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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걱정하는 중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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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걱정하는 중생들아!

[프레시안 books] 존 그레이의 <불멸화 위원회>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소설은 아니지만, 기이한 일들이 해명되지 않은 채 나름의 인과적 사슬을 이루며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는 점에서 괴기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보여 준다. 추리소설이 겉보기에 기이한 사건을 상식의 언어로 해명하여 독자를 안심시키는 것과 달리, 괴기소설은 언뜻 보면 평범할 수도 있는 사건의 이면에서 통상적인 이해의 수준 또는 인식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 괴이쩍은 진상을 폭로하여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괴기소설은 대개 환상소설의 하위 장르로 여겨지지만, 어떻게 보면 인류의 역사 자체가 이미 '우리'의 협소한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괴기소설적 수수께끼로 넘쳐 난다. 여기 존 그레이가 <불멸화 위원회>(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에서 소개하는 것은 바로 그런 수수께끼 같은 역사의 뒷 이야기들이다.

존 그레이는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 19세기 말엽의 후기 빅토리아 시대부터 혁명과 전쟁, 대공황으로 얼룩졌던 20세기 전반기까지 폭넓은 시공간을 다룬다. 책은 크게 20세기 전반기 런던의 심령학자들(psychic researchers) 이야기와 모스크바의 건신주의자들(god-builders)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두 이야기는 런던의 문필가 H.G. 웰스와 그의 숨겨진 러시아 애인 '모라'의 이야기를 통해 가느다랗게 이어진다.

저자는 이들의 기묘한 이야기를 기존의 역사적 지식에 통합시키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를 바탕으로 20세기 전반기 영국이나 러시아 역사에 대한 기성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전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그렇게 잘 알려진 시대,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100여 년 전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배경 삼아 당시 영국과 러시아의 지도층들이 불태웠던 영생에 대한 은밀한 열정을 기술하는 데 집중한다.

겉보기에 이 이야기들은 일종의 교훈담처럼 제시된다. 저자는 이야기 앞뒤의 서문과 결론부에 등장해, 현대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고 합리적이고 현명하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이 오히려 주술적 사유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역설을 말하면서, 인간의 고유한 한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라고 독자에게 점잖게 충고한다.

▲ <불멸화 위원회>(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 ⓒ이후

그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말하자면 자기가 제시하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의미심장하기 때문에 굳이 사족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영국 수상이었던 아서 벨푸어나 러시아의 대 문호 막심 고리키 같은 유명인사들의 일생을 일종의 '반(反)-성인전' 형식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예민한 어린 아이들이 가톨릭 성인전의 잔인한 고문 장면 묘사에 얼이 빠져 그 속의 종교적 교훈을 곧잘 놓치고 마는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훈계적 메시지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게 되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를테면 저자의 결론을 그냥 사족으로 취급하면서, 이 책을 순수한 괴기-논픽션으로 소비할 수도 있다. 약간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는 하겠지만, 괴기-논픽션은 <그것이 알고 싶다>부터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과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족보 있는 장르다. <불멸화 위원회>는 20세기의 괴괴한 역사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좋아할 만한 책이고, "유령과 볼셰비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이상한 시도"라는 유혹적인 부제가 약속하는 어떤 비뚤어진 재미를 틀림없이 제공한다.

하지만 이 책의 수수께끼를 좀 더 파고들어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저자에 관해 좀 더 알아보자. 이 책의 저자 존 그레이는 옥스퍼드대학 정치학 교수, 런던정경대학 유럽 사상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8년 학계에서 은퇴했다. 그는 1980년대에는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뉴라이트의 관점에서 주로 유럽 정치철학에 관한 학술서를 냈는데, 90년대에는 토니 블레어의 '새로운 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환경주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90년대 말부터는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의 구별을 넘어 유럽 사상과 체제 전반에 대한 회의를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이후 존 그레이는 <가짜 새벽: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망상>(1998), <자유주의의 두 얼굴>(2000), <지푸라기 개 -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 관한 사유>(국역본 제목: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2002), <이단자들 – 진보와 그 외 환상들에 반대하여>(2004), <흑마술 집회 - 파국적 종교와 유토피아의 죽음>(국역본 제목: <추악한 동맹 - 종교적 신념이 빚어낸 현대 정치의 비극>(추선영 옮김, 이후 펴냄))(2007)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또한 그는 <가디언>과 <뉴 스테이츠먼>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관해 리뷰와 칼럼을 발표하고 있다. <불멸화 위원회>는 이런 저자의 최근작이다.

<불멸화 위원회>만 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저자 존 그레이는 기본적으로 '다윈 이후'의 맥락에 놓인다. 1874년 찰스 다윈과 그 주변의 유물론자들이 당대에 유행하던 심령술 집회에 참가했다가 '이것은 모두 속임수일 뿐'이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장면으로 <불멸화 위원회>가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찰스 다윈의 이름이나 '다윈주의'라는 말에 별로 의미의 더께가 쌓여있지 않지만, 영미권에서 그것은 수많은 논쟁들에 뒤얽혀 있는 문제적인 키워드다. 진화론이 참인가 거짓인가 하는 과학적 연구의 역사와는 별도로, '다윈의 이론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가'를 둘러싼 어떤 논쟁의 역사가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19세기 중반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사회과학과 정치철학, 넓게 봤을 때 세계관 전반에 균열을 일으켰다. 여러 방면의 파장이 있었지만, 역시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인본주의였다.

이를테면 영국의 문필가 G.K. 체스터턴은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이 인간을 만물의 기준이자 목적으로 볼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인간 본성과 자유에 대한 아름다운 신념"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그는 1913년에 과거를 돌이켜 보며 이렇게 썼다. "다윈주의의 충격으로, 빅토리아 시대 합리주의의 모든 좋은 것이 뒤흔들려 먼지처럼 사라지고, 그 속에 있던 나쁜 것만 남아 진흙처럼 엉겨 붙었다. 위대한 해방이 사라지고 비열한 계산만 남았다."

다윈주의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반(反)목적론적 세계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기독교적인 인간 구원의 서사뿐만 아니라 그것의 계몽주의적 변용인 인간 진보의 서사까지도 불현듯 '허구'로, '한낱 이상'으로 보이게 만드는 탈신화적 힘이 있었다. 체스터턴은 이상적 인간을 전제이자 목적으로 취하는 민주주의의 기획이 다윈주의의 이러한 '파괴력'을 견디지 못한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다윈주의에 반대했다—말하자면 그는 언젠가 다윈주의가 과학적으로 잘못된 가설로 판명되기를 전력으로 바라고 또 기다렸다. 같은 시기 다윈의 사촌이었던 프랜시스 골턴은 더 나은 인류를 육종하는 우생학적 기획을 구상했고, 다윈의 친구였던 T.H. 헉슬리는 불가지론을 발전시켰으며, 다윈과 함께 자연 선택의 개념을 창안했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심령술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일화들은 150여 년 전 다윈주의가 처음 태동했을 때, 그것이 당대의 세계관과 사상 체계에 문자 그대로 구멍을 뚫고 일시적인 진공 상태를 야기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존 그레이가 그리는 것은 바로 이 세계, 다윈 이후 부서지고 이제 막 새로 쌓아 올려지는 세계다.

그는 여기서 '인간적인' 의미의 지평을 파괴하는 과학의 탈신화적 권능을 폭로하고, 그것이 '불가피하게' 심령술 같은 저열한 재신화화의 기제를 불러들인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인간 세계에 관한 한, 그레이는 언제나 염세적 현실주의자를 자처한다. 그는 체스터턴 같은 반(反)다윈주의자나 리처드 도킨스 같은 다윈주의자나 인간을 어떤 고귀하고 지성적인 존재로 이상화한다는 점에서 똑같이 경멸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2000년대 들어 그레이가 주장하는 바는 일관되게 '인간이여, 주제 파악을 해라.'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이상주의는 인간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불가능한 망상을 현실로 구현하려는 시도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불멸화 위원회>에서 불멸을 탐하는 자들은 본인의 이상주의로 인해 자멸하는 우둔한 인간의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결말부에서 그레이가 탈(脫)인본주의자로서 러브룩의 가이아 이론을 말하고 인간보다 위대한 지구 생태계의 '집단 지성'을 꿈꾸듯이 이야기할 때, 그는 일종의 의인화를 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계몽주의자들이 인간에게 기독교의 신을 투영했다면, 이제 그 자신이 지구 생태계에 고전적인 인간 또는 '인간적인' 위대함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진보와 진정한 사랑을 믿었던 H.G. 웰스가 배신감에 휩싸여 비관론자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그는 거의 자전적인 고백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것은 비극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문학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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