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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필수 과목에 '정당 만들기' 들어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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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필수 과목에 '정당 만들기' 들어간다면?

[5년, 민주주의]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2013년 첫 '프레시안 books'는, 향후 5년을 건너가는 데 함께 하면 좋을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5년'인 이유는 새로운 대통령과 정권이 들어서는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교차시키는 변화입니다. 여덟 명의 필자가 이 '5년'을 마주하며 책 한두 권씩을 꺼내 들었습니다. <편집자>

1.

민주주의는 왜 필요한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요구에 기초를 둔 정치 체제'라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일까. 편협한 상식과 불합리한 편견에 휘둘리는 우민 정치로 퇴락하는 것 말고, 다른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차라리 양심적이고 유능한 소수의 인재들이 사회와 공익을 위해 공동체에 헌신하는, 귀족정 내지 철인 정치 체제가 더 낫지 않을까. 그들이 국민과 소통 잘 하고 국민의 뜻 어긋나지 않게 일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인터넷도 있고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도 있고 모바일 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왜 꼭 정당과 정부 같은 낡은 모델을 고집하는가. 정부 대신 민관이 함께 하는 협치 모델을 구현하고 폐쇄적 정당 조직 대신 네트워크형 정치 참여 모델을 구현하면 되지 않겠는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상과 같은 정치관이 크게 대두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국 정치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것 사이에 위태롭게 걸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해보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부지불식간에 민주주의가 아닌 생각들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읽을 만한 민주주의 관련 책을 추천하라면, 단연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조기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을 꼽겠다. 20세기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서라고 할 이 책은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집합적 지혜에 기초를 둔 정치 체제로서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싶다면 여러모로 이 책은 유익하다. 우리의 민주 정치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 가운데는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한 문제도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도 이 책의 가치는 정말 남다르다고 본다.

책 추천을 빌미로 이하에서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 상황에서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들을 사족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2.

▲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로버트 달 지음, 조기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 체제와 싸울 때는 민주주의 운동론 내지 민주주의 투쟁론으로 충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역시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된 이상, 이제 민주주의론은 민주 정치론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핵심은 민주 정치의 혜택을 필요로 하는 보통의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문제에 있어서 유능함이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시민을 단순히 투표의 숫자로만 이해하는 것은 민주 정치가 아니다. 그런 정치는 권위주의 때도 있었다. 시민의 참여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선거 때만이 아니라 선거와 선거 사이의 일상적 시기에도 시민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직적 조건을 가져야 한다. 이를 이끌 좋은 리더도 필요하고 사회의 다양한 열정과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들도 필요하고 활동가도 필요하다. 나아가 그들에게 민주적 책임성을 부과할 제도와 절차, 규범도 확립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민주 정치를 위한 '조직화의 비용'이다. 당연히 그 비용을 어떻게 치르고 어떻게 최적화해서 더 나은 성과를 낳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간 야당은 그 비용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무정형의 여론 시장을 향해 무작정 나아가는 쉬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국민 경선제, 여론 조사, 모바일 투표 등이 앞세워지면서 당원의 참여가 중심이어야 할 당의 하부 조직은 무너졌다. 어떻게 해서든 조직화의 실패를 극복하고 더 강하고 더 능력 있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러려면 먼저 민주 정치를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은 왜 다시 패배했나? 내가 보건대 가장 큰 이유는 정당으로서 선거 운동을 하지 못한 데 있다. 후보 개인만 있을 뿐 조직으로서의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좋은 정당 없이 민주주의가 그 가치대로 실천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망상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또 정당 타령이냐" 하고 힐난할지 모르나 좋은 정당을 만들지 못한다면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화만 내고 냉소하기만 할 일이 아니라 정당의 조직적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문제에서 성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 빼고 야당의 정치적 실력이 갑자기 좋아질 방법은 없다.

3.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 역시 민주화 초기 단계에서 정당은 홀대받았다. 보수 쪽으로부터는 국민 전체의 일반 의지를 대표해야지 왜 이념과 계층적 차이를 조직하는 정당을 만들어 사회를 분열시키느냐는 비난을 들었다. 진보 안에서도 직접 행동 내지 혁명을 강조하는 생디칼리스트들부터 정당 정치는 쉽게 비난 받았다. 서유럽의 경험을 기준으로 볼 때, 대중 정당을 통해 민주 정치에 참여하는 것의 가치가 다수에게 지지받는 데는 거의 한 세기가 필요했다.

스웨덴의 경우 한 때는 성인의 3분의 1 가까이가 당원인 적이 있었고 다른 서유럽 국가들 역시 유사한 경험을 했다. 정당에 의해 시민 권력이 조직됨으로써 국가 관료제를 민주적 통제 하에 둘 수 있었고 경제 권력을 규제할 수 있었으며 계층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 정책을 꾸준히 실천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독일의 한 가정집에 보름 정도 머물면서 과연 이 나라를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경제를 갖고 있는 나라,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모두 민주화되어 있음에도 가장 평화로운 노사 관계를 갖는 나라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북유럽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들 나라에서 국가는 권력 기구가 아닌 공동체에 복무하는 기능 집단 같다고 말하곤 한다. 정당의 존재는 모든 곳에서 발견되지만, 당원이 될 필요는 점점 줄어드는 것도 이들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이다. 정당의 기능이 이미 공적 기구 곳곳으로 용해되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원이 되고 정당 행사에 참여하는 일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수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일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기존 정당이 경직되는 듯이 보이면 녹색당이나 해적당과 같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기존 정당 체제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우리도 이랬으면 좋겠다. 좋은 정당이 시민 권력을 잘 조직해 정치를 좋게 만들고 그 힘으로 국가 기구 전반을 민주화함으로써 경제 권력에 의한 불평등 효과를 완화하고 사회를 공동체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우리는 제대로 된 정당, 제대로 된 정당 정치가 안 돼서 고통 받는 것이지, 정당의 시대가 끝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4.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간 적이 있다. 청소년 정치 교육 교재들을 둘러보면서 한 권의 얇은 책을 발견했다. 1장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했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브라질 커피 농장 노동자에게 얼마가 돌아갈까?" 아이들에게 글로벌 노동 시장 문제를 생각해 보라며 던진 질문이었다.

3장은 "정당을 만들어보자"였다. 예시로 나온 것은 "숙제하기 싫은 당 만들기"였다. 아이들에게 그런 무책임한 상상을 하게 해도 되나 생각했는데, 내용은 달랐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방과 후 학습을 일률화해서 숙제를 내는 것을 비판하면서, 다양성과 자율성이 커지는 방법으로 바꿔주기를 요구하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흥미로웠고 인상적이었다.

청소년기에 아르바이트 경험이 없으면 성인이 되어 취업할 때 불이익을 받는 나라들도 유럽에는 많다. 노동의 가치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란다. 우리는 어떤가. 아이들에게 노동이 인간 공동체를 지탱시켜주는 기본 가치라는 것을 가르치나. 시민이면 누구든 정당에 가깝게 다가가고 필요하면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나. 우리들의 미래 시민인 아이들이 공익적 열정을 갖도록 가르쳐야 할 텐데, 그럴 기회가 억압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체격은 이미 어른인데 그에 맞는 민주적 인식을 갖게 해주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 구조 때문에 삐뚤어진 심성을 키워가도록 무한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달라졌으면 한다. 아이들에게 민주 정치의 중요성을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일하는 것의 가치와 보람을 갖게 하지 못하는 교육이라면 사회를 해체할 무기를 쥐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봉사가 자율적 선택이 아닌 점수가 되고 스펙이 되면 더는 봉사가 아니다. 대신에 시민 교육 내지 공민 교육의 시간이 배정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시민됨의 보람을 갖게 하는 민주 정치의 가치가 아이들에게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럴 때쯤 되어야 우리의 민주주의도 그 가치대로 실천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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