촬영의 대상이 된 현실보다 더 포괄적인(inclusive) 현실을 환기시킨다. 영화를 이루는 숏들 내지는 숏들의 조합이 각양각색의 의미를 띠게 될 정도로, 영화는 물리적 세계 이상을 가리킨다."

즉, 역사적 현실과 카메라-현실 양 편 모두 물리적 세계를 초과하는 무언가를 수반하는 세계인 까닭에 우리에게 (조사와 분석을 넘어선)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이러한 세계를 크라카우어는 후설의 용어를 빌려 '생활세계'(Lebenswelt)라 칭하고 있다. 크라카우어는 후설의 생활세계를 "모든 인간학의 원천이자 궁극적 정당화"를 제공하는 일상세계이자 상호주관적인 세계로 이해하고 있다.

단순한 유비를 넘어 사진과 영화가 역사 연구를 위한 (또 하나의 사료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본 데에 <역사>의 진정한 독특함이 있다. 첫째, 인간적 시각을 벗어난 기계적 시각으로 세계를 보게끔 해 줄 수 있다는 점은 사진과 영화 같은 "매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매체와 역사의 유비관계를 통해 역사가는 "역사 영역 내의 습관적 측면들을 생소화시켜", 즉 낯설게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를 역사적 현실을 대하는 '키노-아이'(카메라-눈)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미시사의 대가 카를로 긴즈부르그가 지적했듯, 클로즈업은 크라카우어에게 미시사적 역사연구의 가능성을 숙고해 보게끔 했다. 긴즈부르그가 글 '미시사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에서 쓴 바에 따르면 "전문 역사가가 아닌 크라카우어가 사후에 남긴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최고의 미시사 입문서"이지만 한편으론 미시사라는 "역사서술의 조류가 등장하는 데 그의 글이 끼친 영향은 거의 없다."(<미시사란 무엇인가>(곽차섭 엮음, 최재호·김동원 외 옮김, 푸른역사 펴냄)) 그러면서, 자신 또한 크라카우어로부터 영향 받은 바가 없는 건 그의 글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임을 밝히며 개탄한다.

셋째, 사진과 영화는 사소하고 찰나적인 것을 망각에서 구원하는 일의 의의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사물을 넘어서는 사유가 아닌 사물을 관통하는 사유를 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외부세계의 찰나적 현상을 구체화시키는 일, 그리고 이로써 외부 세계의 찰나적 현상을 망각에서 구원하는 일이 사진 덕에 훨씬 수월해진다. 역사에 대해서도 이런 유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크라카우어가 발터 벤야민에 의해 '넝마주이'(Lumpensammler/rag-picker)라 불리기도 한 인물이라는 점을 문득 떠올리게 된다. 벤야민은 크라카우어의 초기 저서 <사무직 노동자(The Salaried Masses)>(1930)를 상찬하면서 그를 "자신의 꼬챙이로 말의 조각들과 대화의 편린들을 낚아채어 무덤덤하고 고집스레 카트에 던져 넣는, 하지만 이따금 이 버려진 넝마-'인간성', '성찰', '깊이'-한두 개를 아침의 가벼운 바람 속에 별 것 아닌 듯 날려 보내는 이른 새벽의 넝마주이. 즉 혁명의 날, 이른 새벽의 넝마주이"라 불렀다.(벤야민, '국외자는 주목을 끈다')

넝마주이-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작품에서 끌어 온 메타포이다-란 너무나도 익숙하고 범상한 탓에 그저 소비되고 버려질 뿐인 삶의 편린들을 수집해 거기서 사유를 길어 올리는 자다. 벤야민이 독일 시절의 크라카우어에게서 이미 감지했던 이 태도는, 이제 크라카우어 말년의 역작 <역사> 전반을 집요하게 관통하는 역사적 방법론이 되고 있다.

크라카우어는 역사적 현실을 대하는 역사가의 시각의 문제를 아예 역사가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까지 밀고 나간다. 그에 따르면 역사가는 오직 "자기삭제의 상태 내지 타향살이의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사료와 소통할 수 있다. (…) 자기의 사료가 환기하는 세계에서 이방인인 그는 그 세계의 겉모습을 뚫고 들어가서 그 세계를 안에서부터 이해한다는 과제-곧 망명자의 과제-에 맞닥뜨린다."

역사가가 망명자-이방인이어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러한 존재방식을 통해서만 습관적으로 보아 왔던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각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현듯 역사라는 풍경이 그 자신 고국을 떠난 망명자-이방인이었던 한 개인의 자전적 경험에 의해 비춰지기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위의 진술은 사실상 예술가의 존재방식에 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다만 이는 "역사가가 예술을 생산하는 때는 예술가가 아니라 완벽한 역사가일 때"라고 하는 또 다른 진술과 겹쳐 놓을 때만 유의미한 말이 된다. 나 자신 한 명의 영화평론가로서, 크라카우어의 <역사>에서 이런 통찰들을 마주할 때마다 은밀한 기쁨을 느끼게 됨을 고백해야겠다.

왜냐하면 여기서 크라카우어는 역사는 물론이고 오래된 예술들에게 영화가 선사한 깨달음을, 하지만 짧은 영화사를 돌이켜 볼 때 정작 영화 스스로는 받아들이길 거부한 것처럼 보이는 깨달음을, 역사의 이름을 빌려 후세에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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