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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아들, 치과 의사 때려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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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아들, 치과 의사 때려치더니…

[2012 '올해의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프레시안 books' 송년호(121호)는 '2012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2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라 믿게 된다. 내게 중국 작가 위화의 책은 늘 특별한 사연과 함께 찾아왔고, 올해 번역 출간된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펴냄) 역시 그런 징크스에 하나를 추가했다.

나는 이 책을 예상치 못한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10시면 소등되는 4인실 침대 위에서 북 라이트를 켜고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읽었다. 책에 대한 면역이 사라진 상태에서 자유롭게 울고 웃었다. 올해의 책을 고르는 데 가능한 한 공공적인 고려(?)를 우선해야겠지만, 이번 한 번만큼은 매우 사적인 이유로 다른 책을 떠올리기 어려웠다는 점을 이해 받고 싶다.

위화는 어린 시절 한동안을 병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가 외과 의사였고, 그의 유년 시절(1970년대)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직장에 거주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소년 위화가 놀이터 삼아 누비던 병원은 간호사들이 수술 후 환자의 피와 도려낸 살점을 연못에 가져다 버리거나 화장실과 영안실이 문도 없이 바싹 붙어 있는, 현재의 위생 관념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이런 기억을 포함해 그의 유년 경험은 우리가 외과 의사의 아들이라 하면 상상하는 이미지와 아주 거리가 먼데, 그게 바로 '의사'란 말의 사전적 정의 빼고 거의 모든 것이 격변한 지난 중국의 40년을 증언해주는 예이기도 하다.

그 역시 의사란 직업을 얻었다. 손에 강철로 된 집게를 들고 종일 사람들의 이를 뽑는 치과 의사였다. 책 속에서 그는 몇 해 전 한 서양 기자에게 들은 질문을 이야기한다. "왜 부유한 치과 의사 생활을 포기하고 가난한 글쓰기 생활을 시작했나요?" 위화의 대답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막 개혁 개방을 시작하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 '큰솥밥'을 먹던 때라 도시에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매달 받는 월급이 똑같았다. 그리고 개인에게는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고, 전부 국가가 분배해준 직업을 떠안았다.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남의 벌린 입 말고는 볼 수 있는 게 없던 스물 무렵, 그는 창 바깥을 내려다보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두려움을 느낀다. 직원들이 한가하게 빈둥대는 현(縣) 문화관이야말로 천국일 거라고 생각한 그는 작가가 되어 현 문화관에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한 자 한 자 고통스런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에게 "이를 뽑는 것은 생계를 위해서였고, 글쓰기는 나중에 더 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쓴 소설 뭉치는 중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다 위화 집 앞마당에 큰 소리를 내며 던져지기를 반복했고, 어느 날 베이징에서 걸려온 장거리 전화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 명의 외국 독자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대륙의 크기와 인구 수 속에서 흔치않은 우연이 일어난 점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그가 소설가가 된 이유에는 이처럼 끌리는 데가 있다. 그저 주어진 조건을 격파해 낸 한 인간의 성공담이 아니라 시대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떤 물살에 내려놓는지를 이야기함으로써 시대를 어떤 분석보다 잘 보여주는 예처럼 느껴진다.

그가 성장하면서 복사시켜나간 '원본 그림'은 문화 대혁명이었고, 그건 어제의 명사가 오늘의 반혁명 분자였던 시대,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로부터 30년, 중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모든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나라로 격변했지만, 여전히 일개 사람 앞에 크고, 아득하며, 멀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소 운명론적으로 읽힐 소지도 있으나,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인생을 거는' 각오로 역사를 조금씩 열거나 조금씩 움직인 개인들이 있었던 것이 현대 중국의 역사라고 여겨진다.

알려진 대로 이 책은 위화가 현대 중국에 대해 생각하며 쓴 '비허구적 글'의 모음으로 그가 고른 열 개의 단어가 한 장 한 장을 이루고 있다. 위의 일화들은 그 중 하나인 '글쓰기'에 등장한다. 위화는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썼는데, 문장을 빌려 책의 특징 하나를 거론하자면 "직접 정의해 보지 않으면 자신이 처한 세계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세계를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다. '현대'에만 국한해도 수많은 인물과 서사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국내 출판 시장에서 중국이란 콘텐츠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서로 자기가 보는 중국이 맞다고 주장하니 더욱 헷갈린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첫 번째 질문, 왜 중국을 알고 중국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물론 위화의 이 책이 그에 대한 답을 주는 건 아니다. 그는 그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인민', '영수', '산채', '홀유' 등 고른 단어들을 충실하게 발음해 냈다. 자신이 처한 세계, 그 가운데서도 민중의 고통으로 확장 가능한 경험을 건져 올리려 애썼다. 자기가 봐 온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실함이 깊어지면, 다른 사람에게도 깊게 전달된다는 것을 위화는 보여준다.

그가 우연히 "죽음은 서늘한 밤이다"라는 하이네의 시구를 읽고 아예 잊고 살았던 병원 영안실에서의 유년과 생생한 느낌을 떠올린 일화를 보며, 병상에 쭈그려 있던 나 역시 전율했다. 많은 '글'들이 자족적으로 생산되어 글쓰기에 대한 회의감이 염치와 동의어가 된 시대에, 너무 쉬워 잊기 쉬운 한 가지 정수를 참 아름답게도 말해주었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혹은 나중에 태어날 누군가에게 우리가 있는 세계에 대해 '안' 것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뒤로 넘길 수 있는 건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세계관뿐이다.

"만약 문학에 정말로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마도 이런 것이 그 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올해에도 수많은 책을 만났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은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쓰윽 눈길 한 번 받고 바로 책장으로 직행해 먼지를 맞고 있다. 위화의 유년기에는 정반대였다. 그는 '독서' 편에서 <마오쩌둥 선집> 외의 모든 책이 사라진 시대에 활자에 굶주린 소년이 어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문학을 경험했는지 (일부는 과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세세한 기억력으로 되살려 놓았다.

일단 <마오쩌둥 선집>의 '주석'을 굶주린 듯 읽었고, 어렵사리 빌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춘희>를 읽다 감정에 복받친 나머지 그 책 전체를 친구와 나눠 필사하기도 했고, 욕설과 사생활 폭로의 장으로 변모한 대자보에서 성애와 관련된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가장 큰 고통은 결말이 뜯겨나간 책이었는데, 그는 "애당초 구세주는 없고 신선이나 황제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는 심정(중국 '인터내셔널가' 가사)으로 외롭게 결말을 상상하곤 했다.

이 글 속의 위화는 40년 후 책이 너무 많아 매주 골라내고 골라내는 게 직업인, 이야기가 너무 많아 웬만한 이야기는 설정만 듣고도 고개를 돌려버리는 나 같은 사람이 생겨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민망한 질투인 결핍에 대한 질투가 피어올랐던 것 같다.

왜 혼란스러운 세계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한편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재를 느꼈던 것일까? 대답을 대신하여, 그가 쓰지 못한 열한 번째 단어에 관한 결핍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한 단어를 추가로 꼽자면 '자유'라고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고 한다. 한국 독자들에게 쓴 서문의 제목 '5월 35일'은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1989년 6월 4일을 우회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주로 중국 인터넷 속에서 펼쳐지는 암시와 비유, 풍자와 조소 등 온갖 기기묘묘한 에너지를 상징한다.

'6월 4일'식 자유를 가지지 못한 중국인들은 '5월 35일'식 자유라는 전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는 묻는다. "언젠가 '6월 4일'의 자유가 도래한 뒤에도 우리의 표현이 지금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처럼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절묘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거대한 체제의 뒤틀림이 빚어 낸 어떤 삶의 주인으로서, 운명과 결핍이 탄생시킨 작가로서, 위화는 자신의 삶을 5월 35일식 화법으로 헌정했다. 나는 전복적 에너지를 빌미 삼아 억압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중국에 이제 6월 4일의 자유가 도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는다"는 신영복의 문장을 떠올리면서, 나는 결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절감했을 뿐이다.

새 대통령 당선을 바라보며 한 단락을 추가한다. 당선자를 '유신'이란 레테르로 공격하는 것엔 동의하지 않지만, 그 주변 사람들의 보수성으로 볼 때 표현의 자유에 대한 퇴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위화가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긍정했던 5월 35일식 자유를 '누리게' 될 기회가 늘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지금은 정치적 견강부회를 하기보다, 시대 속에서 자라기도 하고 거기에 맞서기도 한 보편적인 누군가의 이야기로 읽어 주기를 권하고 싶다. 이 신랄하면서도 따뜻한 책 한 권이 당신이 발 디디고 있는 세상에 떨어졌을 때, 또 어떤 빛을 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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