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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살인 스캔들! 추적하던 남녀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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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살인 스캔들! 추적하던 남녀 결국…

[프레시안 books] 마쓰모토 세이초의 <푸른 묘점>

굴지의 출판사 이와나미 쇼텐의 사장이었던 오쓰카 노부카즈의 책에 "편집자란 대저 구로코(黑子) 같은 사람"이란 표현이 나온다. 구로코는 가부키에서 검은 옷과 두건을 두르고 무대 장치를 바꾸는 역할인데, 관객은 그들이 눈에 보여도 '없는 것'으로 친다. 이 책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송태욱 옮김, 한길사 펴냄)에는 1960~70년대 일본 문예출판 부흥기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 주역들이 어떻게 '구로코'로 남는 걸 참았을까 싶다. 드라마틱한 편집의 세계, 그러나 그럴수록 일본의 편집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것 같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푸른 묘점>(김욱 옮김, 북스피어 펴냄)은 그것보다 약간 앞선 1958~~59년에 연재됐다. (우리 현대사로는 '50년대'와 '60년대'란 구분이 상당히 다른 울림을 주지만 일본인들의 인식 속에서 그 시기는 '쇼와 30년대'라는 황금기에 절반씩 걸쳐져 있다는 점을 부기하고 싶다.) 이 작품은 두 명의 구로코가 전면에 나서 살인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첫 번째로 흥미를 끌었다. 출판사 북스피어와 모비딕이 주거니 받거니 마쓰모토 세이초 전집 신간을 내놓을 때마다 육성으로 환호한다는 전제는 물론 제외하고서 말이다.

▲ <푸른 묘점>(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북스피어 펴냄). ⓒ북스피어
문예지 <신생 문학>의 젊은 편집자 시이하라 노리코는 유명 작가 무라타니 아키코 여사의 원고를 독촉하기 위해 온천지 하코네로 출장을 간다. 그곳에서 유명인의 뒤를 캐 기사로 팔아먹는 3류 저널리스트 다쿠라를 만나는데, 이틀 후 그가 시체로 발견된다. 무라타니 여사와 다쿠라의 죽음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냄새를 맡은 노리코는 같은 편집부의 남성 편집자 사키노 다쓰오와 콤비를 이뤄 추적에 나선다.

머지않아 무라타니 여사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끝내 자살을 하게 되는데, 콤비는 그녀가 생전에 발표했던 소설이 예전에 죽은 어느 아마추어 작가의 원고를 베낀 것임을 알게 된다. 사건의 실체는 추적할수록 복잡해지고, 두 사람의 취재를 지원하던 편집장 시라이조차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두 사람은 죽은 다쿠라와 무라타니가 베낀 글의 주인, 편집장 시라이가 과거 같은 문학 동아리 소속이었다는 사실에 접근하여 조심스럽게 살인의 배경을 좁혀 나가고,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애정을 품게 된다.

내용 소개는 여기까지. 전체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책을 받자마자 그날 밤 다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는 건 사실이지만, 추리 소설로서 그다지 치밀하거나 탄탄한 것 같진 않다. 범인의 살인 동기나 약하고 우연한 상황이 남발된다는 것도 아쉽다. 또한 세이초 특유의 어둡고 건조한 분위기 대신 두근두근 로맨스가 가미된 작품이라는 점도 호불호를 갈리게 할 듯하다.

은근한 험담도 여기까지! 그럼 이제 왜 이 책이 사랑스러운지 말해보자. 독자들이 충분히 빠질만한 그 이유들은 본문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해설에 모두 훌륭하게 설명돼 있지만, 그것은 소설을 완독한 이들을 위한 것이므로 나는 예비 독자들을 위해 두 가지 이야기만 해보도록 하겠다.

점과 선

<푸른 묘점>보다는 직전에 쓰인 <점과 선>(김경남 옮김, 모비딕 펴냄)이 작가 이력에서 더 유명하다. 일본 관료 조직과 철도에 대한 세이초의 통찰이 꽤나 탄탄한 트릭 속에서 불붙는 작품으로 무척 재미가 있다. 제목 '점과 선'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트릭의 중심이 되는 철도의 구성인 역과 선로, 그리고 하나는 세이초가 다른 작품에서도 강조하는 추리의 기본적인 다이어그램이다.

점(點)은 명확히 확인된, 그러나 그 자체로는 사건 해결에 있어 의미를 갖지 않는 사실들을 의미하고, 선(線)은 개별의 점들을 이어 윤곽이 되게 하는 행위, 즉 추리를 가리킨다. 세이초의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상·하권, 김경남 옮김, 모비딕 펴냄)에 대한 권혁태 교수의 서평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발견할 수 있다. 세이초의 역사 논픽션은 대개 동시대 사건에 관한 것이었기에 사건과 사건(점과 점)을 이어주는 증거 문헌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여기서 그는 안개를 뚫기 위해 정황 증거와 추리 기법을 동원하여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바로 가기 : 日 소설가의 고발 "6·25는 미국·일본이 공모한 범죄!" )

"마쓰모토는 사실과 사실 사이의 간극을, 즉 자료적 한계를 추리로 메워 나간다. 여기에서 추리란 사실과 사실을 잇는 논리적 회로를 따라가는 일이다."

<푸른 묘점>에서 콤비가 사건 조사에 나서며 가장 먼저 한 작업은 그때까지 수집된, 명료하게 서술 가능한 정보들을 번호를 달아 나열한 것이다. 파악 가능한 점을 몇 개 찍고, 그것들을 선으로 이어 그림을 그려보려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실제 대목이 이 작업의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목격한 두 쌍의 각기 다른 남녀 위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직선이 그어져 있는 듯했다." (<푸른 묘점> 32쪽)

"이 두 가지 사실이 각각 떨어진 점일 수도 있고, 하나로 이어지는 선일 수도 있어.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야. 다만 두 개의 점 사이가 가깝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지." (418쪽)

조영일이 쓴 해설에 따르면 제목의 '묘점(描點)'은 일본어 사전과 한국어 사전 어디에도 없는 단어다. 다만 일본어 사전에는 묘선(描線)이라는 단어가 등재되어 있는데, 그 뜻은 "사물의 형태를 그린 선"(고지엔 판 일본어 사전)이라 한다. 그렇다면 '묘점'은 '그린 점'으로 이해해야겠지만 이는 기이한 표현이다. "'그리는 행위'란 점을 이음으로써만(즉 선을 만듦으로써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조영일은 정보를 수집하는 쪽인 노리코와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쪽인 다쓰오, 두 콤비의 역할 분담을 언급하면서 이들의 관계를 '점을 찍는 자'와 '그것을 연결하는 자'로 그려본다. 그리고 세이초가 노리코(점)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소설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제목 '묘점'의 의도를 추측한다.

앞에 썼듯 노리코와 다쓰오는 문예지 편집자다. 업무는 기본적으로 달마다 지면을 기획하고 적절한 필자를 섭외해 원고를 받아내는 일이다. 그런데 업무 외 사건을 좇으면서 곱하기 2의 바쁜 스케줄을 행사하게 되는데, 탐정 역을 할 때도 <신생 문학> 명함을 내밀어 관련 정보에 비교적 쉽게 접근한다. 대체로 '매체에 있는 사람=취재가 허락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원래 업무에 취재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지와는 상관없이(<신생 문학>은 월간지인데 같은 제호의 주간지였다면 분명 취재도 주 업무였을 것이다), 이 대목은 기자-편집자, 편집자-기자라는 어떤 불가분의 역할을 떠올리게 한다.

기자는 매일 충격 받고 경악하는 직업 아니냐고? 아니다. 이 지면에서 포털의 구조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재간은 없으니 각설하고, 기자의 일반적인 업무에 대해 말해보겠다. 기자가 하는 일은 보통 취재/보도 혹은 취재/편집의 두 영역으로 나누는 편이다. 취재는 말 그대로 소재 즉 정보를 모으러 다니는 일, 보도 및 편집은 그것을 알맞게 가공하고 배치하여 송출하거나 간행하는 영역 일반을 말한다.

대형 언론사에서는 이 과정을 나누어 각기 다른 부서가 맡게 되지만, <프레시안> 같은 작은 곳이나 잡지사에서는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역할이 요구된다. '취재'의 영역을 보면 기자와 같은 계열의 직업은 탐정 사무소나 흥신소, 정보국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편집'의 영역을 보면 단행본 편집자나 영화 편집기사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이 교집합은 '편집자'란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지난해 인터뷰한 이와나미 쇼텐의 야마구치 아키오 사장은 업계 전설 선배로부터 "편집자는 24시간 저널리스트여야 한다"는 말을 매번 들었다고 한다.

바로 이런 '기자(정체성)-편집자(정체성)'의 관계과 '점과 선'이라는 구조와도 겹쳐진다. 취재는 점 모으기고 편집은 선 긋기라 할까. 그렇기에 정보를 모으는 노리코와 그것을 해석해 윤곽을 잡는 다쓰오가 반드시 하나로 묶여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기자라는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취재' 쪽 계통의 직업이 주로 등장하던 일반 미스터리 소설과 달리, '편집' 쪽 계통의 주인공을 내세운 이 소설이 한층 흥미롭게 느껴지는 개인적인 이유이다.

책으로 떠나는 철도 여행

"후지사와에서 쇼난 전차를 타고 시나가와에서 내려, 야마테 선으로 갈아타고 시부야에 갔다. 이노카시라 선으로 갈아타 마침내 히가시마쓰바라에서 내렸다."

111쪽, 콤비가 무라타니 여사의 집을 찾아가는 대목에서 갑자기 두근거렸다. 장소의 정경을 전혀 묘사하지 않고 역명과 환승 절차만을 나열했음에도 장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일본 철도에 관심이 많고, 가나가와 현 남부의 후지사와에서 도쿄 서부의 히가시마쓰바라까지 가려면 이 소설이 쓰인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저것과 거의 같은 과정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설된 쾌속 열차를 활용한 좀 더 빠른 방법도 있지만, 거치는 노선을 분절해 놓고 보면 저것이 여전히 일반적인 루트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철도를 상당히 좋아했던 것 같다. 모비딕에서 펴낸 비매품 <세이초 파일 001>에 실린 세이초와의 가상 인터뷰에서도 인터뷰어가 철도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 일본에서는 매달 철도 관련 잡지만 수십 종이 발간될 정도로 철도가 일반적인 취미인데, 그 안에서도 관심사가 행정적인 분야, 기계적인 분야 등 십수 갈래로 나뉘고 심지어 열차의 발착음을 사랑해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온테쓰(音鉄, 음철))도 많다. 그런 분류로 보면 세이초는 철도 여행 그 자체와 역과 연결된 지방의 정취를 즐기는 타비테쓰(旅鉄, 여철)적 속성이 강했던 것 같다.

<푸른 묘점>에서는 출장과 정보 수집 목적의 철도 여행이 묘사되는 정도이지만 <점과 선>에서는 알려졌다시피 철도 시간표를 아예 주요 트릭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아직 접하지 못한 다른 소설에서도 철도에 관한 관심이 발견되는 모양이다. 2010년 주간지 <아에라(AERA)>의 무크지인 <쇼와의 철도와 여행>에서는 마쓰모토 세이초 특집 "쇼와의 철도, 추적의 여로"를 게재해 <점과 선> 외에도 대표작 <모래 그릇> <조난> <제로의 초점>의 전 역 전 열차를 망라했다. 또한 세이초 소설을 통해 쇼와 시대의 철도 현장을 들여다 본 신서(<'세이초'를 타다-쇼와 30년대의 철도 현장을 찾아서>(오카무라 나오키 지음, 교통신문사 펴냄, 2009)도 있다.

무크지와 신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서 '철도 문화'에 대한 관심은 쇼와 시절-특히 쇼와 30년대-에 대한 향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제는 전후가 아니다"라는 정부 경제백서의 선언(1956년, 쇼와 31년)으로 시작된 쇼와 30년대는 풍요와 안락의 상징이었고, 그 속에서 누릴 수 있었던 즐거움 중 하나로 지역 특산물이나 관광으로 연계되는 철도가 있었다. 마침 쇼와 39년, 1964년에는 도쿄 올림픽 개최의 축포를 쏘아 올리듯 신칸센이 개통됐다.

이 시기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해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 세이초인 만큼, 굳이 철도에 대한 애정이 남들보다 크지 않았더라도 관심이 자연스레 작품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에 실린 열두 개 미스터리 중 두 개가 '일본 국유철도 3대 미제 사건'에 포함된다는 점인데, 이 어두운 사망 사건들은 미 군정기인 1949년에 발생했다. 전후를 '지휘'한 미 군정이 남긴 미스터리가 쇼와 20년대의 선로 위를 달리고, 전후를 '끝냈다' 주장하는 '경제 강국' 일본의 자의식이 쇼와 30년대의 선로 위를 달리는 대비라고 할까. 그리고 21세기 쇼와의 추억을 위해 관광 열차에 오른 많은 일본인들은, 세이초 작품에서 '쇼와 30년대의 철도'만을 건져 올리는 책들은 아마 대부분 후자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각설하고, <푸른 묘점>은 가끔은 철도 관광 가이드북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체적인 여행 정보를 흘린다. 그걸 주워 담는 재미는 물론, 철도 여행자로서의 작가 정체성을 발견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간선철도의 큰 역에서 시작해 지선이나 택시로 이동, 전통여관의 서비스를 받으며 지역 특산물을 맛보는 게 일본 철도 여행의 일반적 문법인데, 이 책에서 거기 대응하는 문장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다음과 같은 뜬금없는(?) 정보를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에서 오신 분들은 잘 모르시죠. 우선 하코네에 이런 길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미야노시타에서 고라, 고와키다니 코스가 전부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죠. 하지만 진짜로 하코네의 정취가 있는 곳은 이 옛 가도라고 생각해요." (사건의 마지막 열쇠를 풀기 위해 하코네로 이동했을 때 택시 기사 왈, 508쪽)

"은어 소금구이와 은어 내장 젓갈이 접시에 담겨 있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기소가와 강가의 땅이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먹었던 은어와는 맛이 전혀 달랐다. 어머니가 은어를 좋아하시는데 이렇게 싱싱한 은어를 드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고 노리코는 생각했다." (조사를 위해 이누야마로 떠난 노리코가 여관에서, 273쪽)

가난했던 유년 시절 세이초는 늘 여행을 꿈꿨다 한다. 신문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빗자루 행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국을 유람했고, 특히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작품을 연재하며 유적을 찾아다녔다. 유명해진 이후엔 취재차 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소설이 인기를 끌며 배경이 된 곳이 관광 명소가 되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의 마음속엔 지도와 철도 시간표를 펼쳐 놓고 여행을 '꿈꾸는' 소년의 자아가 있었던 것 같다.

"누워만 있는 내게 여행은 전혀 인연이 없지만 (…) [시간표에 실린 역 이름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그 고장의 풍경까지도 상상이 간다. (…) 내가 이렇게 병상에 앉아 나의 여윈 손가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전국의 여러 지방에는 일제히 기차가 정차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에 따라 기차에 타거나 혹은 내린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여러 고장에서 펼쳐지는 스쳐 지나가는 인생을 한없이 공상할 수 있다. (…)" (<점과 선> 135~137쪽, 야스다 료코의 수기)

아픈 몸 때문에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늘 철도 시각표를 보며 타인의 여행과 인생을 공상할 수밖에 없었던 이 여인처럼, 지금 여러 사정 때문에 떠날 수 없는 독자들에게 세이초와 함께 하는 철도 여행을 권한다. 아,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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