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로 꼽히는 암(사망 원인을 세분화하면 1위는 뇌혈관 질환이라는 반론이 있으나 현재 통계청의 사망 원인 분류로는 암이 1위다)이 가장 두렵다. '자살 공화국'인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 자살을 유발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 중 하나인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어렵다.
종일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전자파도 분명 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있을 터다. 꼭 전자파 탓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장시간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면 마치 핸드폰으로 격한 노동이라도 한 양 몸의 이곳저곳이 쑤시지 않는가?
머리가 아플 때마다 별 생각 없이 입에 털어 넣는 각종 알약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좀 더 걱정의 스케일을 넓혀 보면 '핵'이 있다.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 이후 후쿠시마 거주 18세 이하 어린이, 청소년 중 40퍼센트에서 갑상선 응어리가 발견됐다. 한국은 안전할까? 한국 핵발전소의 사고 소식이 마치 잊을 만하면 튀어 나오는 연예인의 대마초 흡연 사건처럼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은 각종 질병, 불의의 사고, 죽음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죽음을 맞은 사람들 역시 그전에는 우리와 같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온갖 위험에서 멀어지겠답시고 집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최초의 리스크 커뮤니케이터 안종주의 <위험 증폭 사회>(궁리 펴냄)는 훌륭한 '위험 소통(Risk Communication)' 교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위험을 경고한다. 그러나 '커피부터 담배까지,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안전해지고 싶으면 돌이 되세요'라고 말하는 책은 결코 아니다. (물론 이 책에 커피와 담배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담배는 '절대악'으로 등장하지만 커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반악반선'으로 서술된다는 차이가 있다.) 이것도 위험하고 저것도 위험하다고 잔뜩 겁만 준 채 끝나버리는 시중의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 <위험 증폭 사회>(안종주 지음, 궁리 펴냄). ⓒ궁리 |
그러니 <위험 증폭 사회>가 두꺼운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위험 목록 제시에 그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험을 강의하듯이 알려주는 차원에서 벗어나 위험을 놓고 '소통'하고자 한다. 실제로 각종 위험을 둘러싼 복잡한 용어와 사회적 배경에 대한 상세한 저자의 설명을 보고 있자면 명칭조차 생소한 '위험 소통'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진다.
많은 한국인이 하루에도 몇 잔씩 들이켜는 커피에 대해 저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위험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어린 시절 '커피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는 어른들의 경고에 커피에 입도 대지 못했던 사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어른들은 뭔가 백해무익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거나 설명하기 귀찮을 때 늘 머리가 나빠진다고 엄포를 놓곤 한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국제암연구소가 "커피를 발암 가능 물질인 그룹2B로 분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물론 국제암연구소니 근거는 있다. "2007년 미국 베일러 대학 의과 대학 연구팀은 커피콩에만 발견되는 (특정한) 분자가 사람에서 나쁜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저밀도지질단백질(LDL)의 농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 내놨다."
그러나 커피는 (이제는 널리 알려졌듯이) 인체에 좋은 작용을 하기도 한다. 커피는 몸에 수분을 보충한다. 커피는 항암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서 항암 작용도 할 수 있다. 이렇듯 발암 물질로 분류됨과 동시에 항암 물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커피에 관해 서술하며 '커피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결국 커피는 두 얼굴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적당히 마시면 좋다'는, 마시는 사람의 현명한 조절 능력을 요하는 먹을거리로 결론난다. 그러나 임산부에게는 아무래도 한 얼굴만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운다. 저자는 "카페인 분자는 매우 작아 태반막을 통과해 태아의 혈류에 쉽게 녹아들어 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위험 물질이 커피처럼 두 얼굴의 물질로 소개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보건시민연대의 집계대로라면, 지난 2011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52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시민 단체에 접수된 피해 사례만 이 정도다. 저자는 이 사건을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 환경 재앙 사건"으로 명명하고 "이는 단언컨대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화학 물질에 의한 위해성 사건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먼저 언급될 것이며 환경 독성학 교과서에 실리게 될 사건임에 분명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가습기 살균제처럼 그저 가습기 통의 물에 몇 방울 섞어 쓰는, 위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가정용품이 어떻게 웬만한 대형 건물 붕괴 사고만큼이나 많은 사상자를 나오게 했을까?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몇몇 화학 물질이었다. 이 물질들은 수영장이나 화장품류에 살균제나 방부제로 미량 첨가된다. 구강으로 섭취하거나 피부로 접촉하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흡입하는 순간 살인 병기로 작용할 수 있다. 화장품에도 첨가되는 물질이지만 물에 섞여 미세입자 형태로 공기 중에 배출된다면 죽음의 물질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13년 동안 874만 명(전체 인구의 18.2퍼센트)가량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왔다는 점에서 실제 위험 노출 인구는 그 어느 사건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정부나 해당 업체는 위험 소통은커녕 '억울하면 소송하라'고 태평한 소리만 하고 있다. 적어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라면 한국 정부의 위험 소통 능력은 무능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가 정부와 사업 관계자가 위험 소통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또 다른 위험 영역은 '핵'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10~2012년 8월까지 핵발전소 홍보 예산으로 159억 원가량을 쏟아 부어 지역 주민의 안전이나 시설 점검보다 홍보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딴에는 홍보가 곧 위험 소통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핵발전소 사고로 불안한 사람들은 치약 광고 모델처럼 밝게 웃고 있는 핵발전소 홍보물 속 모델이 야속할 지경이다. 핵발전소 사고, 핵폐기물 사고 등 핵 관련 사고는 저자의 말대로 "통제가 불가능하며 지구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그 결과가 치명적이며 사고 주변 주민에게 피해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공평하지 않은 위험에 속한다. 미래 세대에도 위험을 가하며 쉽게 그 위험을 줄일 수 없는 특성을 지녔다. 물론 원치 않는데도 노출될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 위험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먹을거리(소주, 카드뮴 낙지), 생활환경(휴대전화, 송전선로, 자외선 등), 자살, 흡연, 산업 재해 등 우리 생활 전반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온갖 위험들이 등장한다. 모든 위험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위험을 덮어놓고 등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위험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끌어안고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지 <위험 증폭 사회>를 열어 위험소통을 시도해보자. 볼테르도 말했듯이, 의심하는 일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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