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을을 위한 정당'을 표방한 민주당이 밝힌 목표치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민주당은 6월 국회 시작 전 경제민주화 35개 법안을 선정하고, 그 가운데 중점 법안 16개 처리를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의 처리는 9월 국회로 넘어갔다. 특히 '갑을상생법'의 대표격인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명 '남양유업 방지법'은 "공정위의 실태조사를 기다려야 한다"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기약 없이 밀려났다.
한 마디로 '절반의 성공'.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을 지키기 위원회)'를 이끌었던 우원식 최고위원은 2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고작 몇 개 뿐이지만, 그마저도 결코 녹록지 않았다"고 소회를 풀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공정위원장, 경제수석, 경제부총리가 모두 노골적으로 슈퍼갑의 편에 서고 새누리당이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 있는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라며 "미흡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자평했다.
▲ 경제민주화국민본부와 전국을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회원과 중소 상인들이 6월 30일 국회 로텐더홀 중앙계단에서 단식농성중인 민주당 우원식 을지로위원회 위원장과 윤후덕 의원을 찾아 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
"단식으로 '국정원 국면' 전환… 'CU 방지법' 살려냈다"
모두의 예상대로, 새누리당은 민생 법안 처리에 주력하겠다던 초반의 다짐을 뒤집었다. 특히 새누리당 법사위 위원들은 경제민주화 법안 발목잡기로 일관했다. 여당의 이같은 거센 반대 속에서 몇 건이라도 건져올릴 수 있었던 건, 우 최고위원과 같은 당 윤후덕 의원의 '막판 단식'의 영향이 컸다는 평이다.
두 의원은 지난 27일 "더 이상 '을'의 목소리를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며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현장 방문, 의사 일정 등을 제외하면 매일같이 국회에 나와 본회의장 입구 계단 앞 농성장을 지켰다. 그리고 6월 국회 회기가 끝나는 이날, 이들은 엿새 간의 단식 농성을 마무리했다.
우 최고위원은 "학생운동으로 옥살이를 하던 시절 이후로 단식 농성은 30여 년 만에 처음"이라며 "오랜만이라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엿새 만에 수염은 덥수룩하게 얼굴을 뒤덮고, 볼은 푹 꺼졌다. 그러나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가장 큰 성과물이 바로 'CU 방지법'이다. 상임위에서부터 사장될 위기에 있던 이 법은 6월 국회 종료를 하루 앞둔 1일 법사위에서 가까스로 통과하며 기사회생했다. 새누리당 법사위원들은 당초 금융정보공개법(FIU법)과 연계 처리를 주장했던 입장을 단일 처리로 변경, 본회의 상정의 길을 터줬다.
우 최고위원은 "최근 민주당이 국정원에 집중하자, 새누리당에선 '국정원 싸움이나 하느라 민생을 소홀히 한다'며 경제민주화법 처리가 미진한 책임을 우리에게 넘기고 있었다"며 "그런데 막판 6일 동안 단식을 하는 바람에 (법안 통과) 책임이 새누리당에 돌아가면서 연계 처리를 주장하기가 되게 부담스러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식 농성은 사실상 새누리당 '압박용'이었다. 그는 "새누리당에서는 당연히 달가운 단식이 아니다. 민생을 챙기지 않는다고 우리가 혼을 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며 "'우리(새누리당) 지도부가 경제민주화법 잘 하는데 뭐 하러 단식을 하느냐'고 대놓고 말씀하시는 (새누리당 의원)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국정원 문제, 경제민주화 이슈 함께 가져가야"
반면, 당 입장에서는 '국면 돌파용'이었다. 6월 국회 중반 이후 국정원 문제 제기에 당력이 집중되면서 새누리당 주장대로 '민생 소홀' 얘기를 들을 찰나였다.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동시에 최고위원이었던 그는 "사실 (단식을 할지 말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국정원 이슈와 경제민주화 이슈는 대립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정부 10년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서민 삶이 안 좋아지면서 소위 '욕망의 정치'인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며 "그러나 결국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굉장히 후퇴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정치적 민주주의와 민생은 같이 가야 하는 것"이라며 "최고위원으로서도 그 방향을 누군가 유지해야한다고 본다면 (단식은) 잘 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판단은 주효했고, 당 의원들의 응원이 뒤따랐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동료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본회의 참석 차 국회 본청에 온 문재인 의원도 농성장에 들러 우 최고위원을 격려했다.
위원회 활동을 통해 만난 '을(乙)'들의 격려도 이어졌다. 그는 "남양유업 문제부터 시작해서 갑을 문제가 조명을 받으면서 을로 드러난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른다"며 "까딱했으면 국정원 국면에 쓸려나갈 걸 단식까지 하면서 잘 유지했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민생 법안 쌓아놓고 현장 가겠다는 새누리, 거짓 민생세력"
그러나 정작 남양유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점은 그로선 뼈 아픈 일이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 대리점 80만 여개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후 9월 정기국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다. 우 최고위원은 '남양유업법' 입법 상황에 대해 "오늘 정무위에서 7,8월 중 법안심사소위 열자는 것까지 합의한 상태"라며 "9월 국회가 열리자마자 1순위로 처리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현재 남양유업법 등 나머지 민생 법안 처리를 위해 7월 임시 국회 개회를 제의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불가' 입장을 밝혔다. 우 최고위원은 "새누리당에선 이제 와 국회가 아닌 민생현장으로 간다고 한다"며 "법이 국회에 다 있는데 무슨 민생 현장간다는 거냐. '거짓 민생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7월 국회를 열어야 하는데, 크게 기대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6월 국회 회기는 이날로 끝났다. 따라서 을지로위원회의 1차 활동 시한도 사실상 끝난다. 그러나 그는 "불공정한 거래로 억울한 피해를 본 '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현장 방문을 계속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민주주의와 민생 챙기기의 '투 트랙'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향후 활동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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